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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성폭력 피해자 모임으로 2024년 9월 출발한 '열매'는 현재 피해자와 그 가족, 이들과 함께하는 활동가 및 연대자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동안 과거사의 젠더폭력 문제를 공론화하고 법적 투쟁과 공동체 치유 활동을 해왔으며 이 활동을 확장하기 위해 오는 2월 비영리민간단체로의 창립을 준비 중입니다. 창립을 앞둔 열매의 활동가들이 5·18 성폭력 피해자들이 걸어온 길을 전달하기 위해 매주 화요일 다섯 차례 연재를 이어갑니다. <편집자말>
[열매 송혜림 기자]
5·18 성폭력 문제의 공론화를 가로막았던 침묵의 공조는 2018년 5월 등장한 증언으로 균열이 간다. 5· 릴게임무료 18 관련 수사 과정에서 겪은 성폭력 피해를 고발한 김선옥에 의해서였다.
전남대 음악교육과 학생이었던 그녀는 5·18 항쟁 기간 전남도청 상황실에서 학생수습대책위원회로 활동했다. 27일 새벽 도청에서 빠져나오며 살아남았지만, 그해 7월 계엄사령부 수사관에 의해 상무대 영창으로 연행되었다. 그리고 구금된 두 달 동안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폭력 바다이야기슬롯 을 입었다.
김선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상무대에서 겪은 고문 수사와 모욕 그리고 성폭력을 오랜 고민과 망설임 속에서 단단해진 언어로 침착하게 증언했다. 피해 당사자가 실명과 얼굴을 내건 공개 증언은 '5·18 광주 특위 청문회' 이후 30년 만에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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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수습대책위 활동 당시 김선옥(좌)과 MBC 뉴스데스크의 김선옥 증언 보도 화면(우).
모바일야마토ⓒ 진상조사보고서, MBC
30년 전 외면 당한 성폭력 증언과는 달리 김선옥의 증언은 변화를 만들어냈다. 증언이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성폭력 문제에 사회적 공분이 모이자, 정부는 본격적인 조사를 위한 공동조사단을 발족한다. 짧은 조사 기간과 한정 바다이야기온라인 된 수사 권한으로 조사단 활동은 미미하게 종결됐지만 2020년 5·18진상규명위(아래 진상위)에서 조사단의 자료를 검토하면서 성폭력 조사에 관한 직권조사가 시작되었다.
5·18 진상규명법에 '성폭력 및 정신적·신체적 후유증 발생 등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이 포함되고, 진상위 조사를 통해 2023년 12월 진상규명 결정이 내려진 것도 김선옥의 증언이 싹틔운 결실이다. 그녀의 공개 증언이 유의미한 사회정치적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던 배경에는 2018년 한국 사회의 전방위적인 '미투(MeToo) 운동'이 있었다. 김선옥은 그해 초 서지현 검사의 미투로 자신 또한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밝힌다.
'나도 겪었다'라는 미투의 곁에는 '당신을 지지한다'라는 '위드유(With You)'의 지지가 존재했기 때문에 김선옥의 증언이 들리고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던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증언자
피해 증언을 청취하는 사회적 감수성과 정치적 지형이 달라진 것도 중요했지만, 5·18 성폭력이 진상 규명되는 데 핵심이 되었던 것은 증언을 통해 이어진 피해자들의 용기다. 그동안 침묵한 채 숨어 있던 피해자들이 김선옥의 증언을 계기로 자신의 피해를 증언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는 김선옥이 증언을 결심한 이유이기도 했다.
"내 뒤를 따라오는 사람들은 나처럼 아프고 병들지 않을 수 있게, 언제든 손을 잡아주고 싶어.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누구의 부끄러움도 없이 당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고 국가로부터 사과받고 치유받을 기회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 - 김선옥의 '한겨레' 인터뷰(2024.12.12.) 중에서
김선옥은 자신의 피해를 호소하는 데 머물지 않고 다른 피해자들의 삶과 고통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어했다. 경험적으로 그녀는 5·18 성폭력 피해자가 많이 존재하며 그들이 흩어진 채 홀로 고통을 삭이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뿐만 아니라 침묵하고 있는 타인들을 위해 증언했다.
