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만주에서 몇 년째 일본 놈들과 전투를 치르고 있다. 동지들은 숲속의 짐승처럼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평소처럼 우리는 숲속에 숨어서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작은 움직임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했다.
그때 낯선 소리가 아주 작게 들리는 듯했다.
나는 대장에게 눈빛으로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것을 표현했다.
“슥스르르… 슥…”
총을 집어 들었다. 이미 장전해둔 총을 들고, 전방의 어딘지 모를 어 사이다쿨접속방법 둠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아…바…이… 아…바…이…”
어린아이의 목소리였다. 대장은 내게 잠시 멈추라고 지시했다.
귀신일까? 이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아이가 올 리가 없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아이의 목소리가 밤의 습한 공기 중에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아… 바 릴게임골드몽 … 이… 저 왔어요…”
대장은 아이를 알아봤다.
“아가, 너 여그 와 있었구나? 아바이당게, 얼릉 이리 오너라.”
내가 알기로는 대장은 혼례를 치른 적이 없다. 그런데 아버지라니, 이해할 수 없었다. 잠시 후, 달빛에 물 줄 자국이 가득한 아이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리고 피투성이의 맨발이었다.
야마토게임무료다운받기 대장은 뛰어가서 아이를 번쩍 들어 안아주었다.
“아가, 너 여그 어쩌다 온 거냐? 딴 아그들은 우짠 거고?”
아이는 대장을 만나고 나서 긴장이 풀렸는지 그의 품에서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대장에게 물었다.
“이 아이는 누구요?”
“이 아, 진구 아그 아니여…” 황금성게임다운로드
“진구라면… 작년에 죽은 우리 동지 말이오?”
“우리 동지들 여기에 가족이 있는 자들이 있네. 그런데 그들이 죽게 되면 자식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대장은 오래도록 죽은 동지들의 자녀들을 키우고 있었다. 가끔 새벽에 없어졌다가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나타났던 그는 마을에 내려가 아이들을 만나고 오는 바다이야기2 것이었다.
아이들은 여덟 명이었다. 먹을 것은 마을에 사는 다른 동지들이 챙겨줬지만, 대장은 아이들을 보러 내려갔던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가 대장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장, 근데 아이들이 왜 대장을 아바이로 부르는 것이오?”
“아그란 건, 맨 먹는 거로만 크는 게 아녀. 어버이 눈빛을 먹고 자라는 거지. 그게 죽은 동지들이 바라던 거여… 어버이 사랑을 먹어야 아그들이 클 수 있는 거라. 그리고 내가 마을에 함 다녀와야 쓰것다. 뭔 일이 난 거 같으니께…”
“안 되오! 대장! 마을에 무슨 일이 생긴 거라면, 위험하오.
“아그 피투성이 된 발을 보고도 그러냐? 시간 없으니께 얼릉 내려가야 혀. 너는 아를 잘 챙기고 있으라.”
그렇게 그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아침이 되도록 대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동지들에게 아이를 맡기고 나 홀로 마을로 향했다.
오후가 되기 전에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어귀에 심어진 나무가 보였다. 작은 느티나무와 제법 크게 자란 버드나무.
저 나무를 심을 때, 대장과 다투던 기억이 순간 떠올랐다.
“마을 어귀에 나무를 심으려고 하는데, 버드나무를 심으려고 합니다.”
“아녀, 느티나무를 심으라구 하게.”
“번거롭게 왜 느티나무를 심소? 버드나무가 빨리 자라니 금방 그늘을 만들어줄 거요.”
“허지만 버드나무는 뿌리가 얕게 퍼지고, 한 백 년 살다가는 죽는 겨. 허니 천년을 버티는 뿌리 깊은 느티나무를 심는 게 좋을 것이여.”
“우리는 광복해서 조선으로 돌아갈 테니 버드나무로 충분할 거요.”
“채찬(蔡燦·백광운)아! 우리 싸움은 천년을 간다 해도 꼭 이루고 말아야 할 사명인 거여. 어쩌면 우리 아그들이 이어서 싸움을 계속할지 모를 일이여.”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시오. 이 짓을 자식들이 이어가면 안 될 일이오.”
결국 버드나무와 느티나무 두 그루를 함께 심었다.
