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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철 한국기독교100년교회연구소 소장이 지난 22일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교회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노인은 100년 넘은 교회 스테인드글라스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오후 햇살이 창을 통과해 바닥 위로 번졌다. 붉은색과 푸른색이 섞인 빛이 예배당 안쪽을 천천히 적셨다. 그는 스마트폰 메모장을 열고 몇 줄을 적더니 기자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런 데서 이야기가 시작돼요.”
지난 22일 서울 청량리역 개찰구. 영하 20도의 칼바람이 몰아치던 날, 강릉발 KTX에서 두툼한 패딩에 헌팅캡을 눌러쓴 노신사가 내렸다. 전영철(73) 바다이야기게임기 한국기독교100년교회연구소 소장이다. 여행용 대형 가방과 DSLR 카메라, 영상 촬영용 짐벌이 든 별도의 장비 가방이 양손에 들려 있었다. 대구 MBC에서 15년간 방송 업무를 맡았고 이후 전문대학에서 영상 제작(VJ)을 가르쳤던 교수 출신답게 그는 묵직한 장비 가방을 능숙하게 다루며 역 광장으로 나섰다.
전 소장의 휴대전화 지도에는 지 릴짱릴게임 난 16년간 두 발로 답사한 전국 1300여곳 교회가 붉은 점으로 빼곡했다. 그가 유튜브 채널 ‘100년교회순례’에 직접 촬영 편집해 올린 영상만 286개다. 그는 자신을 ‘순례자이자 기록자’라고 부른다. “사라지기 전에 남겨야 하니까요. 끊어지기 전에 이어 놓으려고요.”
첫 목적지는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교회(박상원 목사)였다. 1907년 바다이야기비밀코드 동대문 부인병원에서 치료받던 여덟 살 소녀 조영례가 복음을 영접한 뒤 집으로 돌아와 부모에게 복음을 전하고 기도 모임을 시작하며 세워진 교회다. 전 소장은 ‘100년 교회 순례자’라고 적힌 명함을 내밀었다. 박상원 목사가 그를 맞이했다. 박 목사는 리모델링 중인 예배당과 지하 역사 전시관으로 일행을 이끌었다. 먼지 쌓인 전시물 앞에서 전 소장의 눈이 반짝 릴짱 였다. “목사님, 이런 자료는 진짜 노다지입니다.”
그가 가리킨 건 화려한 기물이 아니었다. 빛바랜 당회록과 주보, 벽면의 흑백 사진들이었다. 마침 이날은 70년 전 스테인드글라스를 설치했던 장로의 아들이 다시 장로가 돼 예배당 리모델링 현장에서 일손을 보태고 있던 날이었다. 전 소장은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 말했다. “100년 교회에는 모바일바다이야기하는법 이런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대를 이어 교회를 지키는 사람들, 이름 없이 이어진 섬김들. 저는 그런 흔적을 기록하러 다니는 겁니다.”
전 소장이 스마트폰으로 예배당 안과 밖을 영상에 담는 모습.
전 소장은 100년 교회들의 여러 변화를 목격한 증인이다. 한 세기를 버텼지만 교인 한 명만 남은 교회, 사모와 목사가 농사일로 겨우 생계를 잇는 시골 교회, 주민 전체가 열 명도 안 되는 마을도 있었다. “지역이 먼저 사라지고 있어요. 교회가 사라지면 역사도 같이 증발합니다. 그래서 제가 좀 조급합니다.”
그는 경북 안동교회(김승학 목사)를 모범 사례로 언급했다. 1909년 설립돼 지금도 1937년 지은 석조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교회다. 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이중회 장로와 그의 손자 이인홍 장로를 배출했다. 하지만 전 소장이 주목한 건 족보가 아니었다.
그가 기억하는 건 밥상 풍경이다. 손주들이 돌아가며 식사 기도를 하고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말과 행동을 조심한다. 명절이면 가족 20여명이 모여 증조부 묘소를 돌며 신앙 이야기를 나눈다. “그 단순한 반복이 4대째 시무장로를 만든 겁니다.”
전 소장의 100년 교회 순례는 손녀 덕분에 시작됐다. 딸이 출산 후유증으로 치료에 들어가며 그는 갓 태어난 손녀를 직접 돌보게 됐다. 강릉 집에서 딸이 살던 대전과 전남 나주를 10년 넘게 홀로 오갔다. 2010년부터 이동 경로 위 교회들이 하나둘 그의 지도에 찍히기 시작했다. 그 기록은 ‘믿음, 그 위대한 유산을 찾아서’(선교횃불) 1·2권으로 묶였다. 밤마다 손녀에게 성경을 읽어주고 아침이면 어린이 성경책을 들고 오는 아이를 품에 안았다. 그는 이 과정을 격대교육(隔代敎育)이라 불렀다. 조부모가 손주와 함께 대를 뛰어넘어 지내며 신앙과 삶을 전하는 방식이다.
