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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증거는 기업의 금고 속에 있고, 개미 투자자는 빈손으로 법정에 선다. 이 싸움의 승패는 이미 시작 전부터 정해져 있다.”
국내 자본시장에서 벌어지는 주주 소송을 지켜본 한 법조계 관계자의 일갈이다. 한국 증시의 고질적인 저평가,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와 정치권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핵심이 빠졌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바로 ‘증거를 가진 자’와 ‘피해를 입은 자’ 사이의 정보 비대칭의 벽을 허물 ‘디스커버리(증거개시) 제도 릴게임바다이야기 ’다.
현재 국회에서는 여야 공감대 속에 연내 입법을 목표로 디스커버리 제도의 법적 근거를 담은 민사소송법 개정안이 논의 중이다. 개정안에는 당사자의 ‘협력 의무’와 ‘진실 의무’를 명문화하고, 소장·답변서 제출 의무를 강화해 재판장이 초기 단계에서 쟁점을 더 적극적으로 심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변론준비절차를 확대하고 질문서 릴게임사이트 ·증언녹취 제도를 도입해 이사회 의사록·내부 보고서 같은 핵심 자료를 재판 전 단계에서 확보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도 포함됐다. 특히 기업의 비밀 유출을 막기 위해 비밀유지명령 위반 시 형사처벌을 부과하는 등 보안 장치를 강화하는 방향이 유력한 안으로 거론된다.
미국서 진화한 디스커버리, 이메일 한 통이 승패 갈라
디스 바다신릴게임 커버리 제도는 본안 재판이 시작되기 전 소송 당사자들이 서로가 가진 증거와 정보를 강제로 공개하도록 하는 절차를 말한다. 쉽게 말해 상대방의 카드 패를 미리 확인하고 경기를 시작하는 셈이다. 미국 연방법원 민사소송규칙(FRCP)의 핵심은 재판의 목적을 ‘진실 규명’으로 보고, 정보를 독점한 채 승리하는 것은 정의에 반한다는 데 있다.
이 오션파라다이스게임 원칙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사건 중 하나가 ‘주블레이크 사건(Zubulake v. UBS Warburg)’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UBS를 상대로 제기된 이 소송에서 회사는 불리할 수 있는 이메일 일부를 제때 제출하지 않거나 누락했다. 법원은 이를 이유로 배심원에게 “누락된 이메일은 원고에게 유리한 내용이었을 것”이라는 불리한 추정을 하도록 지시했다. 결국 릴게임황금성 회사는 거액의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됐고, 이 사건은 내부 이메일 보존·제출 의무를 둘러싼 미국형 전자 디스커버리의 기준을 세운 판례로 꼽힌다.
미국 자본시장에서 디스커버리가 ‘게임 체인저’가 되는 구조는 한국 기업에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부터 떠들썩한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도 같은 맥락이다.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미국에서 제기된 집단소송에서는 원고 측이 이사회 회의록, 보안 투자 결정 내역, 사고 대응 이메일 등 본사 내부 자료를 디스커버리 절차를 통해 제출받겠다는 전략을 공개했다. 한국이라면 ‘영업비밀’ 뒤에 가려질 수 있는 정보들이 미국 법정에선 디스커버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
미국 민사소송에선 정식 재판까지 가는 사건이 5~10%에 불과할 정도로 상당수가 재판 전에 종결되는데, 디스커버리 과정에서 서로의 패를 확인한 뒤 승산 없는 소송은 일찍 합의로 정리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주영 한누리 변호사는 “디스커버리는 진실 발견을 위한 보편적 절차”라며 “문서·전자자료 제출 의무 강화, 제재 수단 도입, 증언 녹취 제도 도입만으로도 소송의 90% 이상은 본안 판결 전 합리적으로 종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삼성물산 합병의 교훈…“진실은 이사회 의사록에 있었다”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소액주주들은 합병 비율이 대주주에게 유리하게 산정됐다며 울분을 토했다. 그러나 법정에서 주주들이 내놓을 수 있는 증거는 공시 자료와 언론 보도, 외부 전문가 분석 정도에 그쳤다. 합병의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이 될 수 있는 내부 검토 보고서나 이사회 논의 과정은 기업의 ‘영업비밀’이라는 명분 뒤에 숨었다.
