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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에도 눈치를 의 건 했니?”“리츠! 간호사다. 괜히[홍윤희 기자]
▲ 장애인교원노조 경기도지부장인 박병찬 교사가 사단법인 무의 장애청년여성 토크콘서트 '걸즈온휠즈'에 참여하여 학교 접근성 현황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 박병찬
"저랑 같이 회식 온라인야마토게임 하는 선생님들은 빨대로 맥주 마시는 법을 아십니다."
2025년 박병찬 교사를 장애인교원노동조합(장교조) 모임에서 만났을 때 들었던 말이다. 17년 차 초등학교 교사인 박 교사는 현장에서 보기 드문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교원으로 학교 장애 접근성 확대에 큰 역할을 해 왔다. 2025년 사단법인 무의가 기획한 학교 장 바다이야기프로그램 애 접근성 조사인 '모모탐사대'(모두의 학교 by 모두의 1층)에서도 직접 학생들과 함께 활동에 참여했다. 박 교사를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 어떻게 교사가 되었는지?
"어릴 적에는 활발한 성격에 체육을 좋아해 경찰관, 소방관을 꿈꿨다. 초중고 12년 중 11년간 학생회 임원을 하며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했다. 그러다 고등 카카오야마토 학교 3학년, 군 입대 신검 후 '큰 병원을 가 보라'는 소견을 받고 병원 검사 후 희귀 근육병 진단을 받았다. 경찰대를 지망했었는데 당시 큰 충격을 받고 방황하다가 경인교육대학교에 진학했다.
교대를 다니는 동안에도 활동량이 많은 초등교사를 할 수 있을지 회의하며 자퇴까지 고민했다. 그러다 교사를 선택한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 교생실습 때 쿨사이다릴게임 였다. 벽 짚고 뒤뚱거리며 다녔던 시기인데 아이들이 장애를 가진 교사에게 거부감만 있을 줄 알았는데 더 다가와 주더라.
또한 당시 서울대학교 병원 담당 주치의가 해 준 말도 큰 용기를 줬다. '교육 환경에 선생님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교육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후, 다양성과 포용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교직을 선택해 바다이야기무료 2009년부터 교사로 일하고 있다. 2008년 장애인 교원 임용이 생긴 후 경기도에서 최초의 장애인 교원 사례였고 사실상 전국 최초 사례였다."
"일상적인 불편함 또한 상존"
▲ 박병찬 교사가 교원연수 참여했을 때 연수 장소에 휠체어가 들어가는 책상이 없어 휠체어에 앉아 책상 없이 연수를 들어야 했던 모습.
ⓒ 박병찬
- 중도에 장애 진단을 받고 휠체어도 이용하게 되었는데, 장애 교사로서 어려운 점이 많았을 것 같다.
"정말 많지만... 우선 3년 차 교사 연수를 계단식 강의실에서 들어야 했던 때가 기억난다. 제대로 자리에 앉을 수 없어 통로 구석에 책상도 없이 연수를 들었다. 구석에 우두커니 앉아 수치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한 번은 학부모 총회에서 학부모들에게 인사를 하려는데, 경사로를 간이 의자들이 막고 있어 교실로 돌아가야만 했다. 남자 장애인 화장실을 휠체어로 이용하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여자 장애인 화장실을 이용하다 학부모와 마주쳐 곤란한 적도 있었다. 운동장에 설치된 펜스 때문에 휠체어가 가로막혀 운동장 수업을 하지 못하고 보조 인력이 펜스를 밀어 공간을 만들어주어야 지나갈 수 있었던 사건도 기억난다.
일상적인 불편함 또한 상존한다. 쉬는 시간 10분은 화장실을 다녀올 물리적 시간이 안 된다. 장애인 화장실은 건물에 하나뿐이라 동선이 길다. 종종 수업이 끝날 때까지 참는다. 지진, 화재 등 자연재해 대피 훈련 때는 굉장히 난감하다. 재해 때는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지 못하는데, 학교에 왔던 소방관에게 '나의 경우 어떻게 대피하는가'라고 물었더니 휠체어 이용자 대피 매뉴얼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실제 상황에서도 구조대가 올 때까지 생존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게 매뉴얼이란다."
