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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박물관협회가 주관하는 'K-뮤지엄 지역 순회 기획' 첫날, '침묵의 돈대 : 세계유산을 꿈꾸다' 프로그램에 참여해 첫 답사지인 갑곶돈대를 찾았다. 이번 행사의 진행은 강화 더리미미술관이 맡았다.
▲ 갑곶돈대 입구에 자리한 강화전쟁박물관. 푸른 가을 하늘 아래 단정한 모습으로 답사객을 맞이한다.
ⓒ 전갑남
강화의 관문이라 불리는 갑곶돈대에서 돈대의 역사와 그 안에 남은 흔적을 직접 살펴보는 첫 여정이었다.
이날 답사를 이끈 이는 동국대학교 황평우 교수였다.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으로 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을 연구해 온 황 교수의 설명을 들으며 갑곶돈대를 둘러보기로 했다.
갑곶, 강화의 관문
갑곶은 예부터 강화로 들어오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 때 이곳을 건너려던 몽골군이 갑옷을 벗어 바다에 던지면 건널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 이야기는 갑곶이 얼마나 중요한 관문으로 여겨졌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은 강화에 상륙했고, 갑곶 일대는 외세와 맞서야 했던 역사의 현장이 되었다. 지금은 염하를 따라 평온한 풍경이 펼쳐지지만, 이곳이 한때 나라의 위기를 맞았던 곳이라는 사실은 쉽게 떠올리기 어렵다.
탱자나무, 살아 있는 가시 울타리
갑곶돈대 안에는 천연기념물 제78호인 갑곶리 탱자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수령 약 300년으로 추정되는 이 탱자나무는 강화에서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쪽 한계선이라는 .에서도 의미가 있다.
▲ 천연기념물 갑곶리 탱자나무. 가시 촘촘한 가지 사이에 노란 열매가 익어가며 은은한 향을 풍긴다. 적을 막던 '살아 있는 가시 울타리'의 역사다.
ⓒ 전갑남
가시가 촘촘한 탱자나무는 예부터 울타리로 이용되었는데, 조선시대 강화 해안에도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탱자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황 교수는 돈대와 탱자나무를 번갈아 가리키며 말했다.
"돈대와 탱자나무! 말 그대로 살아 있는 가시 울타리였지요."
노랗게 익어가는 탱자 열매에서 은은한 향이 풍겼다. 설명을 듣고 나니 그저 오래된 나무 한 그루로만 보이지 않았다. 이 나무에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지혜를 짜냈던 선조들의 흔적이 배어 있는 듯했다.
벽돌 여장에 담긴 군사적 지혜
돈대 위로 올라서자 여장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돈대에서 흔히 보았던 돌로 쌓은 여장과 달리, 갑곶돈대의 여장은 벽돌로 쌓여 있어 눈길을 끌었다. 같은 여장이라도 재료가 달라지니 그 모습도 사뭇 달랐다.
황 교수는 여장의 역할을 설명해 주었다. 병사들이 몸을 숨긴 채 적의 움직임을 살피고, 필요할 때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방어 시설이라는 것이다.
▲ 갑곶돈대의 벽돌 여장. 돌이 아닌 벽돌로 쌓은 여장 너머로 잔잔한 염하의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적의 거리에 따라 조준할 수 있도록 수평과 경사진 포구가 세심하게 뚫려 있다.
ⓒ 전갑남
특히 포를 쏘는 구멍의 구조를 자세히 살펴보니, 멀리 있는 적을 겨누기 위해 수평에 가깝게 뚫린 구멍이 있는가 하면, 돈대 바로 밑으로 바짝 다가온 적을 조준하기 위해 아래쪽으로 엇비스듬히 경사가 진 구멍도 있었다.
황 교수의 설명을 듣고 보니, 병사들이 여장 뒤에 몸을 숨긴 채 적의 위치와 거리에 따라 사격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만든 구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은 그저 낮은 벽처럼 보이는 여장에도 당시의 전투 상황을 고려한 실용적인 지혜가 담겨 있었던 셈이다.
