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그라와 함께라면 어떤 사랑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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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그라와 함께라면 어떤 사랑도 가능하다
사랑은 모든 이들에게 희망과 활력을 주는 중요한 감정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사랑의 불꽃을 유지하기 위해 신체적, 정신적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합니다. 특히 발기부전ED과 같은 문제는 남성들에게 자신감 저하와 관계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도 비아그라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며, 모든 사랑이 가능하도록 지원합니다. 비아그라는 단순한 약물이 아니라, 사랑과 자신감을 회복시키는 도구입니다.
1. 비아그라란 무엇인가?
비아그라는 발기부전 치료제로, 주요 성분은 실데나필Sildenafil입니다. 이 약물은 음경 혈관을 확장시켜 혈액 흐름을 증가시키고, 발기를 촉진하며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비아그라는 1998년 FDA 승인을 받은 이래,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남성들에게 사랑의 불꽃을 다시 지피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2. 비아그라의 주요 효과
1 발기부전 극복
비아그라는 발기부전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합니다. 약물 복용 후 음경 혈류가 원활해져 강하고 지속적인 발기가 가능하며, 이는 남성들의 자신감을 회복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2 성적 만족도 향상
발기부전 극복은 자연스럽게 성적 만족도로 이어집니다. 비아그라는 더 나은 성적 경험을 가능하게 하며, 파트너와의 관계를 강화합니다.
3 심리적 안정감 제공
발기부전은 많은 남성들에게 심리적 스트레스와 불안을 야기합니다. 비아그라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며,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합니다. 이는 전반적인 삶의 질을 높이는 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3. 비아그라 복용 방법
1 적절한 복용 시간
비아그라는 성관계 약 3060분 전에 복용하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약효는 약 46시간 지속되며, 이 시간 동안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2 용량 조절
비아그라는 25mg, 50mg, 100mg의 다양한 용량으로 제공됩니다. 일반적으로 50mg이 권장되지만, 개인의 건강 상태와 필요에 따라 용량을 조절해야 합니다. 반드시 의사의 지시에 따라 복용해야 안전합니다.
3 주의사항
하루 1회 복용을 권장하며, 과도한 복용은 부작용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알코올과 함께 복용하면 약효가 감소하거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심혈관 질환이 있는 경우 복용 전에 의사와 상담해야 합니다.
4. 비아그라의 부작용과 대처법
1 일반적인 부작용
비아그라의 흔한 부작용으로는 두통, 소화불량, 안면 홍조, 코막힘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증상은 경미하며,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집니다.
2 드물지만 심각한 부작용
드물게 가슴 통증, 시각 장애, 청력 손실 등의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즉시 약물 복용을 중단하고 의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3 안전한 복용을 위한 팁
비아그라를 안전하게 복용하기 위해서는 의사의 지시를 철저히 따르고, 개인의 건강 상태를 잘 고려해야 합니다.
5. 비아그라 구매 시 주의사항
1 정품 구매
비아그라는 인기 있는 약물이기 때문에 가짜 제품이 유통될 위험이 있습니다. 반드시 신뢰할 수 있는 약국이나 온라인 약국에서 정품을 구매해야 합니다.
2 처방전 필요
비아그라는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약물입니다. 이는 개인의 건강 상태에 맞는 적절한 용량과 복용 방법을 결정하기 위함입니다.
3 온라인 구매
현대에는 온라인 약국을 통해 비아그라를 구매하는 것이 점점 더 보편화되고 있습니다. 하나약국과 같은 신뢰할 수 있는 온라인 약국에서는 정품 비아그라를 안전하게 구매할 수 있으며, 익명 배송 서비스를 통해 프라이버시를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6. 비아그라로 사랑을 되찾은 사례들
사례 1: 다시 찾은 열정
40대 남성 A씨는 발기부전으로 인해 아내와의 관계가 소원해졌습니다. 비아그라를 복용한 후 그는 다시 아내와의 열정을 되찾았고, 결혼 초반의 설렘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사례 2: 자신감 회복
50대 남성 B씨는 발기부전으로 인해 자신감을 잃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위축되었습니다. 비아그라는 그에게 새로운 삶의 문을 열어주었으며, 그는 내 자신감을 다시 찾고, 사회생활도 활발해졌다고 전했습니다.
