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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청룡하와 난하를 건넜다. 어제 수양산을 보려고 건넜었지만, 오늘 다시 건너도 강은 새롭게 다가왔다. 강이란 그렇다. 새로움을 가져다주는 물결과 이동, 강은 시원을 낳고 그리움을 낳는다. 사실 시원과 그리움은 동의어에 가깝다. 인간은 시작에 대하여, 끝에 대하여 같은 그리움을 가지고 있다. 오늘 노룡현에 온 것도, 난하와 청룡하를 다시 건너는 것도 결국은 시원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오늘 나의 시원은 연암이다.
누구나, 어디나 시원이 될 수 있다. 그를 이토록 탐하는 일 또한 시원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누군가의 시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벅찬 일인가 신천지릴게임 ?
청룡하교. 택시를 세워두고 영화를 촬영하듯 사진을 찍어댔다. /조문환
◇다시 건너는 난하와 청룡하, 강과 인생은 닮았다.
난하는 청룡하보다 더 말라 있었다. 두 강은 4㎞ 남 바다신2게임 짓 떨어져 있으나 노룡현을 지나 하류에서 하나로 합쳐진다. 이런 운명을 강은 어김없이 받아들인다. 사람도 어느 시절, 어느 순간에 전혀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것처럼 강도 그런 운명을 지니고 있다. 내가 연암을 탐닉하는 것 이상으로 강을 탐닉하는 것도 강과 인생이 닮았다는 그 기이함 때문이기도 하다.
무사히 청룡하와 난하 바다신2 다운로드 를 카메라에 담았다. 이 일은 오늘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충분한 행운이다. 청룡하를 건너는 2차선 다리 위에서 우리의 용감하고 젊은 기사는 차를 한쪽 차선에 세워 두고 나에게 촬영을 해도 된다는 사인을 보냈다. 강의 북쪽과 남쪽을 번갈아 가면서 강을 담기에 성공했다. 풀 섶의 중앙에는 제법 잘 자란 풀밭이 있는데 양떼들이 주인을 따라 오리지널바다이야기 풀을 뜯는 모습이 목가적이었다.
난하 촬영을 마칠 무렵 젊고 우람한 체격의 검은 복장의 두 남성이 다가와 왜 촬영하느냐 묻자 우리의 젊은 기사가 재빠르게 다가가 한국에서 온 여행자인데 강을 촬영 중이라 하니 그러냐고 하면서 돌아갔다. 이 기사는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풍륜구의 오렌지 호텔에 우리를 안착시켜 놓고서는 좀 온라인골드몽 못 미더웠는지 다시 프런트까지 따라 들어와 "한국에서 온 여행자이니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한 뒤 유유히 빠져나갔다. 낯선 이국의 여행지에서 사람의 정을 어김없이 향유하는 아침이다.
고려보촌 마을소개 비석. 이 글귀 외에는 다른 마을과 구분이 어렵다. /조문환
◇실향민 마을 고려보촌, 아직도 남은 그리움이 있을까?
여장을 풀자마자 자동차로 20여 분 거리에 있는 고려보촌으로 향했다. 고려보촌은 역사의 아픔을 품은 곳이다. 1636년 12월 청나라의 조선침략 전쟁인 병자호란으로 조선인들이 대규모로 포로가 되어 끌려온 데서 비롯됐다. 연암의 연행 연도인 1780년은 그로부터 이미 144년이 지난 때였지만 고려보촌인들은 그 세월 속에서도 여전히 고국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사행이 연중 몇 차례 있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지난 백여 년 동안 이곳 고려보촌만 하더라도 수백 차례 서로 만남과 이별이 이어졌으리라 짐작된다.
그 만남은 고국의 소식을 들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 오늘날의 통신수단과 다름없었다. 고국의 그리움을 들을 기회, 혹여 가족의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지 않을까 얼마나 노심초사했을까?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이런 일들도 자연스럽게 잊히는 것, 그리움이 점차 옅어지고 서로 일들이 과거의 일로 치부되고 거추장스런 경과 치례로 소진되어 버렸다.
연암은 마을의 초가를 보자마자 묻지도 않고도 이곳이 고려보라는 것을 알아챘다. 다른 동네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논과 같은 경작지와 떡과 엿과 같은 먹을거리에서도 그랬었다. 초창기에는 동포라는 애정으로 술과 음식을 공짜로 내주기도 했지만 그것이 당연한 권리처럼 여겨지자 경과치례를 넘어 형식화되어 버렸다.
