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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신임 사장으로 선출된 이성주 전 iMBC 이사. ⓒMBC <뉴스데스크> 갈무리
MBC 신임 사장이 선출됐다. 이성주 전 iMBC 경영이사. 1995년 MBC 기자로 입사해 MBC의 황금기를 경험했지만, 이명박에서 박근혜 시대로 이어지는 10년의 지옥을 고스란히 버텨낸 인물이기도 하다. 이른바 ‘광우병 소고기 사태’ 국면에서 이명박과 정면충돌한 MBC에 집요한 파괴 공작이 진행됐고 MBC 노측은 파업으로 맞섰다. 하지만 권력의 바통을 이어받으며 작심하고 달려드는 정권과 그에 부역한 MBC 사측의 공세를 당해낼 수는 없었다. 그토록 쟁쟁하던 MBC 노조가 연이은 파업과 그에 따른 탄압으로 너덜너덜해져서 아무도 노조위원장으로 나서지 않으려고 했던 2013년에 이성주 사장은 제10대 언론노조 MBC 본부장을 맡았다. 이명박에 이어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때고, 마지막 동력까지 탈탈 털어서 170일간의 장기 파업을 하고 난 시。이었으니, 새로운 투쟁을 위해서라기보단 그저 저항의 명줄이라도 이어보자는 절박한 심정이었을 테다.
MBC는 그로부터도 5년 뒤인 문재인 정부에 와서야 기나긴 억압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바로 윤석열 정부라는 암운이 드리웠고, 실제로 그 먹구름으로부터 엄청난 폭풍우가 불어왔다. 다행히도 윤석열은 MBC에 천둥과 번개만 내리꽂다가 자기 발등을 찍고 사라졌다. 윤석열이 제풀에 무너졌다고 단순히 그가 바보라서 그랬다고 말하면 안 된다. 일단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이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한 구도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윤석열은 이동관까지 방통위원장으로 데려와 MBC를 손봐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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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야당이 탄핵 카드를 꺼내 들었고, 이동관은 YTN과 MBC를 건드릴 물밑 작업만 한 채 물러나야 했다. 그 뒤를 MBC 기자 출신 이진숙이 이어받았다. 방문진 이사 교체 작업을 하고 바로 탄핵당했지만, 가장 중요한 임무는 수행했다고 생각했을 테다. 하지만 2인 체제 방통위에서 내린 결정을 무효화하는 법원의 판단이 이어졌다. MBC의 ‘운’은 국회의 정치 구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지 신이 내려준 게 아니었다.
전과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MBC는 다시 저항과 투쟁의 길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조그마한 파우치’로 윤석열의 사랑을 끌어안은 KBS 사장 박장범에 대해 KBS 구성원들이 벌인 저항의 규모와 강도로 보면, 이번에는 MBC도 최소한 전처럼 싸우지는 못할 공산이 크다. 그래도 다행히 MBC는 최악을 비켜났고, 핵심 역량이 훼손되지 않은 채 새로운 도약을 꿈꿀 여건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이성주 신임 사장은 MBC 사장 공모에 나서면서 이와 같은 소위 ‘투쟁 이력’을 특별히 강조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공영방송의 공공성 강화, 정치로부터 독립성과 제작 자율성 확보, 국민의 신뢰와 지지. 이런 구호들이 전면에 나섰음 직도 한데, 이성주 후보자는 물론 경합 과정에 임한 다른 유력 후보자들도 별반 그렇지 않았다. 그보다 좀 더 앞서서 MBC 노측의 강한 저항을 주도했다가 해고까지 된 제8대 노조위원장 출신 이근행 후보 정도가 오히려 예외에 가까웠던 것 같다. 이근행 후보는 MBC 스스로를 검증하는 미디어 비평을 도입하고 탐사보도와 시사 프로그램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시청자위원회 강화, 편성 사전 협의 제도화, 정규 다큐멘터리 및 교양 콘텐츠 투자 확대, 재난 보도에 대한 강조 등 공영방송의 공공성과 사회적 기여, 제작 자율성에 초。을 둔 시대에 맞춰 세련화된 전통 담론에 가장 가까웠다.
물론 여타 후보자들이나 이성주 신임 사장이 그런 것들을 무시하겠다고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성주 사장은 미디어 산업 변화에 대응할 기민성을 강조하고 인공지능 전환에서 회사가 소외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안의 사람도 소외되지 않을 대안을 더 뚜렷이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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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법 개정을 통해 공식적으로 도입된 사장후보국민추천위원회(사추위) 150명은 이근행 후보와 이호인 후보를 탈락시키고 이성주·전동건 후보를 최종 2인 후보로 올렸다. 역시 법 개정으로 도입된 특별다수제를 통해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5분의 3의 선택으로 이성주 후보가 사장으로 선출됐다. 선출 요건이 까다로워졌음에도 대체로 큰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이런 선택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공영방송인 MBC의 ‘생존’이 무엇보다 중요한 화두로 인식됐기 때문일 테다.
