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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유감—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줄 아느냐?’ 1990/2011(퍼포먼스는 1990년, 사진 프린트는 2011년), ‘제2회 일한 행위예술제’ 12일간의 퍼포먼스 사진, 김포 공항, 한국; 나리타 공항; 메이지 신궁; 하라주쿠; 오테마치 역; 고간지; 아사쿠사; 시부야; 도쿄대학교; 도키와자 극장, 도쿄, 일본. © Lee Bul. 작가 제공.
“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
생동하는 육체로, 코를 찌르는 냄새로, 전위와 전복으로 ‘근대성’이라는 거대한 철근 구조물 같은 억압에 온몸을 오션파라다이스게임 부딛치던 여자가 있다. 이불은 나체 상태로 밧줄에 묶여 거꾸로 매달린 채 “나는 여기에 매달려 아이를 낙태한 모든 여성들의 고난을 견디고, 그들을 죄책감과 고통으로부터 구원한다”고 읊조렸고, 두 시간 가까이 지속되는 고통스러운 퍼포먼스에 급기야 관객들이 그녀를 말리기 시작한다. (‘낙태’, 1989, 동숭아트센터.)
다음 장면. 이불은 오션파라다이스예시 뒤집어진 내장, 촉수, 꼬리, 혹은 아무렇게나 자라난 팔다리처럼 보이는 부속들을 주렁주렁 매단 붉은 소프트 조각(‘무제-갈망’)을 뒤집어쓰고 도쿄 번화가 한복판을 걷는다. 육중한 조각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기우뚱하다가, 아연실색한 이들에게 퍼포먼스 홍보 리플릿을 나누어주고, 천연덕스레 선글라스를 쓴 채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권위와 속박과 구태, 세상 백경릴게임 모든 아버지들을 보기 좋게 걷어차는 최승자의 시,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중 일부를 인용한 제목의 퍼포먼스 ‘수난유감-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1990)의 장면들이다.
장소를 옮겨, 1997년 뉴욕 현대미술관. 이불은 1991년부터 선보이던 ‘장엄한 광채’를 전시한다. 생선에 사체를 비즈와 시퀸으로 화려하게 바다이야기고래출현 장식한 ‘장엄한 광채’에서는 곧 썩은 악취가 진동하고, 현대미술관은 이 작품을 철거해 인근 호텔로 옮겨 버린다. 그녀는 강력히 항의했고 이 일련의 사건 또한 작품의 일부가 되는 해프닝이 발생한다. 이미지보다 먼저 도착한 냄새, 유기물의 현존과 그것을 응시하는 방식. 그것은 기존의 시각 중심주의에 저항하는 이불의 도전이자 젊은 그녀의 예술 자체였다.
10원야마토게임반세기에 달하는 이불의 예술 인생을 회고하자면, 여기까지가 그녀의 1막이다. 반체제 운동가 집안에서 나고 자라 연좌제에 억눌리며 예술가가 되기로 택한 그녀는 생생한 육체로, 썩어가는 유기물로, 안과 밖이 전복되고 뒤틀린 천과 솜의 조각으로, 한국인 여성으로서 여기 생존하고 있음을 알리는 행위예술로, 세상 모든 아버지들에게 반기를 들었다.
이불 작가. 윤형문
이제 이불의 탐구는 몸에서 세계로, 포스트모던으로, 미래의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로 나아간다. 최근까지 리움미술관에서 대대적으로 연 ‘이불: 1998년 이후’가 바로 그 변곡점 이후 현재까지 이불의 작업을 조망하는 전시다. 예술 인생 2막에서 그녀는 이데올로기 갈등의 무용함, 유토피아를 향해 몸을 던지는 인간의 위대함과 산산이 부서지고 마는 인간의 취약성, 끊임없이 실패하지만 투신하는 몸짓, 사무엘 베케트식으로 말하자면 계속할 수 없지만 계속해 나가는 아름다움에 몰두한다.
이불이 2005년부터 전개한 ‘몽그랑레시’ 연작은 그 중심을 이루는 작품들이다. 이 연작은 장-프랑수아 리오타르가 제시한 ‘거대 서사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해, 보편적인 단일 서사 대신 개인들의 미시 서사, 역사의 파편들, 다양한 사회문화적 요소들을 뒤섞는다.
