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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적인 돈을 주무르는 기업인, 말 한 마디에 주가가 출렁이는 금융인, 미래를 바꾸는 창업가, 국제정세를 쥐락펴락하는 지도자. [더 비저너리]는 세상의 흐름을 주도하는 파워 리더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무엇이 현재의 그들을 만들었으며, 어떤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의 생생한 스토리를 전해 드립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상원의원(공화당·플로리다) 시절인 2016년 공화당 대선 경선후보로 미니애폴리스 선거 유세행사에 참여한 모습. [AP]
골드몽사이트“마코 루비오가 쿠바 대통령이 된다면 어떨까.”
최근 소셜미디어에 떠돈 농담성 게시글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좋은 생각(Sounds good to me)”이라고 반응하자, 워싱턴 정가는 즉각 술렁였다. 웃자고 던진 말처럼 보이지만, 트럼프가 루비오의 이름을 ‘쿠바’라는 상징적 공간과 함께 꺼냈다는 점에서 정치적 함의는 릴게임사이트 가볍지 않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쿠바계 이민자의 아들이자 대(對)쿠바·대(對)베네수엘라 강경 노선을 주도해온 인물을 굳이 그 자리에 올려놓았다는 것 자체가 메시지라는 것이다.
특히 이 발언은 트럼프 행정부 2기 들어 외교·안보 정책의 실질적 무게 중심이 어디로 이동했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무장관에 이어 백악관 국가 바다이야기#릴게임 안보보좌관 역할까지 겸임한 루비오는, 더 이상 단순한 ‘외교 수장’이 아니라 제재·정권 압박·동맹 관리까지 아우르는 전략 설계자로 자리 잡았다. 베네수엘라 정권 축출 작전, 쿠바로 향하는 석유·자금 차단, 중남미 전반을 겨냥한 압박 정책의 상당 부분에 그의 구상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때 ‘트럼프의 경쟁자’였고, 취임 초반에는 ‘ 릴게임한국 최약체 장관’이라는 평가까지 받았던 루비오는 이제 트럼프 2기에서 가장 빠르게 약진한 정치인으로 꼽힌다. 공격적인 발언으로 주목을 끄는 인물이라기보다, 트럼프의 의중을 정책과 제도로 구현하는 실행자로서 존재감을 키워왔다는 점이 특징이다. 트럼프의 한마디 농담이 단순한 말장난을 넘어 정치권의 해석 경쟁을 불러온 배경에는, 이렇게 달라진 루비오의 위상이 깔려 알라딘릴게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흙수저 이민자 출신→엘리트 정치인’ 아메리칸 드림
마코 안토니오 루비오는 1971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 혁명에 성공하기 3년 전인 1956년, 공산화 조짐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쿠바계 이민자였다. 아버지는 호텔 바텐더로, 어머니는 가사 도우미로 생계를 이어갔다. 루비오는 훗날 인터뷰에서 “우리 가족에게 공산주의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삶을 뒤흔든 현실이었다”고 회상했다.
이 반공 정체성은 그의 정치적 세계관의 핵심이 된다. 학창 시절 그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학교 스포츠와 학업을 병행하며 상향 이동의 통로를 스스로 만들어 갔다. 고교 시절 미식축구 선수로 뛰며 장학금을 받아 대학에 진학했고, 1993년 플로리다주립대를 졸업했다. 이후 마이애미대 법학대학원에 진학해 1996년 법학박사(JD) 학위를 받으며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흙수저 이민자 가정 출신→엘리트 정치인’이라는 전형적인 아메리칸 드림 서사는 훗날 공화당 내에서 그를 차별화하는 자산이 됐다. 특히 부모 세대의 이민 경험과 본인의 학업·취업 과정은, 루비오가 이후 정치에서 기회와 이동성, 반공 가치에 집착하게 된 배경으로 자주 언급된다.
