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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인LGBT+ 활동가이자 수어통역사인 보석(김보석)이 지난 17일 별세했다. 여행 간 일본에서 급성 심정지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37세.
보석의 죽음을 두고 한국 여러 인권단체와 개인들이 추모 성명을 냈다. “농인에 대한 차별과 배제, 농사회에 존재하는 성소수자에 대한 낙인과 혐오에 맞서 싸우며 먼 거리에 있던 이들을 동료로 이어”(서울인권영화제)온 사람이자 “이름처럼 언제나 반짝이고, 따뜻하고, 누구보다 빛나게 자신의 인생을 살던 사람”(박진화)이었다.
한국농인LGBT+ 동료 해인이 보정한 보석의 바다이야기무료 프로필 사진이다. 해인은 영정 사진이 되고 말았다며 슬퍼했다. 해인 제공
보석은 1989년 12월 11일 인천에서 태어났다. 코다(CODA; 농인 부모의 청인 자녀)였다.‘연극in’ 제204호(2021년 7월15일) ‘연극인이 만난 사람’에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온다. 자라면서 부모와 깊은 대화를 바다이야기APK 나누지 않았다. 수어도 따로 배우지 않았다. 용돈 얘기, 밥 얘기 정도만 했다고 한다.
20대 초반 방황하던 시기 찾은 교회의 농인부에서 활동한다. 나사렛대학교에 수어통역학과가 있다는 것도 여기서 알게 된다. “공장에서 성실히 일하고 월급 받는 것을 제일 나은 선택이라고 믿고 살아”온 부모는 보석이 수어를 대학에서 배우는 걸 반대했다. 쿨사이다릴게임 그 반대를 무릅쓰고 2010년 수어통역학과에 들어간다. 수어를 배우며 ‘코다 정체성’을 지니게 된다. “그 전에 나에게 부모님은 그저 대화가 되지 않는 대상이었다. 그런데 (수어를 배우면서) 비로소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부모님을 보며 갑갑하게 느꼈던 부분, 행동들이 농인인 부모님들의 맥락에서 이해되기 시작했다.”
보석은 수어를 체리마스터pc용다운로드 계기로 부모를, 다른 농인들을 더 이해하기 시작했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이해와 연대의 폭을 넓혀갔다. 열심히 배웠다. 학부 1학년 때 수어통역사 자격증을 땄다. 바로 수어통역사 활동을 했다. 2022년엔 나사렛대학교 재활학(수어학) 박사 과정도 수료한다.
보석이 한국농인L 릴게임골드몽 GBT+의 성명 ‘반인권 선동하는 안창호는 즉각 사퇴하라!’를 수어로 낭독하고 있다. 사망 38일 전인 지난해 12월 10일 올린 영상이다. 한국농인LGBT+ 유튜브 갈무리
일본어 교사가 꿈이었던 그는 일본어와 일본 수어에도 능통하다. 미국 수어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정도로 했다 그는 통역사로 일할 때 늘 서로 언어가 다른 사람 사이에서 전달한다고 생각했다. 즉 ‘못 듣는 사람’이 아니라 ‘한국 수어를 쓰는 사람’에게 한국어를, 한국어를 쓰는 사람에겐 한국 수어를 전했다.
수어 통역 일에 만족했지만 더러 힘들었다. 늘 차별을 겪는 농인들의 경험을 통역할 때면 감정이 상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보석은 ‘코다’와 ‘수어 연구자’에 ‘성소수자’였다. 어릴 적 동성애자라는 성적 지향을 고민해본 적은 없었다. “굳이 막 떠들지는 않았지만, 누군가 물어본다면 부인한 적이 없었”다. 대학에 다닐 때 벽에 부딪힌다. 연극in 인터뷰에선 “어려운 형편 때문에 장학금에 목매고, 교수님들과 잘 지내며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주변 친구들에게는 아니꼬웠던 모양이고, 그게 ‘게이인 게…’라는 식으로 귀결됐다. 그때가 힘들었다. 아, 숨겨야 하는 거구나…. 처음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보석은 코다이자 성소수자였다. 수어를 배운 뒤 농인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에 맞서 싸웠다. 늘 대안을 고민하는 활동가였다. 2021년 4월 경향신문 인터뷰 때 촬영한 사진이다. 강윤중 기자
이중의 차별과 편견에 시달렸다. 보석은 2021년 4월 경향신문과 인터뷰할 때는 이렇게 말했다. “이미 사회에서 농인 가족을 ‘불량’인 것처럼 봐요. 제가 성소수자라고 하면 ‘너희가 불량이라 그렇게 된 거야’라고 할 수도 있는 거죠. 저는 ‘게이, 코다, 수어연구자’라는 정체성 때문에 소극적으로 되거나 앞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 반복되는 거예요. 청사회와 농사회 양쪽으로 벽이 느껴질 때는 너무 괴롭습니다. ‘나 때문에 부모님도 거부당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 때면 무섭고요.”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았다. “코다 정체성과 성소수자 정체성이 만났을 때 생기는 시너지”로 여러 일을 하나하나 실천했다. 대표 활동이 동료들과 대안 수어를 만든 일이다.