‘오바드V’ 2019, 비무장지대(DMZ) 철거 초소에서 수집한 주조강, 옵티움 뮤지엄 아크릴, 전자 디스플레이 보드, LED조명, CPU, DC-SMPS, 디머, 전기배선, 400 x 300(⌀) cm, 작가 및 BB&M 제공 © Lee Bul, 사진: 전병철. 작가 및 리움미술관 제공.
이를테면 작가의 유년기 기억에서 출발한 ‘벙커(M. 바흐친)’(2007)나 ‘해빙(다카키 마사오)’(2007), 검은 타르 같은 물질이 부서진 욕조를 가득 채워 민주화 열사들의 고문 과정을 연상케 하는 ‘천지(전시 버전)’(2007년작 재현), 좌초된 세월호의 비극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스케일 오브 텅’(2017), 2018년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으로 철거한 감시초소의 폐자재로 만든 탑 ‘오바드 V’(2019)(수년 후 그 선언은 폐기됐고 초소는 다시 세워졌다. 작가는 인간사의 무상함을 표현하기 위해 작품 한 가운데 백만 년 동안 변하지 않을 자연법칙인 지구 자전축의 기울기를 점멸하며 출력하는 LED디스플레이를 덧붙였다) 등 한국 근현대사의 흔적들.
여체와 기계의 혼종성을 드러내는 ‘사이보그’ 연작은 여성에 대해 발화하던 작가의 작품 세계의 확장이다. 사이보그는 고대 조각을 연상케 하는 순백의 피부와 이상적인 비례를 지니고 있지만, 머리와 팔다리가 없는 불완전한 형태다. 미완으로 보이는 신체는 기술로 증강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나, 기술은 자본과 권력에 종속되어 있어 소외된 자들을 위한 해방의 도구가 될 수 없다. 고대 신화적 요소와 테크노크라시가 지배할 근미래의 냉소적이고 암울한 전망을 뒤섞은 작품들은 반인반수의 형상을 금속 사이보그 형태로 재현한 ‘티탄’(2013), 스틸과 목재가 교체하며 구축과 해체를 반복하는 신체이자 건축물인 ‘당신의 차갑고 어두운 눈동자 속 무한한 섬광’(2009), 사모트라케의 니케 같은 고전적 조각상을 연상케 하면서도 피카소의 큐비즘과 기술문명의 혼종을 보여주는 ‘롱 테일 헤일로: CTCS #1’(2024)를 통해서도 전개된다.
‘사이보그 W6’ 2001, FRP 위에 수공 EVA 패널, 폴리우레탄 코팅, 232 x 67 x 67 cm, 리움미술관 소장 © Lee Bul. 사진: 전병철. 작가 및 리움미술관 제공.
이불은 ‘몽그랑레시: 왜냐하면 모든 것은…’(2005)으로 ‘몽그랑레시’의 시작을 알렸는데, 그것은 마치 테이블 위에 올려진 모더니즘 건축의 폐허와도 같다. 폐허를 세차게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는 공중에서 뚝 끊겨 낙하하며, 설원의 낭떠러지에는 러시아 구성주의의 이상을 상징하는 블라디미르 타틀린의 제3인터내셔널 기념비가 위태롭게 서 있다. 수정산과 마주한 전광판은 폴 보울스의 소설 ‘피난처 하늘’에서 발췌해 혼용한 문구 “Because everything/only really perhaps/yet so limitless(왜냐하면 모든 것은/그저 정말로 어쩌면/그럼에도 한없이 무한한)”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 현대 문명과 그 폐허의 멜랑콜리를 드리운다.