루비오가 1996년 마이애미 대학교 로스쿨 졸업식에서 어머니, 여동생 베로니카와 찍은 졸업기념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정치 입문은 지역 정치에서 시작됐다. 플로리다주 하원의원을 거쳐 2010년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되며 전국 정치 무대에 진입했다. 당시 만 39세. 공화당 내에서는 ‘차세대 리더’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상원 입성 이후 루비오는 외교·안보 분야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키웠다. 상원 외교위원회와 정보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중국, 북한, 이란, 베네수엘라 등 권위주의 국가에 대한 강경 노선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특히 북한 문제에서 그의 발언은 거칠고 직설적이었다. 2015년 공화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루비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두고 “수십 개의 핵무기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로켓을 가진 미치광이(a lunatic with nuclear weapons)”라고 말했다(CNN 인터뷰, 2015년 11월). 그는 북한을 “범죄 집단(criminal enterprise)”으로 규정하며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주장했고, 2018년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는 “김정은은 협상 상대가 아니라 억제 대상”이라고 비판했다(폭스뉴스, 2018년 2월).
중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중국 공산당을 “21세기 최대의 지정학적 도전”으로 규정하며 기술·안보·인권 전 분야에서의 강경 대응을 촉구했다. 이 시기 루비오는 공화당 내 전통적 매파, 이른바 네오콘 진영의 대표 주자로 분류됐다.
트럼프와의 악연과 변신…‘트럼프 코드 맞춘 유연성’
루비오의 정치 인생에서 가장 큰 굴곡은 2016년 대선이었다. 그는 공화당 경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와 정면으로 맞붙었다. 당시 트럼프는 루비오를 ‘리틀 마코(Little Marco)’라고 부르며 조롱했고, 루비오는 트럼프를 “미국을 위험에 빠뜨릴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플로리다 경선 패배 이후 루비오는 후보직을 내려놓았다. 정치적 미래가 불투명해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루비오는 선택을 바꿨다. 공개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하며 당내 ‘충성파’로 이동했다. 이 변신은 훗날 그의 정치 인생을 바꾼 결정적 전환점이 된다.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루비오는 내각에서 가장 먼저 상원 인준을 받은 장관이 됐다. 초기 평가는 냉소적이었다. 워싱턴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변덕을 견디지 못하고 조기에 낙마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100일이 지나자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폴리티코는 “거의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수준의 부상”이라고 평가했고, 트럼프는 “환상적으로 잘하고 있다”, “그에게 전화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공개적으로 칭찬했다.
루비오의 약진 비결로는 ‘트럼프 코드에 맞춘 유연성’이 꼽힌다. 상원의원 시절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강력한 군사·재정 지원을 주장했지만, 장관 취임 이후에는 조기 종전을 강조하는 트럼프의 입장에 발맞췄다. 국무부 구조조정, USAID 축소, 비자 발급 규제 강화, 쿠바 제재 복원 등 논란이 큰 정책도 앞장서 집행했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순응은 아니었다. 국무부와 미 국제개발처(USAID) 예산을 둘러싸고 일론 머스크 정부효율부 수장과 충돌했고, 결국 구조조정의 주도권은 루비오가 쥐었다. 친(親)트럼프 진영에서 인기가 높던 피트 마로코 USAID 부처장은 넉 달 만에 해임됐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백악관 파워게임에서 루비오가 승리했다”고 해석했다.
베네수에서 쿠바까지…쿠바 이민자 아들 루비오 ‘숙원’
최근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축출과 쿠바 압박 강화는 루비오의 오랜 구상이 정책으로 구현되는 과정으로 평가된다. 그는 상원의원 시절부터 베네수엘라·쿠바·니카라과를 하나의 권위주의 블록으로 묶어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미국은 베네수엘라 정권을 겨냥한 사법·금융·에너지 압박을 강화하는 동시에, 쿠바로 향하는 석유·외화 흐름을 차단하는 조치를 병행하고 있다. 이는 루비오가 수년간 강조해온 ‘연결된 압박 전략’과 궤를 같이한다는 평가다.
이 과정에서 루비오의 역할은 한층 확대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루비오가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 압박 캠페인의 핵심 설계자”라고 보도했다. 강력한 권한을 지닌 국무장관으로 거듭난 루비오의 궁극적 목표가 ‘쿠바 정권 붕괴’라고 짚었다. NYT는 “트럼프 행정부의 즉각적 목표는 마두로를 몰아내는 것이나, 이는 결국 쿠바에 치명타를 가하게 된다. 루비오가 평생 꿈꿔온 일이 이뤄질 수 있다”고 전했다.