농인 성소수자들은 한국수화언어(한국수어)로 정체성을 알릴 때면 자기혐오를 해야만 했다. 예를 들어 레즈비언과 게이를 뜻하는 수어는 각각 특정 성행위를 묘사한다. 예를 들어 게이는 ‘항문성교하는 사람’, 레즈비언은 ‘몸을 비비는 사람’이다. 보는 농인도 그 혐오의 차별의 언어로 성소수자를 이해하게 된다. ‘남성 동성애자’는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로 옮겨도 될 일인데, ‘신체 결합’의 수어들을 썼다.
한국농인LGBT+ 활동가들이 지난해9월 24일 인권재단 사람에서 열린 ‘혐오는 끊어내고 신발 끈을 다시 묶고’ 행사 증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활동가 진영, 해인, 지양, 보석이다, 보석은 이날 통역으로 참여했다. 해인 제공
이 문제를 먼저 고민한 게 보석의 동료 활동가 지양(우지양)이다. 지양이 “성소수자에게 차별적이지 않은 새로운 언어를 만들자”고 제안하자 바로 참여했다. 2021년 보석, 지양, 태환, 레고는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가 없는 즉 ‘여러 정체성을 인정, 존중’하는 대안 수어도 직접 개발했다. 예를 들어 레즈비언과 게이엔 성적 지향의 본래 뜻을 살린 ‘이끌림’이라는 뜻을 살렸다. 이들은 대안 수어를 개발해 묶은 <농인성소수자X한국수어: 편견과 혐오를 걷어낸 존중과 긍정의 언어>를 출간한다. 동영상까지 만들었다. 보석은 이 책 출간과 동영상 제작을 두고 “우리가 이걸 만든 건, ‘이렇게 부르면 기분 나빠요. 이러지 말아주세요’ 수준이 아니라 ‘우릴 정확하게 이렇게 불러주세요!’라고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석을 포함한 활동가들은 수어통역가들에게 성소수자 관련 수어는 혐오표현이라고 적극적으로 알리고 다녔다. 국립국어원에도 이 문제를 줄곧 제기했다. 2025년 5월 국립국어원으로부터 2026년 한국수어 내 혐오, 차별 표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2027년 한국수어누리사전에 성소수자 수어 표현을 등재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국립국어원은 한국농인LGBT+에서 제안한 표현을 포함해 대안수어를 검토, 마련하고 대안수어가 정립되는 대로 공식행사에서 대안수어를 사용할 예정이라고도 했다.
이들은 2021년 한국농인LGBT 설립준비위원회를 만들었다. 보석은 “농인 성소수자도 안전하게 교류할 수 있는 곳이 생겼으면 좋겠다. 한국농인LGBT+가 그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교류의 장’에 그치지 않았다. 농인 성소수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했다. 코로나19 때 성소수자 혐오가 불거지자 농인 성소수자를 위한 비상연락망을 구축했다. 농·청인 성소수자가 함께 참여하는 오픈스터디를 열어 혐오와 차별의 경험을 나눴다 한때 농인 성소수자는 성소수자 단체에서도 낯선 존재였다. 보석은 이렇게 말했다. “성소수자 단체에서도 행사에 농인 참여자가 온다고 하면 횡설수설하지 않고 우리한테 연락이 와요. 농접근권을 위해서 수어통역이 필요하다고요. 이제 그런 인식이나 분위기가 생긴 것 같아요. 조금은 낯설지 않은 존재가 된 것 같아요.”
보석은 열정적인 활동가였다. 인권단체 교육사업이든 캠페인이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 또 자신이 가야 할 곳을 찾아다녔다. 아티스트였다. 연극, 영화, 음악, 문학 등 여러 예술 분야 공연, 상연, 낭독회에서 표정과 몸짓 화려한 수어를 선보였다. 여러 장소에서 장애인들이 휠체어로 접근하기 쉬운 자리나 수어통역을 쉽게 볼 수 있는 좌석을 먼저 지정하도록 팀원들과 함께 고민했다.
