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바다이야기 무료 릴게임 사이트
페이지 정보

본문
바로가기 go !! 릴게임끝판왕 go !!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바다이야기 무료 릴게임 사이트
를 소개합니다.
바다이야기 무료 게임을 즐겨보세요
는 안전이 검증된 릴게임 바다이야기 사이트로, 먹튀 보안 걱정 없이 다양한 바다이야기 게임을 무료로 즐길 수 있습니다. 이제 온라인에서 성인용 아케이드 게임 바다이야기를 플레이 해보세요
다양한 혜택을 누려보세요
회원 가입 시 제공되는 무료 머니로 즉시 게임을 시작해보세요 는 매일 진행되는 잭팟 이벤트와 특별한 보너스를 통해 사용자들에게 더욱 흥미로운 게임 경험을 선사합니다.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서비스
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검증된 시스템을 통해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하며, 안정적인 결제 시스템을 제공하여 사용자들이 안심하고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지금 저희 바다이야기 사이트에서 무료 머니를 받고 바다이야기 게임을 경험해보세요 안전하고 흥미진진한 게임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다이야기 무료 게임 바로가기
기자 admin@seastorygame.top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주>
심대방은 자신의 부인이 허열병(虛熱病)과 부종으로 사경을 헤맬 때 설립재에게 신기환(腎氣丸) 등을 처방받고 살아나자 감복한 나머지 자신도 의원이 되어서 그 치험례를 남겨 감사를 표했다. 챗GPT에 의한 AI생성 이미지.
야마토통기계 옛날에 심대방(沈大方)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세속의 무리와 어울리지 않고 산 중에 은거하며 살았다. 그는 방 안에서 글만 읽었다. 그러니 생계는 어려울 수밖에 없었고, 그의 아내는 산 중의 밭일을 하면서 과로를 일삼았다.
그러던 중 그의 아내 조씨(趙氏)가 어느 날 갑자기 담열(痰熱) 병을 앓게 되었다. 심씨는 어렵 바다이야기고래출현 게 돈을 구해 마을 의원들에게 처방을 받았지만 대부분 찬 성질의 약을 사용하였다. 그래도 처방을 복용하면 잠시 조금 나아지는 듯했으나, 삼사 년 동안 병이 나았다가 다시 악화되기를 반복하였고,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해서 결국 원기(元氣)가 점점 소모되어 쇠약해졌다.
경자년(庚子年, 1540년), 여름에는 조씨 부인의 병은 더욱 심해져 백경게임 온몸이 호박처럼 붓고, 손발이 저리고 차가워졌으며 밤낮으로 기침하고 숨이 차고 번조하며 물을 계속 마시려 했다. 그런데도 소변은 찔끔거리면서 잘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살이 모두 빠져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심씨는 수소문 끝에 설립재(薛立齋)라는 의원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의원님, 제 아내가 열병과 함께 온몸이 부종이 심한데, 백경릴게임 이제는 기운도 빠지고 헛소리도 합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라고 하면서 왕진을 청했다.
설 의원은 당시 54세여서 산에 오르는 것이 힘이 들었지만, 사정이 딱하고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 설 의원이 심씨 집에 도착해서 진맥을 해 보니 맥은 홍대(洪大)하면서 규칙적이지 않았다. 맥을 깊이 눌러 보면 사라지는 듯했다. 열이 있 황금성릴게임사이트 으나 가짜열이고 또한 기력이 쇠해져 있다는 증거다.
설 의원은 심씨에게 말하기는 “이는 허열(虛熱)이지, 진짜 열(熱)이 아니네. 그리고 부종 또한 신양(腎陽) 부족 때문이네. 그러니 마땅히 화의 근원인 신양(腎陽)을 도와 비토(脾土)를 생하게 해야 하네.”라고 했다.
설 의원은 어떤 환약을 조제해서 처방을 했다. 그랬더니 조씨 부인이 이 환약을 복용하자 곧 소변이 샘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그 뒤 매일 환약과 함께 처방해 준 탕약을 약 20여 첩을 복용하자 병이 완쾌되었다.
심씨는 부인이 살아나자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 “의원님, 도대체 그 처방은 무엇이었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설 의원은 “껄껄껄” 웃을 뿐 답이 없었다. 뒤돌아서는 설 의원 뒤로 “자네에게 처방을 설명해도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는 목소리가 나지막이 들렸다.
