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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매춘·도박. 삼악(三惡)으로 그가 한 해 벌어들인 돈은 1억 달러가 넘었다. “회개하라”라는 목사의 멱살을 쥐고, 돈뭉치로 따귀를 올려붙였다. 쓰러진 성직자에게 “신은 나를 축복한다”며 침을 뱉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깡패’, 마 릴게임바다이야기사이트 피아 알 카포네의 이야기다. 알 카포네를 만든 건 그의 거친 성미만이 아니었다. 경제사의 물줄기가 그의 얼굴에 흉터를 만들고, 그를 괴물로 만들었다.
“오늘 오빠랑 놀까.” 네덜란드 화가 워터 크라베스 2세의 ‘남자들과 카드놀이를 하는 매춘부’. 1640년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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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남부의 비극
알 카포네는 뉴욕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몸에는 이탈리아 남부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탈리아 남부는 거친 동네였다. 정부를 믿지 않았고, 제 몸은 자기가 지켜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세계였다.
바다신2다운로드 1860년 이탈리아는 비로소 한 나라가 됐다. 통일의 영광은 그러나 남쪽의 사람들에게 스미지 않았다. 봉건 영주와 기사들이 사라지고, 왕좌에 오른 새 지도자들은 “이제 모든 걸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외쳤지만, 공권력의 팔다리가 짧아서 남부 깊숙이 권력이 미치지 못했다. 남부 전역에 경찰관이 350명에 불과할 정도였으니. 경찰이 아예 없는 곳도 부지 릴게임종류 기수였다.
“비바, 이탈리아. 우리도 프랑스처럼 한 나라가 된다.” 화가 프란츠 벤젤 슈바르츠의 작품. 이탈리아 통일 주역 가리발디가 남부 나폴리에 입성한 장면을 묘사한 그림.
법은 멀었고 주먹 릴짱 은 가까워서, 남부의 남자들은 폭력을 지고의 가치로 삼았다. 순진하게 법만을 믿고 있다간, 거리로 나앉기 딱 좋았다. 힘깨나 쓰는 남자들은 한 데 모여 힘겨루기하다가, 주먹이 가장 매운 남자를 두목으로 삼아 패거리를 지었다. 패거리는 다른 패거리와 주먹다툼을 벌였다. 싸움에서 진 이들은 이긴 이들에게 “형님”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아서, 패거리는 하루가 다르게 덩치가 커졌다.
덩치가 너무 커져서, 사람들이 우러러보기 시작하자, 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시민의 보호자“라도 거들먹거렸다. 소정의 보호비가 따랐지만, 출몰하는 도적 떼가 성가셨던 시민들은 법전에만 존재하는 나라님보다는, 깡패집단을 더 믿고 따랐다. ‘마피아’의 시작이었다.
“이 놈의 산적떼는 끊이질 않는구만.” 정규 군대에 기습당한 이탈리아 산적들. 호레이스 베넷의 1831년 작품.
세계로 퍼져나간 이탈리아 난민들
이탈리아는 정치적으로 통일됐지만, 경제적으로는 분열했다. 공업지대인 북부의 경제력을 키우기 위해 외국 상품들이 쉬이 못 들도록 ‘관세 전쟁’을 벌였는데, 덩달아 이탈리아 남부에서 생산되는 달콤한 포도와 고소한 올리브의 수출길이 막혀버렸다.
포도 판매처를 잃어버린 남부 사람들은 관세가 매겨져 비싸진 공산품을 사야 하는 이중고를 겪었다. 이탈리아 정부는 북부에 치를 떠는 남부 사람들에 대해선 아랑곳 않고, “통일엔 돈이 든다”면서 세금까지 높였다.
“저 북부 놈들은 옷도 잘입고, 잘산다는데...” 19세기 이탈리아 남부 팔레르모. 프란츠 루트비히 카텔의 작품.
이탈리아 남부 사람들은 “이게 나라냐”라면서 미국으로 도망갔는데, 그 수가 60년 동안 400만명에 달했다. 가난에 찌든 이민자를 달가워 할 나라는 없었으므로, 이탈리아 이민자들은 자연스레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는 공동체로 대응했다. 뉴욕에 ‘마피아’ 문화가 이식되고 있다는 의미였다.