이탈리아 신학자이자 철학자 토마소 캄파넬라의 저서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태양의 도시 II’(2014)는 어떤가? 이 작품은 바닥과 벽면을 둘러싼 거울 조각들과 260개의 LED 전구로 만들어낸, 빛과 어둠이 혼재된 세계다. 리움의 어두운 블랙박스 공간에 설치된 이 작품 속 조각난 거울은 모든 것을 파편화하며 그 속에서 끝없이 반사되고 투영되는 빛은 심연 속 왜곡된 경로와 환영들을 만들어낸다. 칠흑 같은 밤, 빙하에 좌초하여 부서져 버린 난파선 같은, 그러나 지독하게 아름다운 이곳은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태양의 도시 II’ 2014, 폴리카보네이트판, 아크릴 거울, LED 조명, 전기 배선, 가변 설치,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2014: 이불’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14. 국립현대미술관 커미션, 현대차 후원. 작가 및 BB&M 제공 © Lee Bul. 사진: 전병철. 작가 및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여러 작품을 경유해 만나게 되는 ‘비아 네가티바’(2022, 2012년작 재제작)는 그 혼돈을 관람자가 직접 통과하는 작품이다. ‘비아 네가티바’는 라틴어로 ‘부정의 길’이라는 뜻으로, 신의 본질은 침묵과 부정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음을 말하는 신학적 개념이다. 시작과 끝이 모호하며 중심과 주변의 구분이 없는 비선형적인 거울 미로 공간에서 관객은 필연적으로 방황한다. 산산이 조각난 자신의 반영과 거짓 경로를 마주치고 발걸음을 무르며 출구를 찾아 헤맨다. 그 휘황한 허상에 눈이 먼 이들은 한동안 그곳에 머물기도 한다. 끝내 방황을 마치고 나와야 관람객은 자신이 끌탕을 쳤던 미로의 실체를 마주하게 되는데, 작품 외벽엔 인간의 의식이 문화와 환경, 언어 발전 속에서 형성되는 것임을 밝힌 심리학자 줄리언 제인스의 저서 ‘의식의 기원’의 페이지들이 얼기설기 붙어 있다.
‘비아 네가티바’ 2022 (2012년작 재제작) 목재, 아크릴 거울, 양방향 거울, LED 조명, 우드스테인, ‘의식의 기원’ 국문 및 영문판 약 290 x 600 x 600 cm ‘이불: 1998년 이후’ 전시 전경, 리움미술관, 서울, 2025. 작가 및 BB&M 제공. © Lee Bul. 사진: 전병철. 작가 및 리움미술관 제공.
허상과 이상, 영원히 당도할 수 없는 유토피아. 부정하고 부정해야만, 끊임없는 소거를 통해서만 찾을 수 있는 진실.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그곳으로 투신하는 인간들.
길이 17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은빛 비행선인 ‘취약할 의향-메탈라이즈드 벌룬’(2015-2016/2020)은 20세기 초 독일 기술 발전의 대명사였던 체펠린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체펠린은 군사 및 여객용으로 사용되었으나, 힌덴부르크 참사로 계기로 다시는 이러한 형태의 비행선이 제작되지 않았다. 모든 유토피아는 필연적인 실패를 내장하고 있다.
‘취약할 의향–메탈라이즈드 벌룬’, 2015-2016/2020, 천, PET 필름, 송풍기, 전기 배선, 300 x 1700 x 300 cm, ‘이불: 1998년 이후’ 전시 전경, 리움미술관, 서울, 2025. 작가, BB&M, 하우저앤워스 제공. © Lee Bul. 사진: 전병철. 작가 및 리움미술관 제공.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은 숱한 위험을 감수하며 기술 개발에 매진한다. 그것이 기후 환경을 파괴할지, 문명의 종말을 가져올 지, 인류를 절멸하게 할지, 조금도 그 무엇도 알 수 없는 채로 AI와 로봇들을 개발하는 데에만 매진하는 동시대 인간들처럼.
‘취약할 의향’의 조각 연작과 함께 전개된 벨벳 연작 ‘무제(취약할 의향–벨벳 #15)’는 벨벳에 자개와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 콜라주한 작품이다. 벨벳은 비단을 주재료로 짜인 천으로, 비단은 누에가 내부에서 분비하는 물질로 만들어지는 전통적인 작물이다. 자개 역시 조개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내부를 향한 일종의 방어기제다.
‘무제(취약할 의향–벨벳 #15) 2021, 자개, 아크릴 물감, 실크 벨벳에 콜라주, 147 x 197 x 12cm(액자포함), 리움미술관 소장 © Lee Bul. 사진: 전병철. 작가 및 리움미술관 제공.