이 증언이 보낸 '당신의 고통은 당신만의 부끄러운 피해가 아니며 우리는 함께 정의를 되찾을 수 있다'라는 메시지는 침묵하고 있던 이들에게 가닿았다. 52건의 성폭력 피해 의혹 사건 중 진상위의 당사자 조사가 가능했던 사건은 19건이다. 이들 중 12명이 김선옥과 서지현 검사의 미투로 증언을 결심했다고 밝힌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가 다른 피해자의 증언을 듣고 말하기를 결심하는 증언의 '이어말하기'는 진실을 향한 기억 투쟁의 여정과도 겹친다. 만약 다른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김선옥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 진실이 밝혀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진상위는 2024년 공개한 '진상규명보고서'에서 여러 성폭력 사건들을 종합할 때 비로소 드러나는 국가폭력과 성폭력의 관련성을 지적한다.
피해 시기와 장소, 유형은 모두 다르지만 19인의 피해 양상은 항쟁 기간 계엄군의 지침과 작전 양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 높은 연관성은 5·18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이 특정 군경·수사관의 일탈로 치부할 수 없는 국가폭력의 구조 안에서 발생했음을 증명한다.
나아가 5·18 성폭력 피해를 인정하고 피해자의 신체적·정신적 상처를 회복하는데 국가의 책임이 있다는 점도 분명히 밝힌다. 이처럼 5·18 성폭력의 진실을 규명하고 국가의 책임을 추궁할 수 있던 것은 진상위 조사에서 여전히 고통스러운 기억을 최선을 다해 회상하고 전달하고자 했던 피해 증언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해자의 부서진 말들을 '증언'으로 듣고자 했던 조사팀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의와 치유의 '주체'가 되겠다는 결심, 그 후
▲ '열매'의 첫 간담회는 조사관과 군 지원단, 상담전문가로 이루어진 실무팀의 세 차례 기획회의를 거쳐 신중하게 준비되었다. 센터피스(중앙의 장식물)를 중심으로 둘러앉는 자리 배치는 위계나 분할 없이 모두가 동등한 일원임을 강조한다. 빈 의자 위에 이 자리를 원했던 피해자와 모임을 준비한 실무팀의 설렘과 불안, 기대와 기쁨이 놓여있는 듯하다.
ⓒ 열매
조사에서 증언했던 피해자들은 서로 알지 못했다. 그러나 진상위 조사 과정은 이들이 소박한 소망을 품게 했다. 성폭력 조사팀의 윤경회 팀장은 성폭력 및 국가폭력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상담가 이다감을 전문위원으로 위촉했다. 그리고 전문위원을 면담 조사에 동행하면서 피해자가 증언 과정 자체를 치유로 경험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들은 일부 장면과 특정 감각만을 기억하는 트라우마 증언을 '감각 기억'으로 접근하고 피해자의 언어를 생애사적으로 이해했다. 기존 조사팀의 방식대로 증언의 유효성을 평가하는 기준을 미리 세우고, 거기에 맞춰서 피해 증언을 '심사'하지 않았다. 피해자의 증언에서 출발하여 이들의 기억과 언어의 특성을 파악하고 이를 통해 진실을 구성할 수 있는 원칙과 방식을 만든 것이다. 이러한 피해자 중심적 접근의 원칙은 과거 관료적인 조사에서 피해자가 느꼈던 모욕과 불신, 배신감 대신 공감과 치유 그리고 고통을 공유한 다른 이들과 연결되고 싶다는 소망을 불러일으켰다.
"나랑 같은 피해 입었다는 사람들 얼굴 한번 보고 싶어. 별말 안 해도 보는 것만으로 위로가 될 것 같아."