남부 나폴리에서의 삶이 버거웠던 사내 가브리엘도 미국 뉴욕행 배를 탄 남자 중 하나였다. 자기만의 아메리칸드림을 만들겠다는 포부였다. 미국에서 노동에 지치고 고단할 때면, 그래도 고향이라고 나폴리 생각에 코끝이 자주 시큰거렸다. 향수병에는 동향 사람과의 대화보다 나은 치료 약은 없어서, 가브리엘은 나폴리 여인 테레사에게 마음을 빼앗겼고, 나폴리의 태양처럼 뜨겁게 그녀를 사랑했다. 나폴리 커플은 그렇게 자식을 아홉이나 봤다. 그 중 넷째 아들의 이름은 알폰스. 그 유명한 알 카포네의 탄생이었다.
“하이라 하지 말고, 본 조르노라 해요.” 뉴욕의 리틀 이탈리아라고 불린 멀베리 스트리트. 1900년.
떡잎부터 다른 알 카포네
나폴리 커플은 나폴리 자식을 낳았다. 아버지 가브리엘은 자식들에게 “맷값은 얼마든지 댈 테니, 어디서든 맞고 오지 마라”고 외쳐댔고, 알 카포네는 아버지 말을 금과옥조로 여겨서, 자신을 체벌하려 한 여교사의 뺨을 때려 그 길로 학교에서 잘렸다. 알 카포네의 나이 14살 때의 일이었다.
학교생활이 지겨웠던 알 카포네는 “옳다구나”며 볼링장, 사탕가게에서 잡일로 돈을 벌기로 했다. 거칠기 짝이 없는 알 카포네는 어디서나 사람들과 불화하였는데, 폭력적인 그의 성향을 맘에 들어 하는 사람이 있었다. 미국 갱스터 프랭키 예일이었다.
“알 카포네, 맞고 오면 아빠한테 죽는 거 알지?” 알 카포네와 모친.
알 카포네는 사람을 속이고, 때리고,겁박하는 일로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전율했다. 이탈리아와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뉴욕 갱단 ‘파이브 포인츠 갱(Five Points Gang)’에 합류한 배경이었다. 럭키 루치아노, 벅시 시걸, 비프 앨리슨과 같은 전설적 깡패들이 모두 파이브 포인츠 갱 출신이었다.
입이 거칠고, 입보다 행동이 더 거친 알 카포네는 술집 문지기로 일했다. 이 여자, 저 여자 집적대면서 희롱하다가 얼굴에 칼을 맞았다. 그때부터 그는 ‘스카 페이스(흉진 얼굴)’로 불렸다. 제법 거물급 깡패에겐 언제나 ‘닉네임’이 필요했으므로, 알 카포네는 스카 페이스라는 이름을 기꺼워했다.
“우리도 알고보면 부드라운 남자요.” 파이브 포인츠 갱단.
시카고에서 새 길을 열다
뉴욕은 갱의 도시였다. 이탈리아, 아일랜드, 러시아에서 매일같이 곰만한 사내들이 몰려들었다. 무질서와 혼란이 기본값인 도시에서 갱단끼리의 충돌 압력도 높아지고 있었다. 깡패들 사이에서도 조국을 향한 사랑은 충만하기 마련이어서, 이탈리아계 마피아들은 아일랜드 갱단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알 카포네는 “이탈리아 남자는 하나같이 마마보이”라는 아일랜드 갱단 ‘화이트 핸드’의 조직원을 반죽음으로 만들어놨다. ‘화이트 핸드’가 보복을 공표하자, 알 카포네는 시카고로 줄행랑쳤다.
배운 게 깡패질뿐이어서 시카고에서도 이탈리아계 마피아들이 주축을 이룬 조직의 일원이 됐다. 시카고에 깡패의 마수가 마침내 뻗쳤다. 시카고에서 알 카포네는 제대로 날았다. 미국 정부가 시행한 ‘금주법’(1920년)이 계기였다. 만연한 폭력과 매춘의 원인으로 ‘술’이 지목되면서였다.
