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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요]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날짜 : 2026년 2월 22일 (일요일)
■ 진행 : 김영민 아나운서
■ 대담 : 희극인 김미화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내용 인용 시 YTN라디오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김영민: '음메, 기 살어!' 이 한마디에 전 국민이 배를 잡고 웃던 시절이 있었죠. 온라인야마토게임 오늘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에서는 짙은 일자 눈썹 하나로 대한민국을 평정했던 코미디의 여왕을 모셨습니다. 무대 위에서는 누구보다 카리스마 넘치는 코미디계의 대모로 무대 밖에서는 후배들에게 든든한 비빌 언덕이 돼 주셨던 분이죠. 이제는 자연 속에서 흙을 만지며 이웃 농부들과 소소한 행복을 나누고 계신다고 하는데요. 반가운 얼굴 김미화 씨 모시고 이야기 나 바다이야기5만 누겠습니다. 어서 오시죠.
□김미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김영민: 정말 영광입니다.
□김미화: 제가 영광이죠. 이렇게 좋은 프로그램에 초대해 주시고
◆김영민: 청취자분들도 굉장히 반가워하실 것 같아요.
□김미화: 반가운 코미디 아줌마입니다. 김미화 아줌 릴게임종류 마고요. 여러분들 정말 반갑습니다. 이렇게 마이크 앞에 또 오래간만에 앉으니까 감회가 새롭고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막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하네요.
◆김영민: 그렇습니다. 요새도 농사 지으세요?
□김미화: 농사는 제가 태평농법이라고 굉장히 어려운 거거든요. 사실 농부들은 매우 부지런한 분들이 농부님들이셔요. 새 황금성릴게임 벽에 이슬을 맞고 착 나가셔가지고 풀을 뽑고 그다음에 농산물 관리하고 물도 대고 다 해 주신 거예요. 그런데 햇볕이 너무 쨍쨍할 때 일하면 지치니까 농사를 안 하시는데 저는 오히려 햇볕이 쨍쨍 비출 때, 그때 나가서 제 발자국 소리를 식물들에게 들려주고요. 풀들을 안 뽑고 같이 바라보면서 태평하게 바라 볼 수 있는 게 이게 굉장히 어려운 거거든요. 그래서 모바일바다이야기하는법 그게 태평농법인데 자풀과 경쟁해서 이기는 식물만 난 먹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김영민: 강하게 크는 친구들이네요.
□김미화: 게으름 농법인데 정말 어렵거든요. 제가 여러분들 재미있으라고 말씀을 드리는 거지만 자풀이라고 우리가 얘기하는 꽃들이 너무나 작고 아름다워서 그걸 뽑아내기가 싫을 때가 많아요.
◆김영민: 맞습니다.
□김미화: 바라보면서 얘도 예쁘고 얘도 이쁜데 왜 얘는 자풀이라고 이름이 붙여졌을까 이렇게 생각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김영민: 행복하실 것 같아요. 자연과 교감하시는 생활이요.
□김미화: 정말 행복해요. 사람들이 저에게 물어봅니다. '풀들과 얘기를 하세요?' 라고 물어보는데 정말 풀들하고 얘기를 하거든요. 풀이라기보다는 꽃과 나무 이런 것들이 되게 많이 있는데 제가 다 하나하나 심은 거잖아요.
◆김영민: 맞습니다.
□김미화: 그러니까 얘네들이 제 자식 같고 얘네들이 얘기하는 소리가 옹알옹알 들리는 거예요. 어떤 꽃은 저쪽에 제가 좋아할 것 같아서 심어놨는데 자꾸 시드는 꽃들이 있어요. 그럼 너는 왜 시드니 물어보면 자기는 햇볕이 싫다는 거예요. 반그늘이 좋다. 그러면 걔를 뽑아서 또 반그늘에 옮겨줘야 되고요. 어떤 애는 또 햇볕이 좋다고 그러고요. 어떤 애는 또 가지를 쳐달라고 그러고요. 막 너무너무 애들이 종알종알 소리들이 귀여워요.
◆김영민: 그래서 또 농업회사 법인도 운영을 하시죠? 이름이 순악질.
□김미화: 네. 주식회사 순악질입니다. 많은 분들이 쓰리랑 부부의 순악질 여사를 너무나 아껴주시고 지금도 제가 시골이라고 하는 농촌에 내려가서 귀촌에서 살고 있는 지가 20년 됐는데요. 거기서 살아도 이제 제가 카페를 하고 있기 때문에 놀러 오시는 분들이 계세요. 너무 반갑게 맞아주시고요. 옛날에 야구 방망이 들고 일자 눈썹 하고 '음메 기살어' 하던 순악질 여사를 떠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늘 무엇을 하더라도요. 예를 들어서 메일의 아이디도 마담 순악질. 농업회사를 해도 거기도 주식회사 순악질 뭐 이런 상황이에요.
◆김영민: 그렇군요. 이곳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도 간단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김미화: 농업법인을 만들어서 시골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농사짓는 농부님들과 함께한 지가 꽤 이제 세월이 오래됐어요. 제가 살다 보니까 이 회색 도시에서 시골로 내려가서 그분들을 만나보니까 이분들이 인생의 지혜를 너무나 많이 갖고 계신 거죠. 그러니까 기다릴 줄 알고 농사라는 게 콩 심어서 빨리 거기서 싹이 나는 게 아니고 물을 주고 햇빛을 받고 뭔가 기다림의 시간들이 있어야 거기서 싹이 올라오고요. 그다음에 그 콩들이 예를 들어서 어마어마하게 가뭄이 있어도 땅을 드는 그 힘들이 막 생겨서 가뭄에 고갱이질을 해도 땅이 안 파지는데요. 그 콩이 싹이 흙을 뚫고 나오는 그런 자연의 어떤 섭리를 묵묵히 기다리면서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 보고요, 저분들하고 함께하면 참 행복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농업법인을 만들어서 저희 마당이 잔디가 많아요. 제가 꽃하고 나무를 좋아해서 되게 많이 심어 놨고요. 잔디밭에서 우리 동네에 계신 분들하고 문화 놀이터 같은 걸 한번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어서 농업법인을 만들고 거기서 저희는 가지고 있는 재주가 공연하는 재주니까 거기서 공연을 하고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어울리고 또 마을 어린이들이 재롱잔치를 하고요. 또 그 동네에 문화예술인들이 오셔가지고 그림전도 하고 그러면서 농부님들이 일궈서 가져오신 농산물을 판매하고요.