전 소장의 하루는 새벽 4시30분에 시작된다. 기도와 산책 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영상편집 시간이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손녀에게 신앙인의 모범을 보이기 위해 긴장을 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가 바르게 살지 않으면서 애들한테 믿으라 하면 말이 안 되잖아요.”
글·사진=손동준 기자 sd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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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100년 넘은 교회 스테인드글라스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오후 햇살이 창을 통과해 바닥 위로 번졌다. 붉은색과 푸른색이 섞인 빛이 예배당 안쪽을 천천히 적셨다. 그는 스마트폰 메모장을 열고 몇 줄을 적더니 기자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런 데서 이야기가 시작돼요.”
지난 22일 서울 청량리역 개찰구. 영하 20도의 칼바람이 몰아치던 날, 강릉발 KTX에서 두툼한 패딩에 헌팅캡을 눌러쓴 노신사가 내렸다. 전영철(73) 바다이야기게임기 한국기독교100년교회연구소 소장이다. 여행용 대형 가방과 DSLR 카메라, 영상 촬영용 짐벌이 든 별도의 장비 가방이 양손에 들려 있었다. 대구 MBC에서 15년간 방송 업무를 맡았고 이후 전문대학에서 영상 제작(VJ)을 가르쳤던 교수 출신답게 그는 묵직한 장비 가방을 능숙하게 다루며 역 광장으로 나섰다.
전 소장의 휴대전화 지도에는 지 릴짱릴게임 난 16년간 두 발로 답사한 전국 1300여곳 교회가 붉은 점으로 빼곡했다. 그가 유튜브 채널 ‘100년교회순례’에 직접 촬영 편집해 올린 영상만 286개다. 그는 자신을 ‘순례자이자 기록자’라고 부른다. “사라지기 전에 남겨야 하니까요. 끊어지기 전에 이어 놓으려고요.”
첫 목적지는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교회(박상원 목사)였다. 1907년 바다이야기비밀코드 동대문 부인병원에서 치료받던 여덟 살 소녀 조영례가 복음을 영접한 뒤 집으로 돌아와 부모에게 복음을 전하고 기도 모임을 시작하며 세워진 교회다. 전 소장은 ‘100년 교회 순례자’라고 적힌 명함을 내밀었다. 박상원 목사가 그를 맞이했다. 박 목사는 리모델링 중인 예배당과 지하 역사 전시관으로 일행을 이끌었다. 먼지 쌓인 전시물 앞에서 전 소장의 눈이 반짝 릴짱 였다. “목사님, 이런 자료는 진짜 노다지입니다.”
그가 가리킨 건 화려한 기물이 아니었다. 빛바랜 당회록과 주보, 벽면의 흑백 사진들이었다. 마침 이날은 70년 전 스테인드글라스를 설치했던 장로의 아들이 다시 장로가 돼 예배당 리모델링 현장에서 일손을 보태고 있던 날이었다. 전 소장은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 말했다. “100년 교회에는 모바일바다이야기하는법 이런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대를 이어 교회를 지키는 사람들, 이름 없이 이어진 섬김들. 저는 그런 흔적을 기록하러 다니는 겁니다.”
전 소장이 스마트폰으로 예배당 안과 밖을 영상에 담는 모습.
전 소장은 100년 교회들의 여러 변화를 목격한 증인이다. 한 세기를 버텼지만 교인 한 명만 남은 교회, 사모와 목사가 농사일로 겨우 생계를 잇는 시골 교회, 주민 전체가 열 명도 안 되는 마을도 있었다. “지역이 먼저 사라지고 있어요. 교회가 사라지면 역사도 같이 증발합니다. 그래서 제가 좀 조급합니다.”
그는 경북 안동교회(김승학 목사)를 모범 사례로 언급했다. 1909년 설립돼 지금도 1937년 지은 석조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교회다. 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이중회 장로와 그의 손자 이인홍 장로를 배출했다. 하지만 전 소장이 주목한 건 족보가 아니었다.
그가 기억하는 건 밥상 풍경이다. 손주들이 돌아가며 식사 기도를 하고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말과 행동을 조심한다. 명절이면 가족 20여명이 모여 증조부 묘소를 돌며 신앙 이야기를 나눈다. “그 단순한 반복이 4대째 시무장로를 만든 겁니다.”
전 소장의 100년 교회 순례는 손녀 덕분에 시작됐다. 딸이 출산 후유증으로 치료에 들어가며 그는 갓 태어난 손녀를 직접 돌보게 됐다. 강릉 집에서 딸이 살던 대전과 전남 나주를 10년 넘게 홀로 오갔다. 2010년부터 이동 경로 위 교회들이 하나둘 그의 지도에 찍히기 시작했다. 그 기록은 ‘믿음, 그 위대한 유산을 찾아서’(선교횃불) 1·2권으로 묶였다. 밤마다 손녀에게 성경을 읽어주고 아침이면 어린이 성경책을 들고 오는 아이를 품에 안았다. 그는 이 과정을 격대교육(隔代敎育)이라 불렀다. 조부모가 손주와 함께 대를 뛰어넘어 지내며 신앙과 삶을 전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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