2012년 1월30일 MBC 노조가 서울 여의도 MBC 방송사 1층 ‘민주의 터’에서 총파업 선포 출정식을 열었다. ⓒ시사IN 포토
사장 선출 전 언론노조 MBC 지부 구성원들에게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가 이미 비슷한 방향을 가리킨다. 중복 응답 기준으로 표집된 결과이지만, 응답자 대부분(91%)의 조합원들이 ‘방송산업에 대한 이해 및 사업 수완’을 사장의 제1 덕목으로 꼽았다. ‘공정성 확보 및 정치적 외압 차단을 통한 사회적 신뢰의 제고’를 꼽은 비율은 그 절반 정도다. 공영방송의 전통적 가치는 뒤로 무르고, 일단 생존에 매진해야 한다는 인식이 이 정도로 광범위하게 퍼졌다는 뜻일까? 냉정하게 말하면 그런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공영방송 종사자들이 공적 가치를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있고 방문진 이사들도, 사추위에 참여한 시민들도 모두 그런 입장을 공유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건 섣부르다.
좋은 사장은 제도의 부산물이었다
공영방송의 공공성과 정치적 독립성, 그를 위한 제작 자율성 확보는 아직도 안정적으로 달성되지 못한 과제다. 철학이 바르게 서 있고, 조직을 제대로 통솔할 수 있으며, 외부의 정치적 압력과 시민적 기대에도 적절히 부응할 줄 아는 사장이 감당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그걸 실제로 가능하게 하는 건 사장이라는 개인이 아니라 공영방송을 둘러싼 제도, 그 제도의 정신을 구현하는 종사자들, 그리고 그런 이들을 뒷받침해줄 시민사회인 것도 맞다. 지금까지, 나쁜 사장은 그 제도를 악용하거나 짓부수려 한 정치인의 대리자들이었고, 좋은 사장은 그 제도가 존중된 상태에서 경영을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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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좋은 사장이 있었기 때문에 공영방송의 정체성이 안팎으로 잘 지켜진 게 아니라, 제도가 존중되지 않고 불안정해졌을 때 꼭 나쁜 사장이 등장했을 뿐이다.
요컨대 좋은 사장은 제도가 안정화된 상태에서 나오는 제도의 부산물이었지 제도의 한계를 넘나드는 엄청난 영웅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물론 제도가 안정적이었을 때 선출된 사장이, 여러 정치적 이유로 제도가 불안정할 때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지키는 잠시간의 영웅적 역할을 해줄 수는 있다. 그러나 엄기영 전임 사장의 예에서 보듯, 그런 일은 여간해선 일어나지 않는다.
이성주 신임 사장은 공영방송 제도의 안정성을 더 확보하기 위해 개정된 방송법의 첫 소산이다. 그가 재임하는 동안 그 제도가 또 갑자기 불안정에 빠질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이는 만큼, 그의 경영자 역할 또한 현재의 제도적 안정성으로 비교적 탄탄하게 보장될 공산이 크다. 적어도 정치적 외풍에 흔들릴 일은 그리 없을 거란 말이다. 수신료 등 공적 지원은 거의 기대하지 못한 채 생존을 위해 분투해야 하는 공영방송 MBC의 경영자이기는 하지만, 기나긴 암흑의 터널을 벗어나 펼쳐졌던 7년의 시간 동안 그가 나름대로 여러 사내 이력을 거치며 갈고닦아온 ‘경영 역량’을 꽃피우기 좋은 조건 위에 서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그 경영 역량은 단순히 미디어 기업으로서의 MBC를 생존시키는 데 집중되는 게 아니라, ‘공영방송 MBC’가 생존해줘야 할 이유와 그 방법론을 입증하는 데 초.이 맞춰져야 한다.
그가 신임 사장으로 선출되는 데 영향을 준 배경 요인이랄 수 있는 JTBC 사태는, 그저 어떤 수단을 써서든 ‘닥치고 생존해야 한다’는 외침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게 아니다. 소유 구조만 빼고 여러모로 MBC와 특성이 겹치는 JTBC는 MBC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표본인 것은 맞다. 그러나 JTBC는 ‘잘하려고 했기 때문에’ 불행한 상황에 빠진 게 아니라 ‘잘하다가 엉뚱한 곳으로 눈길을 돌린 소유주와 경영진 때문에’ 그런 지경에 처한 거라 보아야 옳다.