이불은 이 시리즈를 통해 취약한 것이 강한 것이라는 역설을 보여준다. 추락할지도 모를 비행선을 설계하는 인류의 이상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생성한 방어기제로 자개를 만들어내는 조개의 생태가 강인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열목어가 오직 산란하기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상류로 몸을 던져 뛰어오르는 것처럼, 얼룩말이 늪에 악어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모금의 물을 축이기 위해 입을 대는 것처럼, 무릇 살아있고자 하는 것들은 살아있기 위해 선뜻 가장 내밀하고 취약한 것을 드러내는 강한 존재라는 아이러니를 알려주는 것이다.
반항 정신과 한국 근현대사의 상흔, 서구와 동구권을 아루는 세계 예술사의 집적을 통해 이루어진 이불이라는 산. 그의 이상과 불안,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나는 이불의 삶의 궤적과 모든 작품을 경애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애틋한 것이 있다면 ‘취약할 의향’을 고르겠다.
우리는 찬란하게 빛나기 위해 또 부서지기 위해 태어났다. 이불은 ‘취약할 의향’을 통해 인간은 이상과 꿈을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존재이자, 그것을 위해서라면 제일 내밀하고도 연한 약점을 가장 강력하게 사용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알려주었기에. 취약한 것을 내밀하게 꼭꼭 숨기고 미로 안에 영영 갇혀 있기를 택했던 나도, 그녀의 티끌만큼이라도 용기를 내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불의 작품은 우리를 혼돈에 빠뜨리되 결국엔 자력으로 나아갈 출구를 열어놓기에. 이제 나는 마땅히 취약할 의향을 지니고 새롭게 뜨는 해를 맞이한다.
▶‘이예지의 질투는 나의 힘’은?
이예지 에디터에게는 세상 모든 사람을 질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부러운 점을 찾아내고야 마는 것이 그의 오랜 습관이지요. 이예지 에디터가 <GQ>, <아레나>, <씨네21>, <코스모폴리탄> 등 4개 매체를 거치며 지금껏 만난 사람들의 면면 중에 가장 열렬히 질투했던 구석을 파고든 이야기로 찾아옵니다.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https://www.hani.co.kr/arti/SERIES/3196?h=s)에서 사랑스러운 질투로 파고든 인사이트를 만나보세요!
이예지 에디터
“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
생동하는 육체로, 코를 찌르는 냄새로, 전위와 전복으로 ‘근대성’이라는 거대한 철근 구조물 같은 억압에 온몸을 오션파라다이스게임 부딛치던 여자가 있다. 이불은 나체 상태로 밧줄에 묶여 거꾸로 매달린 채 “나는 여기에 매달려 아이를 낙태한 모든 여성들의 고난을 견디고, 그들을 죄책감과 고통으로부터 구원한다”고 읊조렸고, 두 시간 가까이 지속되는 고통스러운 퍼포먼스에 급기야 관객들이 그녀를 말리기 시작한다. (‘낙태’, 1989, 동숭아트센터.)
다음 장면. 이불은 오션파라다이스예시 뒤집어진 내장, 촉수, 꼬리, 혹은 아무렇게나 자라난 팔다리처럼 보이는 부속들을 주렁주렁 매단 붉은 소프트 조각(‘무제-갈망’)을 뒤집어쓰고 도쿄 번화가 한복판을 걷는다. 육중한 조각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기우뚱하다가, 아연실색한 이들에게 퍼포먼스 홍보 리플릿을 나누어주고, 천연덕스레 선글라스를 쓴 채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권위와 속박과 구태, 세상 백경릴게임 모든 아버지들을 보기 좋게 걷어차는 최승자의 시,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중 일부를 인용한 제목의 퍼포먼스 ‘수난유감-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1990)의 장면들이다.
장소를 옮겨, 1997년 뉴욕 현대미술관. 이불은 1991년부터 선보이던 ‘장엄한 광채’를 전시한다. 생선에 사체를 비즈와 시퀸으로 화려하게 바다이야기고래출현 장식한 ‘장엄한 광채’에서는 곧 썩은 악취가 진동하고, 현대미술관은 이 작품을 철거해 인근 호텔로 옮겨 버린다. 그녀는 강력히 항의했고 이 일련의 사건 또한 작품의 일부가 되는 해프닝이 발생한다. 이미지보다 먼저 도착한 냄새, 유기물의 현존과 그것을 응시하는 방식. 그것은 기존의 시각 중심주의에 저항하는 이불의 도전이자 젊은 그녀의 예술 자체였다.
