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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엄마는 계모가 되었다
우리가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 속에는 이상할 만큼 계모가 많다. 백설 공주를 죽이려 한 왕비도, 헨젤과 그레텔을 숲에 버린 여자도 계모다. 어린 마음에 그저 동화 속 계모는 원래 무서운 사람이라는 법칙처럼 받아들였지만, 알고 보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동화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작가, 그림(Grimm) 형제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그림 형제의 신데렐라, 백설 공주, 라푼젤, 헨젤과 그레텔은 읽어보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디즈니사의 애니메이션 주제로도 세대를 가리지 않게 사랑받고 있다.
그림 형제는 독일이 연방국으로 발돋움하기 전, 작은 독립 왕국으로 나누어져 있던 시기에 지금의 프랑크푸르트 인근인 하나우 지방에서 태어났다. 법학을 공부하고 있던 형제는 민속 설화와 풍습들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되며 자신들만의 낭만주의 민족주의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다. 그 당시는 나폴레옹의 확장주의 정책으로 정복당한 독립 왕국의 낭만주의자들이 국가의 언어와 전통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운동을 펼치기 시작할 때였다.
그림 형제의 초상화. (왼쪽부터) 빌헬름 그림과 야코프 그림 / 출처.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그림 형제는 민담, 노래, 해학, 우화, 마법이나 동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여러 경로를 통해 수집했다. 마을에서 교육을 받은 젊은 여성이나 화가, 전직 군인, 옷을 만드는 재단사 등 서민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1812년에 첫 번째 책인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Kinder und Haus)』가 출판되었는데 그 이야기의 잔혹함이 이루어 말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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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상에 남편의 아이를 넣고 끓인 요리를 내어놓는 계모,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숲에 아이들을 갖다 버리는 친부모, 자신이 낳은 딸의 미모를 질투하여 숲으로 내쫓는 어머니 등 어린이를 위한 책이라기보단 성인을 위한 책에 가까웠다. 물론 그 책은 그 잔혹함에, 그리고 현실을 적나라하게 반영한 탓에 사람들에게 읽히지 않았다.
여러 독립 왕국으로 나누어져 있던 독일은 지속되는 전쟁과 기근, 질병과 혹독한 자연환경을 견디며 살아야 했다. 하루의 끼니조차 장담할 수 없는 삶 속에서 가장 나약한 존재였던 아이들과 여성들이 어떤 위험에 노출되었을지는 쉽게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그림 형제의 초판 이야기가 기괴한 상상이 아닌, 당시 사람들이 실제 삶에서 목격하고 들었던 현실이었을 것이라는 사실에 그 이야기는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1825년, 그림 형제는 이전의 이야기를 각색하여 여러 삽화들과 함께 새로운 개정판을 출간했다. 그림 형제의 주 독자층이었던 보수적인 중산층과 상류층 기독교인의 감성을 담아 편집한 이야기들이었다. 딸의 아름다움을 질투했던 ‘백설 공주’의 친모는 계모로 바뀌었다. 양육을 소홀히 했던 생물학적 어머니는 덕을 갖추고 사랑으로 자식을 기르는 존재로 바뀌었다.
그림 형제의 동화집 『The Fairy Tales of the Brothers Grimm』 (1909, 아서 랙컴 삽화본) 표지 및 속표지, 삽화 / 출처. Biblio.co.nz
가장 흥미로운 변화는 ‘라푼젤’에서 발견된다. 1812년 초판본에서 라푼젤은 자신을 찾아오는 왕자와 사랑에 빠진 뒤, 어느 날 마녀 고델에게 옷이 자꾸 꽉 끼는 이유를 묻는다. 라푼젤 자신도 알지 못했던 임신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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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개정판에서 이 대목은 사라진다. 대신 라푼젤은 고델에게 ‘왜 왕자보다 당신이 끌어올리기 더 무거운지’ 물어 비밀을 들키게 된다. 지워진 성적인 암시의 문장 하나는 그 시대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지를 말해주는 셈이다.
여성의 정숙함을 강조하되 악한 자들은 크게 벌하는 권선징악적인 내용이 추가되었다. 예를 들어, 초판본에서는 신데렐라가 왕자와 결혼하여 떠나는 장면으로 끝났다면, 개정판에서는 남은 의붓자매들이 비둘기에 눈이 쪼여 죽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거나, 백설 공주의 계모가 뜨거운 모닥불에 달궈진 쇠로 만든 구두를 신고 평생 춤을 추는 벌을 받는 장면으로 끝난다.
'라푼젤' 삽화 (삽화가 파울 하이의 그림) / 출처.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죽음과 이별
그림 형제가 한 일은 이야기를 단순히 덜 잔인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살던 시대가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들려주어야만 하는 이야기’로 다시 쓰는 일이었다. 성과 임신은 감춰야 했지만 악한 행동에 대한 엄한 처벌은 도덕적인 교훈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그리고 친어머니가 딸을 죽이려 한다는 설정보다는 사악한 계모가 등장하는 편이 당시의 가정관에는 더 부합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 일은 200년 전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오늘날 그림책을 만드는 어른들도 끊임없이 같은 질문 앞에 선다. 죽음과 이별을 어디까지 보여줄 것인지, 무서움과 폭력을 얼마나 직접적으로 표현할 것인지, 오래된 이야기 속 성 역할이나 가족의 모습을 그대로 남겨둘 것인지 고민한다. 우리는 아이를 보호한다는 이름으로 어떤 것은 감추고, 또 어떤 것은 꼭 보여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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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서 그림책을 출간할 때 번역가와 편집자가 한 문장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다른 나라의 다양한 가족 형태와 죽음과 이별, 다양한 갈등 상황을 우리나라의 정서에 맞게 편집하는 과정에서 가감 없이 드러낼 것인지, 은유적으로 변형할 것인지 아니면 아예 문장을 지울 것인지 고민한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들려주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 탓에 어른들의 논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림 형제의 동화뿐만 아니라 우리의 전래 동화도 다르지 않다. ‘콩쥐팥쥐’의 일부 옛 전승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결말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콩쥐를 죽이고 콩쥐 행세를 하던 팥쥐를 남편이 젓갈로 만들어 계모에게 먹인다는 극악한 결말까지 이어진다. 우리나라 전래 동화의 특징인 구전의 형태가 이어져 내려오며 ‘전체관람가’의 형태로 순화했다.
동화를 순화한다는 것은 단순히 잔혹함을 덜어내는 일이 아니라 한 시대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를 선택하는 일이다. 어쩌면 동화 속에서 가장 흥미로운 존재는 마녀도, 왕자도, 계모도 아닐지 모른다. 이야기 뒤에서 문장을 지우고 더하며 ‘아이에게 무엇을 들려줄 것인가’를 고민했던 어른들인지도 모른다.
그림 형제 지음, 펠릭스 호프만 그림, 한미희 옮김. 『그림 형제 동화집 2』, 비룡소 펴냄 / 출처. 비룡소 홈페이지
박효진 길리북스 대표
Hunt, Peter. An Introduction to Children's Literatur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4.
자자와. 「<콩쥐팥쥐> 설화 연구: 세계 <신데렐라> 유형 설화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박사학위논문, 서울대학교 대학원, 2016.
『그림 형제의 동화집(The Fairy Tales of the Brothers Grimm)』 (1909, 아서 랙컴 삽화본) (BIBLIO Books Nz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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