행정부 당국자들은 루비오가 마두로 정권 축출 구상의 핵심 설계자였을 뿐 아니라, 향후 베네수엘라 안정화와 석유 자산 관리, 새 정부 출범 준비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스페인어에 능통하고 중남미 지도자 및 베네수엘라 야권과 친숙하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다만 부담도 적지 않다. 이번 작전이 의회 승인 없이 진행됐다는 점을 두고 일부 의원들은 루비오가 의회를 기만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해 루비오는 “이번 조치는 법 집행 작전”이라며 반박했지만, 향후 의회와의 관계 회복은 과제로 남아 있다.
‘만능 장관’에서 차기 대선주자 거론까지
루비오 상원의원이 2015년 미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프리덤타워에서 열린 공화당 대선후보 발표행사에서 가족들과 함께 있는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트럼프 2기에서 루비오의 존재감을 폭발시킨 결정적 계기는 ‘겸직’이었다. 그는 2025년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과 함께 국무장관으로 임명된 데 이어, 외교·안보 정책 혼선을 정리한다는 명분 아래 같은 해 국가안보보좌관 역할까지 맡으며 외교와 안보를 동시에 관할하는 핵심 조율자로 부상했다. 이는 미 외교의 거목(巨木)인 고(故) 헨리 키신저(1923~2023) 이후 52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이후 2025년 말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임시 청장직을 겸직해 기밀 문서 관리와 행정 통제까지 관여했고, 2026년 들어서는 USAID 처장 대행까지 맡으며 대외 원조 정책을 외교·안보 전략과 직접 연동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외교·안보·행정·원조 기능이 한 인물에게 집중되는 이례적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루비오가 밴스 부통령과 함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의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다. 루비오는 지난해 말 대중 문화 잡지 베니티 페어의 수지 와일스 비서실장 인터뷰에서 “밴스가 출마한다면 그를 지지하겠다”고 말하며 선을 긋는 듯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밴스가 분명히 있고, 마코도 훌륭하다”며 “그 둘을 상대로 누가 출마할지 모르겠다. 그들이 팀을 이룬다면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승계 구도를 둘러싼 질문이 커질수록, 루비오는 부인과 존재감 확대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정치적 입지를 넓히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지연 기자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상원의원(공화당·플로리다) 시절인 2016년 공화당 대선 경선후보로 미니애폴리스 선거 유세행사에 참여한 모습. [AP]
골드몽사이트“마코 루비오가 쿠바 대통령이 된다면 어떨까.”
최근 소셜미디어에 떠돈 농담성 게시글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좋은 생각(Sounds good to me)”이라고 반응하자, 워싱턴 정가는 즉각 술렁였다. 웃자고 던진 말처럼 보이지만, 트럼프가 루비오의 이름을 ‘쿠바’라는 상징적 공간과 함께 꺼냈다는 점에서 정치적 함의는 릴게임사이트 가볍지 않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쿠바계 이민자의 아들이자 대(對)쿠바·대(對)베네수엘라 강경 노선을 주도해온 인물을 굳이 그 자리에 올려놓았다는 것 자체가 메시지라는 것이다.
특히 이 발언은 트럼프 행정부 2기 들어 외교·안보 정책의 실질적 무게 중심이 어디로 이동했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무장관에 이어 백악관 국가 바다이야기#릴게임 안보보좌관 역할까지 겸임한 루비오는, 더 이상 단순한 ‘외교 수장’이 아니라 제재·정권 압박·동맹 관리까지 아우르는 전략 설계자로 자리 잡았다. 베네수엘라 정권 축출 작전, 쿠바로 향하는 석유·자금 차단, 중남미 전반을 겨냥한 압박 정책의 상당 부분에 그의 구상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때 ‘트럼프의 경쟁자’였고, 취임 초반에는 ‘ 릴게임한국 최약체 장관’이라는 평가까지 받았던 루비오는 이제 트럼프 2기에서 가장 빠르게 약진한 정치인으로 꼽힌다. 공격적인 발언으로 주목을 끄는 인물이라기보다, 트럼프의 의중을 정책과 제도로 구현하는 실행자로서 존재감을 키워왔다는 점이 특징이다. 트럼프의 한마디 농담이 단순한 말장난을 넘어 정치권의 해석 경쟁을 불러온 배경에는, 이렇게 달라진 루비오의 위상이 깔려 알라딘릴게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흙수저 이민자 출신→엘리트 정치인’ 아메리칸 드림
마코 안토니오 루비오는 1971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 혁명에 성공하기 3년 전인 1956년, 공산화 조짐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쿠바계 이민자였다. 아버지는 호텔 바텐더로, 어머니는 가사 도우미로 생계를 이어갔다. 루비오는 훗날 인터뷰에서 “우리 가족에게 공산주의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삶을 뒤흔든 현실이었다”고 회상했다.