“이제 시카고에서 내 시대를 열어야겠지.” 알 카포네.
대대적 사회정화 운동에 알 카포네는 미소 지었다. 술이 금지되면 정상적인 술 업자들은 모두 업을 접을 것이었고, 대신 술값은 치솟아서 마피아들이 그 수익을 모두 꿀떡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알 카포네의 생각은 적중했다. 금주법이 금지되자 술은 지상에서는 자취를 감췄지만, 그 대신 지하로 스며들었다. 지하세계의 지배자는 마피아들이어서, 알 카포네는 밀수와 밀조를 병행하여 시카고 술꾼들의 목을 축였다.
“그 술 제 입에 버리면 안될까요. ” 금주법 시대 적발한 술을 하수구에 버리는 단속 요원들.
범죄의 기업화로 1조원을 벌다
알 카포네가 몸담은 ‘시카고 아웃핏’은 술로 번 돈으로 도박장도 차리고, 매춘업소도 여럿 굴려서 한 해 매출을 1억 달러를 올렸다. 오늘날 가치로 1조 8000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돈이었다. 그 정점에 선 알 카포네는 그야말로 거부로 자리매김했다. ‘시카고 언더월드’의 지배자, 알 카포네였다.
경찰과 단속 당국에 대한 염려는 없었다.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 없었고, 그들에게 돈을 먹이면 그만이었으니까. 알 카포네가 뇌물로 뿌린 돈은 7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세상에 더러운 돈 깨끗한 돈이 따로 있소?” 알 카포네 머그샷.
술에서 돈 냄새가 진하게 풍겨서, 마피아들끼리 이권 다툼이 치열했다. 시카고 아웃핏은 도시 남부의 지배자였는데, 북부 지역은 철천지원수같은 아일랜드계 갱단이 지배하고 있었다. 알 카포네는 아일랜드 흰둥이들이 지근거리에서 돈 버는 모습에 이를 갈았다.
며칠 후 아일랜드 갱단의 양조장에서 폭탄이 터졌다. 한다면 하는 남자, 알 카포네의 짓이었다. 아일랜드 갱단과 이탈리아 갱단의 전면전이 벌어졌다. ‘맥주 전쟁’이었다. 3년 동안 이어진 전쟁에 100명이 죽었다.
사달은 1929년 2월 14일, 평화로운 성 발렌타인의 날에 벌어졌다. 카포네 부하들이 경찰 옷을 입고 단속반인 양 아일랜드갱을 차고에 몰아놓고 기관총을 난사했다. 대낮, 그것도 축일에 벌어진 학살극에 사람들은 기함했다. 내심 알 카포네를 ‘로빈 후드’로 치켜세우던 이들도 등을 돌렸다.
성 발렌타인의 학살을 그림으로 묘사한 시카고 트리뷴.
자선사업으로 이미지 세탁
알 카포네는 평판이 중요한 이탈리아 남자여서, 자신을 향한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싶었다. 밤에는 술을 먹고 매춘부와 뒹굴면서도, 낮에는 어려운 이웃에게 수프와 빵을 대접했다. 대공황이 벌어진 시기, 알 카포네의 자선 급식소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사람들은 주린 배를 채워주는 알 카포네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더러운 돈이면 어떤가. 배곯는 것보다 더 큰 악은 없는 것이다.
“커피 앤 도넛은 던킨보다 알 카포네지.” 알 카포네의 무료급식소. 1931년 2월.
미국이 마피아의 세계라는 현실에, 정부도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FBI로 새로 부임한 국장 제이 에드거 후버는 공개 수배 대상 1호로 ‘알 카포네’를 지목했다. 대통령 루스벨트가 그에게 힘을 실어줬다.
시카고 시장은 공개적으로 “시카고를 카포네로부터 해방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수배에 이어 ‘금주법 폐지’까지 단행해 마피아들의 주 수입원에 못질했다. FBI는 1931년 알 카포네를 법정에 세우는 데 성공했다. 살인과 밀주의 증거를 찾기가 어려워서, ‘탈세’를 무기삼아 11년형을 끌어냈다. 알 카포네의 나이 고작 32살이었다.