정치적 입장도 분명했다. 한국농인LGBT+는 윤석열 계엄을 비판하고, 국가인권위원장 안창호의 사퇴를 촉구했다. 정치권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늘 촉구했다.
30대 중반 활동가의 죽음에 여럿이 슬픔에 빠졌다. 보석의 동료인 한국농인LGBT+ 활동가 해인은 2024년 5월 24일 농인 성소수자 실태조사 보고회에서 보석을 처음 만났다. 이듬해 보석의 권유로 상근 활동을 시작했다. 해인은 부모 병간호를 하며 이곳 일을 병행했다. 상근자는 이 두 사람뿐이었다. 이들은 10개월을 같이 일하고, 공부했다. 둘은 대학원에서 농인 성소수자 연구를 같이하자고 약속했다. 해인은 “보석님이 제게 보정해달라고 부탁한 프로필 사진이 영정 사진이 됐다”며 슬퍼했다. 해인은 “보석 님 덕에 혐오수어보다도 대안수어를 먼저 배웠다. 나 자신의 정체성, 논바이너리 남성애자를 적어도 혐오수어로 표현할 일이 없었다”며 고마워했다.
보석은 30대 젊은 나이에도 죽음이라는 실존 문제를 고민한 듯하다. 그는 평소 “내 장례식이 슬픔과 눈물로 가득하기보다는, 모두가 함께 즐기는 파티”가 되기를 바랐다고 한다. 장례는 지난 24~26일 인천성모장례식장에서 치러졌다. 해인은 “얼마나 활동을 열심히 하셨는지, 장례식장엔 활동가들과 보석 님의 활동을 지켜본 시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전했다.
보석 유해는 한 기독교추모시설에 안치됐다. 고인은 개신교 신자였다.
해인과 동료들은 봉안당의 보석 곁에 <농인성소수자 × 한국수어> <쌍스러운 사람들의 한국수어> 책자와 무지개 깃발, 한국농인LGBT+ 배지를 두었다. 해인은 보석의 유품과도 같은 이 물건들을 두고 “퀴어의 죽음이란, 그리고 활동가의 죽음이란 게 결국 죽어서도 사회운동을 하는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 [커버스토리]농인성소수자들, 혐오 지우고 자긍심 담은 새 수어를 짓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104240600045
☞ 기획·연재
보석의 죽음을 두고 한국 여러 인권단체와 개인들이 추모 성명을 냈다. “농인에 대한 차별과 배제, 농사회에 존재하는 성소수자에 대한 낙인과 혐오에 맞서 싸우며 먼 거리에 있던 이들을 동료로 이어”(서울인권영화제)온 사람이자 “이름처럼 언제나 반짝이고, 따뜻하고, 누구보다 빛나게 자신의 인생을 살던 사람”(박진화)이었다.
한국농인LGBT+ 동료 해인이 보정한 보석의 바다이야기무료 프로필 사진이다. 해인은 영정 사진이 되고 말았다며 슬퍼했다. 해인 제공
보석은 1989년 12월 11일 인천에서 태어났다. 코다(CODA; 농인 부모의 청인 자녀)였다.‘연극in’ 제204호(2021년 7월15일) ‘연극인이 만난 사람’에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온다. 자라면서 부모와 깊은 대화를 바다이야기APK 나누지 않았다. 수어도 따로 배우지 않았다. 용돈 얘기, 밥 얘기 정도만 했다고 한다.
20대 초반 방황하던 시기 찾은 교회의 농인부에서 활동한다. 나사렛대학교에 수어통역학과가 있다는 것도 여기서 알게 된다. “공장에서 성실히 일하고 월급 받는 것을 제일 나은 선택이라고 믿고 살아”온 부모는 보석이 수어를 대학에서 배우는 걸 반대했다. 쿨사이다릴게임 그 반대를 무릅쓰고 2010년 수어통역학과에 들어간다. 수어를 배우며 ‘코다 정체성’을 지니게 된다. “그 전에 나에게 부모님은 그저 대화가 되지 않는 대상이었다. 그런데 (수어를 배우면서) 비로소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부모님을 보며 갑갑하게 느꼈던 부분, 행동들이 농인인 부모님들의 맥락에서 이해되기 시작했다.”