조사관과 상담자에게 내비친 피해자의 진심은 스스로 치유하고자 하는 피해자의 의지를 암시하는 것이기도 했다. 피해자들의 고통은 물론 5·18 이후에도 자신의 삶을 일궈나간 강인한 생명력의 목격자였던 조사팀은 그 소망에 응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2024년 4월 28일, 피해자 및 그들을 대신한 가족 10인과 조사 활동 관계자, 연구자 간의 첫 만남인 간담회가 이루어진다. 동그랗게 둘러앉은 피해자들은 서로의 눈을 마주했다. 돌아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호흡이 가빠지고 울음이 터져 말이 끊어지는 경우가 잦았지만, 이들은 상대방 몸속 저 안쪽의 깊은 아픔을 꿰뚫어 보았다.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원 안에서 주고 받은 눈빛과 미소, 따뜻한 포옹은 이들에게 처음 안전한 공동체의 소속감을 몸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 '열매'의 간담회 3부 '치유와 연대'의 시간에는 서로가 손을 잡고 하나의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엘름 댄스(Elm Dance)를 통해 치유적 경험을 했다. 따뜻한 체온이 맞잡은 손으로 전해지며 함께하는 미래를 그리게 되었다. 이들은 다음 모임을 약속하며 헤어졌다. '열매'의 미래를 예감했던 약속이기도 했다.
ⓒ 열매
첫 만남에서 느낀 결속은 이들에게 진실 이후 도래해야 할 정의와 치유를 쟁취하는 일을 꿈꾸게 만들었다. 5·18 성폭력의 진실이 밝혀진 여정이 상징하듯 취약한 개인들도 함께일 때 강해진다. 이들은 다시 만난 2024년 8월 29일, 서로를 '열매'로 부르기로 했다. '열매'는 16인의 피해자와 그 가족, 그리고 간사 윤경회와 상담가 이다감으로 조직되었다. 진상위 조사팀장과 전문위원이었던 두 사람이 열매의 구심점이 된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진상규명이 확정되고 진상위의 임기가 끝났지만 밝혀진 진실만으로는 어떤 변화도 보장되지 않는다. 피해자를 위한 실질적인 정의 구현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운동이 시작될 수밖에 없으며, 보통 이 운동은 법제도가 구획한 한계선에서 출발한다. '열매'는 기존의 기관이나 단체, 정책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스스로가 운동의 주체가 되는 수밖에.
'열매'는 이 경계를 넘어선 결의에 찬 여성들이다. 피해를 입증하고 호소해야하는 피해자의 의무에 구속되지 않고 젠더 폭력 치유 회복을 주장하는 증언자로 거듭났다. 2024년 9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5·18 성폭력 피해자 증언대회'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열매는 사건 번호로 대체됐던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세상에 당당히 얼굴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해 12월 12일, 국가를 상대로 5·18 성폭력 피해에 대한 집단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다. 열매 내부로는 자체적인 치유회복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한편 5·18을 포함한 한국 과거사의 젠더 폭력을 문제화하는 대외 활동을 이어왔다.
열매의 거침없는 행보에 관심과 지지를 보내는 이들이 조금씩 '열매' 동심원 바깥으로 모이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다.
[열매 송혜림 기자]
5·18 성폭력 문제의 공론화를 가로막았던 침묵의 공조는 2018년 5월 등장한 증언으로 균열이 간다. 5· 릴게임무료 18 관련 수사 과정에서 겪은 성폭력 피해를 고발한 김선옥에 의해서였다.
전남대 음악교육과 학생이었던 그녀는 5·18 항쟁 기간 전남도청 상황실에서 학생수습대책위원회로 활동했다. 27일 새벽 도청에서 빠져나오며 살아남았지만, 그해 7월 계엄사령부 수사관에 의해 상무대 영창으로 연행되었다. 그리고 구금된 두 달 동안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폭력 바다이야기슬롯 을 입었다.
김선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상무대에서 겪은 고문 수사와 모욕 그리고 성폭력을 오랜 고민과 망설임 속에서 단단해진 언어로 침착하게 증언했다. 피해 당사자가 실명과 얼굴을 내건 공개 증언은 '5·18 광주 특위 청문회' 이후 30년 만에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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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수습대책위 활동 당시 김선옥(좌)과 MBC 뉴스데스크의 김선옥 증언 보도 화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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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외면 당한 성폭력 증언과는 달리 김선옥의 증언은 변화를 만들어냈다. 증언이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성폭력 문제에 사회적 공분이 모이자, 정부는 본격적인 조사를 위한 공동조사단을 발족한다. 짧은 조사 기간과 한정 바다이야기온라인 된 수사 권한으로 조사단 활동은 미미하게 종결됐지만 2020년 5·18진상규명위(아래 진상위)에서 조사단의 자료를 검토하면서 성폭력 조사에 관한 직권조사가 시작되었다.