“알 카포네 잡기 전까지는 아무 보고도 하지말게.” FBI 국장 제이 에드거 후버.
괴물의 마지막
세상에 매수 못할 위인은 없다고 굳게 믿은 알 카포네는 간수에게 돈을 먹여 감옥에서도 호화생활을 했는데, 이 사실이 논란이 되자 교정 당국은 그를 악명높은 ‘알카트라즈’로 이송했다. 외딴섬에다 지어 놓은 시설이어서, 탈옥과 매수가 불가능한 천혜의 요새였다.
알 카포네가 수감된 필라델피아 이스턴 스테이트 교도소 수감실. 호화로운 시설에서 한 황제 복역이었다. [사진출처=Thesab]
알 카포네는 아팠다. 자기가 운영하던 매춘업소 200곳에서 극도의 쾌락을 너무 자주 맛본 탓이었다. 매독이 그의 몸에 똬리를 틀었고, 뇌까지 병이 옮았다. 수용 8년이 되던 해, 그는 건강 악화를 이유로 석방됐다.
큰 돈을 들고 병원을 찾았지만, 존스홉킨스 병원은 마피아 두목을 치료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여러 곳을 전전해서야 비로소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병원은 알 카포네의 지능이 12살 수준이라고 했다. 역사에 저항하면서 괴물이 되어버린 남자는 말년에서야, 아이의 순수함을 되찾았다.
‘괴물’ 알 카포네 머그샷.
<네줄요약>
ㅇ1870년 통일된 이탈리아는 남북의 극심한 경제적 격차로 인해, 가난한 남부지방에서는 폭력 조직 ‘마피아’가 들끓었다.
ㅇ남부 지방 사람들은 가난으로 인해 미국 이민을 대규모로 떠났는데, 이 때 마피아 조직이 미국에 이식됐다. 알 카포네가 그렇게 태어났다.
ㅇ알 카포네는 금주법을 계기 삼아, 밀주를 팔아 큰 돈을 벌었고, 도박·매춘으로 한 때 1조원을 넘게 벌어 들였다.
ㅇ결국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FBI에 의해 옥살이를 하다가 매독 후유증으로 죽었다.
‘경제’는 맛보기에 어려운 식재료입니다. 채권, 이자, 화폐라는 단어만 들어도 쓴맛이 올라옵니다. 맛있게 즐기려면 ‘역사’라는 양념이 필요합니다. 역사(히스토리)와 경제(이코노미)를 결합한 연재물 ‘히코노미’는 먹음직한 요리를 내는 걸 목표로 합니다. 기자 구독을 눌러주세요. 격주로 여러분의 경제 근육을 키워드리겠습니다.
술·매춘·도박. 삼악(三惡)으로 그가 한 해 벌어들인 돈은 1억 달러가 넘었다. “회개하라”라는 목사의 멱살을 쥐고, 돈뭉치로 따귀를 올려붙였다. 쓰러진 성직자에게 “신은 나를 축복한다”며 침을 뱉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깡패’, 마 릴게임바다이야기사이트 피아 알 카포네의 이야기다. 알 카포네를 만든 건 그의 거친 성미만이 아니었다. 경제사의 물줄기가 그의 얼굴에 흉터를 만들고, 그를 괴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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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남부의 비극
알 카포네는 뉴욕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몸에는 이탈리아 남부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탈리아 남부는 거친 동네였다. 정부를 믿지 않았고, 제 몸은 자기가 지켜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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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남부 사람들은 “이게 나라냐”라면서 미국으로 도망갔는데, 그 수가 60년 동안 400만명에 달했다. 가난에 찌든 이민자를 달가워 할 나라는 없었으므로, 이탈리아 이민자들은 자연스레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는 공동체로 대응했다. 뉴욕에 ‘마피아’ 문화가 이식되고 있다는 의미였다.