- 초등교사는 체육수업도 해야 하는데 어떻게 진행하는가?
"예전 학교에선 교장선생님을 찾아가 '담임을 맡고 싶은데, 체육수업은 못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이례적으로 옆 반 교사와 사회, 체육 교과를 교환하여 수업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옆 반 담임이 체육을 세 시수, 내가 사회를 세 시수 하는 형태였다. 작년에는 5학년 담임을 맡았는데, 학교에서 체육 전담 교사를 배정해 주어 한결 수월하게 담임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정당한 편의 지원만 제공된다면 장애인 교원도 충분히 담임을 맡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한다."
- 장애 교사가 처음이었으니 말 그대로 몸으로 부딪쳐 지금의 지원을 얻어내셨다. 교육 당국의 지원 실태는?
"교사 발령 후, '휠체어를 탄 초등교사가 처음이라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교육부와 본청 관계자가 찾아올 만큼 장애 교원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다. 당시 장애 교원 관련 매뉴얼 마련을 요청해 관리 규정에 '중증장애인 교원'이라는 명칭이 실리게 됐다.
2014년에 경기도교육청 인사과에서 찾아와 학교생활의 어려움을 물어 보조 인력 지원을 요청했다. 이전까지 사회복무요원의 도움을 받고 있었는데, 1200만 원의 예산을 학교로 지원받아 인력을 제공받을 수 있었다. 경기도 소재 초등학교 중 최초의 사례였다."
- 지원은 교육부가 하는 건가, 교육청이 하는 건가? 지원체계가 교육청마다 다른가?
"교육청이 장애인 교원 편의 지원을 시작한 건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경기 북부의 한 중등 교사가 낸 진정에 화답해 '장애인 교원에 대한 책임은 각 시도교육청에서 맡아야 한다'며 시정을 권고한 후였다. 그전에는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서로 떠넘기기식으로 갈등을 겪는 구조였다. 예산 등의 문제로 교육청마다 지원체계가 천차만별이다. 이 때문에 내가 소속된 장교조는 17개 시도의 장애 교원 지원을 교육부에서 일괄적으로 해줄 것을 주장하고 있다."
- 근로지원인 제도는 장애인 교원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우선 장애인고용공단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 장애인 근로자를 단순히 감시하고 통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장애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장애인 근로자가 근무지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고용노동부 장관 고시를 통해 17년 넘게 정체되어 있는 근로지원인 제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장애인 개인의 문제가 모두의 문제가 될 수 있음 느낄 수 있어"
▲ 박병찬 교사는 10대 후반 근육병을 진단받고 교사 생활을 하며 휠체어를 이용하게 됐다. 사진은 휠체어를 이용하기 전 박 교사의 모습.
ⓒ 박병찬
- 장교조를 알게 된 계기는?
"2022년 근로지원인 문제로 장애인고용공단과 갈등이 있었다. 근로지원인 제도는 하루 8시간에 한정해 근무지에서 150m만 벗어나도 근무지 이탈로 인한 부정수급으로 처리한다. 장애인의 노동을 단순 노무, 단순 작업 등으로 협소하게 보는 탓이다. 공장처럼 한 공간에서만 일한다는 전제 하에 생긴 규정들로 다양해진 장애인 근무 형태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교 밖 편의점에 가는데도 두 사람이 같이 있다고 사진을 찍어 올려야 한다. 또한 근로지원인은 업무 부수적인 일만 해야 하기 때문에 신체 지원은 안 된다. 나의 경우 손을 못 쓰는데 근로지원인이 물을 먹여줘도 안 된다. 이에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장교조를 알게 되었다.
장교조와 제도개선을 이뤄낸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2018년 활동지원사가 나를 놓쳐 허벅지 골절이 되는 일이 있었다. 70 바늘 이상 꿰매는 중상을 입고 휠체어에 앉을 때마다 상처가 압박되고 터져나갔다. 상처 회복을 위해 질병 휴직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질병 휴직 시 완치 판정을 받지 못하면 의원면직이 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내 경우 장애로 인해 완치 판정 자체가 불가능했는데, 이런 경우 규정이 없었다. 강력한 문제 제기로 교육부-장교조간 단체협약에 질병 휴직 제도개선 항목이 들어가게 됐다.