이 반공 정체성은 그의 정치적 세계관의 핵심이 된다. 학창 시절 그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학교 스포츠와 학업을 병행하며 상향 이동의 통로를 스스로 만들어 갔다. 고교 시절 미식축구 선수로 뛰며 장학금을 받아 대학에 진학했고, 1993년 플로리다주립대를 졸업했다. 이후 마이애미대 법학대학원에 진학해 1996년 법학박사(JD) 학위를 받으며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흙수저 이민자 가정 출신→엘리트 정치인’이라는 전형적인 아메리칸 드림 서사는 훗날 공화당 내에서 그를 차별화하는 자산이 됐다. 특히 부모 세대의 이민 경험과 본인의 학업·취업 과정은, 루비오가 이후 정치에서 기회와 이동성, 반공 가치에 집착하게 된 배경으로 자주 언급된다.
루비오가 1996년 마이애미 대학교 로스쿨 졸업식에서 어머니, 여동생 베로니카와 찍은 졸업기념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정치 입문은 지역 정치에서 시작됐다. 플로리다주 하원의원을 거쳐 2010년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되며 전국 정치 무대에 진입했다. 당시 만 39세. 공화당 내에서는 ‘차세대 리더’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상원 입성 이후 루비오는 외교·안보 분야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키웠다. 상원 외교위원회와 정보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중국, 북한, 이란, 베네수엘라 등 권위주의 국가에 대한 강경 노선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특히 북한 문제에서 그의 발언은 거칠고 직설적이었다. 2015년 공화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루비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두고 “수십 개의 핵무기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로켓을 가진 미치광이(a lunatic with nuclear weapons)”라고 말했다(CNN 인터뷰, 2015년 11월). 그는 북한을 “범죄 집단(criminal enterprise)”으로 규정하며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주장했고, 2018년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는 “김정은은 협상 상대가 아니라 억제 대상”이라고 비판했다(폭스뉴스, 2018년 2월).
중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중국 공산당을 “21세기 최대의 지정학적 도전”으로 규정하며 기술·안보·인권 전 분야에서의 강경 대응을 촉구했다. 이 시기 루비오는 공화당 내 전통적 매파, 이른바 네오콘 진영의 대표 주자로 분류됐다.
트럼프와의 악연과 변신…‘트럼프 코드 맞춘 유연성’
루비오의 정치 인생에서 가장 큰 굴곡은 2016년 대선이었다. 그는 공화당 경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와 정면으로 맞붙었다. 당시 트럼프는 루비오를 ‘리틀 마코(Little Marco)’라고 부르며 조롱했고, 루비오는 트럼프를 “미국을 위험에 빠뜨릴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플로리다 경선 패배 이후 루비오는 후보직을 내려놓았다. 정치적 미래가 불투명해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루비오는 선택을 바꿨다. 공개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하며 당내 ‘충성파’로 이동했다. 이 변신은 훗날 그의 정치 인생을 바꾼 결정적 전환점이 된다.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루비오는 내각에서 가장 먼저 상원 인준을 받은 장관이 됐다. 초기 평가는 냉소적이었다. 워싱턴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변덕을 견디지 못하고 조기에 낙마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100일이 지나자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폴리티코는 “거의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수준의 부상”이라고 평가했고, 트럼프는 “환상적으로 잘하고 있다”, “그에게 전화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공개적으로 칭찬했다.