남부 나폴리에서의 삶이 버거웠던 사내 가브리엘도 미국 뉴욕행 배를 탄 남자 중 하나였다. 자기만의 아메리칸드림을 만들겠다는 포부였다. 미국에서 노동에 지치고 고단할 때면, 그래도 고향이라고 나폴리 생각에 코끝이 자주 시큰거렸다. 향수병에는 동향 사람과의 대화보다 나은 치료 약은 없어서, 가브리엘은 나폴리 여인 테레사에게 마음을 빼앗겼고, 나폴리의 태양처럼 뜨겁게 그녀를 사랑했다. 나폴리 커플은 그렇게 자식을 아홉이나 봤다. 그 중 넷째 아들의 이름은 알폰스. 그 유명한 알 카포네의 탄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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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생활이 지겨웠던 알 카포네는 “옳다구나”며 볼링장, 사탕가게에서 잡일로 돈을 벌기로 했다. 거칠기 짝이 없는 알 카포네는 어디서나 사람들과 불화하였는데, 폭력적인 그의 성향을 맘에 들어 하는 사람이 있었다. 미국 갱스터 프랭키 예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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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거칠고, 입보다 행동이 더 거친 알 카포네는 술집 문지기로 일했다. 이 여자, 저 여자 집적대면서 희롱하다가 얼굴에 칼을 맞았다. 그때부터 그는 ‘스카 페이스(흉진 얼굴)’로 불렸다. 제법 거물급 깡패에겐 언제나 ‘닉네임’이 필요했으므로, 알 카포네는 스카 페이스라는 이름을 기꺼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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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에서 새 길을 열다
뉴욕은 갱의 도시였다. 이탈리아, 아일랜드, 러시아에서 매일같이 곰만한 사내들이 몰려들었다. 무질서와 혼란이 기본값인 도시에서 갱단끼리의 충돌 압력도 높아지고 있었다. 깡패들 사이에서도 조국을 향한 사랑은 충만하기 마련이어서, 이탈리아계 마피아들은 아일랜드 갱단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알 카포네는 “이탈리아 남자는 하나같이 마마보이”라는 아일랜드 갱단 ‘화이트 핸드’의 조직원을 반죽음으로 만들어놨다. ‘화이트 핸드’가 보복을 공표하자, 알 카포네는 시카고로 줄행랑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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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카고에서 내 시대를 열어야겠지.” 알 카포네.
대대적 사회정화 운동에 알 카포네는 미소 지었다. 술이 금지되면 정상적인 술 업자들은 모두 업을 접을 것이었고, 대신 술값은 치솟아서 마피아들이 그 수익을 모두 꿀떡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알 카포네의 생각은 적중했다. 금주법이 금지되자 술은 지상에서는 자취를 감췄지만, 그 대신 지하로 스며들었다. 지하세계의 지배자는 마피아들이어서, 알 카포네는 밀수와 밀조를 병행하여 시카고 술꾼들의 목을 축였다.
“그 술 제 입에 버리면 안될까요. ” 금주법 시대 적발한 술을 하수구에 버리는 단속 요원들.
범죄의 기업화로 1조원을 벌다
알 카포네가 몸담은 ‘시카고 아웃핏’은 술로 번 돈으로 도박장도 차리고, 매춘업소도 여럿 굴려서 한 해 매출을 1억 달러를 올렸다. 오늘날 가치로 1조 8000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돈이었다. 그 정점에 선 알 카포네는 그야말로 거부로 자리매김했다. ‘시카고 언더월드’의 지배자, 알 카포네였다.
경찰과 단속 당국에 대한 염려는 없었다.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 없었고, 그들에게 돈을 먹이면 그만이었으니까. 알 카포네가 뇌물로 뿌린 돈은 7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세상에 더러운 돈 깨끗한 돈이 따로 있소?” 알 카포네 머그샷.
술에서 돈 냄새가 진하게 풍겨서, 마피아들끼리 이권 다툼이 치열했다. 시카고 아웃핏은 도시 남부의 지배자였는데, 북부 지역은 철천지원수같은 아일랜드계 갱단이 지배하고 있었다. 알 카포네는 아일랜드 흰둥이들이 지근거리에서 돈 버는 모습에 이를 갈았다.
며칠 후 아일랜드 갱단의 양조장에서 폭탄이 터졌다. 한다면 하는 남자, 알 카포네의 짓이었다. 아일랜드 갱단과 이탈리아 갱단의 전면전이 벌어졌다. ‘맥주 전쟁’이었다. 3년 동안 이어진 전쟁에 100명이 죽었다.