7. 비아그라와 함께라면 모든 사랑이 가능하다
비아그라는 단순한 약물이 아닙니다. 이는 남성들이 자신감을 회복하고, 사랑과 관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입니다. 비아그라를 통해 많은 남성들이 새로운 시작을 경험했으며, 파트너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더 깊은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
하나약국과 같은 신뢰할 수 있는 구매처에서 비아그라를 안전하게 구매하여, 당신의 사랑과 열정을 되찾아 보세요. 비아그라와 함께라면 어떤 사랑도 가능하며, 당신의 삶은 더욱 행복하고 충만해질 것입니다.
기자 admin@slotnara.info
지리산 고산지대 걷는 고진감래 구간길고 깊은 화개골, 고산준령 둘러싸여고운 최치원 ‘호리병 속 별천지’ 묘사화개장터~쌍계사 ‘십리 벚꽃길’ 환상
화개골의 내밀한 끝자락에 이르려면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거리의 몇 곱을 더해야 한다. 옛 선인 중 일부는 화개동천(花開洞天)의 시작을 쌍계사부터라 비정하기도 했는데 그만큼 화개골이 길고 깊다는 의미가 된다./사진작가 각로 박혜란/
황금성슬롯◇꽃 피는 골, 화개(花開)
지리산의 가장 깊은 골, 하늘만 빼꼼히 열려 꽃이 필 여유조차도 없을 것 같은 기암협곡의 골짝에 꽃이 활짝 피었다. 이름하여 화개(花開). 이름값 한다고 그래서일까. 이곳의 봄은 만개한 꽃으로 산천을 채운다. 화사한 봄날에 어느 골인들 꽃이 없겠냐마는 화개골의 벚꽃은 산과 길과 개울을 가득 채우고도 릴게임오션파라다이스 모자라 사람까지 가득하게 만든다. 눈부시게 초연한 꽃빛, 흐드러지게 핀 벚꽃의 군무 그리고 황홀하게 흩날리는 꽃비. 이 화려한 벚꽃의 향연이 해마다 봄이면 이곳 화개골을 가득 채운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에 이르기까지 십여 리의 벚꽃길은 봄 화개를 가장 ‘화개(花開)’답게 활짝 펼친다.
바다신2다운로드 하동군 화개장터 십리벚꽃.
화개의 원래 이름은 합포(陜浦)였는데, 신라 경덕왕 때 화개로 지명이 바뀌었다. 조선 초기까지 특수행정구역인 화개부곡으로 진주목에 예속됐고, 부곡의 우두머리(長吏)는 머리를 깎았으며 승수(僧首)라 불렀다고 한다.
역사를 좀 더 거슬러 올라 바다이야기릴게임2 가 지금으로부터 약 1300년 전, 삼법화상이 육조혜능의 정상(頂相, 머리)을 모시고 “눈 쌓인 골 안의 칡꽃 피는 곳에 봉안하라”는 계시를 받고 찾아 헤매던 중, 자리를 찾아 육조의 정상을 봉안하고 절을 세우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화개골이며 현재의 쌍계사다.
이로부터 이곳 화개는 연년세세 불법의 꽃비(花雨)가 골 안을 가득 채우는 상서 바다신게임 로운 불국토의 꽃을 활짝 피우게 됐다. 봄에만 꽃피우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불법의 꽃이 활짝 열리는 곳, ‘화개(花開)’로 된 것이다.
화개장터
◇화개의 지형
지리산 어느 골인들 깊지 않은 골이 있으랴마는 화개골은 유달리 깊고 길다.