루비오의 약진 비결로는 ‘트럼프 코드에 맞춘 유연성’이 꼽힌다. 상원의원 시절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강력한 군사·재정 지원을 주장했지만, 장관 취임 이후에는 조기 종전을 강조하는 트럼프의 입장에 발맞췄다. 국무부 구조조정, USAID 축소, 비자 발급 규제 강화, 쿠바 제재 복원 등 논란이 큰 정책도 앞장서 집행했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순응은 아니었다. 국무부와 미 국제개발처(USAID) 예산을 둘러싸고 일론 머스크 정부효율부 수장과 충돌했고, 결국 구조조정의 주도권은 루비오가 쥐었다. 친(親)트럼프 진영에서 인기가 높던 피트 마로코 USAID 부처장은 넉 달 만에 해임됐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백악관 파워게임에서 루비오가 승리했다”고 해석했다.
베네수에서 쿠바까지…쿠바 이민자 아들 루비오 ‘숙원’
최근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축출과 쿠바 압박 강화는 루비오의 오랜 구상이 정책으로 구현되는 과정으로 평가된다. 그는 상원의원 시절부터 베네수엘라·쿠바·니카라과를 하나의 권위주의 블록으로 묶어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미국은 베네수엘라 정권을 겨냥한 사법·금융·에너지 압박을 강화하는 동시에, 쿠바로 향하는 석유·외화 흐름을 차단하는 조치를 병행하고 있다. 이는 루비오가 수년간 강조해온 ‘연결된 압박 전략’과 궤를 같이한다는 평가다.
이 과정에서 루비오의 역할은 한층 확대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루비오가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 압박 캠페인의 핵심 설계자”라고 보도했다. 강력한 권한을 지닌 국무장관으로 거듭난 루비오의 궁극적 목표가 ‘쿠바 정권 붕괴’라고 짚었다. NYT는 “트럼프 행정부의 즉각적 목표는 마두로를 몰아내는 것이나, 이는 결국 쿠바에 치명타를 가하게 된다. 루비오가 평생 꿈꿔온 일이 이뤄질 수 있다”고 전했다.
행정부 당국자들은 루비오가 마두로 정권 축출 구상의 핵심 설계자였을 뿐 아니라, 향후 베네수엘라 안정화와 석유 자산 관리, 새 정부 출범 준비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스페인어에 능통하고 중남미 지도자 및 베네수엘라 야권과 친숙하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다만 부담도 적지 않다. 이번 작전이 의회 승인 없이 진행됐다는 점을 두고 일부 의원들은 루비오가 의회를 기만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해 루비오는 “이번 조치는 법 집행 작전”이라며 반박했지만, 향후 의회와의 관계 회복은 과제로 남아 있다.
‘만능 장관’에서 차기 대선주자 거론까지
루비오 상원의원이 2015년 미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프리덤타워에서 열린 공화당 대선후보 발표행사에서 가족들과 함께 있는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트럼프 2기에서 루비오의 존재감을 폭발시킨 결정적 계기는 ‘겸직’이었다. 그는 2025년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과 함께 국무장관으로 임명된 데 이어, 외교·안보 정책 혼선을 정리한다는 명분 아래 같은 해 국가안보보좌관 역할까지 맡으며 외교와 안보를 동시에 관할하는 핵심 조율자로 부상했다. 이는 미 외교의 거목(巨木)인 고(故) 헨리 키신저(1923~2023) 이후 52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이후 2025년 말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임시 청장직을 겸직해 기밀 문서 관리와 행정 통제까지 관여했고, 2026년 들어서는 USAID 처장 대행까지 맡으며 대외 원조 정책을 외교·안보 전략과 직접 연동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외교·안보·행정·원조 기능이 한 인물에게 집중되는 이례적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루비오가 밴스 부통령과 함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의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다. 루비오는 지난해 말 대중 문화 잡지 베니티 페어의 수지 와일스 비서실장 인터뷰에서 “밴스가 출마한다면 그를 지지하겠다”고 말하며 선을 긋는 듯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밴스가 분명히 있고, 마코도 훌륭하다”며 “그 둘을 상대로 누가 출마할지 모르겠다. 그들이 팀을 이룬다면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승계 구도를 둘러싼 질문이 커질수록, 루비오는 부인과 존재감 확대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정치적 입지를 넓히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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