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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을 뒤로하고 새로운 삶을 선택했습니다. 2024년 5월, 나란히 사표를 던진 부부가 은퇴 이후 마주한 현실과 그 과정에서 발견한 삶의 가치들을 기록합니다. <기자말>
[김봉석 기자]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의 중심, 루자 광장을 지나 렉터 궁전(Rector's Palace)의 입구에 들어설 때 가장 먼저 여행자를 압도하는 것은 화려한 기둥이 아니다. 차가운 돌벽에 새겨진 한 줄의 라틴어 문장, 그것이 이 건물의 진짜 정체성이다.
"Obliti privatorum publica curate(사사로운 정은 잊고 공공의 일을 돌보라)."
손오공릴게임 매일 아침 집무실로 향하던 라구사 공화국의 수장 렉터(Rector, 라구사 공화국 통치자의 직함)는 이 문구를 마주하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놀랍게도 이곳의 통치자들은 독재를 방지하기 위해 단 '한 달'이라는 극도로 짧은 임기를 부여 받았다. 그 한 달 동안 렉터는 가족과 떨어져 이 궁전 안에만 머물며 오직 국정의 책임만을 짊어져야 했다. 권력은 누리는 특 백경릴게임 권이 아니라, 잠시 맡겨진 무거운 소명임을 800년 전의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무너지고 다시 일어선 도시의 기록
렉터 궁전은 15세기에 처음 세워진 이후 1463년 화약고 폭발과 1667년 대지진이라는 거대한 시련을 겪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두브로브니크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무너진 돌 릴게임바다신2 을 다시 쌓아 올렸다. 그 과정에서 고딕의 우아함, 르네상스의 조화로움, 바로크의 화려함이 켜켜이 쌓여 오늘날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빚어냈다. 이곳은 완벽한 미를 추구한 건물이 아니라, 시련을 딛고 일어선 도시의 '복원된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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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렉터 궁전' 외관. 루자 광장을 향해 열린 렉터 궁전의 로지아.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이 공존하는 이 건물은 15세기 이후 여러 차례 재건되며 두브로브니크의 정치사를 그대로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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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봉석
궁전 안으로 들어서면 화려한 왕좌 대신 사방으로 열린 안뜰을 마주하게 된다. 햇빛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개방적인 구조는 라구사 공화국이 추구했던 통치 철학을 반영한다. 이곳에서 렉터는 군주처럼 군림하지 않았다. 시민과 외교 사절, 귀족들이 오가며 자연스럽게 권력의 중심을 공유했다. '권력의 시선'을 낮추고 시민과 같은 높이에서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공간 설계에 녹아 있다.
▲ 아치형 화랑과 안뜰. 외부와 내부를 잇는 1층 회랑. 통치자의 권위를 과시하기보다 시민과 권력이 자연스럽게 교차하도록 설계된 공간이다.
ⓒ 김봉석
궁전 내부에 전시된 초상화실은 이 도시가 추구한 가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금빛 프레임 속 인물들은 대부분 검소한 복장과 절제된 표정으로 그려졌다. 단 한 달의 임기를 가진 통치자에게 필요한 것은 카리스마보다 신뢰였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권력은 개인에게 축적되지 않는다. 남는 것은 공적 책임의 흔적 뿐이다.
▲ 초상화 전시실. 라구사 공화국을 이끈 인물들의 초상화가 전시된 공간. 절제된 복장과 표정은 이 도시가 추구한 ‘권력의 겸손함’을 보여준다.
ⓒ 김봉석
생활 공간 역시 놀라울 정도로 소박하다. 화려한 가구들은 개인의 사치가 아니라 국가의 품격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였다. 임기 동안 가족조차 만날 수 없었던 렉터의 고립은 권력의 집중을 막기 위한 가혹하지만 명확한 제도적 장치였다.
▲ '렉터 궁전'의 침실 전시실. 임기 동안 궁전을 떠날 수 없었던 렉터의 생활 공간. 화려해 보이지만 개인의 사치가 아닌 국가의 품격을 상징한다.