◆김영민: 선순환으로 이어지네요.
□김미화: 마당에서 문화 잔치라고 해야 될까요? 거기서 그냥 재미있게 노는 거예요. 하루 종일. 그런 법인을 만들어서 현재까지는 매우 재미있게 활동을 하고 있는데 코로나 때문에 공연을 못 했던 시절이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조금 살짝 좀 뜸해졌는데 올 봄부터는 활기차게 한번 활동을 해볼까 합니다.
◆김영민: 좋습니다. 올해로만 벌써 데뷔 43주년이 되셨어요?
□김미화: 그렇게 됐습니다.
◆김영민: 43주년이면 강산이 네 번 변하고 다섯 번째 강산이 조금씩 변하고 있는 그런 시기잖아요. 세월이 실감이 나세요?
□김미화: 마음이 안 늙는다고 하잖아요. 제 마음은 늘 신인 때의 그 김미화 같은데요. 그 모습이 얘기를 해 주고 있죠. 주름이 늘고 또 일을 하다 보면 조금 너무 세게 일하다 보면 몸이 힘들구나 이런 걸 느끼면서요. 세월을 제가 느끼는 거지, 사실은 마음은 예전에 제가 처음에 코미디언이 되고 싶고 코미디를 처음 했을 때 초심이 계속 있는 거예요. 누구나 다 그러실 겁니다.
◆김영민: 사실 저는 조금 잊어버렸다고 생각했거든요. 김미화 씨가 아직도 초심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니까 제가 굉장히 반성하게 됩니다. 근데 원래부터 아주 어렸을 때부터 동네에서 재미난 아이셨다고 얘기를 들었어요.
□김미화: 개그맨들은 다 아마 그럴걸요. 그런 어떤 살짝 특출난 점이라고 해야 될까요? 어렸을 때 이런 사람들이 있어요. 누가 너 한번 노래 한번 해 봐, 웃겨봐 이러면 막 그냥 나서서 웃기는 애들. 노래하는 친구들. 그게 저였거든요. 그리고 우리 후배들 물어보면 전부 그랬거든요. 먼가를 시켰을 때 부끄러움을 타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서 내가 좋아하는 거기 때문에 팍 표출하는 거. 그랬던 어린이였었어요. 그래서 동네에서는 매우 저희가 그렇게 풍족하게 살지를 못했었기 때문에 반지하 이런 집들이 막 모여 있는 동네에 살았었거든요. 동네 어른들이 광주리이고 시장통에 나가서 장사하시고 돌아오면 그 마을에 큰 평상에서 그 더위를 식히고 그랬던 그 마을 풍경에 속에 제 어린 시절의 삶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어른들이 힘드실 때마다 어린이들이 재롱잔치 해 주면 너무 힘이 나잖아요. 조금만 웃겨도 막 힘이 나는데 제가 동네 어른들을 위해서 막 동네에서 이미자 선생님 흉내도 내고 김추자 선생님 흉내도 내고요. 또 코미디언 서영춘 선배님, 배삼룡 선생님 흉내도 내고 막 그러다 보니까 동네분들이 저를 엄청 좋아하셨어요. 아버지나 엄마는 사실은 먹고 사시기 힘들고 아버지도 병이 있으셔서 힘들어서 저의 재능 이런 거를 얘가 도대체 어디 가서 뭐 하는지는 몰랐었는데 동네분들이 저를 인정해 주신거죠. 집에 안 있고 맨날 돌아다녔어요.
◆김영민: 물질적으로 풍요롭진 않지만 김미화 씨가 전파하는 웃음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만큼은 진짜로 풍족해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굉장히 많이 드는데요. 그러면 아주 어리셨을 때부터 개그우먼을 꿈꾸고 시험을 보러 다니고 하셨던 건가요?
□김미화: 저는 아주 아기 때부터 나는 저런 배삼룡 선생님 같은 코미디언이 돼야 되야겠다, 서영춘 선생님 같은 코미디언이 돼야 되겠다. 예전에 저희 집에는 너무 가난해서 텔레비전이 없었고 저희 옆집 쌀집에 텔레비전이 있었어요. 그때 제가 주로 보던 게 저의 어떤 인생의 스승이라고 해야 되는 분들이 바로 배삼룡, 서영춘 선생님이셨고요. 가방 던지면 바로 그 집에 가서요. 김일 선수의 레슬링 그다음에 코미디언 선배님들의 코미디. 넘어지고 자빠지고 이거를 보면서 나는 저런 직업을 가졌으면 참 좋겠다 하는 게 초지일관 변하질 않아가지고요. 고등학교 때 빨리 졸업하고 내가 코미디언이 되어야지라는 생각으로 시험을 되게 많이 보러 다녔었습니다. 교복 입고요. 그래서 몇 번 떨어졌고요. 교복 벗고 와라 그래가지고 결국은 코미디언 시험을 고등학교 졸업하는 해에 보고 그 해에 활동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김영민: 그러시군요. 사실 그전에도 합격을 할 수 있으셨을 것 같은데 그 교복입은 학생이 전국민에게 웃음을 전해주는 순악질 여사가 됩니다. 이 때 시청률이 지금은 사실 상상할 수 없는 수치거든요. 시청률 60%를 육박했으니까요.
□김미화: 68%인가 여하튼 모래시계라는 드라마가 매우 인기가 있었는데 그 드라마를 이길 정도의 시청률이었으니까 정말 대단했죠. 쓰리랑 부부 하는 시간에는 아마 전부 남성이고 여성이고 온 가족이 텔레비전 앞에서 그걸 보셨던 것 같아요.