흔히들 화개의 중심에 쌍계사가 있고, 쌍계사를 보면 화개를 다 본 것이나 진배없다고 하는데 어림없는 이야기다. 화개골의 내밀한 끝자락에 이르려면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거리의 몇 곱을 더해야 한다. 옛 선인 중 일부는 화개동천(花開洞天)의 시작을 쌍계사부터라 비정하기도 했는데 그만큼 화개골이 길고 깊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기껏해야 원부춘에서 형제봉 자락, 회강이골 그리고 정금 차밭을 거치는 것이 전부인 둘레길의 짧은 발품(?)으로 화개를 이야기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면이 없지 않지만, 화개의 개략이라도 학습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둘레길 걸음을 잠시 멈추어 본다.
화개의 북쪽은 지리산 주능선이다. 그것도 주능선 전체 길이의 반이 훨씬 넘는 산맥이 병풍처럼 가리고 있다. 삼도봉에서 동으로 토끼봉·명선봉·덕평봉을 거쳐 영신봉에 이르기까지 장장 14.2㎞의 백두대간 주맥이 화개의 북쪽을 가리는 진산이다. 화개의 동쪽은 영신봉에서 삼신봉, 그리고 내삼신봉·관음봉·형제봉으로 이어지는 소위 지리산 남부능선이 휘감아 돌면서 함양군 마천면과 산청군 시천면 그리고 하동군 청암면과 악양면을 가르는 경계를 이룬다. 그리고 화개의 서쪽은 삼도봉에서 불무장등·황장산을 거쳐 촛대봉으로 이어지는 소위 불무장등 능선이 섬진강으로 고개를 숙이면서 전라남도 구례군의 토지면과 경계를 이루는 도계(道界)가 된다. 이렇게 사방이 고산준령으로 둘러싸인 화개를 병 속의 별천지라 묘사하기도 한다. 병 속의 별천지인 화개의 물길 또한 별천지다. 이곳의 깊은 골골에서 발원한 옥류는 기암과 괴석을 만나 구르다 하나둘 화개천에 모여들어 별유천(別有川)을 이루었다.
◇호중별유천(壺中別有天)
그래서일까. 조선시대 많은 선비가 이곳에서 지리산 청학동을 찾으려고 했고, 실제로 이곳의 상덕평·의신골·불일평전 등을 청학동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가을날 목통골의 선홍 단풍과 골 안을 가득 담은 서광을 본다면, 물길도 멈춘 겨울날 빗점골의 처연한 바람 소리를 듣는다면, 여름날 세개골의 시린 벽류에 몸을 담그고 속진의 때를 털어본다면…. 아마도 이것이 청학동이 아닐까 한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지리산의 남쪽에는 신응사와 쌍계사가 있다. 절에는 신라 고운 최치원의 화상이 있으며, 계곡을 따라 석벽에는 고운 최치원이 쓴 글씨가 많이 새겨져 있다. (중략) 선조 신묘년(1591년)에 절의 승려가 바위틈에서 종이 하나를 얻었는데, 다음과 같은 절구 한 수가 적혀 있었다. ‘동쪽 나라 화개동은(東國花開洞), 병 속의 별천지일세(壺中別有天). 신선이 옥 베개 밀치고 잠에서 깨어나니(仙人推玉枕), 세상은 어느덧 천년이 지났네(身世숙千年).’ (중략) 글씨의 획이 갓 쓴 것 같고, 글씨의 법도가 세상에 전하는 고운 최치원의 필체와 같았다”라며 최치원의 ‘화개동’ 시를 소개하고 있다.
쌍계석문
◇화개동천과 청학동
호중별유천은 화개동천을 이르는 말이면서 한편으로 청학동의 형승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한 연유인지 화개동천을 청학동으로 비정하거나, 화개동천에서 청학동을 찾고자 했던 선인들의 행적도 다양하게 전해진다.
이러한 화개동천의 청학동을 이야기하려면 최치원을 빼놓을 수 없다. 최치원은 청학선인(靑鶴仙人)으로 회자되면서 후대에 이르러 청학동 담론의 진원이 됐다. 화개동천 곳곳에 그의 흔적들이 산재해 있는데, 쌍계사의 쌍계석문(雙溪石門), 불일암의 환학대(喚鶴臺)와 완폭대(翫瀑臺) 그리고 신흥사의 삼신동(三神洞)과 세이암(洗耳巖) 각자들이 그것이다.