10원야마토게임반세기에 달하는 이불의 예술 인생을 회고하자면, 여기까지가 그녀의 1막이다. 반체제 운동가 집안에서 나고 자라 연좌제에 억눌리며 예술가가 되기로 택한 그녀는 생생한 육체로, 썩어가는 유기물로, 안과 밖이 전복되고 뒤틀린 천과 솜의 조각으로, 한국인 여성으로서 여기 생존하고 있음을 알리는 행위예술로, 세상 모든 아버지들에게 반기를 들었다.
이불 작가. 윤형문
이제 이불의 탐구는 몸에서 세계로, 포스트모던으로, 미래의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로 나아간다. 최근까지 리움미술관에서 대대적으로 연 ‘이불: 1998년 이후’가 바로 그 변곡점 이후 현재까지 이불의 작업을 조망하는 전시다. 예술 인생 2막에서 그녀는 이데올로기 갈등의 무용함, 유토피아를 향해 몸을 던지는 인간의 위대함과 산산이 부서지고 마는 인간의 취약성, 끊임없이 실패하지만 투신하는 몸짓, 사무엘 베케트식으로 말하자면 계속할 수 없지만 계속해 나가는 아름다움에 몰두한다.
이불이 2005년부터 전개한 ‘몽그랑레시’ 연작은 그 중심을 이루는 작품들이다. 이 연작은 장-프랑수아 리오타르가 제시한 ‘거대 서사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해, 보편적인 단일 서사 대신 개인들의 미시 서사, 역사의 파편들, 다양한 사회문화적 요소들을 뒤섞는다.
‘오바드V’ 2019, 비무장지대(DMZ) 철거 초소에서 수집한 주조강, 옵티움 뮤지엄 아크릴, 전자 디스플레이 보드, LED조명, CPU, DC-SMPS, 디머, 전기배선, 400 x 300(⌀) cm, 작가 및 BB&M 제공 © Lee Bul, 사진: 전병철. 작가 및 리움미술관 제공.
이를테면 작가의 유년기 기억에서 출발한 ‘벙커(M. 바흐친)’(2007)나 ‘해빙(다카키 마사오)’(2007), 검은 타르 같은 물질이 부서진 욕조를 가득 채워 민주화 열사들의 고문 과정을 연상케 하는 ‘천지(전시 버전)’(2007년작 재현), 좌초된 세월호의 비극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스케일 오브 텅’(2017), 2018년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으로 철거한 감시초소의 폐자재로 만든 탑 ‘오바드 V’(2019)(수년 후 그 선언은 폐기됐고 초소는 다시 세워졌다. 작가는 인간사의 무상함을 표현하기 위해 작품 한 가운데 백만 년 동안 변하지 않을 자연법칙인 지구 자전축의 기울기를 점멸하며 출력하는 LED디스플레이를 덧붙였다) 등 한국 근현대사의 흔적들.
여체와 기계의 혼종성을 드러내는 ‘사이보그’ 연작은 여성에 대해 발화하던 작가의 작품 세계의 확장이다. 사이보그는 고대 조각을 연상케 하는 순백의 피부와 이상적인 비례를 지니고 있지만, 머리와 팔다리가 없는 불완전한 형태다. 미완으로 보이는 신체는 기술로 증강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나, 기술은 자본과 권력에 종속되어 있어 소외된 자들을 위한 해방의 도구가 될 수 없다. 고대 신화적 요소와 테크노크라시가 지배할 근미래의 냉소적이고 암울한 전망을 뒤섞은 작품들은 반인반수의 형상을 금속 사이보그 형태로 재현한 ‘티탄’(2013), 스틸과 목재가 교체하며 구축과 해체를 반복하는 신체이자 건축물인 ‘당신의 차갑고 어두운 눈동자 속 무한한 섬광’(2009), 사모트라케의 니케 같은 고전적 조각상을 연상케 하면서도 피카소의 큐비즘과 기술문명의 혼종을 보여주는 ‘롱 테일 헤일로: CTCS #1’(2024)를 통해서도 전개된다.