◆김영민: 68%면 진짜 TV는 전부 다 그 채널로 맞춰져 있다고 사실 봐도 무방한 정도였는데 그러면 그때 지금 봐도 재밌거든요. 눈썹 일자로 이렇게 딱 테이프 만드시고 '음메 기살어' 이렇게 하시는 거 너무 재밌는데 그 유행어는 어떻게 탄생을 하게 된 건가요?
□김미화: 김한국 씨가 워낙에 잘생긴 개그맨이고 잘생긴 남편이고 이런 걸로 컨셉을 잡았어요. 저는 개그맨 중에서도 왜 저런 잘생긴 남편을 얻을 수 없는 없을 것 같은.. 그런 막 억척스럽고 못생기고 이런 여성이요, 지금도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여성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에 있습니다마는 당시에는 꽤 여성들이 뭔가 여성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고 집 안에서도 마찬가지로 '여자가 뭘 한다고 그래!' 그리고 아침에 새벽에 안경 낀 여자가 차를 타면 기분 나쁘고 이런 터부시하는 뭔가가 있었어요. 당시에 휘둘러서 저렇게 남자를 잡을 수 없을 것 같은 여자가 남자를 막 한 손으로 휘두르고 작은 여자가 야구방망이를 들고 으쌰으쌰 해야 되니까요. 그래서 그렇게 서로 컨셉을 맞췄기 때문에 내가 저 잘생긴 남편을 휘어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지? 그러면서 방망이를 휘두르면서 유행어를 어떻게 휘두르다 보니까 전라도 사투리를 또 쓰고 그러니까 음메, 뭐여 막 이렇게 해야 되니까요. '음메 기살어' 그러면 김한국 씨가 그러면 자기는 또 '음메 기죽어' 이걸로 하나로 그냥 표현이 되잖아요. 둘이서 막 아이디어 회의하고 작가 선생님하고 아이디어 하고 하면서 나온 유행어죠. 짜장면 시키면서도 전화 끊고 괜히 전화 들고 무안하니까 '이따 봐.' 이러고요.
◆김영민: 정말 한 시대를 풍미하셨다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사실 그때 20대셨죠?
□김미화: 20대 중반쯤 됐을 때예요.
◆김영민: 근데 그때 모든 전 국민이 나를 본다라는 마음이 아주 기쁘지만 남모를 고충도 있긴 하셨을 것 같아요.
□김미화: 정말 감사하게도 커다란 인기를 얻었잖아요. 그러면서 약간 중압감도 있었고 이 일을 잘해내야 된다라는 어떤 생각에 갇혀 가지고요. 가족한테 제가 조금 소홀히 했죠. 근데 그럴 수밖에 없죠. 하나의 일을 열심히 에너지 하다 보면 하다 보면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의 희생이 따르죠. 사실은 그런데 그때는 제가 당연히 우리 가족들은 아이들도 내 동생도 우리 부모님도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알아주고 희생을 감수하는 거를 당연하게 이해해 줄 거야라고 하면서요. 제가 욕심을 부렸던 거 아닌가 하는 반성을 나이 들어서 해봅니다마는 그때는 정말 앞만 보고 일을 했기 때문에 그런 성취를 또 할 수도 있었고요. 그래서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를 얻으면 인생이 그렇잖아요. 하나를 또 잃고. 그런 인생의 과정에서 또 쓴맛도 보고 쓰러져도 보고 다시 또 일어나기도 하고. 이런 여러 가지 그 과정을 겪으면서 내가 좌절하고 고통을 당할 때 그때 나는 일어날 수 없을 거야라고 생각을 할 수 있는데요. 그것도 과정이다 인생에 그런 답을 얻게 됐어요. 그래서 어떤 고통이 있을 때 지금은 두렵지가 않아요. 이 또한 넘어가는 건데 내가 왜 그때 고통받을 때 마치 나 혼자만 그런 고통을 다 겪는 듯이 혼자 괴로워했지라는 생각을 하고요. 제 주변에도 미운 사람도 많고 또 저한테 고통 준 사람들도 되게 많이 있거든요. 근데 그런 사람들이 나중에 제가 이렇게 쓱 얘기해 보면 저한테 고통을 줬는지 모르더라고요. 저 사람은 고통을 준지도 모르는데. 제가 트리플 a형입니다. 그래서 누가 저한테 무슨 얘기를 하면 그걸 깊게 생각을 하던 스타일이었어요. 그래서 저 사람은 나한테 왜 이런 얘기를 했지? 나를 미워하나? 저 사람이 나 미워하면 어떡하지? 막 이렇게 생각하던 타입이었는데요. 굳이 그거 그 사람이 나한테 고통 준지도 모르는데 나 혼자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면 그건 저의 고통이잖아요. 그래서 그 뒤에는 나이가 들어서 제가 깨달은 건지 인생의 어떤 경험이 많아서 깨달은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여하튼 깊게 고통스럽다는 생각을 안 하는 쪽으로 그래서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그러다 보니까 긍정적인 일이 굉장히 많아졌고 제 인생이 편안해졌어요.