조씨 부인은 이후 삼사 년 동안 건강히 지내며 아무 탈도 없었다. 그러던 중 갑진년(甲辰年, 1544년) 봄, 친정 부모 상을 당한 이후 깊은 슬픔으로 감정이 상하자 예전의 병이 다시 재발하였다.
조씨 부인은 몸이 불에 타는 듯 뜨겁고, 입안은 짓물러 구창(口瘡)이 심했으며, 전처럼 가슴과 배가 붓고 가득 차 나흘 동안 음식이 전혀 넘어가지 않았다. 정신도 오락가락해서 기절할 지경에 이르렀다.
심씨는 다시 설 의원을 산 중으로 모셔 진찰을 받았다. 설 의원은 노령의 나이에도 흔쾌히 왕진에 응하고서는 다시 탕약을 처방했는데, 부인은 설 의원의 처방을 복용하자 정신이 맑아지고 의식이 개운해졌다.
이후 설 의원은 다시 처방을 변경해서 투약하자 그 처방을 복용하면서 부인은 저녁이 되기도 전에 가슴이 편안해지고 식욕이 되살아 밥 한그릇을 모두 비웠다. 부인의 증상은 사흘 정도 지나자 증상이 절반 이상 나았고 그 후로는 날마다 기존 처방을 번갈아 복용하여 차츰 회복되다가 며칠 지나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심씨는 부인이 치료되는 과정을 보고서 무척 신기해하며 놀랐다. 그래서 자신도 의원이 되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심씨는 설 의원의 약방 마당에 엎드려 절하며 말하기를 “의원님, 저는 스스로 미천하고 가난하다고 여겼고, 팔자 또한 기구하였습니다. 제 아내 또한 오래된 병으로 조리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는데, 의원님의 구원이 없었다면 무덤에 들어감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글 읽는 재주 말고 없는데, 이제 의업을 제 평생의 업으로 삼고자 합니다. 이에 불초한 제가 의원님 슬하에서 허드렛일이라도 하면서 의술을 배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라고 했다.
설 의원은 심씨의 말이 진심어리다고 판단하고는 약방에 머물면서 일도 돕고 약초 공부도 할 것을 허락했다.
심씨는 낮에는 장작도 패고, 물도 긷고, 깊은 산 중에서 귀한 약초도 캐왔다. 그리고 밤에는 호롱불을 켜고 의서를 읽으면서 설 의원이 환자에게 처방을 했던 약방문도 읽으면서 처방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심씨는 스승님이 자신의 부인을 치료했던 약방문을 발견했다.
경자년 때, 부인의 병세를 치료한 처방은 바로 신기환(腎氣丸)이었다. 신기환은 장중경의 <금궤요략>에 실려 있는 처방으로 금궤신기환이라고도 부른다. 이 처방은 후세 송나라때 전을이 지은 <소아약증직결>에 나오는 육미지황환(六味地黃丸)의 기원이 된다. 전을은 신기환에서 어린아이들에게 맞지 않는 부자와 육계를 빼고 육미지황환을 만들었다.
신기환(腎氣丸) 처방 옆에는 ‘부인이 병이 있어 음식은 예전과 같이 먹으나 번열로 눕지 못하고 반대로 기대서 숨을 쉬는 것은 전포증(轉脬證)이라 하는데, 소변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포계(胞系, 방광)가 비뚤어져서 이러한 병에 이르게 된 것이다. 단지 소변을 통하게 해주면 나으니 신기환으로 치료한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알고 보니 금궤요략의 내용과 같았다.
신기환은 신음(腎陰)을 보하면서도 신양(腎陽)을 덥혀 수화(水火)의 균형을 맞추는 처방으로 허증에 나타나는 냉증, 부종, 소변불리 등에 쓰이는 대표적인 처방이다. 남성의 경우 전립선비대, 요통, 노인성 배뇨장애, 성기능장애 등에도 활용된다.
그리고 갑진년 때 처방은 팔미환(八味丸)과 역시 금궤신기환이었다. 팔미환은 육미지황환에 부자와 육계가 포함되어 있는 처방으로 역시 신음과 신양을 동시에 보하는 명방이다. 노인들의 하초가 허한 증상에도 다용된다. 스승님은 부인을 치료할 때 이 기존의 환약에 인삼, 황기, 당귀, 백출, 황연, 오수유, 목향, 오미자, 목향 등이 가미되기도 했다.
