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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계엄 뒤인 2024년 12월 23일 동대구역 광장에서 박정희 동상이 제막됐다. 이 동상의 철거 여부를 다루는 1심 판결이 다가오고 있다. 대구시가 '박정희광장'으로 선언한 이 광장에서 동상을 철거해달라며 국가철도공단이 제기한 구조물 인도 청구소송 판결이 오는 10월 1일 대구지방법원 제11민사부에서 선고된다.
ⓒ 조정훈
이 선고를 앞둔 상태에서, 동상의 존치를 요구하는 시민단체들이 15일 동대구역 광장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현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박정희대통령동상건립추진위원회·박정희대통령생가보존회·박정희와대한민국·박정희정신계승사업회 등은 국가를 대표해 소송에 나선 국가철도공단을 향해 소송 취하를 요구했다. 그러면서 "대구시의 행정적 절차에 미비함이 있었다 하더라도 동상 철거라는 조치를 정당화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관련기사]: 박정희 동상 철거 판결 앞두고 보수단체 "소송 취하하라" https://omn.kr/2jshq
행정절차의 미비라는 것은 광장 소유권 및 。유권을 주장하는 국가철도공단의 동의나 승인 없이 대구시가 동상을 건립한 일을 지칭한다. 대구시 당국은 2017년부터 자신들이 광장을 실질적으로 관리했으며 광장 정비사업이 준공승인을 받으면 광장 소유권이 자신들에게 귀속될 것이므로 동상 건립에 하자가 없다고 주장한다.
위 시민단체들은 "박 전 대통령은 경북 구미 태생으로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했고, 지역에서 키운 인물이라는 。에서 상징성이 크다"고 말한다. 홍준표 시장이 이끌 당시의 대구시가 행정절차를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해 절차상의 미비가 생겼더라도, 박정희라는 인물의 상징성이 크므로 그를 배출한 대구에 그의 동상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구시가 일으킨 것은 단순한 절차상의 미비뿐만이 아니다. 폭군 박정희에 대한 시대적 정서를 거스르는 데 그친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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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는 동상 건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구라는 도시의 정체성과 관련된 두 개의 결정적인 역사를 훼손했다.
▲ 대구시가 동대구역 광장에 세운 박정희 동상.
ⓒ 조정훈
국채보상운동과 박정희
대구시가 '박정희 대통령 동상 제작 및 설치를 위한 작가 공모'를 시작한 것은 2024년 현충일 전날이다. 대구시가 동대구역 광장에서 박정희광장 표지판 제막식을 연 것은 그해 광복절 전날이다. 대구시는 이 시기에 자신들이 박정희를 기념하는 이유를 공식적으로 설명했다. 2024년 8월 14일자 대구광역시 뉴스룸 시정소식에 그 이유가 담겨 있다.
"대구시는 구한말 국채보상운동의 구국정신과 1960년 2·28 민주운동의 자유정신, 196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산업화 정신을 '대구 근대 3대 정신'으로 꼽고 있다. (중략) 이에 대구시는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정신을 기념하기 위해 올해 5월 '대구광역시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대구광역시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기념사업 추진을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
국채보상운동 및 2·28운동과 더불어 박정희가 '근대 대구'의 3대 정신을 이룬다는 것이 대구시의 설명이다. 대구시는 그런 명분을 내세워 동대구역 광장을 박정희광장으로 개칭하고 그곳에 동상을 세웠다.
그런데 대구시의 논리는 중대 결함을 담고 있다. 그 결함은 '박정희의 산업화정책이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 그의 경제개발이 '전 국민을 위한 것이었나 소수 특권층을 위한 것이었나'와 관련된 것도 아니다. '경제개발과 독재정치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와 관련된 것도 아니다. 그것은 대구의 정체성과 관련된 결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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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2월 대구에서 시작됐다. 대구 사람들이 어떤 생각으로 이 운동을 벌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출판사인 대구 광문사가 작성한 '국채보상취지서'다. 그해 2월 21일 자 <대한매일신보>와 4월 7일자 <대한유학생회회보>에 실린 이 취지서에 이런 대목이 있다.