2012년 MBC 장기 파업 당시 해고된 해직 언론인 출신 최승호 MBC 사장이 2017년 12월8일 오전 취임 후 첫 출근을 했다. ⓒ시사IN 신선영
제도적 안정성이 뒷받침되던 전임 사장 시절을 견주어보면 대략적인 그림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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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이명박근혜’ 시절의 지옥도를 끝내고 ‘옛 영광’을 되찾으리라는 기대로 사장이 된 최승호 전 사장은 영업적자로, 회사를 위기에서 구하지 못했다. 물론 악화 일로에 있던 미디어 환경에서 10년의 암흑기를 반전시키려면 어느 정도의 적자를 감수하고라도 공공성과 경쟁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나 스스로도 공개적으로 조언한 바 있다. 그 뒤를 이은 박성제 사장은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경영 실적을 반등시켰고, 공영방송 MBC가 ‘건재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는 .에서 공공성과 생존력의 균형을 잘 맞춘 시의적절한 경영자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2020년 7월10일 ‘사원과의 대화’에서 발언하는 박성제 당시 MBC 사장. ⓒMBC 제공
개인적으로는 그가 한 번 더 경영자 역할을 맡아 MBC의 공공적 체질과 상업적 경쟁력을 새로이 강화하고 안착시키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시의 사장 선출 시스템은, 강한 찬반이 있지만 강력한 경쟁력을 지닌 후보자보다 찬반이 뚜렷하지 않은 후순위 후보자에게 때로 어부지리가 주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우여곡절을 거쳐 경영자의 바통을 이어받은 안형준 사장은 그래도 사내외 의구심을 비교적 잘 극복한 경영자였다. ‘지상파 방송사 혹한기’를 버텨줄 만큼의 경영 실적을 올렸음은 물론, 자칫하면 피투성이가 되었을지도 모를 윤석열 시기까지 통과할 정도로 탁월한 ‘관운’을 지녔다.
2024년 11월18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박장범 한국방송공사(KBS) 사장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시사IN 신선영
이성주 사장이 피해야 할 두 개의 그림자
신임 이성주 사장의 앞길은, 정치적 외풍은 그리 크지 않을 거라 해도 이들 모두를 견주어 더 험난하리라 예상된다. 최승호 전임 사장의 경우 공공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은 가상했지만, 그가 가진 ‘독립성’에 대한 상은 과거지향적이고 무엇보다 엘리트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시민의 시선, 시장 변화에 부응할 수 있는 경영적 진로는 아니었다고 본다. 그렇다고 안형준 사장의 탁월한 관운과 무난함으로 치우치는 것도 별로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니다. 무도했던 윤석열 정부에 어정쩡하게 타협하진 않았고, 특히 내란 세력에 대한 입장을 선명히 세워 민주주의의 공기로서 기능을 완전히 포기한 여타 언론들과는 달랐다는 。은 두고두고 칭찬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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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안형준 사장 체제가 세련된 경쟁력을 지닌 공영방송 모형을 제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내 평가다. 언론으로서의 올바름과 기개를 적절한 균형감각으로 부단히 실천하고, (당시로서는 명확히 파악하기 몹시 어려운) 시민적 ‘일반의지’와 눈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한편, 세련된 아이디어와 제작 역량을 입증할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 포맷을 창조해 지적재산으로 바꾸는 방식은 박성제 전임 사장에게서 가장 명확하고 모범적이었다고 나는 본다. 그래서 이성주 사장이 박성제 사장의 바통을 이어받기를 기대한다. 물론 더 나은 방식으로, 그만의 스타일로 말이다.
2017년 8월30일 MBC 노동조합원 450여 명이 김장겸 MBC 사장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시사IN 포토
이성주 신임 사장이 MBC를 새로운 공공서비스 미디어의 표본으로 세울 생각이 있다면, 단지 사내의 역량을 잘 모으는 선에서 개인적 경영 역량을 발휘하는 데만 초。을 맞춰서는 안 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MBC는 공영방송이며, 그 자체의 역량 이전에 제도에 의해 촉진되거나 제약되는 측면이 강한 조직이다. 그러나 이 거대한 조직과 시스템은 이미 시민의 필요와 관심에서 너무나 멀어져버렸다. 미디어 환경의 급격한 변모를 쫓아가기 벅찬 공영방송 종사자들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제도적 제약이 너무 커서 그렇다. 지난번의 방송법 개정만으로는 낡아빠진 공영방송 제도를 근본적으로 손보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제도 변화의 필요성을 정부와 정치권의 정책 집단에게 역설하고, 그를 위해 MBC가 무얼 할 수 있는지 제시하면서, 그 표본을 먼저 ‘실천’으로 보여주는 게 이번 이성주 사장 체제의 MBC가 할 일이다. 실제로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면서 공룡 KBS의 ‘무쓸모’만 부단히 입증하는 박장범 사장 체제의 KBS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고 보니 박장범이 사장이 된 지 이러구러 2년이다. 자신이 구성권의 일부를 가진 사장후보추천위원회 구성을 최대한 늦춰달라고 요구하며 연명하는 동안, 그의 조직 KBS는 존재 의의를 거의 상실해버린 것처럼 보인다. 어찌 보면 탁월한 관운은 정작 박장범의 몫인 것 같기도 하다. 그의 관운이 늘어나는 만큼 공영방송 KBS의 제도적 운명은 타들어가는 촛불 심지처럼 나날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준희 (미디어 인문학교 해시칼리지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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