심씨는 이로써 부인의 증상과 이를 치료했던 처방 등 그 모든 과정을 알게 되었다. 처방을 보자 심장이 밖으로 뛰쳐나올 것처럼 두근거리면서 흥분되었다. 그래서 스승님이 자기 부인의 병증을 치료한 경험을 후세에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기록의 말미에는 “나는 일찍이 스승님의 의안을 살펴보다가 죽어가는 아내의 병이 나은 전말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이에 죽어가는 내 아내를 살린 팔미환과 금궤신기환의 신묘한 효험을 기록하고, 또한 스승님의 용약(用藥)이 얼마나 영험한지를 드러내고자 한다. 이로써 만분의 일이라도 스승님의 은혜에 보답이 되기를 바란다.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삼가 기록한다.”라는 글을 남겼다.
설의원은 추후 이 내용을 자신의 저서인 <설씨의안(薛氏醫案)>에 수록했다. 이로써 후세의 의원들 또한 신기환 등으로 허열과 부종을 치료하는데 있어 강령(綱領)으로 삼을 수 있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설씨의안(薛氏醫案)> 大方世家、湖郷、離群索居。山妻趙氏忽嬰痰熱、治者多以寒凉、偶得小愈。三四年餘、屢進屢退、于是元氣消爍。庚子夏、遍身浮腫、手足麻冷、日夜咳、煩躁引飲、小水不利、大肉盡去、勢將危殆。幸遇先生診之、脈洪大而無倫、按之如無。此虛熱無火、法當壯火之源、以生脾土。與《金匱》腎氣丸料服之、頓覺小水潰决如泉。俾日服前丸及大補之藥二十餘劑而愈。三四年間、平康無恙。迄今甲辰仲春、悲哀動中、前症復作。體如焚燎、口肉盡腐、胸腹腫滿、食不下咽者四日。夫婦相顧、束手待斃而已。又承先生視之、投以八味丸二服、神思清爽。服金匱腎氣丸料加參茋歸术、未竟夕而胸次漸舒、陡然思食。不三日而病去五六矣。嗣後日用前二丸間服、逾日而起。至秋初、復患痢。又服金匱腎氣丸料加參茋歸术、黃連、吳茱、木香、痢遂止。但覺後重、又用補中益氣加木香、黃連、吳茱、五味數劑而全愈。大方自分寒素、命亦蹇剝。山妻抱病沉痼、本難調攝。苟非先生援救、填壑未免。今不肖奔走衣食於外、而可無內顧之憂矣。然則先生之仁庇、固不肖全家之福、亦不肖全家之感也。斯言也、當置之座右、以為子孫世誦之。不肖嘗侍先生之側、檢閲醫案、始知山妻奏效巔末、遂秉書紀二丸藥之聖、且彰先生用藥之神萬一云。吳門晩學生沈大方、履文再拜頓首謹書。(호향 출신의 심대방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세속의 무리와 어울리지 않고 산중에 은거하며 살았다. 그의 아내 조씨가 어느 날 갑자기 담열의 병을 앓게 되었는데, 이를 치료한 의원들은 대부분 찬 성질의 약을 사용하였다. 잠시 조금 나아지는 듯했으나, 삼사 년 동안 병이 나았다가 다시 악화되기를 반복하였고, 결국 원기가 점점 소모되어 쇠약해졌다. 경자년 여름에는 병이 더욱 심해져 온몸이 붓고, 손발이 저리고 차가웠으며, 밤낮으로 기침하고 숨이 차고 번하며 물을 계속 마시려 했다. 그러나 소변이 시원치 않았고, 살이 모두 빠져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다행히 선생을 만나 진찰을 받았는데, 맥은 홍대하되 질서가 없었고, 눌러보면 마치 없는 듯하였다. 이에 선생은 말하기를 “이는 허열이지, 참된 화가 아니다. 마땅히 ‘불의 근원’을 도와 비토를 생하게 해야 한다.” 하였다. 그리하여 금궤요략의 신기환 방을 써서 복용하게 하였다. 곧 소변이 샘물 터지듯 쏟아졌고, 그 뒤 매일 전의 환약과 더불어 대보하는 약 20여 첩을 복용하자 병이 완쾌되었다. 그 후 삼사 년 동안 건강히 지내며 아무 탈도 없었다. 그러던 중 갑진년 봄, 깊은 슬픔으로 감정이 상하자 예전의 병이 다시 재발하였다. 몸이 불에 타는 듯 뜨겁고, 입 안은 짓무르며, 가슴과 배가 붓고 가득 차 나흘 동안 음식이 전혀 넘어가지 않았다. 부부는 서로 바라보며 손 쓸 방도 없이 죽음을 기다릴 뿐이었다. 이때 다시 선생을 모셔 진찰을 받았더니, 팔미환 두 첩을 투여하여 정신이 맑아지고 의식이 개운해졌다. 