한 술 더 떠 사행단의 하인배들이나 잇속에 밝은이들은 술과 음식을 먹고 값을 치르지 않을 뿐 아니라 의복까지 토색하기도 했다. 차라리 동족을 향해 도둑질을 하는 일들까지 벌어졌으니, 고 국사람에 대한 염증이 극에 달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사행단 일부는 "이놈들아 네놈들 할애비가 오셨거늘 어찌 나와 절을 하지 않느냐"고 윽박질렀고, 고려보 사람들도 사행단을 맞받아치기가 일쑤였다.
◇병자호란이 낳은 아픈 역사, 주회인과 환향녀
목숨을 걸고 청국에서 탈출하여 고국으로 돌아온 주회인이나 환향녀라 할지라도 고국에서 받는 눈총은 차라리 청국에서의 고통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주회인, 환향녀라는 이름아래 덧씌워진 불신과 악취를 어찌할 것인가. 고국이 그리워 갖은 수단 끝에 돌아온 백성과 가족을 올무를 씌워 그들의 일생을 멍든 가슴으로 세상을 전전긍긍하게 했다.
병자호란으로 포로가 된 백성은 얼마였으며 심양의 남탑에서 팔려나간 백성은 얼마였던가. 속환가를 치르지 못해 가슴을 치며 생이별을 해야 하는 백성은 또 얼마였던가. 거기에 주회인이라, 환향녀라 덧붙이다니. 부관참시도 모자라 뼈를 부숴 바람에 날리는 쇄골표풍(碎骨飄風) 형벌을 내리는 형국과 같았다.
고려보촌 골목길에 들어서면 고국에서 왔다고 반겨줄 것만 같았다. /조문환
◇수양딸 삼기를 사양하는 연암, 그리움은 때로는 고통
고려보는 풍륜구에서 불과 7㎞ 남짓 떨어진 곳이지만, 여전히 중국 시골의 전형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누구야" 부르면 달려나와 고국에서 온 이들을 반겨 맞아 줄 것만 같다.
넓은 마을 안길에서 개조한 삼륜 오토바이가 달리고 마을 사람들이 삼삼오오 그늘나무 아래에서 얘기들 나누는 모습이 정겹다. 마을 주민은 모두 2000명 가량이라고 한다. 적벽돌을 보건데 불과 50년 전만 하더라도 이 동네가 제법 균형적인 삶을 유지했음을 말해 주는 듯하다.
연암 일행은 고려보 노정에 갑작스런 소나기를 만났다. 말몰이꾼 하나가 알몸으로 빗속을 쫓아다니며 민폐를 끼치자 연암은 주인장에게 사과를 했다. 주인장은 너그러이 받아들였고 열여덟 살 딸아이를 소개해 주면서 수양아버지로 모실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연암은 "후의는 고맙습니다만 나로 말하면 외국사람인 데다 한 번 가면 다시 올 기약이 없으며 오늘 맺은 인연이 훗날 고통스러운 그리움이 될 뿐이고 또 다른 업보가 될 것입니다"고 하면서 완곡히 사양했다.
사행단과 고려보촌 사람들도 처음에는 동족이라는 인연으로 시작하여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그 맺은 인연이 훗날 미움과 고통으로 자리 한 것과 다름없었을 것이다. 연암이 이런 것들과 연결지어 생각하지 않았을 수 있지만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왜곡된 미풍양속과 거절하지 못하는 관례가 훗날의 고통이 될 수 있음에 그만의 예지력이 발휘된 것일 수 있다. 멀고 먼 여행길에서 수양딸 하나 삼는다고, 비록 그 후에 절의를 지키지 못한다고 누가 나무랄 사람 없겠지만 함부로 길을 걷지 않는 연암을 고려보촌에서 맞이한다.
/조문환 작가
필자소개 ☞ 작가, 시인. 하동 평사리에 산다. 현장에서 일하고 현장에서 내일을 본다. 상상한 만큼 성장한다는 말을 믿는다. 그 상상을 현장으로 가져오는 일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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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건너는 난하와 청룡하, 강과 인생은 닮았다.
난하는 청룡하보다 더 말라 있었다. 두 강은 4㎞ 남 바다신2게임 짓 떨어져 있으나 노룡현을 지나 하류에서 하나로 합쳐진다. 이런 운명을 강은 어김없이 받아들인다. 사람도 어느 시절, 어느 순간에 전혀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것처럼 강도 그런 운명을 지니고 있다. 내가 연암을 탐닉하는 것 이상으로 강을 탐닉하는 것도 강과 인생이 닮았다는 그 기이함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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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환 작가
필자소개 ☞ 작가, 시인. 하동 평사리에 산다. 현장에서 일하고 현장에서 내일을 본다. 상상한 만큼 성장한다는 말을 믿는다. 그 상상을 현장으로 가져오는 일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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