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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이상하게도 씻으러 가려던 마음이 사라진다. 신발을 벗고 몇 걸음 걸어 소파에 닿는 순간 몸이 먼저 무너진다. 셔츠 단추도 다 풀지 못한 채 손에는 어느새 휴대폰이 들려 있다. 화면 속에서 무언가가 계속 지나가지만 정작 무엇을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쉬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하는 것도 아닌 시간이다. 사진으로 남길 이유도 없는 그저 그런 저녁이다.
하지만 작가 심윤은 그 저녁을 벽 하나를 통째로 채울 만큼 거대한 그림으로 그렸다. 소파에 몸을 던진 사람이 휴대폰을 쥐고 있다. 어디서 본 듯한 자세인데 그림은 관람객의 키를 훌쩍 넘는다. 몇 걸음 물러서야 겨우 전체가 눈에 들어온다. 그 순간 이상한 질문이 떠오른다. 왜 이 사람을 이렇게 크게 그렸을까?
심윤 <삼위일체>(2026), Acrylic on canvas, 300×518cm / 제공. 대구미술관
심윤 <삼위일체>(2026), Acrylic on canvas, 300×518cm / 제공. 대구미술관
예로부터 큰 그림에는 위대한 인물이나 역사에 남을 사건이 담겼다. 그런데 심윤의 대작을 채우는 주인공은 정장을 입고 가방을 든 채 출근하는 사람, 방금 퇴근해 집에 돌아온 사람, 무리에 섞여 걷는 사람이다. 왕도 영웅도 아니다. 〈출근길〉은 가로 15미터에 이르는 캔버스에 그런 사람들을 끝없이 세워 놓았고, 그 사이로 말과 사람의 몸이 뒤엉켜 아침의 행렬이 어느새 전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도 비슷한 도발을 했다. 그는 유명한 사람도 특별한 사건도 아닌 시골 마을의 장례식을 역사화에나 쓰이던 거대한 캔버스에 담았고, 사람들은 그런 이들이 어떻게 이렇게 큰 그림의 주인공이 되느냐며 그를 나무랐다. 물론 심윤의 그림이 그 작품과 같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두 화가는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어떤 삶이 이렇게 크게 그려질 만한가?
심윤 <출근길>(2024), Acrylic on canvas, 259×1500cm / 제공. 대구미술관
손바닥만 한 화면을 들여다보는 시대에 심윤은 가장 평범한 사람을 가장 큰 화면으로 불러낸다. 그리고 그 사람을 붙드는 방식은 언제나 몸이다. 그의 그림은 표정이나 사연이 아니라 몸에서 출발한다. 사람의 몸만큼 복잡한 풍경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그림은 온통 몸으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등장 인물에게는 대개 이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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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누군가의 초상이라기보다 경쟁하고 소외되고 기대했다가 좌절하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어떤 상태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한 사람보다 여러 사람이 함께 있는 장면이 더 자주 보이고, 뒤엉킨 군상은 개인의 사연을 넘어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불안과 피로, 살아남으려는 감각을 드러낸다.
그렇게 키운 몸에서 색은 사라진다. 가까이 다가가면 셔츠도 소파도 배경도 검정과 흰색 사이 어딘가의 회색뿐이다. 색이 걷히자 시선은 인물의 형태와 표정, 관계, 그림의 긴장으로 모인다. 이 회색은 단순한 색 선택이 아니라 그림 전체의 분위기다. 희망으로도 절망으로도 딱 잘라 읽히지 않는 그 사이 어딘가에 머무는 현대인의 마음이 화면에 번져 있다.
심윤 개인전 《회색극장》(2026.07.14. – 2026.10.11.), 대구미술관 전경 / 제공. 대구미술관
심윤 개인전 《회색극장》(2026.07.14. – 2026.10.11.), 대구미술관 전경 / 제공. 대구미술관
여기에 에어브러시가 만든 흐릿한 경계가 더해지면 인물의 개별성은 옅어지고 그 자리에 우리 모두의 얼굴이 떠오른다. 결국 남는 것 역시 몸이다. 처진 어깨와 기울어진 목, 힘없이 늘어진 팔에 하루의 무게가 그대로 드러난다. 몸은 거짓말을 잘하지 못한다. 그림이 정답을 알려주지 않으니 보는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이야기를 떠올린다. 어떤 이는 게으른 직장인을 보고, 어떤 이는 하루를 버텨낸 사람을 본다. 분명한 것은 그 앞에 서면 자신의 어느 저녁이 슬며시 겹쳐 보인다는 。이다.
그 몸들이 짊어진 무게는 어딘가 낯익다. 심윤은 오래된 신화를 빌려 오늘의 하루를 그린다. 〈아틀라스, 또 아침이다.〉에서 인물은 커다란 지구를 끌어안은 채 또 하루를 맞는다. 신화 속 아틀라스는 하늘을 영원히 떠받치는 형벌을 받았는지만 화면은 그 무게를 오늘의 아침으로 옮겨 놓는다. 〈아! 내 간!〉은 독수리에게 매일 간을 쪼이는 프로메테우스의 형벌을 빌린 장면이다. 두 그림 모두 제목이 내용과는 달리 무겁지 않다는 。이 재미있다. '또 아침이다'에는 희망찬 시작보다 매일 되풀이되는 삶의 리듬이 묻어나고, '아! 내 간!'은 익살스러운 비명처럼 들린다. 특히 〈아! 내 간!〉에서는 비극적인 장면과 농담 같은 제목의 어긋남 속에서 피로와 고통마저 농담처럼 견뎌내는 우리의 모습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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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심윤 <아틀라스, 또 아침이다.>(2025), Acrylic on canvas, 300×259cm [오른쪽] 심윤 <아! 내 간!>(2022), Acrylic on canvas, 259×300cm / 사진. © 정연진
그런데 이 몸들은 혼자 짊어지고만 있지 않다. 〈디토〉에서는 인물들이 서로의 몸에 기대고 얽혀 한 덩어리를 이룬다. 서로 의지하는 듯하지만 같은 방향으로 휩쓸려 가는 것처럼도 보이는데 '나도 같다'는 뜻의 제목이 그 모호함을 거든다. 〈댄스 댄스〉 앞에서는 피식 웃음이 났다가도 금세 마음이 무거워진다. 제목을 읽으면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올 것 같은데 화면 속 인물들은 흥겹게 춤추고 있지 않다. 모두 같은 리듬 안에 있는 것 같지만 몸짓과 무게는 조금씩 어긋나 있다. 얽힌 팔과 다리, 흐릿하게 겹친 몸들은 서로 기대고 밀어내며 아슬아슬한 균형을 만든다. 가까워지고 싶으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지켜야 하는 오늘의 관계가 그 어색한 춤사위에 담겨 있다. 즐거워야 할 순간마저 역할이 되어버린 시대. 그 몸짓은 웃음을 남기면서도 오랫동안 마음에 걸린다.