‘사이보그 W6’ 2001, FRP 위에 수공 EVA 패널, 폴리우레탄 코팅, 232 x 67 x 67 cm, 리움미술관 소장 © Lee Bul. 사진: 전병철. 작가 및 리움미술관 제공.
이불은 ‘몽그랑레시: 왜냐하면 모든 것은…’(2005)으로 ‘몽그랑레시’의 시작을 알렸는데, 그것은 마치 테이블 위에 올려진 모더니즘 건축의 폐허와도 같다. 폐허를 세차게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는 공중에서 뚝 끊겨 낙하하며, 설원의 낭떠러지에는 러시아 구성주의의 이상을 상징하는 블라디미르 타틀린의 제3인터내셔널 기념비가 위태롭게 서 있다. 수정산과 마주한 전광판은 폴 보울스의 소설 ‘피난처 하늘’에서 발췌해 혼용한 문구 “Because everything/only really perhaps/yet so limitless(왜냐하면 모든 것은/그저 정말로 어쩌면/그럼에도 한없이 무한한)”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 현대 문명과 그 폐허의 멜랑콜리를 드리운다.
이탈리아 신학자이자 철학자 토마소 캄파넬라의 저서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태양의 도시 II’(2014)는 어떤가? 이 작품은 바닥과 벽면을 둘러싼 거울 조각들과 260개의 LED 전구로 만들어낸, 빛과 어둠이 혼재된 세계다. 리움의 어두운 블랙박스 공간에 설치된 이 작품 속 조각난 거울은 모든 것을 파편화하며 그 속에서 끝없이 반사되고 투영되는 빛은 심연 속 왜곡된 경로와 환영들을 만들어낸다. 칠흑 같은 밤, 빙하에 좌초하여 부서져 버린 난파선 같은, 그러나 지독하게 아름다운 이곳은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태양의 도시 II’ 2014, 폴리카보네이트판, 아크릴 거울, LED 조명, 전기 배선, 가변 설치,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2014: 이불’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14. 국립현대미술관 커미션, 현대차 후원. 작가 및 BB&M 제공 © Lee Bul. 사진: 전병철. 작가 및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여러 작품을 경유해 만나게 되는 ‘비아 네가티바’(2022, 2012년작 재제작)는 그 혼돈을 관람자가 직접 통과하는 작품이다. ‘비아 네가티바’는 라틴어로 ‘부정의 길’이라는 뜻으로, 신의 본질은 침묵과 부정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음을 말하는 신학적 개념이다. 시작과 끝이 모호하며 중심과 주변의 구분이 없는 비선형적인 거울 미로 공간에서 관객은 필연적으로 방황한다. 산산이 조각난 자신의 반영과 거짓 경로를 마주치고 발걸음을 무르며 출구를 찾아 헤맨다. 그 휘황한 허상에 눈이 먼 이들은 한동안 그곳에 머물기도 한다. 끝내 방황을 마치고 나와야 관람객은 자신이 끌탕을 쳤던 미로의 실체를 마주하게 되는데, 작품 외벽엔 인간의 의식이 문화와 환경, 언어 발전 속에서 형성되는 것임을 밝힌 심리학자 줄리언 제인스의 저서 ‘의식의 기원’의 페이지들이 얼기설기 붙어 있다.
‘비아 네가티바’ 2022 (2012년작 재제작) 목재, 아크릴 거울, 양방향 거울, LED 조명, 우드스테인, ‘의식의 기원’ 국문 및 영문판 약 290 x 600 x 600 cm ‘이불: 1998년 이후’ 전시 전경, 리움미술관, 서울, 2025. 작가 및 BB&M 제공. © Lee Bul. 사진: 전병철. 작가 및 리움미술관 제공.
허상과 이상, 영원히 당도할 수 없는 유토피아. 부정하고 부정해야만, 끊임없는 소거를 통해서만 찾을 수 있는 진실.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그곳으로 투신하는 인간들.