ⓒ 김봉석
외교의 언어, 예술로 평화를 사다
상업과 외교로 번영한 두브로브니크는 군사 강국이 아니었다. 대신 그들은 외교 문서와 조약, 그리고 예술을 통해 생존했다. 궁전 내부의 하프시코드와 바로크 회화들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다. 문화는 곧 정치의 연장이었고, 예술은 국가의 언어였다. 무력보다 세련된 설득으로 평화를 지켜냈던 이들의 지혜가 공간 곳곳에 스며 있다.
▲ 하프시코드와 예술품. 외교와 문화가 정치의 일부였던 라구사 공화국을 상징하는 악기. 궁전은 국정 운영의 공간이자 문화 교류의 중심지였다.
ⓒ 김봉석
궁전 한쪽에 전시된 18세기 가마 또한 흥미롭다. 당시 귀족이나 외교 사절이 사용했던 이 가마는 걷는 거리마저 정치적 행위였던 시대를 증언한다. 바다로는 자유를, 육지에서는 철저한 질서를 택했던 도시의 이면을 가마라는 폐쇄적인 이동 수단을 통해 엿볼 수 있다.
▲ 18세기 가마. 귀족과 외교 사절이 사용했던 가마. 두브로브니크가 해상과 육로를 잇는 외교 도시였음을 보여준다.
ⓒ 김봉석
가장 깊은 곳에 남겨진 현대사의 비극
궁전의 역사는 중세에서 멈추지 않는다. 지하로 내려가면 법 앞에서 예외를 두지 않았던 엄격한 감옥 공간이 나오고, 더 깊숙한 곳에서는 1991~1992년 두브로브니크 독립전쟁의 기록과 마주하게 된다.
▲ 두브로브니크 독립전쟁 사진 전시실. 1991~1992년 두브로브니크가 겪은 독립전쟁을 기록한 사진전 안내 포스터. 렉터 궁전은 중세 정치 공간을 넘어 현대사의 상처까지 기록한다.
ⓒ 김봉석
화려한 회랑과 귀족의 생활 공간을 지나 도달한 이곳은, 시간적으로 가장 가깝지만 정서적으로는 가장 무거운 장소다. 1991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크로아티아는 독립을 선언했고, 그 여파는 아드리아 해의 평화로운 항구 도시 두브로브니크에도 닿았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시가지는 군사적 요충지가 아니었음에도 포격을 받았고, 수세기 동안 보존돼 온 성벽과 지붕, 교회가 무너졌다. 이 전쟁은 중세의 침략사가 아닌, 불과 30여 년 전 유럽에서 벌어진 현실이었다.
전시된 사진들은 폭격 장면보다 그 이후를 담는다. 무너진 지붕, 검게 그을린 돌벽, 그리고 폐허가 된 거리 속에서도 일상을 이어가려는 사람들의 모습. 사진은 설명을 과장하지 않고, 오히려 침묵에 가깝다. 렉터 궁전의 지하 공간을 활용한 이 전시는 의도적으로 낮은 천장과 거친 석벽을 그대로 드러낸다. 관람자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인 채 사진과 마주하게 된다.
라구사 공화국이 외교와 절제로 생존했던 도시가, 20세기 말 다시 폭력 앞에 놓였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두브로브니크는 다시 무너진 돌을 하나씩 쌓아 올렸다. 중세의 지진 이후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렉터 궁전이 이 전시를 품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곳은 과거의 이상만을 기념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 이상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경고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렉터 궁전을 나서며 입구의 그 문장을 다시 한번 되뇌어 본다.
"사사로운 정은 잊고 공공의 일을 돌보라."