이전까지 교직에 중증장애인은 나 혼자인 줄 알았다. 혼자 민원 넣고 제보하다가 장교조를 만난 후 동지들이 생겼다는 생각에 기뻤다. 나도 도움을 받지만 내가 도움을 줄 수도 있었다. 장애 당사자들과 라포를 쌓고 서로 도울 수 있다는 것이 보람차게 느껴진다."
- 장교조에서 진행한 활동에 무엇이 있는가?
"2022년 가입해 2025년부터 경기도지부장을 맡고 있다. 장교조에 들어왔을 당시 단체협약이 진행 중이었는데 교육부에서 응하지 않았다. 한 번은 시위를 하는데 세종에 위치한 교육부 청사까지 전국에서 장애 당사자가 오기 힘들기 때문에 단 네 명이 참석했다. 나는 손을 쓸 수 없고... 플래카드를 잡아줄 손조차 부족했다. 오죽하면 맞은편에서 시위하던 전국교직원노조 선생님들이 오셔서 플래카드를 잡아주시더라. 다행히 시위를 계기로 단체협약을 맺게 되었다."
- 사단법인 무의 '모모탐사대'(학교 접근성을 학생과 교사가 직접 조사) 아이디어를 듣고 어떤 느낌을 받았나?
"장애 당사자 교사로서 모모탐사대가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학교 장애 이해 교육을 직접 하는데, 매번 동영상이나 활동지 수준에서 머무르는 게 늘 너무 아쉬웠다. 아이들은 '휠체어 재밌어 보여요', '편해 보여요'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는데, 모모탐사대 활동에서 학생들이 직접 휠체어를 타 보며 장애인 개인의 문제가 곧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직접 느낄 수 있어 보람 있었다.
실제로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휠체어를 밀어본 후 충격을 받았다. 교실에서 걸어서 2분 걸리는 거리가 휠체어를 타니 15분 이상 걸렸다. 한 아이는 '왜 이렇게 늦게 가냐'는 질타를 받고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러나 타박한 학생도 정작 빨리 가지 못해 모두가 접근성 문제를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 모모탐사대를 기획하면서 학교 실제 시설물 개선의 필요성을 느끼고 학생들이 이런 제안을 직접 하는 것까지 나아가기를 바랐다. 직접 해보신 입장에서 어떻게 발전하길 바라는가?
"학교 접근성 제안 아이디어가 너무 좋다. 점차 접근성 탐사 범위를 넓혀가며 동네를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만드는 활동으로 확대되길 바란다. 실제로 사회 교과 동네 탐사 활동을 반에서 진행했는데, 아이들이 보도블록이 튀어나와 위험한 것을 깨닫고 안산시청에 시설물 개선 건의를 한 적이 있다.
이렇게 모모탐사대에서도 '건의 게시판'을 마련해 관계자들이 건의 사항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리적, 제도적 변화는 물론, 아이들이 '우리도 사회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느껴 보다 의미 있는 활동이 될 것이다. 식당, 카페 등을 대상으로 접근성 우수시설을 선정한 것처럼 '휠체어 접근성 우수 학교'를 지정하거나, 리뷰 앱처럼 접근성에 대한 별점을 남길 수 있게 확대되어 가면 좋겠다."
▲ 무의 모모탐사대(모두의 학교 by 모두의 1층)에 참여한 안산 신길초등학교 박병찬 교사 반 학생들이 활동하는 모습. 모모탐사대는 학생과 교사가 휠체어를 타고 장애인화장실에 직접 가보는 등 학교 장애인 편의시설을 조사하는 활동이다.
ⓒ 홍윤희
박 교사의 존재 자체가 변화의 씨앗
- 교사로서의 보람은 무엇인가?
"학기 초 담임을 맡아 아이들을 처음 마주했을 때 어색해하고 당황해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장애인도 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걸 본다. 아이들은 이제 자연스럽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주거나 문을 열어주며 휠체어 이용자에 대한 이해가 생기고 에티켓이 몸에 밴다. 다양성과 포용의 가치를 배운다고 생각한다. 졸업한 제자들이 찾아온 적이 있는데 중고등학교 수업에서 내 기사를 찾아 수업 시간에 발표했다고 하더라. 아이들이 나를 통해 용기를 얻고 있다는 것을 느껴 기특하고 뿌듯했다."