길이 17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은빛 비행선인 ‘취약할 의향-메탈라이즈드 벌룬’(2015-2016/2020)은 20세기 초 독일 기술 발전의 대명사였던 체펠린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체펠린은 군사 및 여객용으로 사용되었으나, 힌덴부르크 참사로 계기로 다시는 이러한 형태의 비행선이 제작되지 않았다. 모든 유토피아는 필연적인 실패를 내장하고 있다.
‘취약할 의향–메탈라이즈드 벌룬’, 2015-2016/2020, 천, PET 필름, 송풍기, 전기 배선, 300 x 1700 x 300 cm, ‘이불: 1998년 이후’ 전시 전경, 리움미술관, 서울, 2025. 작가, BB&M, 하우저앤워스 제공. © Lee Bul. 사진: 전병철. 작가 및 리움미술관 제공.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은 숱한 위험을 감수하며 기술 개발에 매진한다. 그것이 기후 환경을 파괴할지, 문명의 종말을 가져올 지, 인류를 절멸하게 할지, 조금도 그 무엇도 알 수 없는 채로 AI와 로봇들을 개발하는 데에만 매진하는 동시대 인간들처럼.
‘취약할 의향’의 조각 연작과 함께 전개된 벨벳 연작 ‘무제(취약할 의향–벨벳 #15)’는 벨벳에 자개와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 콜라주한 작품이다. 벨벳은 비단을 주재료로 짜인 천으로, 비단은 누에가 내부에서 분비하는 물질로 만들어지는 전통적인 작물이다. 자개 역시 조개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내부를 향한 일종의 방어기제다.
‘무제(취약할 의향–벨벳 #15) 2021, 자개, 아크릴 물감, 실크 벨벳에 콜라주, 147 x 197 x 12cm(액자포함), 리움미술관 소장 © Lee Bul. 사진: 전병철. 작가 및 리움미술관 제공.
이불은 이 시리즈를 통해 취약한 것이 강한 것이라는 역설을 보여준다. 추락할지도 모를 비행선을 설계하는 인류의 이상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생성한 방어기제로 자개를 만들어내는 조개의 생태가 강인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열목어가 오직 산란하기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상류로 몸을 던져 뛰어오르는 것처럼, 얼룩말이 늪에 악어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모금의 물을 축이기 위해 입을 대는 것처럼, 무릇 살아있고자 하는 것들은 살아있기 위해 선뜻 가장 내밀하고 취약한 것을 드러내는 강한 존재라는 아이러니를 알려주는 것이다.
반항 정신과 한국 근현대사의 상흔, 서구와 동구권을 아루는 세계 예술사의 집적을 통해 이루어진 이불이라는 산. 그의 이상과 불안,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나는 이불의 삶의 궤적과 모든 작품을 경애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애틋한 것이 있다면 ‘취약할 의향’을 고르겠다.
우리는 찬란하게 빛나기 위해 또 부서지기 위해 태어났다. 이불은 ‘취약할 의향’을 통해 인간은 이상과 꿈을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존재이자, 그것을 위해서라면 제일 내밀하고도 연한 약점을 가장 강력하게 사용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알려주었기에. 취약한 것을 내밀하게 꼭꼭 숨기고 미로 안에 영영 갇혀 있기를 택했던 나도, 그녀의 티끌만큼이라도 용기를 내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불의 작품은 우리를 혼돈에 빠뜨리되 결국엔 자력으로 나아갈 출구를 열어놓기에. 이제 나는 마땅히 취약할 의향을 지니고 새롭게 뜨는 해를 맞이한다.
▶‘이예지의 질투는 나의 힘’은?
이예지 에디터에게는 세상 모든 사람을 질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부러운 점을 찾아내고야 마는 것이 그의 오랜 습관이지요. 이예지 에디터가 <GQ>, <아레나>, <씨네21>, <코스모폴리탄> 등 4개 매체를 거치며 지금껏 만난 사람들의 면면 중에 가장 열렬히 질투했던 구석을 파고든 이야기로 찾아옵니다.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https://www.hani.co.kr/arti/SERIES/3196?h=s)에서 사랑스러운 질투로 파고든 인사이트를 만나보세요!
이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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