▲ 전각 안에 전시된 홍이포. 말없이 포구를 내밀고 있는 옛 무기에서 실제 전투 현장이었던 돈대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갑곶돈대에는 성가퀴에 불랑기포와 소포도 전시되어 있다.
ⓒ 전갑남
성가퀴 앞에는 불랑기포와 소포가 전시되어 있었고, 돈대 전각 안에는 홍이포도 놓여 있었다. 책이나 사진으로만 보던 옛 무기를 실제로 마주하니, 이곳이 단순한 성곽이 아니라 실제 전투를 대비했던 군사시설이었다는 사실이 한층 실감났다. 말없이 놓여 있는 포구를 바라보니, 오래전 이곳에서 오갔을 긴장감이 조금은 느껴지는 듯했다.
염하를 바라보며 떠올린 역사
돈대에 올라서자 눈앞으로 염하가 시원하게 펼쳐졌다. 잔잔한 물결 위로 햇살이 부서지고, 건너편 풍경은 평화롭기만 했다.
함께 걸음을 멈추고 탁 트인 수면을 바라보던 답사 참가자 중 누군가 나지막이 감탄을 뱉었다.
"여기서 바라보는 강화해협 염하(鹽河)는 참 아름답네."
"하지만 이곳에 돈대를 쌓고 나라를 지켜야 했던 선조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옆에서 들려온 소소한 대화에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지금은 이렇게 평온한데, 수백 년 전 이곳에 서 있던 사람들에게 이 물길은 아름다운 풍경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저 물길 너머를 끊임없이 살피며 혹시 모를 적의 움직임을 경계했을 병사들. 가족과 고향을 뒤로하고 이곳을 지켜야 했던 사람들. 그들에게 염하는 평화로운 물길이 아니라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긴장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같은 물길을 바라보고 있지만, 시대에 따라 그 풍경이 전혀 다르게 보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풍경 뒤에는 이곳을 지켜낸 사람들의 긴장과 수고가 있었을 것이다.
복원된 돈대, 남겨진 흔적
그때 황 교수는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돈대가 조선시대 원래의 갑곶돈대는 아닙니다."
그는 강화전쟁박물관 밖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그곳에는 돈대의 흔적으로 보이는 돌들이 층층이 쌓여 길게 늘어서 있었다.
▲ 풀숲에 남겨진 갑곶돈대의 흔적. 세월을 견디며 묵묵히 쌓여 있는 돌들이 진짜 지나온 역사를 증언하고 있는 듯싶다.
ⓒ 전갑남
황 교수의 설명을 들으며, 지금의 돈대를 조선시대 원래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원된 모습 뒤에 가려진 옛 흔적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말로 들렸다.
그는 남아 있는 돌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그래도 이 흔적이라도 남아 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그 말을 듣고 나니 눈앞의 돌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오랜 세월을 견디며 남아 있는 돌 하나가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게 하는 소중한 흔적처럼 느껴졌다.
갑곶의 침묵, 염하의 흐름
답사를 마치고 다시 돈대 아래로 내려왔다. 갑곶돈대 아래로 염하가 유유히 흐른다. 탱자나무에는 노란 열매가 익어가고, 오래된 돌들은 말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돈대도, 탱자나무도, 흩어진 옛 돌담도 말이 없다. 하지만 그 침묵이야말로 지나온 역사를 가장 묵직하게 증언하고 있었다.
▲ 염하를 바라보는 답사 참가자들. 평온한 물길을 내려다보며 수백 년 전 이곳을 지켰을 선조들의 긴장과 수고를 정답게 나누고 있다.
ⓒ 전갑남
역사는 거창한 기록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오래된 나무 한 그루, 무심히 놓여 있는 돌 하나, 그리고 복원된 성벽의 흔적 속에도 역사는 조용히 살아 있다.
갑곶돈대를 돌아보며 나는 다시 생각했다. 진짜 역사를 지킨다는 것은 오래된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곳에 남은 흔적을 제대로 살피고,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남았는지를 기억하는 일도 역사 지키기의 한 모습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in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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