◆김영민: 그러시군요. 사실 한 번에 많은 인기를 얻으시고 그 과정에서 이 부분은 아쉽고 힘들고 아픈 부분도 있고 그 모든 걸 겪어내고 나니 결국은 긍정이 많이 남았다 이런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요. 저도 아직 겪어내야 할 인생이 참 많겠다 이런 생각을 해보게도 되네요. 개그우먼 김미화 씨와 함께 이야기 나누고 있는데요. 이 얘기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정말 공개 코미디의 전설이라고 불리죠. 개그 콘서트를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셨다라고 들었어요. 이때 얘기 잠시 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미화: 개그 콘서트가 사실은 후배들을 위해서 놀이터를 만들어주고 싶은 욕망이 제가 많았었어요. 왜냐하면 저도 아까 말씀드렸듯이 어렸을 때부터 코미디언이 꿈이었고요. 우리 후배들도 코미디의 꿈을 안고 코미디 현실에 들어왔는데 결국은 젊은 친구들이 활발하게 뭔가 자기 꿈을 펼칠 수 있는 어떤 프로그램이 없다 보니까요. 맨날 와서 커피 심부름이나 하는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저 친구들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내가 선배로서 아이디어를 방송사에서 만들어주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몇 년 고민을 많이 했었었죠. 그래서 제가 쓰리랑 부부 할 때 '쇼비디오 자키'로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공개 코미디의 어떤 부족한 점 이랄까요? 예를 들면 관객 위주의 프로그램이 아니었고 예전에는 연기하는 연기자 중심의 프로그램으로 공개가 진행이 됐었어요. 쓰리랑 시절만 해도 그래서 관객들이 그 시간을 기다려야 했어요. 예를 들어서 '네로 25시' 세트가 지어지면 그 세트를 가운데 놓고 그 세트가 방송이 끝나면 그 코너가 끝나면 그 세트를 부시는 시간 동안은 또 관객들이 기다리고요. 쓰리랑 부부도 세트가 지어지고 기다리고. 그러니까 굉장히 흐름이 느렸죠. 그런데 이거를 연극 형식으로 한번 해보고 또 관객들이 와가지고 선물도 많이 주고 관객이 기다리지 않고 기다리는 동안 음악을 연주를 하고 이런 컨셉으로 진행을 하면 집중도가 높아질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요. 그때는 컬트삼총사라고 컬투쇼가 지금 두 분이 하시지만 예전에는 3명이 컬투삼총사로 활동했었거든요. 그 공연을 하고 있는 거예요. 대학로에서 성공하는 거예요. 저 친구들 저런 코미디를 방송으로 옮기면 괜찮겠다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전유성 선배님이 마침 대학로에서 공연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백재현 씨하고 전유성 선배님한테 제가 이런 공개 코미디를 만들어보고 싶은데 우리 같이 뭉쳐서 방송국에 제안을 해봅시다. 그래서 전유성 선배님을 만나고 백재현 씨도 똑같은 그런 공개 코미디를 하고 있었고요. 전유성 선배님 집에 피디를 모시고 가고 여러 방송을 찾아다닌 게 아니고 딱 두 방송을 찾아다녔는데요. 제가 첫 번째 방송국에서는 코미디 안 만들겠다고 해 가지고 못 했고요. 그때 KBS에서는 한번 해보자 그래가지고요. 전유성 선배님 집에 가서 '공연 녹음, 녹화 좀 해주세요' 했죠. 그래서 PD 모시고 가서 보면서 이런 식으로 후배들하고 하면 괜찮겠습니다라고 제안을 해서 탄생이 된 거죠. 그런데 전유성 선배님이 당시에 그 코미디 아이디어를 굉장히 좋은 제안을 해 주셔 가지고 저는 사실 공개 코미디로 하면 괜찮겠다라는 생각만 했었는데요. 거기에 공개로 했던 코미디 아이템들을 '앵콜 코미디'라고 그래가지고 마지막에 후배들하고 전부 앉아서 앵콜 코미디를 했던 게 대박이 났었던 거죠. 처음 하면서부터 개그 콘서트는 재미있었어요.
◆김영민: 원래 그런 코미디 공연에서의 단점들을 어느 정도 알고 계셨고 보완할 점들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 부분들을 보완해서 나오니까 처음부터 잘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김미화: 그리고 우리 후배들이 워낙 또 잘했었고요. 인기가 높아지면서 코미디가 지금 아직도 다시 회생을 해서 개그콘서트가 지금 잘 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모습 보면서 후배들이 자랑스럽고 제가 지금은 코미디에서 나이 들어서 안 불러주니까 그래서 코미디를 안 하고는 있지만요. 방송에서 코미디 안 한다고 그래서 코미디언이 아닌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는 제 직업이 코미디언인 게 자랑스러워요. 그리고 마음으로도 후배들 하는 거 보면서 응원하고 모든 선배님들이 아마 다 그러실 것 같아요.
◆김영민: 맞습니다. 그 후배들도 코미디를 하면서 지금의 마당을 깔아준 김미화 씨에게 너무너무 감사해 하고 계실 것 같아요. 항상 마음으로는 뭐랄까 항상 코미디를 마음속에 품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냥 대화를 해도 사실 너무 재밌으시단 말이에요. 그래서 한번 여쭙겠습니다. 김미화 씨에게 코미디란 무엇인가요?
□김미화: 코미디는 제 인생이었던 것 같아요. 그냥 코미디를 위해서 산 게 사실은 제가 인생에 있어서 하루에 코미디를 80% 정도는 생각했었으니까요.
◆김영민: 진짜 인생이네요.
□김미화: 어떻게 웃기지?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또 해드리지? 막 이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코미디는 저하고 뗄래야 뗄 수 없는 저의 인생 그렇군요. 하고 있든 안 하든.
◆김영민: 마지막으로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삶의 무게 때문에 웃음을 잃고 계신 분들 많으시거든요. 그분들께 짧게 한마디만 부탁드릴게요.
□김미화: 흔들리지 말자. 나에게는 큰 태풍이고 바람이었다고 생각을 하고요. 내가 거기 날려갔었고 흔들렸고. 근데 아까 제가 잠깐 말씀드렸지만 제 인생을 돌아보면서 그게 지나고 나니까 이거 바람도 아니었잖아? 근데 난 바람인 줄 알고 거기에 흔들렸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나 스스로 나를 사랑하면서 나에게 마인드 컨트롤하는 게 상당히 중요하다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바람도 아닙니다.
◆김영민: 김미화 씨에게 웃음이란?
□김미화: 웃음은 그냥 생활에 자연스럽게 묻어야 되는 거죠. 그래서 슬픈 일이 있어도 저는 울면서 거울을 한번 봅니다. 그러면 내 일그러진 모습 우는 모습이 얼마나 웃긴지 몰라요. 사실은 그래서 또 웃습니다.