그 어긋남 한가운데에도 희망이 보이는 그림이 있다. 〈천국의 문〉이다. 제목만 들으면 종교적인 구원이 떠오르지만 화면 속 인물들은 구원에 닿은 얼굴이 아니다. 서로를 붙들고 어떤 구조물에 매달린 채 위태롭게 균형을 잡고 있다. 불안과 희망, 긴장과 좌절이 한 화면에서 엇갈리고, 천국과 지옥을 딱 갈라놓는 대신 그사이 경계에 선 사람들을 보여준다. 이곳의 천국은 끝내 닿아야 할 종착지가 아니라 불안한 현실을 버티게 하는 희미한 방향처럼 느껴진다. 그 안에는 손을 놓지 않고 계속 서 있으려는 작은 의지가 있다. 이 그림에서 읽히는 희망은 그렇게 소박하다. 그래서 이 작품은 가장 말은 적지만 가장 오래 시선을 붙잡는다.
심윤 <디토(Ditto)>(2023), Acrylic on canvas, 259×450cm / 제공. 대구미술관
심윤 <댄스 댄스>(2026), Acrylic on canvas, 300×259cm / 제공. 대구미술관
심윤 <천국의 문>(2026), Acrylic on canvas, 450×259cm / 제공. 대구미술관
이 모든 이야기가 마지막에 한자리로 모이는 순간이 있다. 전시장을 걷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서문은 〈조용한 게르니카〉가 이 전시의 중심이라고 알렸고 다른 전시장에는 그 그림을 준비한 습작들이 걸려 있다. 그렇다면 정작 그 그림은 언제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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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시야가 갑자기 열리면서 가로 15미터가 넘는 화면이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림을 해석하려던 자세는 어느새 종교화 앞에 선 사람처럼 걸음을 늦추고 고개를 숙이는 태도로 바뀐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빌려 와 새로 구성한 이 그림에는 황소와 말, 방독면을 쓴 인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존재가 등장한다. 지금까지 따로 만났던 몸과 표정, 흔들림이 이 한 장 안에서 시대의 풍경으로 겹쳐진다.
심윤은 원작의 장면을 그대로 옮기지 않았다. 낯익은 형상은 빌리되 그 뜻은 오늘로 옮겨 놓았다. 황소는 거대한 권력과 사회 구조가 되고, 말은 시대를 견디며 삶을 앞으로 끌고 가는 존재가 된다. 방독면을 쓴 목격자는 모든 것을 보면서도 끝내 나서지 못하는 우리 자신으로 남는다. 원작에 없던 교복 입은 소녀는 지금의 갈등을 일으킨 적이 없지만 그 결과를 가장 오래 감당해야 할 다음 세대를 대신해 서 있다. 원작을 아는 사람은 어디까지가 빌려 온 것이고 어디부터가 새로 그린 것인지 가려 보는 재미가 있고, 모르는 사람도 방독면과 스마트폰, 교복처럼 낯익은 사물이 왜 이 무거운 그림에 들어와 있는지 궁금해진다. 그러나 이 그림에는 폭음도 불길도 없다. 어둠 속에 번지듯 스며든 에어브러시의 화면 위로 불안과 긴장, 피로와 무감각이 가라앉아 있을 뿐이다. 피카소가 폭격의 비극을 거대한 화면에 담았다면 심윤은 요란한 총성 없이도 우리 곁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그린다. 이 그림 앞에 서면 오랫동안 쌓아 온 습작과 실험의 시간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신작 하나가 아니라 그의 작업 전체가 도달한 정。처럼 다가온다.
심윤 <조용한 게르니카>(2025-2026), Acrylic on canvas, 300×1554cm / 제공. 대구미술관
그렇다고 그의 그림이 우리를 영웅으로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소파에 누운 사람은 여전히 일어나지 못하고, 심윤은 그 불안을 근사한 성공담으로 포장하지도 않는다. 그저 지나치기 쉬운 몸을 크게 그리고 색을 걷어낸 뒤 우리를 그 앞에 오래 세워 둘 뿐이다. 그림은 조용히 묻는다. 나는 지금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 나는 어디에 서서 무엇을 믿으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림 앞을 떠나 집에 돌아오면 소파는 어제처럼 우리를 기다릴 것이다. 신발을 벗고 몇 걸음 걸어 소파에 닿으면 몸은 또 먼저 무너질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아무도 보지 않던 그 저녁은 벽 하나를 채울 만큼 오래 바라볼 만한 장면이었다. 소파에 누운 사람은 그렇게 한 번 더 거대한 그림의 주인공이 된다.
정연진 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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