보석은 수어를 체리마스터pc용다운로드 계기로 부모를, 다른 농인들을 더 이해하기 시작했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이해와 연대의 폭을 넓혀갔다. 열심히 배웠다. 학부 1학년 때 수어통역사 자격증을 땄다. 바로 수어통역사 활동을 했다. 2022년엔 나사렛대학교 재활학(수어학) 박사 과정도 수료한다.
보석이 한국농인L 릴게임골드몽 GBT+의 성명 ‘반인권 선동하는 안창호는 즉각 사퇴하라!’를 수어로 낭독하고 있다. 사망 38일 전인 지난해 12월 10일 올린 영상이다. 한국농인LGBT+ 유튜브 갈무리
일본어 교사가 꿈이었던 그는 일본어와 일본 수어에도 능통하다. 미국 수어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정도로 했다 그는 통역사로 일할 때 늘 서로 언어가 다른 사람 사이에서 전달한다고 생각했다. 즉 ‘못 듣는 사람’이 아니라 ‘한국 수어를 쓰는 사람’에게 한국어를, 한국어를 쓰는 사람에겐 한국 수어를 전했다.
수어 통역 일에 만족했지만 더러 힘들었다. 늘 차별을 겪는 농인들의 경험을 통역할 때면 감정이 상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보석은 ‘코다’와 ‘수어 연구자’에 ‘성소수자’였다. 어릴 적 동성애자라는 성적 지향을 고민해본 적은 없었다. “굳이 막 떠들지는 않았지만, 누군가 물어본다면 부인한 적이 없었”다. 대학에 다닐 때 벽에 부딪힌다. 연극in 인터뷰에선 “어려운 형편 때문에 장학금에 목매고, 교수님들과 잘 지내며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주변 친구들에게는 아니꼬웠던 모양이고, 그게 ‘게이인 게…’라는 식으로 귀결됐다. 그때가 힘들었다. 아, 숨겨야 하는 거구나…. 처음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보석은 코다이자 성소수자였다. 수어를 배운 뒤 농인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에 맞서 싸웠다. 늘 대안을 고민하는 활동가였다. 2021년 4월 경향신문 인터뷰 때 촬영한 사진이다. 강윤중 기자
이중의 차별과 편견에 시달렸다. 보석은 2021년 4월 경향신문과 인터뷰할 때는 이렇게 말했다. “이미 사회에서 농인 가족을 ‘불량’인 것처럼 봐요. 제가 성소수자라고 하면 ‘너희가 불량이라 그렇게 된 거야’라고 할 수도 있는 거죠. 저는 ‘게이, 코다, 수어연구자’라는 정체성 때문에 소극적으로 되거나 앞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 반복되는 거예요. 청사회와 농사회 양쪽으로 벽이 느껴질 때는 너무 괴롭습니다. ‘나 때문에 부모님도 거부당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 때면 무섭고요.”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았다. “코다 정체성과 성소수자 정체성이 만났을 때 생기는 시너지”로 여러 일을 하나하나 실천했다. 대표 활동이 동료들과 대안 수어를 만든 일이다.
농인 성소수자들은 한국수화언어(한국수어)로 정체성을 알릴 때면 자기혐오를 해야만 했다. 예를 들어 레즈비언과 게이를 뜻하는 수어는 각각 특정 성행위를 묘사한다. 예를 들어 게이는 ‘항문성교하는 사람’, 레즈비언은 ‘몸을 비비는 사람’이다. 보는 농인도 그 혐오의 차별의 언어로 성소수자를 이해하게 된다. ‘남성 동성애자’는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로 옮겨도 될 일인데, ‘신체 결합’의 수어들을 썼다.
한국농인LGBT+ 활동가들이 지난해9월 24일 인권재단 사람에서 열린 ‘혐오는 끊어내고 신발 끈을 다시 묶고’ 행사 증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활동가 진영, 해인, 지양, 보석이다, 보석은 이날 통역으로 참여했다. 해인 제공
이 문제를 먼저 고민한 게 보석의 동료 활동가 지양(우지양)이다. 지양이 “성소수자에게 차별적이지 않은 새로운 언어를 만들자”고 제안하자 바로 참여했다. 2021년 보석, 지양, 태환, 레고는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가 없는 즉 ‘여러 정체성을 인정, 존중’하는 대안 수어도 직접 개발했다. 예를 들어 레즈비언과 게이엔 성적 지향의 본래 뜻을 살린 ‘이끌림’이라는 뜻을 살렸다. 이들은 대안 수어를 개발해 묶은 <농인성소수자X한국수어: 편견과 혐오를 걷어낸 존중과 긍정의 언어>를 출간한다. 동영상까지 만들었다. 보석은 이 책 출간과 동영상 제작을 두고 “우리가 이걸 만든 건, ‘이렇게 부르면 기분 나빠요. 이러지 말아주세요’ 수준이 아니라 ‘우릴 정확하게 이렇게 불러주세요!’라고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석을 포함한 활동가들은 수어통역가들에게 성소수자 관련 수어는 혐오표현이라고 적극적으로 알리고 다녔다. 국립국어원에도 이 문제를 줄곧 제기했다. 2025년 5월 국립국어원으로부터 2026년 한국수어 내 혐오, 차별 표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2027년 한국수어누리사전에 성소수자 수어 표현을 등재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국립국어원은 한국농인LGBT+에서 제안한 표현을 포함해 대안수어를 검토, 마련하고 대안수어가 정립되는 대로 공식행사에서 대안수어를 사용할 예정이라고도 했다.