5·18 진상규명법에 '성폭력 및 정신적·신체적 후유증 발생 등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이 포함되고, 진상위 조사를 통해 2023년 12월 진상규명 결정이 내려진 것도 김선옥의 증언이 싹틔운 결실이다. 그녀의 공개 증언이 유의미한 사회정치적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던 배경에는 2018년 한국 사회의 전방위적인 '미투(MeToo) 운동'이 있었다. 김선옥은 그해 초 서지현 검사의 미투로 자신 또한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밝힌다.
'나도 겪었다'라는 미투의 곁에는 '당신을 지지한다'라는 '위드유(With You)'의 지지가 존재했기 때문에 김선옥의 증언이 들리고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던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증언자
피해 증언을 청취하는 사회적 감수성과 정치적 지형이 달라진 것도 중요했지만, 5·18 성폭력이 진상 규명되는 데 핵심이 되었던 것은 증언을 통해 이어진 피해자들의 용기다. 그동안 침묵한 채 숨어 있던 피해자들이 김선옥의 증언을 계기로 자신의 피해를 증언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는 김선옥이 증언을 결심한 이유이기도 했다.
"내 뒤를 따라오는 사람들은 나처럼 아프고 병들지 않을 수 있게, 언제든 손을 잡아주고 싶어.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누구의 부끄러움도 없이 당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고 국가로부터 사과받고 치유받을 기회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 - 김선옥의 '한겨레' 인터뷰(2024.12.12.) 중에서
김선옥은 자신의 피해를 호소하는 데 머물지 않고 다른 피해자들의 삶과 고통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어했다. 경험적으로 그녀는 5·18 성폭력 피해자가 많이 존재하며 그들이 흩어진 채 홀로 고통을 삭이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뿐만 아니라 침묵하고 있는 타인들을 위해 증언했다.
이 증언이 보낸 '당신의 고통은 당신만의 부끄러운 피해가 아니며 우리는 함께 정의를 되찾을 수 있다'라는 메시지는 침묵하고 있던 이들에게 가닿았다. 52건의 성폭력 피해 의혹 사건 중 진상위의 당사자 조사가 가능했던 사건은 19건이다. 이들 중 12명이 김선옥과 서지현 검사의 미투로 증언을 결심했다고 밝힌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가 다른 피해자의 증언을 듣고 말하기를 결심하는 증언의 '이어말하기'는 진실을 향한 기억 투쟁의 여정과도 겹친다. 만약 다른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김선옥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 진실이 밝혀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진상위는 2024년 공개한 '진상규명보고서'에서 여러 성폭력 사건들을 종합할 때 비로소 드러나는 국가폭력과 성폭력의 관련성을 지적한다.
피해 시기와 장소, 유형은 모두 다르지만 19인의 피해 양상은 항쟁 기간 계엄군의 지침과 작전 양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 높은 연관성은 5·18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이 특정 군경·수사관의 일탈로 치부할 수 없는 국가폭력의 구조 안에서 발생했음을 증명한다.
나아가 5·18 성폭력 피해를 인정하고 피해자의 신체적·정신적 상처를 회복하는데 국가의 책임이 있다는 점도 분명히 밝힌다. 이처럼 5·18 성폭력의 진실을 규명하고 국가의 책임을 추궁할 수 있던 것은 진상위 조사에서 여전히 고통스러운 기억을 최선을 다해 회상하고 전달하고자 했던 피해 증언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해자의 부서진 말들을 '증언'으로 듣고자 했던 조사팀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의와 치유의 '주체'가 되겠다는 결심, 그 후
▲ '열매'의 첫 간담회는 조사관과 군 지원단, 상담전문가로 이루어진 실무팀의 세 차례 기획회의를 거쳐 신중하게 준비되었다. 센터피스(중앙의 장식물)를 중심으로 둘러앉는 자리 배치는 위계나 분할 없이 모두가 동등한 일원임을 강조한다. 빈 의자 위에 이 자리를 원했던 피해자와 모임을 준비한 실무팀의 설렘과 불안, 기대와 기쁨이 놓여있는 듯하다.