이어서 금궤신기환 방에 인삼·황기·당귀·백출을 더하여 복용하니, 저녁이 되기도 전에 가슴이 편안해지고 식욕이 되살아났다. 사흘이 지나지 않아 병이 절반 이상 나았다. 그 후로는 날마다 두 환약을 번갈아 복용하여 차츰 회복하였고, 며칠 지나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그해 초가을에 다시 이질을 앓게 되었으나, 다시 금궤신기환 방에 인삼·황기·당귀·백출·황련·오수유·목향을 더하여 복용하니 곧 멎었다. 다만 뒤가 묵직한 느낌이 남아 보중익기탕에 목향·황련·오수유·오미자를 넣어 몇 첩 복용하니 완전히 나았다. 심대방은 스스로 미천하고 가난하다고 여겼고, 팔자 또한 기구하였다. 아내는 오래된 병으로 조리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는데, 만약 선생의 구원이 없었다면 무덤에 들어감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이제 불초한 내가 바깥일로 분주히 생계를 꾸려도 집안에 근심이 없게 된 것은 모두 선생의 인자한 보호 덕분이다. 그러므로 선생의 은혜는 온 가족의 복이자, 또한 온 가족의 감사이다. 이 말을 좌우에 두어 자손들이 대대로 외우게 할 것이다. 나는 일찍이 선생 곁에서 의안을 살펴보다가 아내의 병이 나은 전말을 자세히 알게 되었기에 두 가지 환방인 팔미환과 금궤신기환의 신묘한 효험을 기록하고, 또한 선생의 약 쓰심이 얼마나 신묘한지를 드러내고자 한다. 이것이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이 되기를 바라며, 오문의 늦깎이 제자 심대방, 이문이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삼가 기록한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심대방은 자신의 부인이 허열병(虛熱病)과 부종으로 사경을 헤맬 때 설립재에게 신기환(腎氣丸) 등을 처방받고 살아나자 감복한 나머지 자신도 의원이 되어서 그 치험례를 남겨 감사를 표했다. 챗GPT에 의한 AI생성 이미지.
야마토통기계 옛날에 심대방(沈大方)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세속의 무리와 어울리지 않고 산 중에 은거하며 살았다. 그는 방 안에서 글만 읽었다. 그러니 생계는 어려울 수밖에 없었고, 그의 아내는 산 중의 밭일을 하면서 과로를 일삼았다.
그러던 중 그의 아내 조씨(趙氏)가 어느 날 갑자기 담열(痰熱) 병을 앓게 되었다. 심씨는 어렵 바다이야기고래출현 게 돈을 구해 마을 의원들에게 처방을 받았지만 대부분 찬 성질의 약을 사용하였다. 그래도 처방을 복용하면 잠시 조금 나아지는 듯했으나, 삼사 년 동안 병이 나았다가 다시 악화되기를 반복하였고,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해서 결국 원기(元氣)가 점점 소모되어 쇠약해졌다.
경자년(庚子年, 1540년), 여름에는 조씨 부인의 병은 더욱 심해져 백경게임 온몸이 호박처럼 붓고, 손발이 저리고 차가워졌으며 밤낮으로 기침하고 숨이 차고 번조하며 물을 계속 마시려 했다. 그런데도 소변은 찔끔거리면서 잘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살이 모두 빠져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심씨는 수소문 끝에 설립재(薛立齋)라는 의원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의원님, 제 아내가 열병과 함께 온몸이 부종이 심한데, 백경릴게임 이제는 기운도 빠지고 헛소리도 합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라고 하면서 왕진을 청했다.