◆김영민: 웃음을 잃은 많은 분들, 김미화 씨께서 웃음은 그냥 생활이라고 하셨습니다. 언제나 웃으면 금세 또 좋은 일이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영원한 우리의 순악질 여사 코미디언 김미화 씨와 함께 했습니다. 오늘 너무 고맙습니다. <이런 사람도 없습니다>는 YTN 라디오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YTN 이은지 (yinzhi@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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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김영민: 정말 영광입니다.
□김미화: 제가 영광이죠. 이렇게 좋은 프로그램에 초대해 주시고
◆김영민: 청취자분들도 굉장히 반가워하실 것 같아요.
□김미화: 반가운 코미디 아줌마입니다. 김미화 아줌 릴게임종류 마고요. 여러분들 정말 반갑습니다. 이렇게 마이크 앞에 또 오래간만에 앉으니까 감회가 새롭고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막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하네요.
◆김영민: 그렇습니다. 요새도 농사 지으세요?
□김미화: 농사는 제가 태평농법이라고 굉장히 어려운 거거든요. 사실 농부들은 매우 부지런한 분들이 농부님들이셔요. 새 황금성릴게임 벽에 이슬을 맞고 착 나가셔가지고 풀을 뽑고 그다음에 농산물 관리하고 물도 대고 다 해 주신 거예요. 그런데 햇볕이 너무 쨍쨍할 때 일하면 지치니까 농사를 안 하시는데 저는 오히려 햇볕이 쨍쨍 비출 때, 그때 나가서 제 발자국 소리를 식물들에게 들려주고요. 풀들을 안 뽑고 같이 바라보면서 태평하게 바라 볼 수 있는 게 이게 굉장히 어려운 거거든요. 그래서 모바일바다이야기하는법 그게 태평농법인데 자풀과 경쟁해서 이기는 식물만 난 먹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김영민: 강하게 크는 친구들이네요.
□김미화: 게으름 농법인데 정말 어렵거든요. 제가 여러분들 재미있으라고 말씀을 드리는 거지만 자풀이라고 우리가 얘기하는 꽃들이 너무나 작고 아름다워서 그걸 뽑아내기가 싫을 때가 많아요.
◆김영민: 맞습니다.
□김미화: 바라보면서 얘도 예쁘고 얘도 이쁜데 왜 얘는 자풀이라고 이름이 붙여졌을까 이렇게 생각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김영민: 행복하실 것 같아요. 자연과 교감하시는 생활이요.
□김미화: 정말 행복해요. 사람들이 저에게 물어봅니다. '풀들과 얘기를 하세요?' 라고 물어보는데 정말 풀들하고 얘기를 하거든요. 풀이라기보다는 꽃과 나무 이런 것들이 되게 많이 있는데 제가 다 하나하나 심은 거잖아요.
◆김영민: 맞습니다.
□김미화: 그러니까 얘네들이 제 자식 같고 얘네들이 얘기하는 소리가 옹알옹알 들리는 거예요. 어떤 꽃은 저쪽에 제가 좋아할 것 같아서 심어놨는데 자꾸 시드는 꽃들이 있어요. 그럼 너는 왜 시드니 물어보면 자기는 햇볕이 싫다는 거예요. 반그늘이 좋다. 그러면 걔를 뽑아서 또 반그늘에 옮겨줘야 되고요. 어떤 애는 또 햇볕이 좋다고 그러고요. 어떤 애는 또 가지를 쳐달라고 그러고요. 막 너무너무 애들이 종알종알 소리들이 귀여워요.
◆김영민: 그래서 또 농업회사 법인도 운영을 하시죠? 이름이 순악질.
□김미화: 네. 주식회사 순악질입니다. 많은 분들이 쓰리랑 부부의 순악질 여사를 너무나 아껴주시고 지금도 제가 시골이라고 하는 농촌에 내려가서 귀촌에서 살고 있는 지가 20년 됐는데요. 거기서 살아도 이제 제가 카페를 하고 있기 때문에 놀러 오시는 분들이 계세요. 너무 반갑게 맞아주시고요. 옛날에 야구 방망이 들고 일자 눈썹 하고 '음메 기살어' 하던 순악질 여사를 떠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늘 무엇을 하더라도요. 예를 들어서 메일의 아이디도 마담 순악질. 농업회사를 해도 거기도 주식회사 순악질 뭐 이런 상황이에요.
◆김영민: 그렇군요. 이곳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도 간단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김미화: 농업법인을 만들어서 시골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농사짓는 농부님들과 함께한 지가 꽤 이제 세월이 오래됐어요. 제가 살다 보니까 이 회색 도시에서 시골로 내려가서 그분들을 만나보니까 이분들이 인생의 지혜를 너무나 많이 갖고 계신 거죠. 그러니까 기다릴 줄 알고 농사라는 게 콩 심어서 빨리 거기서 싹이 나는 게 아니고 물을 주고 햇빛을 받고 뭔가 기다림의 시간들이 있어야 거기서 싹이 올라오고요. 그다음에 그 콩들이 예를 들어서 어마어마하게 가뭄이 있어도 땅을 드는 그 힘들이 막 생겨서 가뭄에 고갱이질을 해도 땅이 안 파지는데요. 그 콩이 싹이 흙을 뚫고 나오는 그런 자연의 어떤 섭리를 묵묵히 기다리면서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 보고요, 저분들하고 함께하면 참 행복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농업법인을 만들어서 저희 마당이 잔디가 많아요. 제가 꽃하고 나무를 좋아해서 되게 많이 심어 놨고요. 잔디밭에서 우리 동네에 계신 분들하고 문화 놀이터 같은 걸 한번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어서 농업법인을 만들고 거기서 저희는 가지고 있는 재주가 공연하는 재주니까 거기서 공연을 하고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어울리고 또 마을 어린이들이 재롱잔치를 하고요. 또 그 동네에 문화예술인들이 오셔가지고 그림전도 하고 그러면서 농부님들이 일궈서 가져오신 농산물을 판매하고요.