이 문장은 박제된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한 달짜리 권력이라는 극단적인 실험을 통해 라구사 공화국이 증명한 것은 자명하다. 권력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짧게 맡고 무겁게 책임지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두브로브니크의 돌벽이 오늘날까지 무너지지 않은 이유는 단단한 석회암 때문만이 아니다. 그 안에 새겨진 정치 철학이 여전히 생명력을 가지고 숨 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김봉석 기자]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의 중심, 루자 광장을 지나 렉터 궁전(Rector's Palace)의 입구에 들어설 때 가장 먼저 여행자를 압도하는 것은 화려한 기둥이 아니다. 차가운 돌벽에 새겨진 한 줄의 라틴어 문장, 그것이 이 건물의 진짜 정체성이다.
"Obliti privatorum publica curate(사사로운 정은 잊고 공공의 일을 돌보라)."
손오공릴게임 매일 아침 집무실로 향하던 라구사 공화국의 수장 렉터(Rector, 라구사 공화국 통치자의 직함)는 이 문구를 마주하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놀랍게도 이곳의 통치자들은 독재를 방지하기 위해 단 '한 달'이라는 극도로 짧은 임기를 부여 받았다. 그 한 달 동안 렉터는 가족과 떨어져 이 궁전 안에만 머물며 오직 국정의 책임만을 짊어져야 했다. 권력은 누리는 특 백경릴게임 권이 아니라, 잠시 맡겨진 무거운 소명임을 800년 전의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무너지고 다시 일어선 도시의 기록
렉터 궁전은 15세기에 처음 세워진 이후 1463년 화약고 폭발과 1667년 대지진이라는 거대한 시련을 겪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두브로브니크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무너진 돌 릴게임바다신2 을 다시 쌓아 올렸다. 그 과정에서 고딕의 우아함, 르네상스의 조화로움, 바로크의 화려함이 켜켜이 쌓여 오늘날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빚어냈다. 이곳은 완벽한 미를 추구한 건물이 아니라, 시련을 딛고 일어선 도시의 '복원된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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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렉터 궁전' 외관. 루자 광장을 향해 열린 렉터 궁전의 로지아.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이 공존하는 이 건물은 15세기 이후 여러 차례 재건되며 두브로브니크의 정치사를 그대로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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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봉석
궁전 안으로 들어서면 화려한 왕좌 대신 사방으로 열린 안뜰을 마주하게 된다. 햇빛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개방적인 구조는 라구사 공화국이 추구했던 통치 철학을 반영한다. 이곳에서 렉터는 군주처럼 군림하지 않았다. 시민과 외교 사절, 귀족들이 오가며 자연스럽게 권력의 중심을 공유했다. '권력의 시선'을 낮추고 시민과 같은 높이에서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공간 설계에 녹아 있다.
▲ 아치형 화랑과 안뜰. 외부와 내부를 잇는 1층 회랑. 통치자의 권위를 과시하기보다 시민과 권력이 자연스럽게 교차하도록 설계된 공간이다.
ⓒ 김봉석
궁전 내부에 전시된 초상화실은 이 도시가 추구한 가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금빛 프레임 속 인물들은 대부분 검소한 복장과 절제된 표정으로 그려졌다. 단 한 달의 임기를 가진 통치자에게 필요한 것은 카리스마보다 신뢰였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권력은 개인에게 축적되지 않는다. 남는 것은 공적 책임의 흔적 뿐이다.
▲ 초상화 전시실. 라구사 공화국을 이끈 인물들의 초상화가 전시된 공간. 절제된 복장과 표정은 이 도시가 추구한 ‘권력의 겸손함’을 보여준다.
ⓒ 김봉석
생활 공간 역시 놀라울 정도로 소박하다. 화려한 가구들은 개인의 사치가 아니라 국가의 품격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였다. 임기 동안 가족조차 만날 수 없었던 렉터의 고립은 권력의 집중을 막기 위한 가혹하지만 명확한 제도적 장치였다.
▲ '렉터 궁전'의 침실 전시실. 임기 동안 궁전을 떠날 수 없었던 렉터의 생활 공간. 화려해 보이지만 개인의 사치가 아닌 국가의 품격을 상징한다.
