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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남(첫째 줄 왼쪽) 목사가 1991년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교회에서 당회원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처음으로 정식 사역지를 정해 나갔다.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교회 중고등부 교육전도사였다. 내가 부임했을 당시에는 교역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 첫 사역지였지만 배울 선배 교역자도 없는 상태에서 3개월가량을 보낸 뒤 담임목사님이 새로 부임하셨다.
나보다 여섯 살 어린 목사님이었지만 체격도 크고 목소리도 굵어 오히려 형님처럼 보이는 분이었다. 30대 초반의 젊은 목사로 새로운 사고방식을 지녔고 사모님과 함께 금세 교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간결하고 명료한 설교는 교인들이 성경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눈을 열어주었다.
주위에서는 담임목사와 교육전도사의 나이가 거꾸로라 내가 불편하지 않겠느냐며 걱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공적인 자리에서는 담임목사와 교육전도사의 관계였지만 둘만 있을 때는 나를 사회생활의 선배로 존중하며 겸손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그를 어려워했다기보다 교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나를 부하 교역자로 두고 지도해야 했던 그가 얼마나 애를 먹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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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교회를 섬긴 시간을 떠올리면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마음이 든다.
모래내시장 근처의 서민 중심 교회였던 남가좌교회는 내가 목회자로 거듭나기 위한 초석을 놓아준 교회였다. 이곳에서 교육전도사와 전임전도사를 거쳤고 아내를 만나 재혼도 했다.
무엇보다 감사했던 것은 이혼 경력이 있던 나를 교회가 흔쾌히 받아주었다는 .이다. 당시 나로서는 목회자로 사역하는 데 적지 않은 약.이라고 여겼지만 남가좌교회는 나를 받아줬다. 교회가 부목사를 둘 형편도 아니었는데 나를 위해 자리를 마련해줬고 교회 옆의 집을 매입해 사택까지 제공했다. 그 배려로 경기도 고양 원당에서의 생활도 끝을 맺게 됐다.
남가좌교회에서 정식 사역자로 대우받고 집까지 마련되자 신기한 일이 생겼다. 그동안 광야 생활 속에서 나를 도와주던 까마귀들의 손길이 일제히 끊긴 것이다. 대부분 내가 알지도 못했던 손길들이었다. 그런데 생활이 안정되자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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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를 돌볼 책임을 남가좌교회에 맡긴 것처럼 훌쩍 떠나버린 셈이었다. 나는 이 또한 지금까지 내 삶을 보살펴주신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간접적인 증거로 받아들였다.
부목사가 된 뒤에는 청년부를 맡았다. 돌이켜보면 이때가 내 목회의 전성기가 아니었나 싶을 만큼 청년들과 함께하는 목회는 즐거웠다. 청년부는 빠르게 성장해 교회의 큰 원동력이 됐다.
이후로도 나의 목회는 주로 청년 중심으로 이어졌다. 찬양을 비롯한 문화적인 면에서 전통적인 교회의 틀을 벗어나 청년 세대에 맞는 기독교 문화를 만들어가는 일은 이후 한국교회 안에서 내가 풀어가야 할 또 하나의 숙제가 됐다.
남가좌교회에서 사역하던 1990년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평양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당시 여러 목사 후보생 가운데 특별히 내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해준 목사안수위원이 남가좌교회 담임이었던 김성준 목사였다.
남가좌교회에서 보낸 4년은 교인들에게 분에 넘치는 사랑과 위로를 받은 시간이었다. 지금까지도 교류를 이어가며 늘 감사한 마음을 품고 있다. 돌이켜보면 남가좌교회는 새롭게 시작한 내 인생 여정에서 나를 목회자로 받아주고 다시 일어설 용기와 힘을 준 고마운 교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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