◆김영민: 선순환으로 이어지네요.
□김미화: 마당에서 문화 잔치라고 해야 될까요? 거기서 그냥 재미있게 노는 거예요. 하루 종일. 그런 법인을 만들어서 현재까지는 매우 재미있게 활동을 하고 있는데 코로나 때문에 공연을 못 했던 시절이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조금 살짝 좀 뜸해졌는데 올 봄부터는 활기차게 한번 활동을 해볼까 합니다.
◆김영민: 좋습니다. 올해로만 벌써 데뷔 43주년이 되셨어요?
□김미화: 그렇게 됐습니다.
◆김영민: 43주년이면 강산이 네 번 변하고 다섯 번째 강산이 조금씩 변하고 있는 그런 시기잖아요. 세월이 실감이 나세요?
□김미화: 마음이 안 늙는다고 하잖아요. 제 마음은 늘 신인 때의 그 김미화 같은데요. 그 모습이 얘기를 해 주고 있죠. 주름이 늘고 또 일을 하다 보면 조금 너무 세게 일하다 보면 몸이 힘들구나 이런 걸 느끼면서요. 세월을 제가 느끼는 거지, 사실은 마음은 예전에 제가 처음에 코미디언이 되고 싶고 코미디를 처음 했을 때 초심이 계속 있는 거예요. 누구나 다 그러실 겁니다.
◆김영민: 사실 저는 조금 잊어버렸다고 생각했거든요. 김미화 씨가 아직도 초심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니까 제가 굉장히 반성하게 됩니다. 근데 원래부터 아주 어렸을 때부터 동네에서 재미난 아이셨다고 얘기를 들었어요.
□김미화: 개그맨들은 다 아마 그럴걸요. 그런 어떤 살짝 특출난 점이라고 해야 될까요? 어렸을 때 이런 사람들이 있어요. 누가 너 한번 노래 한번 해 봐, 웃겨봐 이러면 막 그냥 나서서 웃기는 애들. 노래하는 친구들. 그게 저였거든요. 그리고 우리 후배들 물어보면 전부 그랬거든요. 먼가를 시켰을 때 부끄러움을 타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서 내가 좋아하는 거기 때문에 팍 표출하는 거. 그랬던 어린이였었어요. 그래서 동네에서는 매우 저희가 그렇게 풍족하게 살지를 못했었기 때문에 반지하 이런 집들이 막 모여 있는 동네에 살았었거든요. 동네 어른들이 광주리이고 시장통에 나가서 장사하시고 돌아오면 그 마을에 큰 평상에서 그 더위를 식히고 그랬던 그 마을 풍경에 속에 제 어린 시절의 삶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어른들이 힘드실 때마다 어린이들이 재롱잔치 해 주면 너무 힘이 나잖아요. 조금만 웃겨도 막 힘이 나는데 제가 동네 어른들을 위해서 막 동네에서 이미자 선생님 흉내도 내고 김추자 선생님 흉내도 내고요. 또 코미디언 서영춘 선배님, 배삼룡 선생님 흉내도 내고 막 그러다 보니까 동네분들이 저를 엄청 좋아하셨어요. 아버지나 엄마는 사실은 먹고 사시기 힘들고 아버지도 병이 있으셔서 힘들어서 저의 재능 이런 거를 얘가 도대체 어디 가서 뭐 하는지는 몰랐었는데 동네분들이 저를 인정해 주신거죠. 집에 안 있고 맨날 돌아다녔어요.
◆김영민: 물질적으로 풍요롭진 않지만 김미화 씨가 전파하는 웃음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만큼은 진짜로 풍족해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굉장히 많이 드는데요. 그러면 아주 어리셨을 때부터 개그우먼을 꿈꾸고 시험을 보러 다니고 하셨던 건가요?
□김미화: 저는 아주 아기 때부터 나는 저런 배삼룡 선생님 같은 코미디언이 돼야 되야겠다, 서영춘 선생님 같은 코미디언이 돼야 되겠다. 예전에 저희 집에는 너무 가난해서 텔레비전이 없었고 저희 옆집 쌀집에 텔레비전이 있었어요. 그때 제가 주로 보던 게 저의 어떤 인생의 스승이라고 해야 되는 분들이 바로 배삼룡, 서영춘 선생님이셨고요. 가방 던지면 바로 그 집에 가서요. 김일 선수의 레슬링 그다음에 코미디언 선배님들의 코미디. 넘어지고 자빠지고 이거를 보면서 나는 저런 직업을 가졌으면 참 좋겠다 하는 게 초지일관 변하질 않아가지고요. 고등학교 때 빨리 졸업하고 내가 코미디언이 되어야지라는 생각으로 시험을 되게 많이 보러 다녔었습니다. 교복 입고요. 그래서 몇 번 떨어졌고요. 교복 벗고 와라 그래가지고 결국은 코미디언 시험을 고등학교 졸업하는 해에 보고 그 해에 활동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김영민: 그러시군요. 사실 그전에도 합격을 할 수 있으셨을 것 같은데 그 교복입은 학생이 전국민에게 웃음을 전해주는 순악질 여사가 됩니다. 이 때 시청률이 지금은 사실 상상할 수 없는 수치거든요. 시청률 60%를 육박했으니까요.
□김미화: 68%인가 여하튼 모래시계라는 드라마가 매우 인기가 있었는데 그 드라마를 이길 정도의 시청률이었으니까 정말 대단했죠. 쓰리랑 부부 하는 시간에는 아마 전부 남성이고 여성이고 온 가족이 텔레비전 앞에서 그걸 보셨던 것 같아요.
◆김영민: 68%면 진짜 TV는 전부 다 그 채널로 맞춰져 있다고 사실 봐도 무방한 정도였는데 그러면 그때 지금 봐도 재밌거든요. 눈썹 일자로 이렇게 딱 테이프 만드시고 '음메 기살어' 이렇게 하시는 거 너무 재밌는데 그 유행어는 어떻게 탄생을 하게 된 건가요?