"지금 국채 1300만 원은 우리 한(韓)의 존망과 관계된다. 갚으면 나라가 사는 것이고, 갚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는 것이다."
1906년 11월 16일 자 <대한매일신보>에 따르면, 1907년도 대한제국 세출 총액은 1396만 3035원이다. 대일 채무 1300만 원은 대한제국 정부의 1907년도 예산과 맞먹었다. 일본이 그런 거액을 억지로 빌려준 것은 그 채권을 매개로 한국을 빼앗기 위해서였다.
대구 사람들은 그 1300만 원을 갚는 것이 한국의 존속을 위한 길이라고 밝혔다. 자주적 민족경제 수호를 통해 나라의 주권을 지키는 것이 대구 사람들이 이 운동을 벌인 이유이고 대구 밖의 사람들이 이 운동에 호응한 이유다.
박정희가 체결한 1965년 한일협정은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배상도 없이 유무상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일본과의 국교를 정상화하고 일본 대기업들의 경제적 지배를 수용하는 것이었다. 한국 경제가 1945년 이전뿐 아니라 1965년 이후에도 일본 경제의 하부 구조에 놓였다는 .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국채보상운동은 자주적 민족경제를 수호하는 일이었고 박정희 산업정책은 한국 경제의 대일 종속을 수용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국채보상운동과 박정희는 서로 상극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정희를 근대 대구의 3대 정신에 넣고자 한다면 그 3대 정신에 국채보상운동을 넣으면 안 된다.
반대로, 국채보상운동이 3대 정신이라면 그 셋에 박정희를 넣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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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 대한 고려 없이 국채보상운동과 박정희 산업정책을 동일한 정신으로 한 데 묶은 것은 역사를 왜곡하는 것일 뿐 아니라 국채보상운동을 선도한 대구 사람들을 무시하는 일이다.
대구 사람들은 나라를 지키고 자신들을 지키고자 국채보상운동을 벌였다. 이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저항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국채보상운동과 박정희를 한 데 묶는 것은 대구 역사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일이다.
2·28 민주운동과 박정희
3·15 부정선거를 앞두고 대구 학생들이 벌인 1960년 2·28 민주운동은 3·15 마산의거와 4·19혁명으로 이어졌다. 이는 이승만 하야와 제2공화국 출범으로 귀결됐다.
이승만이 하야하고 민주당 정권이 수립된 뒤에도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와 민주공화국이라는 정체성은 바뀌지 않았다. 그렇지만 권위주의적인 대통령제가 무너지고 의원내각제가 등장했다는 이유로 당시 사람들은 1960년을 대한민국 제2공화국의 출발.으로 받아들였다. 형식상으로는 동일한 대한민국이 이어지고 있지만 실질상으로는 새로운 나라가 세워진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봤던 것이다.
또 의원내각제가 무너지고 대통령제가 회복됐을 뿐 아니라 제2공화국의 개헌 절차를 무시하고 사실상 새로운 헌법이 제정됐다는 이유로, 당시 사람들은 1963년을 제3공화국의 출발。으로 인식했다.
제2공화국은 2·28 시위 등을 토대로 만들어졌고, 제3공화국은 5·16 쿠데타를 토대로 만들어졌다.제2공화국을 총칼로 짓밟은 것이 제3공화국이다. 그래서 '국채보상운동과 박정희'만 상극인 게 아니라 '2·28민주운동과 박정희' 역시 상극이다.
대구시가 국채보상운동-2·28민주운동-박정희를 근대 대구의 3대 정신으로 묶은 것은 대단한 모순이다. 하필이면 박정희와 상극인 관계들만 골라내서 3대 정신이라고 하다니.
근대 대구의 3대 정신을 계승하겠다며 박정희 동상을 존치시키는 것은 국채보상운동과 2·28민주운동을 거쳐 형성된 대구 사람들의 역사적 정체성을 위협하는 것이다. 박정희 동상을 신속히 철거하는 것이 대구의 불명예를 최소화시키고 이 정체성을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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