그리고 벌써, 나무를 심은 지 15년이 지났다. 부쩍 큰 버드나무 그리고 작지만 단단한 느티나무.
추억 회상을 멈추고 대장을 찾기 위해 마을 어귀 근처 풀숲에 숨어서 마을의 동태를 살폈다. 너무도 고요했다. 그리고 몇몇 집들이 불탄 흔적이 육안으로 확인된다.
잠시 후, 한 곳간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가까이 가서 확인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려고 하는 순간 곳간에서 사람의 고함이 들려왔다.
“아아악!”
단 한 번의 소리였지만, 분명 고통에 몸부림치는 소리였다.
잠시 후, 아이들이 우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곳간의 문이 열렸고, 일본군 열 명 정도가 나오면서 누군가를 밧줄에 묶어 끌고 나와 마당에 무릎 꿇렸다.
일본군에 잡힌 대장이었다. 모진 고문을 당한 것 같다. 그리고 곳간 문 사이로 아이들의 소리가 새어 나왔다.
혼자서는 대장도, 아이들도 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군이 그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었다. 당장이라도 그를 죽일 것 같았다. 내가 있다는 신호를 주기 위해 두견새 소리를 크지 않게 내뱉었다. 대장이라면 내가 온 것을 알아챌 것이다.
대장은 고개를 들어 허공에 대고 큰 소리로 외쳤다.
“잘 들어라! 큰 나무가 작은 나무를 지킨다. 꼭 지켜야…”
“탕!”
그가 총부리에 맥없이 쓰러졌다. 나는 손으로 입을 꽉 틀어막았다. 그리고 소리 없이 눈물이 흘렀다.
큰 나무는 우리 동지들을 말한다. 작은 나무는 동지들의 자식들이다. 아이들을 지키라는 말을 끝으로 그는 차가운 흙바닥에 누워 있다…
며칠이 지난 후, 가까스로 아이들을 모두 구해냈다. 그리고 마을은 전소되었다.
아이들은 이제 스물여덟 명으로 늘어났다.
이제 아이들이 나를 ‘아바이’라고 부른다. 아이들과 남은 몇몇 동지들을 이끌고, 북간도로 향했다. 살기 힘들 정도로 척박하지만, 그래서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곳. 안전하게 아이들이 커갈 곳이 필요했다.
죽은 동지들의 눈빛은, 대장의 눈빛으로 이어지고, 그 눈빛은 이제 내게로 이어졌다. 나는 그 눈빛으로 아이들을 키워가야 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이 투쟁은 35년이 더 이어지고 광복을 맞이했다. 허리가 굽은 노인이 된 나는 다시 만주로 향했다.
전소되었던 마을은 이제 아이들이 뛰노는 생기가 넘치는 풍경이 되었다.
마을 어귀에 있던 느티나무는 이제 제법 큰 나무가 되었다. 그러나 어디에도 버드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마침 지나가는 노인을 붙잡고 물었다.
“여기 있던 버드나무는 어떻게 된 거요?”
“아! 그 버드나무? 벼락 맞고 죽었지. 그리고 그 나무로 거기 앉아 계시는 여기 마룻바닥을 만들었소.”
문득 대장의 말이 떠올랐다.
“이 버드나무란 게 뿌리는 얕게 내리지만 금방 퍼지고 넓게 자라는 거여. 꼭 우리 독립군 같지 않냐? 발 디딜 땅 한 뼘 없어도 사방으로 퍼져서 싸우는 거 말이여. 그리고 이 느티나무는 말이다, 우리 후손인 거여! 광복된 조선에서 천년 뿌리 내려 살 우리 아그들이여.”
하늘을 올려다보며 대장에게 마음속으로 말했다.
“대장, 이 버드나무는 우리 같구려. 느티나무 같은 아이들이 이제 뿌리를 내릴 거요. 그런데 좀 섭섭하오. 버드나무가 마루가 되었지만, 모두에게 잊혀지고 있소. 우리의 투쟁도 모두가 잊어가고 있소. 대장도 잊혀졌소.
하지만 버드나무가 마루가 된 것처럼, 우리의 여정은 천년의 후손들에게 거름이 되었을 거요…
잊혀지지만, 잊혀질 수 없는 우리요…”
공동 기획: 조선일보·국가보훈부



/국가보훈부채찬


채찬(미상~1924)
충북 충주 출신으로 1905년 문경에서 의병에 참여했다. 일제 강점 이후 남만주로 가 신흥무관학교에서 군사학을 전공했다. 백광운이라는 이름으로 서로군정서, 통의부에서 무장 투쟁을 했다. 1923년 부대를 규합하고 임시정부에 대표를 파견해, 임시정부 직할의 참의부를 결성했다. 참의부는 1924년 국경 시찰에 나선 사이토 마코토 조선총독 저격에 나섰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채찬은 참의부 참의장, 중대장을 겸임했고 같은 해 무장 투쟁 단체 간 갈등으로 피살됐다.



/ KEAB 건축백희성


백희성
작가이자 건축디자이너. 장 누벨 건축사무소의 핵심 건축가로 활동했으며, 현재 KEAB건축사무소 대표. 프랑스에서 동양인 최초로 ‘폴 메이몽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했다. 건축소설 <빛이 이끄는 곳으로>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