그는 신흥사 세이암에서 속세에서 더러워진 귀를 씻고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두고 청학동으로 들어가 신선이 됐다고 한다. 그 꽂아둔 지팡이에 싹이 자라서 거목의 푸조나무가 됐는데 최치원은 ‘이 나무가 살아 있으면 나도 살아있고, 이 나무가 죽으면 나도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는 설화도 전한다.
최치원 푸조나무
다음으로 청학동 탐승의 실마리를 연 인물로 고려조 이인로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청학동의 형승을 정립해 후대에 청학동을 찾아 나서는 이들의 텍스트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청학동 탐승의 비조라 할 만하다. 그러나 그는 끝내 청학동을 찾지 못했다. 그는 청학동의 형승을 옛 노인들의 전언을 통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지리산 안에 청학동이 있는데 길이 매우 협착(狹窄)하여 겨우 사람이 다닐 수 있고, 몸을 구부리고 몇 리(里)를 가서야 넓게 트인(虛曠) 곳이 나타난다. 그곳에는 양전옥토(良田沃土)가 널려 있어 곡식을 심고 가꾸기에 알맞고, 청학이 그곳에 서식하기에 청학동이라 부른다.” 비록 청학동 찾기에 실패했던 그였지만 그의 글은 후대에 이르러 수많은 사람이 청학동을 찾아 나서게 했다. 아울러 그가 말한 ‘협착한 길(路甚狹), 넓게 트인 곳(虛曠之地), 양전옥토, 그리고 청학서식’ 등 청학동의 요건은 청학동 탐승의 길라잡이가 되기도 했다.
조선 전기의 남효온·김일손에서부터 중기의 조식·유몽인 등에 이르기까지 지리산을 유람했던 선비들이 그 속에서 청학동을 찾으려 했다. 남효온은 ‘지리산일과’에서 김일손은 ‘속두류록’에서 각각 불일암 일대를 청학동이라 비정했다.
남명 조식 역시 불일암을 청학동이라 하면서 ‘유두류록’에서 다음 글을 남겼다. “비로소 불일암에 도착하였다. 이곳이 곧 청학동이다. …청학 두 마리가 그 바위틈에 깃들어 살면서 가끔 날아올라 빙빙 돌기도 하고 하늘로 솟구쳤다가 내려오기도 한다.”
황부호 작가
글·사진= 황부호 작가
화개골의 내밀한 끝자락에 이르려면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거리의 몇 곱을 더해야 한다. 옛 선인 중 일부는 화개동천(花開洞天)의 시작을 쌍계사부터라 비정하기도 했는데 그만큼 화개골이 길고 깊다는 의미가 된다./사진작가 각로 박혜란/
황금성슬롯◇꽃 피는 골, 화개(花開)
지리산의 가장 깊은 골, 하늘만 빼꼼히 열려 꽃이 필 여유조차도 없을 것 같은 기암협곡의 골짝에 꽃이 활짝 피었다. 이름하여 화개(花開). 이름값 한다고 그래서일까. 이곳의 봄은 만개한 꽃으로 산천을 채운다. 화사한 봄날에 어느 골인들 꽃이 없겠냐마는 화개골의 벚꽃은 산과 길과 개울을 가득 채우고도 릴게임오션파라다이스 모자라 사람까지 가득하게 만든다. 눈부시게 초연한 꽃빛, 흐드러지게 핀 벚꽃의 군무 그리고 황홀하게 흩날리는 꽃비. 이 화려한 벚꽃의 향연이 해마다 봄이면 이곳 화개골을 가득 채운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에 이르기까지 십여 리의 벚꽃길은 봄 화개를 가장 ‘화개(花開)’답게 활짝 펼친다.
바다신2다운로드 하동군 화개장터 십리벚꽃.