당시 디스커버리 제도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여러 전문가들은 재판 전 단계에서 이사회에서 오간 논의가 담긴 녹취록이나 이메일, 내부 자문 보고서 등이 일정 범위 내에서 법원 명령에 따라 제출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주주들이 기업의 내부 의사결정 과정을 보다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면, 재판의 쟁점 구성이나 합병을 둘러싼 시장의 평가가 지금과는 달라졌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회와 학계에선 이를 두고 “제도는 있지만 이길 수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반복돼 왔다. 상장사 주주대표소송이 매년 몇 건 안 되는 데다 실제 승소율도 낮은 이유가 ‘증거의 구조적 편재’에 있다는 것이다.
이용우 경제연구소 더하기 대표는 “한국에서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하면 핵심 증거를 모두 기업이 가지고 있어 보통 3~4년이 걸리기 때문에 이 소송을 이어갈 수 있는 개인투자자는 없다고 봐야 한다”면서 “디스커버리의 핵심은 소송을 빠르게 진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오기형 의원 “진실 감춰 재판 이기려는 시도 사라져야”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을 수년째 추진 중인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행 소송 구조는 핵심 증거가 기업 내부에 집중돼 있어 주주가 피해를 입증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라고 꼬집었다.
오 의원은 “진실을 감춰 재판에 이기려는 시도가 사라져야 한다”며 “디스커버리제도가 충분히 도입되면 불법행위에 대한 민사적 책임추궁이 확대돼 형사 및 행정규제를 완화할 수 있는 조건도 만들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즉, 디스커버리가 잘 작동하면 민사소송만으로도 불법행위 책임을 강하게 물을 수 있어 그만큼 형사·행정 규제를 덜 세게 가져가도 되는 여지가 생긴다는 의미다.
그가 참여한 민사소송법 개정 논의안에는 강력한 보안 장치도 담겨 있다. 법원의 비밀유지명령을 위반해 소송 과정에서 확보한 자료를 외부로 유출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부정경쟁방지법(영업비밀보호법)에서 정한 10년 이하 징역·5억원 이하 벌금 수준의 형사처벌 체계를 참고해 제재 수위를 높이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특허 분쟁이나 중소기업 기술탈취, 하도급 거래 등 일부 분야에서 먼저 도입·논의돼 온 한국형 증거개시(디스커버리) 장치를 주주대표소송 등 주주 피해 사건으로까지 넓히려는 입법 흐름의 연장선이라는 설명이다.
김남근 의원 역시 “지금처럼 정보 비대칭이 심한 구조 하에선 실질적인 권리구제가 어렵다”면서 “디스커버리 제도는 소송의 실효성을 높이고 기업의 투명성과 책임 경영을 유도하는 핵심 장치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재계 ‘영업기밀 노출·낚시질 소송’ 우려
하지만 재계의 반발은 여전히 거세다. 경제단체와 대기업들은 한국형 디스커버리 도입을 ‘경영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로 규정하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가장 큰 우려는 영업비밀의 전략적 노출이다. 소송 상대방이 디스커버리 권한을 악용해 기업의 핵심 기술이나 마케팅 전략, 원가 구조가 담긴 내부 자료까지 샅샅이 들여다보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소송을 빌미로 경쟁사가 합법적으로 우리의 영업 기밀을 들여다보는 통로가 될 수 있다”며 “이는 기업의 존립까지 위협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낚시질(Fishing Expedition)식 소송’에 대한 걱정도 크다. 구체적인 혐의 증거 없이 일단 소송을 제기한 뒤, 디스커버리 과정에서 별건의 약점을 찾아내려는 이른바 ‘아니면 말고’식 남소(濫訴)가 늘어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재계는 “미국식 소송 만능주의가 도입되면 기업들은 혁신보다 소송 방어에 경영 에너지를 쏟게 될 것”이라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반면 시민단체와 정책 연구소는 디스커버리가 가져올 효과를 정반대로 본다. 이용우 대표는 “미국 민사소송의 대부분이 정식 재판 전 디스커버리 단계 이후 ‘합의’로 끝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증거가 투명하게 공개되면 서로의 승산을 알게 되기 때문에 무리한 소송을 끝까지 끌지 않고 합리적인 수준의 보상으로 조기 정리하는 문화가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흐름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선 ‘디스커버리가 소송 남발이 아니라 조기 종결을 촉진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디스커버리는 소송을 늘리는 장치가 아니라 불필요한 장기 소송을 줄이고 사법 자원을 효율화하는 도구”라며 “이미 독일과 영국 등도 판사가 지정한 전문가가 증거를 조사하거나 사건 규모에 따라 자료 개시 범위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정보 비대칭을 완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1400만 개미의 무기…일각 “민사소송 근간 변화 필요해 도입 쉽지 않을 것”