ⓒ 김봉석
외교의 언어, 예술로 평화를 사다
상업과 외교로 번영한 두브로브니크는 군사 강국이 아니었다. 대신 그들은 외교 문서와 조약, 그리고 예술을 통해 생존했다. 궁전 내부의 하프시코드와 바로크 회화들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다. 문화는 곧 정치의 연장이었고, 예술은 국가의 언어였다. 무력보다 세련된 설득으로 평화를 지켜냈던 이들의 지혜가 공간 곳곳에 스며 있다.
▲ 하프시코드와 예술품. 외교와 문화가 정치의 일부였던 라구사 공화국을 상징하는 악기. 궁전은 국정 운영의 공간이자 문화 교류의 중심지였다.
ⓒ 김봉석
궁전 한쪽에 전시된 18세기 가마 또한 흥미롭다. 당시 귀족이나 외교 사절이 사용했던 이 가마는 걷는 거리마저 정치적 행위였던 시대를 증언한다. 바다로는 자유를, 육지에서는 철저한 질서를 택했던 도시의 이면을 가마라는 폐쇄적인 이동 수단을 통해 엿볼 수 있다.
▲ 18세기 가마. 귀족과 외교 사절이 사용했던 가마. 두브로브니크가 해상과 육로를 잇는 외교 도시였음을 보여준다.
ⓒ 김봉석
가장 깊은 곳에 남겨진 현대사의 비극
궁전의 역사는 중세에서 멈추지 않는다. 지하로 내려가면 법 앞에서 예외를 두지 않았던 엄격한 감옥 공간이 나오고, 더 깊숙한 곳에서는 1991~1992년 두브로브니크 독립전쟁의 기록과 마주하게 된다.
▲ 두브로브니크 독립전쟁 사진 전시실. 1991~1992년 두브로브니크가 겪은 독립전쟁을 기록한 사진전 안내 포스터. 렉터 궁전은 중세 정치 공간을 넘어 현대사의 상처까지 기록한다.
ⓒ 김봉석
화려한 회랑과 귀족의 생활 공간을 지나 도달한 이곳은, 시간적으로 가장 가깝지만 정서적으로는 가장 무거운 장소다. 1991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크로아티아는 독립을 선언했고, 그 여파는 아드리아 해의 평화로운 항구 도시 두브로브니크에도 닿았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시가지는 군사적 요충지가 아니었음에도 포격을 받았고, 수세기 동안 보존돼 온 성벽과 지붕, 교회가 무너졌다. 이 전쟁은 중세의 침략사가 아닌, 불과 30여 년 전 유럽에서 벌어진 현실이었다.
전시된 사진들은 폭격 장면보다 그 이후를 담는다. 무너진 지붕, 검게 그을린 돌벽, 그리고 폐허가 된 거리 속에서도 일상을 이어가려는 사람들의 모습. 사진은 설명을 과장하지 않고, 오히려 침묵에 가깝다. 렉터 궁전의 지하 공간을 활용한 이 전시는 의도적으로 낮은 천장과 거친 석벽을 그대로 드러낸다. 관람자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인 채 사진과 마주하게 된다.
라구사 공화국이 외교와 절제로 생존했던 도시가, 20세기 말 다시 폭력 앞에 놓였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두브로브니크는 다시 무너진 돌을 하나씩 쌓아 올렸다. 중세의 지진 이후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렉터 궁전이 이 전시를 품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곳은 과거의 이상만을 기념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 이상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경고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렉터 궁전을 나서며 입구의 그 문장을 다시 한번 되뇌어 본다.
"사사로운 정은 잊고 공공의 일을 돌보라."
이 문장은 박제된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한 달짜리 권력이라는 극단적인 실험을 통해 라구사 공화국이 증명한 것은 자명하다. 권력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짧게 맡고 무겁게 책임지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두브로브니크의 돌벽이 오늘날까지 무너지지 않은 이유는 단단한 석회암 때문만이 아니다. 그 안에 새겨진 정치 철학이 여전히 생명력을 가지고 숨 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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