ⓒ 열매
조사에서 증언했던 피해자들은 서로 알지 못했다. 그러나 진상위 조사 과정은 이들이 소박한 소망을 품게 했다. 성폭력 조사팀의 윤경회 팀장은 성폭력 및 국가폭력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상담가 이다감을 전문위원으로 위촉했다. 그리고 전문위원을 면담 조사에 동행하면서 피해자가 증언 과정 자체를 치유로 경험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들은 일부 장면과 특정 감각만을 기억하는 트라우마 증언을 '감각 기억'으로 접근하고 피해자의 언어를 생애사적으로 이해했다. 기존 조사팀의 방식대로 증언의 유효성을 평가하는 기준을 미리 세우고, 거기에 맞춰서 피해 증언을 '심사'하지 않았다. 피해자의 증언에서 출발하여 이들의 기억과 언어의 특성을 파악하고 이를 통해 진실을 구성할 수 있는 원칙과 방식을 만든 것이다. 이러한 피해자 중심적 접근의 원칙은 과거 관료적인 조사에서 피해자가 느꼈던 모욕과 불신, 배신감 대신 공감과 치유 그리고 고통을 공유한 다른 이들과 연결되고 싶다는 소망을 불러일으켰다.
"나랑 같은 피해 입었다는 사람들 얼굴 한번 보고 싶어. 별말 안 해도 보는 것만으로 위로가 될 것 같아."
조사관과 상담자에게 내비친 피해자의 진심은 스스로 치유하고자 하는 피해자의 의지를 암시하는 것이기도 했다. 피해자들의 고통은 물론 5·18 이후에도 자신의 삶을 일궈나간 강인한 생명력의 목격자였던 조사팀은 그 소망에 응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2024년 4월 28일, 피해자 및 그들을 대신한 가족 10인과 조사 활동 관계자, 연구자 간의 첫 만남인 간담회가 이루어진다. 동그랗게 둘러앉은 피해자들은 서로의 눈을 마주했다. 돌아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호흡이 가빠지고 울음이 터져 말이 끊어지는 경우가 잦았지만, 이들은 상대방 몸속 저 안쪽의 깊은 아픔을 꿰뚫어 보았다.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원 안에서 주고 받은 눈빛과 미소, 따뜻한 포옹은 이들에게 처음 안전한 공동체의 소속감을 몸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 '열매'의 간담회 3부 '치유와 연대'의 시간에는 서로가 손을 잡고 하나의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엘름 댄스(Elm Dance)를 통해 치유적 경험을 했다. 따뜻한 체온이 맞잡은 손으로 전해지며 함께하는 미래를 그리게 되었다. 이들은 다음 모임을 약속하며 헤어졌다. '열매'의 미래를 예감했던 약속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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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에서 느낀 결속은 이들에게 진실 이후 도래해야 할 정의와 치유를 쟁취하는 일을 꿈꾸게 만들었다. 5·18 성폭력의 진실이 밝혀진 여정이 상징하듯 취약한 개인들도 함께일 때 강해진다. 이들은 다시 만난 2024년 8월 29일, 서로를 '열매'로 부르기로 했다. '열매'는 16인의 피해자와 그 가족, 그리고 간사 윤경회와 상담가 이다감으로 조직되었다. 진상위 조사팀장과 전문위원이었던 두 사람이 열매의 구심점이 된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진상규명이 확정되고 진상위의 임기가 끝났지만 밝혀진 진실만으로는 어떤 변화도 보장되지 않는다. 피해자를 위한 실질적인 정의 구현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운동이 시작될 수밖에 없으며, 보통 이 운동은 법제도가 구획한 한계선에서 출발한다. '열매'는 기존의 기관이나 단체, 정책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스스로가 운동의 주체가 되는 수밖에.
'열매'는 이 경계를 넘어선 결의에 찬 여성들이다. 피해를 입증하고 호소해야하는 피해자의 의무에 구속되지 않고 젠더 폭력 치유 회복을 주장하는 증언자로 거듭났다. 2024년 9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5·18 성폭력 피해자 증언대회'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열매는 사건 번호로 대체됐던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세상에 당당히 얼굴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해 12월 12일, 국가를 상대로 5·18 성폭력 피해에 대한 집단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다. 열매 내부로는 자체적인 치유회복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한편 5·18을 포함한 한국 과거사의 젠더 폭력을 문제화하는 대외 활동을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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