설 의원은 당시 54세여서 산에 오르는 것이 힘이 들었지만, 사정이 딱하고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 설 의원이 심씨 집에 도착해서 진맥을 해 보니 맥은 홍대(洪大)하면서 규칙적이지 않았다. 맥을 깊이 눌러 보면 사라지는 듯했다. 열이 있 황금성릴게임사이트 으나 가짜열이고 또한 기력이 쇠해져 있다는 증거다.
설 의원은 심씨에게 말하기는 “이는 허열(虛熱)이지, 진짜 열(熱)이 아니네. 그리고 부종 또한 신양(腎陽) 부족 때문이네. 그러니 마땅히 화의 근원인 신양(腎陽)을 도와 비토(脾土)를 생하게 해야 하네.”라고 했다.
설 의원은 어떤 환약을 조제해서 처방을 했다. 그랬더니 조씨 부인이 이 환약을 복용하자 곧 소변이 샘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그 뒤 매일 환약과 함께 처방해 준 탕약을 약 20여 첩을 복용하자 병이 완쾌되었다.
심씨는 부인이 살아나자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 “의원님, 도대체 그 처방은 무엇이었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설 의원은 “껄껄껄” 웃을 뿐 답이 없었다. 뒤돌아서는 설 의원 뒤로 “자네에게 처방을 설명해도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는 목소리가 나지막이 들렸다.
조씨 부인은 이후 삼사 년 동안 건강히 지내며 아무 탈도 없었다. 그러던 중 갑진년(甲辰年, 1544년) 봄, 친정 부모 상을 당한 이후 깊은 슬픔으로 감정이 상하자 예전의 병이 다시 재발하였다.
조씨 부인은 몸이 불에 타는 듯 뜨겁고, 입안은 짓물러 구창(口瘡)이 심했으며, 전처럼 가슴과 배가 붓고 가득 차 나흘 동안 음식이 전혀 넘어가지 않았다. 정신도 오락가락해서 기절할 지경에 이르렀다.
심씨는 다시 설 의원을 산 중으로 모셔 진찰을 받았다. 설 의원은 노령의 나이에도 흔쾌히 왕진에 응하고서는 다시 탕약을 처방했는데, 부인은 설 의원의 처방을 복용하자 정신이 맑아지고 의식이 개운해졌다.
이후 설 의원은 다시 처방을 변경해서 투약하자 그 처방을 복용하면서 부인은 저녁이 되기도 전에 가슴이 편안해지고 식욕이 되살아 밥 한그릇을 모두 비웠다. 부인의 증상은 사흘 정도 지나자 증상이 절반 이상 나았고 그 후로는 날마다 기존 처방을 번갈아 복용하여 차츰 회복되다가 며칠 지나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심씨는 부인이 치료되는 과정을 보고서 무척 신기해하며 놀랐다. 그래서 자신도 의원이 되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심씨는 설 의원의 약방 마당에 엎드려 절하며 말하기를 “의원님, 저는 스스로 미천하고 가난하다고 여겼고, 팔자 또한 기구하였습니다. 제 아내 또한 오래된 병으로 조리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는데, 의원님의 구원이 없었다면 무덤에 들어감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글 읽는 재주 말고 없는데, 이제 의업을 제 평생의 업으로 삼고자 합니다. 이에 불초한 제가 의원님 슬하에서 허드렛일이라도 하면서 의술을 배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라고 했다.
설 의원은 심씨의 말이 진심어리다고 판단하고는 약방에 머물면서 일도 돕고 약초 공부도 할 것을 허락했다.
심씨는 낮에는 장작도 패고, 물도 긷고, 깊은 산 중에서 귀한 약초도 캐왔다. 그리고 밤에는 호롱불을 켜고 의서를 읽으면서 설 의원이 환자에게 처방을 했던 약방문도 읽으면서 처방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심씨는 스승님이 자신의 부인을 치료했던 약방문을 발견했다.