□김미화: 김한국 씨가 워낙에 잘생긴 개그맨이고 잘생긴 남편이고 이런 걸로 컨셉을 잡았어요. 저는 개그맨 중에서도 왜 저런 잘생긴 남편을 얻을 수 없는 없을 것 같은.. 그런 막 억척스럽고 못생기고 이런 여성이요, 지금도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여성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에 있습니다마는 당시에는 꽤 여성들이 뭔가 여성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고 집 안에서도 마찬가지로 '여자가 뭘 한다고 그래!' 그리고 아침에 새벽에 안경 낀 여자가 차를 타면 기분 나쁘고 이런 터부시하는 뭔가가 있었어요. 당시에 휘둘러서 저렇게 남자를 잡을 수 없을 것 같은 여자가 남자를 막 한 손으로 휘두르고 작은 여자가 야구방망이를 들고 으쌰으쌰 해야 되니까요. 그래서 그렇게 서로 컨셉을 맞췄기 때문에 내가 저 잘생긴 남편을 휘어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지? 그러면서 방망이를 휘두르면서 유행어를 어떻게 휘두르다 보니까 전라도 사투리를 또 쓰고 그러니까 음메, 뭐여 막 이렇게 해야 되니까요. '음메 기살어' 그러면 김한국 씨가 그러면 자기는 또 '음메 기죽어' 이걸로 하나로 그냥 표현이 되잖아요. 둘이서 막 아이디어 회의하고 작가 선생님하고 아이디어 하고 하면서 나온 유행어죠. 짜장면 시키면서도 전화 끊고 괜히 전화 들고 무안하니까 '이따 봐.' 이러고요.
◆김영민: 정말 한 시대를 풍미하셨다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사실 그때 20대셨죠?
□김미화: 20대 중반쯤 됐을 때예요.
◆김영민: 근데 그때 모든 전 국민이 나를 본다라는 마음이 아주 기쁘지만 남모를 고충도 있긴 하셨을 것 같아요.
□김미화: 정말 감사하게도 커다란 인기를 얻었잖아요. 그러면서 약간 중압감도 있었고 이 일을 잘해내야 된다라는 어떤 생각에 갇혀 가지고요. 가족한테 제가 조금 소홀히 했죠. 근데 그럴 수밖에 없죠. 하나의 일을 열심히 에너지 하다 보면 하다 보면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의 희생이 따르죠. 사실은 그런데 그때는 제가 당연히 우리 가족들은 아이들도 내 동생도 우리 부모님도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알아주고 희생을 감수하는 거를 당연하게 이해해 줄 거야라고 하면서요. 제가 욕심을 부렸던 거 아닌가 하는 반성을 나이 들어서 해봅니다마는 그때는 정말 앞만 보고 일을 했기 때문에 그런 성취를 또 할 수도 있었고요. 그래서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를 얻으면 인생이 그렇잖아요. 하나를 또 잃고. 그런 인생의 과정에서 또 쓴맛도 보고 쓰러져도 보고 다시 또 일어나기도 하고. 이런 여러 가지 그 과정을 겪으면서 내가 좌절하고 고통을 당할 때 그때 나는 일어날 수 없을 거야라고 생각을 할 수 있는데요. 그것도 과정이다 인생에 그런 답을 얻게 됐어요. 그래서 어떤 고통이 있을 때 지금은 두렵지가 않아요. 이 또한 넘어가는 건데 내가 왜 그때 고통받을 때 마치 나 혼자만 그런 고통을 다 겪는 듯이 혼자 괴로워했지라는 생각을 하고요. 제 주변에도 미운 사람도 많고 또 저한테 고통 준 사람들도 되게 많이 있거든요. 근데 그런 사람들이 나중에 제가 이렇게 쓱 얘기해 보면 저한테 고통을 줬는지 모르더라고요. 저 사람은 고통을 준지도 모르는데. 제가 트리플 a형입니다. 그래서 누가 저한테 무슨 얘기를 하면 그걸 깊게 생각을 하던 스타일이었어요. 그래서 저 사람은 나한테 왜 이런 얘기를 했지? 나를 미워하나? 저 사람이 나 미워하면 어떡하지? 막 이렇게 생각하던 타입이었는데요. 굳이 그거 그 사람이 나한테 고통 준지도 모르는데 나 혼자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면 그건 저의 고통이잖아요. 그래서 그 뒤에는 나이가 들어서 제가 깨달은 건지 인생의 어떤 경험이 많아서 깨달은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여하튼 깊게 고통스럽다는 생각을 안 하는 쪽으로 그래서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그러다 보니까 긍정적인 일이 굉장히 많아졌고 제 인생이 편안해졌어요.