자본시장의 시선은 이제 국회로 향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앞다퉈 밸류업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지만, 주주권 보호를 위한 사법적 구제 수단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기울어진 운동장’은 그대로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디스커버리는 소액주주가 실질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하고, 그 압박으로 경영진 행동을 바꿔 자본시장 신뢰와 밸류에이션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지배구조·투자자 보호 인프라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K-디스커버리가 도입되면 소액주주의 협상력은 구조적으로 달라진다. 기업의 비밀 창고를 열 수 있는 열쇠를 쥐고 대등한 위치에서 골리앗과 맞설 수 있다. 소송의 승패보다 중요한 것은 ‘내부 정보가 언제든 공개될 수 있다’는 인식 자체가 기업 경영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내부 정보 공개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경영진의 판단 과정과 책임 구조가 보다 투명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감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공개되지 않는 증거는 언제든 조작될 위험이 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관계자는 “디스커버리제도가 도입되면 상장사 금융상품 불완전 판매 문제는 물론 기업과의 소송 등에 있어 1400만 개인 투자자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내려와 평평한 지면에서 공정한 경기를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디스커버리제도의 빠른 도입이 쉬워보이지는 않는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민사소송 근간을 흔드는 제도이기도 하고 기업들의 반대가 상당할 것이기 때문에 마지막 퍼즐이 맞춰지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성영 기자 rssy0202@kukinews.com
“증거는 기업의 금고 속에 있고, 개미 투자자는 빈손으로 법정에 선다. 이 싸움의 승패는 이미 시작 전부터 정해져 있다.”
국내 자본시장에서 벌어지는 주주 소송을 지켜본 한 법조계 관계자의 일갈이다. 한국 증시의 고질적인 저평가,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와 정치권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핵심이 빠졌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바로 ‘증거를 가진 자’와 ‘피해를 입은 자’ 사이의 정보 비대칭의 벽을 허물 ‘디스커버리(증거개시) 제도 릴게임바다이야기 ’다.
현재 국회에서는 여야 공감대 속에 연내 입법을 목표로 디스커버리 제도의 법적 근거를 담은 민사소송법 개정안이 논의 중이다. 개정안에는 당사자의 ‘협력 의무’와 ‘진실 의무’를 명문화하고, 소장·답변서 제출 의무를 강화해 재판장이 초기 단계에서 쟁점을 더 적극적으로 심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변론준비절차를 확대하고 질문서 릴게임사이트 ·증언녹취 제도를 도입해 이사회 의사록·내부 보고서 같은 핵심 자료를 재판 전 단계에서 확보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도 포함됐다. 특히 기업의 비밀 유출을 막기 위해 비밀유지명령 위반 시 형사처벌을 부과하는 등 보안 장치를 강화하는 방향이 유력한 안으로 거론된다.
미국서 진화한 디스커버리, 이메일 한 통이 승패 갈라
디스 바다신릴게임 커버리 제도는 본안 재판이 시작되기 전 소송 당사자들이 서로가 가진 증거와 정보를 강제로 공개하도록 하는 절차를 말한다. 쉽게 말해 상대방의 카드 패를 미리 확인하고 경기를 시작하는 셈이다. 미국 연방법원 민사소송규칙(FRCP)의 핵심은 재판의 목적을 ‘진실 규명’으로 보고, 정보를 독점한 채 승리하는 것은 정의에 반한다는 데 있다.