- 교사의 꿈을 가진 장애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예전 의사 선생님이 말해주신 '장애인의 존재 자체가 교육적'이라는 말을 해 주고 싶다. 학교는 단순히 지식만 배우는 것이 아닌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공간이다. 장애인 교사가 교실에 있다는 것 자체로 더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장애 학생의 경우 아무래도 학생 신분이다 보니 교사나 다른 학생들이 시혜적 시선으로 보기가 쉬운데 장애 교원은 다르다. 장애인이 단순히 보살펴야 하는 존재가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임을 장애인이 교직에 있다는 것만으로 깨달을 수 있다.
- 2026년 교사로서의 목표는?
"2025년, 11년 만에 담임을 맡았다. 무사히 한 해를 마치고 올해도 담임을 하게 되었다. 학부모 민원과 안전사고 발생 우려가 있다며 그동안 담임을 맡지 못했는데, 학기가 끝난 후 학부모들이 감사 메시지를 많이 보내주었다. 올해도 즐겁게 담임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
인터뷰를 하며 내내 박병찬 교사는 아마도 '평범한 교사로 존재'하는 게 소망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봤다. 환경은 녹록지 않다. 박 교사가 지난 연말 사단법인 무의에 보내온 편지에도 그런 내용이 담겼다.
"학교는 학생과 선생님만의 공간이 아닙니다. 학교를 방문하는 학부모님, 외부 방문객, 주말에 시험을 치르는 응시생, 학교 시설을 이용하는 지역 주민까지, 학교는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한 열린 공간이어야 합니다. 아직 학교에는 개선해야 할 물리적 장벽들이 존재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장벽들을 발견하고 알리는 역할을 뚝심 있게 해주시길 기대합니다. 더 많은 학교와 아이들이 접근성의 의미를 직접 경험하고, 그 경험이 변화의 씨앗이 되기를 바랍니다."
박 교사의 존재 자체가 변화의 씨앗이다. 2026년에는 그를 '평범한 교사'로 만들게 하는 접근성 활동이 더 많은 학교에서 들불처럼 일어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장애인교원노조 경기도지부장인 박병찬 교사가 사단법인 무의 장애청년여성 토크콘서트 '걸즈온휠즈'에 참여하여 학교 접근성 현황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 박병찬
"저랑 같이 회식 온라인야마토게임 하는 선생님들은 빨대로 맥주 마시는 법을 아십니다."
2025년 박병찬 교사를 장애인교원노동조합(장교조) 모임에서 만났을 때 들었던 말이다. 17년 차 초등학교 교사인 박 교사는 현장에서 보기 드문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교원으로 학교 장애 접근성 확대에 큰 역할을 해 왔다. 2025년 사단법인 무의가 기획한 학교 장 바다이야기프로그램 애 접근성 조사인 '모모탐사대'(모두의 학교 by 모두의 1층)에서도 직접 학생들과 함께 활동에 참여했다. 박 교사를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 어떻게 교사가 되었는지?
"어릴 적에는 활발한 성격에 체육을 좋아해 경찰관, 소방관을 꿈꿨다. 초중고 12년 중 11년간 학생회 임원을 하며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했다. 그러다 고등 카카오야마토 학교 3학년, 군 입대 신검 후 '큰 병원을 가 보라'는 소견을 받고 병원 검사 후 희귀 근육병 진단을 받았다. 경찰대를 지망했었는데 당시 큰 충격을 받고 방황하다가 경인교육대학교에 진학했다.
교대를 다니는 동안에도 활동량이 많은 초등교사를 할 수 있을지 회의하며 자퇴까지 고민했다. 그러다 교사를 선택한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 교생실습 때 쿨사이다릴게임 였다. 벽 짚고 뒤뚱거리며 다녔던 시기인데 아이들이 장애를 가진 교사에게 거부감만 있을 줄 알았는데 더 다가와 주더라.
또한 당시 서울대학교 병원 담당 주치의가 해 준 말도 큰 용기를 줬다. '교육 환경에 선생님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교육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후, 다양성과 포용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교직을 선택해 바다이야기무료 2009년부터 교사로 일하고 있다. 2008년 장애인 교원 임용이 생긴 후 경기도에서 최초의 장애인 교원 사례였고 사실상 전국 최초 사례였다."