◆김영민: 그러시군요. 사실 한 번에 많은 인기를 얻으시고 그 과정에서 이 부분은 아쉽고 힘들고 아픈 부분도 있고 그 모든 걸 겪어내고 나니 결국은 긍정이 많이 남았다 이런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요. 저도 아직 겪어내야 할 인생이 참 많겠다 이런 생각을 해보게도 되네요. 개그우먼 김미화 씨와 함께 이야기 나누고 있는데요. 이 얘기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정말 공개 코미디의 전설이라고 불리죠. 개그 콘서트를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셨다라고 들었어요. 이때 얘기 잠시 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미화: 개그 콘서트가 사실은 후배들을 위해서 놀이터를 만들어주고 싶은 욕망이 제가 많았었어요. 왜냐하면 저도 아까 말씀드렸듯이 어렸을 때부터 코미디언이 꿈이었고요. 우리 후배들도 코미디의 꿈을 안고 코미디 현실에 들어왔는데 결국은 젊은 친구들이 활발하게 뭔가 자기 꿈을 펼칠 수 있는 어떤 프로그램이 없다 보니까요. 맨날 와서 커피 심부름이나 하는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저 친구들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내가 선배로서 아이디어를 방송사에서 만들어주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몇 년 고민을 많이 했었었죠. 그래서 제가 쓰리랑 부부 할 때 '쇼비디오 자키'로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공개 코미디의 어떤 부족한 점 이랄까요? 예를 들면 관객 위주의 프로그램이 아니었고 예전에는 연기하는 연기자 중심의 프로그램으로 공개가 진행이 됐었어요. 쓰리랑 시절만 해도 그래서 관객들이 그 시간을 기다려야 했어요. 예를 들어서 '네로 25시' 세트가 지어지면 그 세트를 가운데 놓고 그 세트가 방송이 끝나면 그 코너가 끝나면 그 세트를 부시는 시간 동안은 또 관객들이 기다리고요. 쓰리랑 부부도 세트가 지어지고 기다리고. 그러니까 굉장히 흐름이 느렸죠. 그런데 이거를 연극 형식으로 한번 해보고 또 관객들이 와가지고 선물도 많이 주고 관객이 기다리지 않고 기다리는 동안 음악을 연주를 하고 이런 컨셉으로 진행을 하면 집중도가 높아질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요. 그때는 컬트삼총사라고 컬투쇼가 지금 두 분이 하시지만 예전에는 3명이 컬투삼총사로 활동했었거든요. 그 공연을 하고 있는 거예요. 대학로에서 성공하는 거예요. 저 친구들 저런 코미디를 방송으로 옮기면 괜찮겠다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전유성 선배님이 마침 대학로에서 공연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백재현 씨하고 전유성 선배님한테 제가 이런 공개 코미디를 만들어보고 싶은데 우리 같이 뭉쳐서 방송국에 제안을 해봅시다. 그래서 전유성 선배님을 만나고 백재현 씨도 똑같은 그런 공개 코미디를 하고 있었고요. 전유성 선배님 집에 피디를 모시고 가고 여러 방송을 찾아다닌 게 아니고 딱 두 방송을 찾아다녔는데요. 제가 첫 번째 방송국에서는 코미디 안 만들겠다고 해 가지고 못 했고요. 그때 KBS에서는 한번 해보자 그래가지고요. 전유성 선배님 집에 가서 '공연 녹음, 녹화 좀 해주세요' 했죠. 그래서 PD 모시고 가서 보면서 이런 식으로 후배들하고 하면 괜찮겠습니다라고 제안을 해서 탄생이 된 거죠. 그런데 전유성 선배님이 당시에 그 코미디 아이디어를 굉장히 좋은 제안을 해 주셔 가지고 저는 사실 공개 코미디로 하면 괜찮겠다라는 생각만 했었는데요. 거기에 공개로 했던 코미디 아이템들을 '앵콜 코미디'라고 그래가지고 마지막에 후배들하고 전부 앉아서 앵콜 코미디를 했던 게 대박이 났었던 거죠. 처음 하면서부터 개그 콘서트는 재미있었어요.
◆김영민: 원래 그런 코미디 공연에서의 단점들을 어느 정도 알고 계셨고 보완할 점들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 부분들을 보완해서 나오니까 처음부터 잘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김미화: 그리고 우리 후배들이 워낙 또 잘했었고요. 인기가 높아지면서 코미디가 지금 아직도 다시 회생을 해서 개그콘서트가 지금 잘 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모습 보면서 후배들이 자랑스럽고 제가 지금은 코미디에서 나이 들어서 안 불러주니까 그래서 코미디를 안 하고는 있지만요. 방송에서 코미디 안 한다고 그래서 코미디언이 아닌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는 제 직업이 코미디언인 게 자랑스러워요. 그리고 마음으로도 후배들 하는 거 보면서 응원하고 모든 선배님들이 아마 다 그러실 것 같아요.
◆김영민: 맞습니다. 그 후배들도 코미디를 하면서 지금의 마당을 깔아준 김미화 씨에게 너무너무 감사해 하고 계실 것 같아요. 항상 마음으로는 뭐랄까 항상 코미디를 마음속에 품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냥 대화를 해도 사실 너무 재밌으시단 말이에요. 그래서 한번 여쭙겠습니다. 김미화 씨에게 코미디란 무엇인가요?
□김미화: 코미디는 제 인생이었던 것 같아요. 그냥 코미디를 위해서 산 게 사실은 제가 인생에 있어서 하루에 코미디를 80% 정도는 생각했었으니까요.
◆김영민: 진짜 인생이네요.
□김미화: 어떻게 웃기지?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또 해드리지? 막 이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코미디는 저하고 뗄래야 뗄 수 없는 저의 인생 그렇군요. 하고 있든 안 하든.
◆김영민: 마지막으로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삶의 무게 때문에 웃음을 잃고 계신 분들 많으시거든요. 그분들께 짧게 한마디만 부탁드릴게요.
□김미화: 흔들리지 말자. 나에게는 큰 태풍이고 바람이었다고 생각을 하고요. 내가 거기 날려갔었고 흔들렸고. 근데 아까 제가 잠깐 말씀드렸지만 제 인생을 돌아보면서 그게 지나고 나니까 이거 바람도 아니었잖아? 근데 난 바람인 줄 알고 거기에 흔들렸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나 스스로 나를 사랑하면서 나에게 마인드 컨트롤하는 게 상당히 중요하다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바람도 아닙니다.
◆김영민: 김미화 씨에게 웃음이란?
□김미화: 웃음은 그냥 생활에 자연스럽게 묻어야 되는 거죠. 그래서 슬픈 일이 있어도 저는 울면서 거울을 한번 봅니다. 그러면 내 일그러진 모습 우는 모습이 얼마나 웃긴지 몰라요. 사실은 그래서 또 웃습니다.
◆김영민: 웃음을 잃은 많은 분들, 김미화 씨께서 웃음은 그냥 생활이라고 하셨습니다. 언제나 웃으면 금세 또 좋은 일이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영원한 우리의 순악질 여사 코미디언 김미화 씨와 함께 했습니다. 오늘 너무 고맙습니다. <이런 사람도 없습니다>는 YTN 라디오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YTN 이은지 (yinzhi@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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