경자년 때, 부인의 병세를 치료한 처방은 바로 신기환(腎氣丸)이었다. 신기환은 장중경의 <금궤요략>에 실려 있는 처방으로 금궤신기환이라고도 부른다. 이 처방은 후세 송나라때 전을이 지은 <소아약증직결>에 나오는 육미지황환(六味地黃丸)의 기원이 된다. 전을은 신기환에서 어린아이들에게 맞지 않는 부자와 육계를 빼고 육미지황환을 만들었다.
신기환(腎氣丸) 처방 옆에는 ‘부인이 병이 있어 음식은 예전과 같이 먹으나 번열로 눕지 못하고 반대로 기대서 숨을 쉬는 것은 전포증(轉脬證)이라 하는데, 소변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포계(胞系, 방광)가 비뚤어져서 이러한 병에 이르게 된 것이다. 단지 소변을 통하게 해주면 나으니 신기환으로 치료한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알고 보니 금궤요략의 내용과 같았다.
신기환은 신음(腎陰)을 보하면서도 신양(腎陽)을 덥혀 수화(水火)의 균형을 맞추는 처방으로 허증에 나타나는 냉증, 부종, 소변불리 등에 쓰이는 대표적인 처방이다. 남성의 경우 전립선비대, 요통, 노인성 배뇨장애, 성기능장애 등에도 활용된다.
그리고 갑진년 때 처방은 팔미환(八味丸)과 역시 금궤신기환이었다. 팔미환은 육미지황환에 부자와 육계가 포함되어 있는 처방으로 역시 신음과 신양을 동시에 보하는 명방이다. 노인들의 하초가 허한 증상에도 다용된다. 스승님은 부인을 치료할 때 이 기존의 환약에 인삼, 황기, 당귀, 백출, 황연, 오수유, 목향, 오미자, 목향 등이 가미되기도 했다.
심씨는 이로써 부인의 증상과 이를 치료했던 처방 등 그 모든 과정을 알게 되었다. 처방을 보자 심장이 밖으로 뛰쳐나올 것처럼 두근거리면서 흥분되었다. 그래서 스승님이 자기 부인의 병증을 치료한 경험을 후세에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기록의 말미에는 “나는 일찍이 스승님의 의안을 살펴보다가 죽어가는 아내의 병이 나은 전말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이에 죽어가는 내 아내를 살린 팔미환과 금궤신기환의 신묘한 효험을 기록하고, 또한 스승님의 용약(用藥)이 얼마나 영험한지를 드러내고자 한다. 이로써 만분의 일이라도 스승님의 은혜에 보답이 되기를 바란다.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삼가 기록한다.”라는 글을 남겼다.
설의원은 추후 이 내용을 자신의 저서인 <설씨의안(薛氏醫案)>에 수록했다. 이로써 후세의 의원들 또한 신기환 등으로 허열과 부종을 치료하는데 있어 강령(綱領)으로 삼을 수 있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설씨의안(薛氏醫案)> 大方世家、湖郷、離群索居。山妻趙氏忽嬰痰熱、治者多以寒凉、偶得小愈。三四年餘、屢進屢退、于是元氣消爍。庚子夏、遍身浮腫、手足麻冷、日夜咳、煩躁引飲、小水不利、大肉盡去、勢將危殆。幸遇先生診之、脈洪大而無倫、按之如無。此虛熱無火、法當壯火之源、以生脾土。與《金匱》腎氣丸料服之、頓覺小水潰决如泉。俾日服前丸及大補之藥二十餘劑而愈。三四年間、平康無恙。迄今甲辰仲春、悲哀動中、前症復作。體如焚燎、口肉盡腐、胸腹腫滿、食不下咽者四日。夫婦相顧、束手待斃而已。又承先生視之、投以八味丸二服、神思清爽。服金匱腎氣丸料加參茋歸术、未竟夕而胸次漸舒、陡然思食。不三日而病去五六矣。嗣後日用前二丸間服、逾日而起。至秋初、復患痢。又服金匱腎氣丸料加參茋歸术、黃連、吳茱、木香、痢遂止。但覺後重、又用補中益氣加木香、黃連、吳茱、五味數劑而全愈。大方自分寒素、命亦蹇剝。山妻抱病沉痼、本難調攝。苟非先生援救、填壑未免。今不肖奔走衣食於外、而可無內顧之憂矣。然則先生之仁庇、固不肖全家之福、亦不肖全家之感也。斯言也、當置之座右、以為子孫世誦之。不肖嘗侍先生之側、檢閲醫案、始知山妻奏效巔末、遂秉書紀二丸藥之聖、且彰先生用藥之神萬一云。吳門晩學生沈大方、履文再拜頓首謹書。