이 오션파라다이스게임 원칙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사건 중 하나가 ‘주블레이크 사건(Zubulake v. UBS Warburg)’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UBS를 상대로 제기된 이 소송에서 회사는 불리할 수 있는 이메일 일부를 제때 제출하지 않거나 누락했다. 법원은 이를 이유로 배심원에게 “누락된 이메일은 원고에게 유리한 내용이었을 것”이라는 불리한 추정을 하도록 지시했다. 결국 릴게임황금성 회사는 거액의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됐고, 이 사건은 내부 이메일 보존·제출 의무를 둘러싼 미국형 전자 디스커버리의 기준을 세운 판례로 꼽힌다.
미국 자본시장에서 디스커버리가 ‘게임 체인저’가 되는 구조는 한국 기업에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부터 떠들썩한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도 같은 맥락이다.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미국에서 제기된 집단소송에서는 원고 측이 이사회 회의록, 보안 투자 결정 내역, 사고 대응 이메일 등 본사 내부 자료를 디스커버리 절차를 통해 제출받겠다는 전략을 공개했다. 한국이라면 ‘영업비밀’ 뒤에 가려질 수 있는 정보들이 미국 법정에선 디스커버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
미국 민사소송에선 정식 재판까지 가는 사건이 5~10%에 불과할 정도로 상당수가 재판 전에 종결되는데, 디스커버리 과정에서 서로의 패를 확인한 뒤 승산 없는 소송은 일찍 합의로 정리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주영 한누리 변호사는 “디스커버리는 진실 발견을 위한 보편적 절차”라며 “문서·전자자료 제출 의무 강화, 제재 수단 도입, 증언 녹취 제도 도입만으로도 소송의 90% 이상은 본안 판결 전 합리적으로 종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삼성물산 합병의 교훈…“진실은 이사회 의사록에 있었다”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소액주주들은 합병 비율이 대주주에게 유리하게 산정됐다며 울분을 토했다. 그러나 법정에서 주주들이 내놓을 수 있는 증거는 공시 자료와 언론 보도, 외부 전문가 분석 정도에 그쳤다. 합병의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이 될 수 있는 내부 검토 보고서나 이사회 논의 과정은 기업의 ‘영업비밀’이라는 명분 뒤에 숨었다.
당시 디스커버리 제도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여러 전문가들은 재판 전 단계에서 이사회에서 오간 논의가 담긴 녹취록이나 이메일, 내부 자문 보고서 등이 일정 범위 내에서 법원 명령에 따라 제출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주주들이 기업의 내부 의사결정 과정을 보다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면, 재판의 쟁점 구성이나 합병을 둘러싼 시장의 평가가 지금과는 달라졌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회와 학계에선 이를 두고 “제도는 있지만 이길 수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반복돼 왔다. 상장사 주주대표소송이 매년 몇 건 안 되는 데다 실제 승소율도 낮은 이유가 ‘증거의 구조적 편재’에 있다는 것이다.
이용우 경제연구소 더하기 대표는 “한국에서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하면 핵심 증거를 모두 기업이 가지고 있어 보통 3~4년이 걸리기 때문에 이 소송을 이어갈 수 있는 개인투자자는 없다고 봐야 한다”면서 “디스커버리의 핵심은 소송을 빠르게 진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오기형 의원 “진실 감춰 재판 이기려는 시도 사라져야”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을 수년째 추진 중인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행 소송 구조는 핵심 증거가 기업 내부에 집중돼 있어 주주가 피해를 입증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라고 꼬집었다.
오 의원은 “진실을 감춰 재판에 이기려는 시도가 사라져야 한다”며 “디스커버리제도가 충분히 도입되면 불법행위에 대한 민사적 책임추궁이 확대돼 형사 및 행정규제를 완화할 수 있는 조건도 만들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즉, 디스커버리가 잘 작동하면 민사소송만으로도 불법행위 책임을 강하게 물을 수 있어 그만큼 형사·행정 규제를 덜 세게 가져가도 되는 여지가 생긴다는 의미다.