이들은 2021년 한국농인LGBT 설립준비위원회를 만들었다. 보석은 “농인 성소수자도 안전하게 교류할 수 있는 곳이 생겼으면 좋겠다. 한국농인LGBT+가 그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교류의 장’에 그치지 않았다. 농인 성소수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했다. 코로나19 때 성소수자 혐오가 불거지자 농인 성소수자를 위한 비상연락망을 구축했다. 농·청인 성소수자가 함께 참여하는 오픈스터디를 열어 혐오와 차별의 경험을 나눴다 한때 농인 성소수자는 성소수자 단체에서도 낯선 존재였다. 보석은 이렇게 말했다. “성소수자 단체에서도 행사에 농인 참여자가 온다고 하면 횡설수설하지 않고 우리한테 연락이 와요. 농접근권을 위해서 수어통역이 필요하다고요. 이제 그런 인식이나 분위기가 생긴 것 같아요. 조금은 낯설지 않은 존재가 된 것 같아요.”
보석은 열정적인 활동가였다. 인권단체 교육사업이든 캠페인이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 또 자신이 가야 할 곳을 찾아다녔다. 아티스트였다. 연극, 영화, 음악, 문학 등 여러 예술 분야 공연, 상연, 낭독회에서 표정과 몸짓 화려한 수어를 선보였다. 여러 장소에서 장애인들이 휠체어로 접근하기 쉬운 자리나 수어통역을 쉽게 볼 수 있는 좌석을 먼저 지정하도록 팀원들과 함께 고민했다.
정치적 입장도 분명했다. 한국농인LGBT+는 윤석열 계엄을 비판하고, 국가인권위원장 안창호의 사퇴를 촉구했다. 정치권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늘 촉구했다.
30대 중반 활동가의 죽음에 여럿이 슬픔에 빠졌다. 보석의 동료인 한국농인LGBT+ 활동가 해인은 2024년 5월 24일 농인 성소수자 실태조사 보고회에서 보석을 처음 만났다. 이듬해 보석의 권유로 상근 활동을 시작했다. 해인은 부모 병간호를 하며 이곳 일을 병행했다. 상근자는 이 두 사람뿐이었다. 이들은 10개월을 같이 일하고, 공부했다. 둘은 대학원에서 농인 성소수자 연구를 같이하자고 약속했다. 해인은 “보석님이 제게 보정해달라고 부탁한 프로필 사진이 영정 사진이 됐다”며 슬퍼했다. 해인은 “보석 님 덕에 혐오수어보다도 대안수어를 먼저 배웠다. 나 자신의 정체성, 논바이너리 남성애자를 적어도 혐오수어로 표현할 일이 없었다”며 고마워했다.
보석은 30대 젊은 나이에도 죽음이라는 실존 문제를 고민한 듯하다. 그는 평소 “내 장례식이 슬픔과 눈물로 가득하기보다는, 모두가 함께 즐기는 파티”가 되기를 바랐다고 한다. 장례는 지난 24~26일 인천성모장례식장에서 치러졌다. 해인은 “얼마나 활동을 열심히 하셨는지, 장례식장엔 활동가들과 보석 님의 활동을 지켜본 시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전했다.
보석 유해는 한 기독교추모시설에 안치됐다. 고인은 개신교 신자였다.
해인과 동료들은 봉안당의 보석 곁에 <농인성소수자 × 한국수어> <쌍스러운 사람들의 한국수어> 책자와 무지개 깃발, 한국농인LGBT+ 배지를 두었다. 해인은 보석의 유품과도 같은 이 물건들을 두고 “퀴어의 죽음이란, 그리고 활동가의 죽음이란 게 결국 죽어서도 사회운동을 하는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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