"일상적인 불편함 또한 상존"
▲ 박병찬 교사가 교원연수 참여했을 때 연수 장소에 휠체어가 들어가는 책상이 없어 휠체어에 앉아 책상 없이 연수를 들어야 했던 모습.
ⓒ 박병찬
- 중도에 장애 진단을 받고 휠체어도 이용하게 되었는데, 장애 교사로서 어려운 점이 많았을 것 같다.
"정말 많지만... 우선 3년 차 교사 연수를 계단식 강의실에서 들어야 했던 때가 기억난다. 제대로 자리에 앉을 수 없어 통로 구석에 책상도 없이 연수를 들었다. 구석에 우두커니 앉아 수치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한 번은 학부모 총회에서 학부모들에게 인사를 하려는데, 경사로를 간이 의자들이 막고 있어 교실로 돌아가야만 했다. 남자 장애인 화장실을 휠체어로 이용하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여자 장애인 화장실을 이용하다 학부모와 마주쳐 곤란한 적도 있었다. 운동장에 설치된 펜스 때문에 휠체어가 가로막혀 운동장 수업을 하지 못하고 보조 인력이 펜스를 밀어 공간을 만들어주어야 지나갈 수 있었던 사건도 기억난다.
일상적인 불편함 또한 상존한다. 쉬는 시간 10분은 화장실을 다녀올 물리적 시간이 안 된다. 장애인 화장실은 건물에 하나뿐이라 동선이 길다. 종종 수업이 끝날 때까지 참는다. 지진, 화재 등 자연재해 대피 훈련 때는 굉장히 난감하다. 재해 때는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지 못하는데, 학교에 왔던 소방관에게 '나의 경우 어떻게 대피하는가'라고 물었더니 휠체어 이용자 대피 매뉴얼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실제 상황에서도 구조대가 올 때까지 생존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게 매뉴얼이란다."
- 초등교사는 체육수업도 해야 하는데 어떻게 진행하는가?
"예전 학교에선 교장선생님을 찾아가 '담임을 맡고 싶은데, 체육수업은 못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이례적으로 옆 반 교사와 사회, 체육 교과를 교환하여 수업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옆 반 담임이 체육을 세 시수, 내가 사회를 세 시수 하는 형태였다. 작년에는 5학년 담임을 맡았는데, 학교에서 체육 전담 교사를 배정해 주어 한결 수월하게 담임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정당한 편의 지원만 제공된다면 장애인 교원도 충분히 담임을 맡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한다."
- 장애 교사가 처음이었으니 말 그대로 몸으로 부딪쳐 지금의 지원을 얻어내셨다. 교육 당국의 지원 실태는?
"교사 발령 후, '휠체어를 탄 초등교사가 처음이라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교육부와 본청 관계자가 찾아올 만큼 장애 교원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다. 당시 장애 교원 관련 매뉴얼 마련을 요청해 관리 규정에 '중증장애인 교원'이라는 명칭이 실리게 됐다.
2014년에 경기도교육청 인사과에서 찾아와 학교생활의 어려움을 물어 보조 인력 지원을 요청했다. 이전까지 사회복무요원의 도움을 받고 있었는데, 1200만 원의 예산을 학교로 지원받아 인력을 제공받을 수 있었다. 경기도 소재 초등학교 중 최초의 사례였다."
- 지원은 교육부가 하는 건가, 교육청이 하는 건가? 지원체계가 교육청마다 다른가?
"교육청이 장애인 교원 편의 지원을 시작한 건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경기 북부의 한 중등 교사가 낸 진정에 화답해 '장애인 교원에 대한 책임은 각 시도교육청에서 맡아야 한다'며 시정을 권고한 후였다. 그전에는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서로 떠넘기기식으로 갈등을 겪는 구조였다. 예산 등의 문제로 교육청마다 지원체계가 천차만별이다. 이 때문에 내가 소속된 장교조는 17개 시도의 장애 교원 지원을 교육부에서 일괄적으로 해줄 것을 주장하고 있다."