그가 참여한 민사소송법 개정 논의안에는 강력한 보안 장치도 담겨 있다. 법원의 비밀유지명령을 위반해 소송 과정에서 확보한 자료를 외부로 유출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부정경쟁방지법(영업비밀보호법)에서 정한 10년 이하 징역·5억원 이하 벌금 수준의 형사처벌 체계를 참고해 제재 수위를 높이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특허 분쟁이나 중소기업 기술탈취, 하도급 거래 등 일부 분야에서 먼저 도입·논의돼 온 한국형 증거개시(디스커버리) 장치를 주주대표소송 등 주주 피해 사건으로까지 넓히려는 입법 흐름의 연장선이라는 설명이다.
김남근 의원 역시 “지금처럼 정보 비대칭이 심한 구조 하에선 실질적인 권리구제가 어렵다”면서 “디스커버리 제도는 소송의 실효성을 높이고 기업의 투명성과 책임 경영을 유도하는 핵심 장치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재계 ‘영업기밀 노출·낚시질 소송’ 우려
하지만 재계의 반발은 여전히 거세다. 경제단체와 대기업들은 한국형 디스커버리 도입을 ‘경영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로 규정하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가장 큰 우려는 영업비밀의 전략적 노출이다. 소송 상대방이 디스커버리 권한을 악용해 기업의 핵심 기술이나 마케팅 전략, 원가 구조가 담긴 내부 자료까지 샅샅이 들여다보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소송을 빌미로 경쟁사가 합법적으로 우리의 영업 기밀을 들여다보는 통로가 될 수 있다”며 “이는 기업의 존립까지 위협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낚시질(Fishing Expedition)식 소송’에 대한 걱정도 크다. 구체적인 혐의 증거 없이 일단 소송을 제기한 뒤, 디스커버리 과정에서 별건의 약점을 찾아내려는 이른바 ‘아니면 말고’식 남소(濫訴)가 늘어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재계는 “미국식 소송 만능주의가 도입되면 기업들은 혁신보다 소송 방어에 경영 에너지를 쏟게 될 것”이라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반면 시민단체와 정책 연구소는 디스커버리가 가져올 효과를 정반대로 본다. 이용우 대표는 “미국 민사소송의 대부분이 정식 재판 전 디스커버리 단계 이후 ‘합의’로 끝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증거가 투명하게 공개되면 서로의 승산을 알게 되기 때문에 무리한 소송을 끝까지 끌지 않고 합리적인 수준의 보상으로 조기 정리하는 문화가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흐름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선 ‘디스커버리가 소송 남발이 아니라 조기 종결을 촉진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디스커버리는 소송을 늘리는 장치가 아니라 불필요한 장기 소송을 줄이고 사법 자원을 효율화하는 도구”라며 “이미 독일과 영국 등도 판사가 지정한 전문가가 증거를 조사하거나 사건 규모에 따라 자료 개시 범위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정보 비대칭을 완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1400만 개미의 무기…일각 “민사소송 근간 변화 필요해 도입 쉽지 않을 것”
자본시장의 시선은 이제 국회로 향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앞다퉈 밸류업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지만, 주주권 보호를 위한 사법적 구제 수단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기울어진 운동장’은 그대로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디스커버리는 소액주주가 실질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하고, 그 압박으로 경영진 행동을 바꿔 자본시장 신뢰와 밸류에이션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지배구조·투자자 보호 인프라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K-디스커버리가 도입되면 소액주주의 협상력은 구조적으로 달라진다. 기업의 비밀 창고를 열 수 있는 열쇠를 쥐고 대등한 위치에서 골리앗과 맞설 수 있다. 소송의 승패보다 중요한 것은 ‘내부 정보가 언제든 공개될 수 있다’는 인식 자체가 기업 경영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내부 정보 공개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경영진의 판단 과정과 책임 구조가 보다 투명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감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공개되지 않는 증거는 언제든 조작될 위험이 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관계자는 “디스커버리제도가 도입되면 상장사 금융상품 불완전 판매 문제는 물론 기업과의 소송 등에 있어 1400만 개인 투자자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내려와 평평한 지면에서 공정한 경기를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디스커버리제도의 빠른 도입이 쉬워보이지는 않는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민사소송 근간을 흔드는 제도이기도 하고 기업들의 반대가 상당할 것이기 때문에 마지막 퍼즐이 맞춰지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성영 기자 rssy0202@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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