김건희 ‘얼얼덜덜’(1980) 서울시립사진미술관 제공


신문 기사 사진을 활용해 당대 현실을 비판적으로 탐구한 김건희 작가(80)의 ‘얼얼덜덜’(1980)은 유희적인 언어로 권위주의 체제 아래 확산한 시대의 공포와 감각의 마비를 보여준다. 김 작가는 1980년 5월 21일자 신문에 실린 10·26 사건 대법원 판결문을 배경으로 삼아 그 위에 아이스바 쮸쮸바 광고 속 문구 ‘얼얼덜덜’을 겹쳐 이미지를 만들었다.
 ◇웃지 못할 시대의 기록



김구림 ‘불 야마토게임예시 가해의 예술’(1970)


26일 서울 창동 서울시립사진미술관에서 개막하는 전시 ‘사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에서 마주한, 웃지 못할 시대의 기록이다. 한국 현대미술사의 내로라 하는 작가 36명이 남긴 사진과 사진을 기반으로 한 작업 등 300여 점을 소개하는 대규모 전시다. 사진이 ‘실험의 매체’ 황금성사이트 로서 한국 현대미술에 어떻게 작동했는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살펴볼 수 있다. 작품 중에는 자연 이미지에 회화나 판화를 접목해 순수예술의 경향성을 띠는 것도 있지만 시대상을 기록한 사진에 작가들이 각자의 세계를 담아 재창조한 작품도 적지 않다.
전시는 사진미술관 개관 이후 처음으로 1~4전시실 전관을 쓴다. 미술관 측은 “1960년대 실험미 바다이야기하는법 술부터 동시대에 이르기까지 사진이 회화, 판화, 퍼포먼스 등을 넘나들며 확장한 과정을 동선에 따라 자연스럽게 읽도록 구성했다”고 밝혔다.
전시는 1960년대 실험미술 세대의 현장을 복원하는 1전시실에서 시작한다. 사진을 현상하는 암실과 같은 어두컴컴한 공간에 전후 1세대로 불리는 작가 이승택(93)과 김구림(89)의 작품이 진열돼 있다. 릴게임한국 포토샵이나 인공지능(AI) 같은 디지털 이미지 기술이 없던 시절, 이들은 사진을 찍고 그 위에 회화적 요소를 가미하면서 실험을 펼쳤다. 사진이 모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편견은 아주 오래전부터 다양한 작가에 의해 전복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도입이다. 이승택은 형체가 지워진 사물의 흔적을 사진으로 남겨 조각적 사고를 확장했고 김구림은 광고판, 서예 이미지 등 황금성사이트 을 결합해 동양적 감각과 사진 매체를 교차시켰다.
 ◇신문은 현실을 해석하는 통로
2전시실에는 1970년대 개념미술과 신문 이미지 실험의 장이 펼쳐진다. 김용철 작가(76)의 ‘포토·페인팅-신문보기, 신문버리기’(1977)는 신문을 버리고 있는 작가 본인의 모습을 찍은 퍼포먼스 작품이다. 신문이 검열의 대상이자 권력의 시녀로 기능하던 시대, 그는 신문을 다루는 몸짓 자체를 비판의 언어로 전환했다. 성능경 작가는 구멍 난 신문을 든 자신의 사진을 여러 장 모은 ‘신문읽기’(1976)를 통해 읽을거리 없는 신문과 숨 쉴 공간을 찾는 시민이라는 표상을 동시에 전달했다. 기획을 맡은 한희진 학예연구사는 “한국 작가들에게 신문은 단순한 자료가 아니라 현실을 해석하고 다시 구성하는 지적 통로였다”고 말했다.
3전시실은 1980년대 이후 작가들의 인식, 지각 실험을 다룬다. ‘내가 보는 사물, 사물이 보는 나’라는 질문을 꾸준히 던져 온 이인현, 시각과 지각 구조를 탐색한 문범(70)과 김춘수(68) 작가 등이 시간성과 움직임을 도입해 사진을 단일 이미지에서 해방시켰다. 사진을 매체가 아니라 경험으로 확장한 흐름을 따라간 구성이다. 4전시실은 사회와 정치적 현실을 전면에 드러낸 작품으로 채워졌다. 박불똥(69)은 판화와 사진의 경계를 허물고 복제와 원본의 개념을 비틀며 미술 유통 구조를 풍자했다. 정동석(77) 민정기(76) 작가는 신문 속 장면과 사회적 이미지를 재가공해 한국 사회의 구조적 현실을 화면에 불러냈다. 김건희의 ‘얼얼덜덜’도 이곳에서 시대의 정서를 압축한 작품으로 관람객의 시선을 붙든다.
전시는 내년 3월 1일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매일 오전 11시, 오후 1시, 3시에는 도슨트 해설이 진행된다. 12월 6~7일에는 전시를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강연도 준비됐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기자 admin@slotmega.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