- 근로지원인 제도는 장애인 교원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우선 장애인고용공단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 장애인 근로자를 단순히 감시하고 통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장애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장애인 근로자가 근무지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고용노동부 장관 고시를 통해 17년 넘게 정체되어 있는 근로지원인 제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장애인 개인의 문제가 모두의 문제가 될 수 있음 느낄 수 있어"
▲ 박병찬 교사는 10대 후반 근육병을 진단받고 교사 생활을 하며 휠체어를 이용하게 됐다. 사진은 휠체어를 이용하기 전 박 교사의 모습.
ⓒ 박병찬
- 장교조를 알게 된 계기는?
"2022년 근로지원인 문제로 장애인고용공단과 갈등이 있었다. 근로지원인 제도는 하루 8시간에 한정해 근무지에서 150m만 벗어나도 근무지 이탈로 인한 부정수급으로 처리한다. 장애인의 노동을 단순 노무, 단순 작업 등으로 협소하게 보는 탓이다. 공장처럼 한 공간에서만 일한다는 전제 하에 생긴 규정들로 다양해진 장애인 근무 형태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교 밖 편의점에 가는데도 두 사람이 같이 있다고 사진을 찍어 올려야 한다. 또한 근로지원인은 업무 부수적인 일만 해야 하기 때문에 신체 지원은 안 된다. 나의 경우 손을 못 쓰는데 근로지원인이 물을 먹여줘도 안 된다. 이에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장교조를 알게 되었다.
장교조와 제도개선을 이뤄낸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2018년 활동지원사가 나를 놓쳐 허벅지 골절이 되는 일이 있었다. 70 바늘 이상 꿰매는 중상을 입고 휠체어에 앉을 때마다 상처가 압박되고 터져나갔다. 상처 회복을 위해 질병 휴직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질병 휴직 시 완치 판정을 받지 못하면 의원면직이 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내 경우 장애로 인해 완치 판정 자체가 불가능했는데, 이런 경우 규정이 없었다. 강력한 문제 제기로 교육부-장교조간 단체협약에 질병 휴직 제도개선 항목이 들어가게 됐다.
이전까지 교직에 중증장애인은 나 혼자인 줄 알았다. 혼자 민원 넣고 제보하다가 장교조를 만난 후 동지들이 생겼다는 생각에 기뻤다. 나도 도움을 받지만 내가 도움을 줄 수도 있었다. 장애 당사자들과 라포를 쌓고 서로 도울 수 있다는 것이 보람차게 느껴진다."
- 장교조에서 진행한 활동에 무엇이 있는가?
"2022년 가입해 2025년부터 경기도지부장을 맡고 있다. 장교조에 들어왔을 당시 단체협약이 진행 중이었는데 교육부에서 응하지 않았다. 한 번은 시위를 하는데 세종에 위치한 교육부 청사까지 전국에서 장애 당사자가 오기 힘들기 때문에 단 네 명이 참석했다. 나는 손을 쓸 수 없고... 플래카드를 잡아줄 손조차 부족했다. 오죽하면 맞은편에서 시위하던 전국교직원노조 선생님들이 오셔서 플래카드를 잡아주시더라. 다행히 시위를 계기로 단체협약을 맺게 되었다."
- 사단법인 무의 '모모탐사대'(학교 접근성을 학생과 교사가 직접 조사) 아이디어를 듣고 어떤 느낌을 받았나?
"장애 당사자 교사로서 모모탐사대가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학교 장애 이해 교육을 직접 하는데, 매번 동영상이나 활동지 수준에서 머무르는 게 늘 너무 아쉬웠다. 아이들은 '휠체어 재밌어 보여요', '편해 보여요'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는데, 모모탐사대 활동에서 학생들이 직접 휠체어를 타 보며 장애인 개인의 문제가 곧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직접 느낄 수 있어 보람 있었다.
실제로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휠체어를 밀어본 후 충격을 받았다. 교실에서 걸어서 2분 걸리는 거리가 휠체어를 타니 15분 이상 걸렸다. 한 아이는 '왜 이렇게 늦게 가냐'는 질타를 받고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러나 타박한 학생도 정작 빨리 가지 못해 모두가 접근성 문제를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 모모탐사대를 기획하면서 학교 실제 시설물 개선의 필요성을 느끼고 학생들이 이런 제안을 직접 하는 것까지 나아가기를 바랐다. 직접 해보신 입장에서 어떻게 발전하길 바라는가?