화개의 원래 이름은 합포(陜浦)였는데, 신라 경덕왕 때 화개로 지명이 바뀌었다. 조선 초기까지 특수행정구역인 화개부곡으로 진주목에 예속됐고, 부곡의 우두머리(長吏)는 머리를 깎았으며 승수(僧首)라 불렀다고 한다.
역사를 좀 더 거슬러 올라 바다이야기릴게임2 가 지금으로부터 약 1300년 전, 삼법화상이 육조혜능의 정상(頂相, 머리)을 모시고 “눈 쌓인 골 안의 칡꽃 피는 곳에 봉안하라”는 계시를 받고 찾아 헤매던 중, 자리를 찾아 육조의 정상을 봉안하고 절을 세우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화개골이며 현재의 쌍계사다.
이로부터 이곳 화개는 연년세세 불법의 꽃비(花雨)가 골 안을 가득 채우는 상서 바다신게임 로운 불국토의 꽃을 활짝 피우게 됐다. 봄에만 꽃피우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불법의 꽃이 활짝 열리는 곳, ‘화개(花開)’로 된 것이다.
화개장터
◇화개의 지형
지리산 어느 골인들 깊지 않은 골이 있으랴마는 화개골은 유달리 깊고 길다.
흔히들 화개의 중심에 쌍계사가 있고, 쌍계사를 보면 화개를 다 본 것이나 진배없다고 하는데 어림없는 이야기다. 화개골의 내밀한 끝자락에 이르려면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거리의 몇 곱을 더해야 한다. 옛 선인 중 일부는 화개동천(花開洞天)의 시작을 쌍계사부터라 비정하기도 했는데 그만큼 화개골이 길고 깊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기껏해야 원부춘에서 형제봉 자락, 회강이골 그리고 정금 차밭을 거치는 것이 전부인 둘레길의 짧은 발품(?)으로 화개를 이야기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면이 없지 않지만, 화개의 개략이라도 학습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둘레길 걸음을 잠시 멈추어 본다.
화개의 북쪽은 지리산 주능선이다. 그것도 주능선 전체 길이의 반이 훨씬 넘는 산맥이 병풍처럼 가리고 있다. 삼도봉에서 동으로 토끼봉·명선봉·덕평봉을 거쳐 영신봉에 이르기까지 장장 14.2㎞의 백두대간 주맥이 화개의 북쪽을 가리는 진산이다. 화개의 동쪽은 영신봉에서 삼신봉, 그리고 내삼신봉·관음봉·형제봉으로 이어지는 소위 지리산 남부능선이 휘감아 돌면서 함양군 마천면과 산청군 시천면 그리고 하동군 청암면과 악양면을 가르는 경계를 이룬다. 그리고 화개의 서쪽은 삼도봉에서 불무장등·황장산을 거쳐 촛대봉으로 이어지는 소위 불무장등 능선이 섬진강으로 고개를 숙이면서 전라남도 구례군의 토지면과 경계를 이루는 도계(道界)가 된다. 이렇게 사방이 고산준령으로 둘러싸인 화개를 병 속의 별천지라 묘사하기도 한다. 병 속의 별천지인 화개의 물길 또한 별천지다. 이곳의 깊은 골골에서 발원한 옥류는 기암과 괴석을 만나 구르다 하나둘 화개천에 모여들어 별유천(別有川)을 이루었다.