(호향 출신의 심대방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세속의 무리와 어울리지 않고 산중에 은거하며 살았다. 그의 아내 조씨가 어느 날 갑자기 담열의 병을 앓게 되었는데, 이를 치료한 의원들은 대부분 찬 성질의 약을 사용하였다. 잠시 조금 나아지는 듯했으나, 삼사 년 동안 병이 나았다가 다시 악화되기를 반복하였고, 결국 원기가 점점 소모되어 쇠약해졌다. 경자년 여름에는 병이 더욱 심해져 온몸이 붓고, 손발이 저리고 차가웠으며, 밤낮으로 기침하고 숨이 차고 번하며 물을 계속 마시려 했다. 그러나 소변이 시원치 않았고, 살이 모두 빠져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다행히 선생을 만나 진찰을 받았는데, 맥은 홍대하되 질서가 없었고, 눌러보면 마치 없는 듯하였다. 이에 선생은 말하기를 “이는 허열이지, 참된 화가 아니다. 마땅히 ‘불의 근원’을 도와 비토를 생하게 해야 한다.” 하였다. 그리하여 금궤요략의 신기환 방을 써서 복용하게 하였다. 곧 소변이 샘물 터지듯 쏟아졌고, 그 뒤 매일 전의 환약과 더불어 대보하는 약 20여 첩을 복용하자 병이 완쾌되었다. 그 후 삼사 년 동안 건강히 지내며 아무 탈도 없었다. 그러던 중 갑진년 봄, 깊은 슬픔으로 감정이 상하자 예전의 병이 다시 재발하였다. 몸이 불에 타는 듯 뜨겁고, 입 안은 짓무르며, 가슴과 배가 붓고 가득 차 나흘 동안 음식이 전혀 넘어가지 않았다. 부부는 서로 바라보며 손 쓸 방도 없이 죽음을 기다릴 뿐이었다. 이때 다시 선생을 모셔 진찰을 받았더니, 팔미환 두 첩을 투여하여 정신이 맑아지고 의식이 개운해졌다. 이어서 금궤신기환 방에 인삼·황기·당귀·백출을 더하여 복용하니, 저녁이 되기도 전에 가슴이 편안해지고 식욕이 되살아났다. 사흘이 지나지 않아 병이 절반 이상 나았다. 그 후로는 날마다 두 환약을 번갈아 복용하여 차츰 회복하였고, 며칠 지나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그해 초가을에 다시 이질을 앓게 되었으나, 다시 금궤신기환 방에 인삼·황기·당귀·백출·황련·오수유·목향을 더하여 복용하니 곧 멎었다. 다만 뒤가 묵직한 느낌이 남아 보중익기탕에 목향·황련·오수유·오미자를 넣어 몇 첩 복용하니 완전히 나았다. 심대방은 스스로 미천하고 가난하다고 여겼고, 팔자 또한 기구하였다. 아내는 오래된 병으로 조리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는데, 만약 선생의 구원이 없었다면 무덤에 들어감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이제 불초한 내가 바깥일로 분주히 생계를 꾸려도 집안에 근심이 없게 된 것은 모두 선생의 인자한 보호 덕분이다. 그러므로 선생의 은혜는 온 가족의 복이자, 또한 온 가족의 감사이다. 이 말을 좌우에 두어 자손들이 대대로 외우게 할 것이다. 나는 일찍이 선생 곁에서 의안을 살펴보다가 아내의 병이 나은 전말을 자세히 알게 되었기에 두 가지 환방인 팔미환과 금궤신기환의 신묘한 효험을 기록하고, 또한 선생의 약 쓰심이 얼마나 신묘한지를 드러내고자 한다. 이것이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이 되기를 바라며, 오문의 늦깎이 제자 심대방, 이문이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삼가 기록한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관련링크
-
http://77.rsk396.top
0회 연결 -
http://26.rhf865.top
0회 연결
- 이전글마사지 후기 25.11.25
- 다음글첫눈에 반한 애인과의 설렘을 오래도록비맥스 25.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