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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2026년 노벨문학상은 캐나다 시인 앤 카슨에게 돌아갔다. 카슨은 고쳐 쓰기의 거장이다. 고전의 정수를 현대적 삶에 맞춰 다시 노래하는 작품들을 써 왔다. 문학의 천사가 익숙한 이야기에 새로운 역동성을 불어넣고, 지금의 삶에 영원성의 깊이를 부여하는 일을 한다면 카슨은 '카니쿨라 디 안나'(1984)로 데뷔한 이래 줄곧 이 일에 헌신해 왔다. 수상 이유도 "고전 전통과 유쾌하게 대화하면서 현대 문학에 새로운 형식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에로스, 달콤씁쓸한'(1986)은 카슨의 문학 여정을 안내하는 이정표 같은 작품이다. 시와 산문을 넘나드는 독특한 스타일, 고전 작품을 빌려 현대적 주제를 탐구하는 화법 등이 선연하다. 제목 '달콤씁쓸한'은 고대 그리스 시인 사포에게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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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쾌락이 함께하는 에로스의 본성과 글쓰기의 본질도 암시한다. 사랑이 왔을 때 우리가 눈멀 듯한 희열과 함께 닿을 듯한 그의 부재에 아파하듯, 글 쓸 때 나는 건넬 말 있음(사랑해!)에 기뻐하면서 눈앞에 너 없음에 상처받는다. 하여 에로스와 문학은 하나다. 에로스를 신으로 만든 시인들이 최초의 저자들이기도 하다. 카슨이 욕망, 내게 없는 것에 관한 탐구를 평생 주제로 삼은 건 자연스럽다.
대표작 '빨강의 자서전'(1998)은 고대 그리스 스테시코로스의 시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고쳐 쓰기 기법을 시적 산문 형태로 알기 쉽게 보여준다. 게리온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로, 본래 소를 돌보다 헤라클레스에게 살해되는 단역이다. 이 먼지 같은 존재를 카슨은 헤라클레스를 사랑했다가 버림받는 10대 동성애자로 되살려 시의 주인공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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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돼도 좋은 존재는 없다. 사랑으로 단련되는 한, 누구나 자서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인물 1'에 불과했던 게리온은 욕망에 진실하고 고통의 탐구에 정직했기에, 헤라클레스를 다시 만났을 때 날개를 펴고 날아올라 신화의 새로운 주인공이 된다. 우리 역시 그럴 것이다.
'녹스'(2010)는 카슨의 가장 실험적인 작품이다. 왼쪽엔 로마 시인 카툴루스 작품의 번역이, 오른쪽엔 죽은 오빠가 남긴 편지·사진·유품 등이 콜라주 형태로 흘러내린다. 작품 전체가 아코디언 형태로 제작돼 상자에 담겨 있다. 장인들이 일일이 수작업했기에 시집이 곧 예술품이다. 번역은 옛 작품을 오늘의 시로 만들고, 시인은 더는 없는 오빠의 흔적을 모아 작품으로 빚어낸다. 망각과 소멸에 저항해 부재를 존재로 고쳐 쓰는 일, 이것이 문학의 위엄이다. 카슨은 애도의 형식을 통해 이를 우리에게 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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