"학교 접근성 제안 아이디어가 너무 좋다. 점차 접근성 탐사 범위를 넓혀가며 동네를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만드는 활동으로 확대되길 바란다. 실제로 사회 교과 동네 탐사 활동을 반에서 진행했는데, 아이들이 보도블록이 튀어나와 위험한 것을 깨닫고 안산시청에 시설물 개선 건의를 한 적이 있다.
이렇게 모모탐사대에서도 '건의 게시판'을 마련해 관계자들이 건의 사항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리적, 제도적 변화는 물론, 아이들이 '우리도 사회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느껴 보다 의미 있는 활동이 될 것이다. 식당, 카페 등을 대상으로 접근성 우수시설을 선정한 것처럼 '휠체어 접근성 우수 학교'를 지정하거나, 리뷰 앱처럼 접근성에 대한 별점을 남길 수 있게 확대되어 가면 좋겠다."
▲ 무의 모모탐사대(모두의 학교 by 모두의 1층)에 참여한 안산 신길초등학교 박병찬 교사 반 학생들이 활동하는 모습. 모모탐사대는 학생과 교사가 휠체어를 타고 장애인화장실에 직접 가보는 등 학교 장애인 편의시설을 조사하는 활동이다.
ⓒ 홍윤희
박 교사의 존재 자체가 변화의 씨앗
- 교사로서의 보람은 무엇인가?
"학기 초 담임을 맡아 아이들을 처음 마주했을 때 어색해하고 당황해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장애인도 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걸 본다. 아이들은 이제 자연스럽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주거나 문을 열어주며 휠체어 이용자에 대한 이해가 생기고 에티켓이 몸에 밴다. 다양성과 포용의 가치를 배운다고 생각한다. 졸업한 제자들이 찾아온 적이 있는데 중고등학교 수업에서 내 기사를 찾아 수업 시간에 발표했다고 하더라. 아이들이 나를 통해 용기를 얻고 있다는 것을 느껴 기특하고 뿌듯했다."
- 교사의 꿈을 가진 장애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예전 의사 선생님이 말해주신 '장애인의 존재 자체가 교육적'이라는 말을 해 주고 싶다. 학교는 단순히 지식만 배우는 것이 아닌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공간이다. 장애인 교사가 교실에 있다는 것 자체로 더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장애 학생의 경우 아무래도 학생 신분이다 보니 교사나 다른 학생들이 시혜적 시선으로 보기가 쉬운데 장애 교원은 다르다. 장애인이 단순히 보살펴야 하는 존재가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임을 장애인이 교직에 있다는 것만으로 깨달을 수 있다.
- 2026년 교사로서의 목표는?
"2025년, 11년 만에 담임을 맡았다. 무사히 한 해를 마치고 올해도 담임을 하게 되었다. 학부모 민원과 안전사고 발생 우려가 있다며 그동안 담임을 맡지 못했는데, 학기가 끝난 후 학부모들이 감사 메시지를 많이 보내주었다. 올해도 즐겁게 담임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
인터뷰를 하며 내내 박병찬 교사는 아마도 '평범한 교사로 존재'하는 게 소망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봤다. 환경은 녹록지 않다. 박 교사가 지난 연말 사단법인 무의에 보내온 편지에도 그런 내용이 담겼다.
"학교는 학생과 선생님만의 공간이 아닙니다. 학교를 방문하는 학부모님, 외부 방문객, 주말에 시험을 치르는 응시생, 학교 시설을 이용하는 지역 주민까지, 학교는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한 열린 공간이어야 합니다. 아직 학교에는 개선해야 할 물리적 장벽들이 존재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장벽들을 발견하고 알리는 역할을 뚝심 있게 해주시길 기대합니다. 더 많은 학교와 아이들이 접근성의 의미를 직접 경험하고, 그 경험이 변화의 씨앗이 되기를 바랍니다."
박 교사의 존재 자체가 변화의 씨앗이다. 2026년에는 그를 '평범한 교사'로 만들게 하는 접근성 활동이 더 많은 학교에서 들불처럼 일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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