◇호중별유천(壺中別有天)
그래서일까. 조선시대 많은 선비가 이곳에서 지리산 청학동을 찾으려고 했고, 실제로 이곳의 상덕평·의신골·불일평전 등을 청학동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가을날 목통골의 선홍 단풍과 골 안을 가득 담은 서광을 본다면, 물길도 멈춘 겨울날 빗점골의 처연한 바람 소리를 듣는다면, 여름날 세개골의 시린 벽류에 몸을 담그고 속진의 때를 털어본다면…. 아마도 이것이 청학동이 아닐까 한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지리산의 남쪽에는 신응사와 쌍계사가 있다. 절에는 신라 고운 최치원의 화상이 있으며, 계곡을 따라 석벽에는 고운 최치원이 쓴 글씨가 많이 새겨져 있다. (중략) 선조 신묘년(1591년)에 절의 승려가 바위틈에서 종이 하나를 얻었는데, 다음과 같은 절구 한 수가 적혀 있었다. ‘동쪽 나라 화개동은(東國花開洞), 병 속의 별천지일세(壺中別有天). 신선이 옥 베개 밀치고 잠에서 깨어나니(仙人推玉枕), 세상은 어느덧 천년이 지났네(身世숙千年).’ (중략) 글씨의 획이 갓 쓴 것 같고, 글씨의 법도가 세상에 전하는 고운 최치원의 필체와 같았다”라며 최치원의 ‘화개동’ 시를 소개하고 있다.
쌍계석문
◇화개동천과 청학동
호중별유천은 화개동천을 이르는 말이면서 한편으로 청학동의 형승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한 연유인지 화개동천을 청학동으로 비정하거나, 화개동천에서 청학동을 찾고자 했던 선인들의 행적도 다양하게 전해진다.
이러한 화개동천의 청학동을 이야기하려면 최치원을 빼놓을 수 없다. 최치원은 청학선인(靑鶴仙人)으로 회자되면서 후대에 이르러 청학동 담론의 진원이 됐다. 화개동천 곳곳에 그의 흔적들이 산재해 있는데, 쌍계사의 쌍계석문(雙溪石門), 불일암의 환학대(喚鶴臺)와 완폭대(翫瀑臺) 그리고 신흥사의 삼신동(三神洞)과 세이암(洗耳巖) 각자들이 그것이다.
그는 신흥사 세이암에서 속세에서 더러워진 귀를 씻고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두고 청학동으로 들어가 신선이 됐다고 한다. 그 꽂아둔 지팡이에 싹이 자라서 거목의 푸조나무가 됐는데 최치원은 ‘이 나무가 살아 있으면 나도 살아있고, 이 나무가 죽으면 나도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는 설화도 전한다.
최치원 푸조나무
다음으로 청학동 탐승의 실마리를 연 인물로 고려조 이인로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청학동의 형승을 정립해 후대에 청학동을 찾아 나서는 이들의 텍스트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청학동 탐승의 비조라 할 만하다. 그러나 그는 끝내 청학동을 찾지 못했다. 그는 청학동의 형승을 옛 노인들의 전언을 통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지리산 안에 청학동이 있는데 길이 매우 협착(狹窄)하여 겨우 사람이 다닐 수 있고, 몸을 구부리고 몇 리(里)를 가서야 넓게 트인(虛曠) 곳이 나타난다. 그곳에는 양전옥토(良田沃土)가 널려 있어 곡식을 심고 가꾸기에 알맞고, 청학이 그곳에 서식하기에 청학동이라 부른다.” 비록 청학동 찾기에 실패했던 그였지만 그의 글은 후대에 이르러 수많은 사람이 청학동을 찾아 나서게 했다. 아울러 그가 말한 ‘협착한 길(路甚狹), 넓게 트인 곳(虛曠之地), 양전옥토, 그리고 청학서식’ 등 청학동의 요건은 청학동 탐승의 길라잡이가 되기도 했다.
조선 전기의 남효온·김일손에서부터 중기의 조식·유몽인 등에 이르기까지 지리산을 유람했던 선비들이 그 속에서 청학동을 찾으려 했다. 남효온은 ‘지리산일과’에서 김일손은 ‘속두류록’에서 각각 불일암 일대를 청학동이라 비정했다.
남명 조식 역시 불일암을 청학동이라 하면서 ‘유두류록’에서 다음 글을 남겼다. “비로소 불일암에 도착하였다. 이곳이 곧 청학동이다. …청학 두 마리가 그 바위틈에 깃들어 살면서 가끔 날아올라 빙빙 돌기도 하고 하늘로 솟구쳤다가 내려오기도 한다.”
황부호 작가
글·사진= 황부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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