사달은 1929년 2월 14일, 평화로운 성 발렌타인의 날에 벌어졌다. 카포네 부하들이 경찰 옷을 입고 단속반인 양 아일랜드갱을 차고에 몰아놓고 기관총을 난사했다. 대낮, 그것도 축일에 벌어진 학살극에 사람들은 기함했다. 내심 알 카포네를 ‘로빈 후드’로 치켜세우던 이들도 등을 돌렸다.
성 발렌타인의 학살을 그림으로 묘사한 시카고 트리뷴.
자선사업으로 이미지 세탁
알 카포네는 평판이 중요한 이탈리아 남자여서, 자신을 향한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싶었다. 밤에는 술을 먹고 매춘부와 뒹굴면서도, 낮에는 어려운 이웃에게 수프와 빵을 대접했다. 대공황이 벌어진 시기, 알 카포네의 자선 급식소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사람들은 주린 배를 채워주는 알 카포네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더러운 돈이면 어떤가. 배곯는 것보다 더 큰 악은 없는 것이다.
“커피 앤 도넛은 던킨보다 알 카포네지.” 알 카포네의 무료급식소. 1931년 2월.
미국이 마피아의 세계라는 현실에, 정부도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FBI로 새로 부임한 국장 제이 에드거 후버는 공개 수배 대상 1호로 ‘알 카포네’를 지목했다. 대통령 루스벨트가 그에게 힘을 실어줬다.
시카고 시장은 공개적으로 “시카고를 카포네로부터 해방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수배에 이어 ‘금주법 폐지’까지 단행해 마피아들의 주 수입원에 못질했다. FBI는 1931년 알 카포네를 법정에 세우는 데 성공했다. 살인과 밀주의 증거를 찾기가 어려워서, ‘탈세’를 무기삼아 11년형을 끌어냈다. 알 카포네의 나이 고작 32살이었다.
“알 카포네 잡기 전까지는 아무 보고도 하지말게.” FBI 국장 제이 에드거 후버.
괴물의 마지막
세상에 매수 못할 위인은 없다고 굳게 믿은 알 카포네는 간수에게 돈을 먹여 감옥에서도 호화생활을 했는데, 이 사실이 논란이 되자 교정 당국은 그를 악명높은 ‘알카트라즈’로 이송했다. 외딴섬에다 지어 놓은 시설이어서, 탈옥과 매수가 불가능한 천혜의 요새였다.
알 카포네가 수감된 필라델피아 이스턴 스테이트 교도소 수감실. 호화로운 시설에서 한 황제 복역이었다. [사진출처=Thesab]
알 카포네는 아팠다. 자기가 운영하던 매춘업소 200곳에서 극도의 쾌락을 너무 자주 맛본 탓이었다. 매독이 그의 몸에 똬리를 틀었고, 뇌까지 병이 옮았다. 수용 8년이 되던 해, 그는 건강 악화를 이유로 석방됐다.
큰 돈을 들고 병원을 찾았지만, 존스홉킨스 병원은 마피아 두목을 치료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여러 곳을 전전해서야 비로소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병원은 알 카포네의 지능이 12살 수준이라고 했다. 역사에 저항하면서 괴물이 되어버린 남자는 말년에서야, 아이의 순수함을 되찾았다.
‘괴물’ 알 카포네 머그샷.
<네줄요약>
ㅇ1870년 통일된 이탈리아는 남북의 극심한 경제적 격차로 인해, 가난한 남부지방에서는 폭력 조직 ‘마피아’가 들끓었다.
ㅇ남부 지방 사람들은 가난으로 인해 미국 이민을 대규모로 떠났는데, 이 때 마피아 조직이 미국에 이식됐다. 알 카포네가 그렇게 태어났다.
ㅇ알 카포네는 금주법을 계기 삼아, 밀주를 팔아 큰 돈을 벌었고, 도박·매춘으로 한 때 1조원을 넘게 벌어 들였다.
ㅇ결국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FBI에 의해 옥살이를 하다가 매독 후유증으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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