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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대 홍문’ 집안으로 불리다
이발의 종가가 있었던 원산동 전경(광주시 남구)
‘광주읍지’ 성씨조를 보면 광주를 본관으로 삼고 있는 성씨가 나온다. 탁(卓)씨, 이(李)씨, 김(金)씨, 채(蔡)씨, 노(盧)씨 등 14개 성씨가 그것이다. 그중 조선시대 단연 돋보였던 성씨는 필문 이선제를 비롯해 이발·이길 형제 등 6대에 걸쳐 10명의 과거 합격자를 낸 광산이씨 집안이다.
바다신게임 이발·이길 형제가 시조인 이순백의 10세손이었기에 광산이씨 집안은 10대에 걸쳐 급제한 집안이라는 의미의 ‘10대 홍문’으로 칭송된다. ‘홍문’(紅門)이란 과거 합격증인 붉은 종이 증서, 즉 홍패를 받은 가문을 가리킨다.
또한 이발 집안은 ‘홍패로만 병풍도 만들 수 있는 집안이다’라는 말도 회자된다 릴게임모바일 . 10명이 과거에 합격했으니 합격증인 홍패 10장으로 병풍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일 게다. 대단한 집안이다.
이발 생가터(나주시 산포면 등수리)
광산 바다이야기프로그램다운로드 이씨 집안에서 과거 합격의 물꼬를 튼 분은 이순백의 5세손인 필문 이선제(李先齊, 1390-1454)다. 이선제는 문종 대에 무진군으로 강등된 광주를 광주목으로 승격시키는 데 큰 공을 세운 분이다. 오늘 광주의 도로명 ‘필문대로’는 이선제를 기리는 도로명이다.
이선제의 부조묘가 있는 광주광역시 남 체리마스터pc용다운로드 구 원산동 마을 입구에는 이선제가 심은 왕버들나무가 있다. 이선제는 나무를 심으면서 “이 나무가 죽으면 가문이 쇠락할 것이니, 관리를 잘하라”고 특별히 당부했다고 한다. 후손들은 과거에 급제하면, 이 나무에 급제자의 이름과 북을 걸어놓고 두드리면서 잔치를 벌였다. 그래서 이 왕버들 나무의 이름이 ‘북을 매단 정자나무’라는 뜻의 ‘괘고정수’(掛敲亭樹)다.
바다이야기예시
이발이 신원되자 새싹이 돋았다는 ‘괘고정수’(남구 원산동)
이선제를 필두로 그의 두 아들인 이시원과 이형원, 이형원의 아들 이달선, 이달선의 아들 이공인, 이공인의 아들 이중호, 이중호의 두 아들 이발과 이길이 대를 이어 합격하면서 가문의 영광을 알리는 북소리가 연이어 울린다. 하지만 “이 나무가 죽으면 가문이 쇠락할 것”이라는 이선제의 예견대로 이선제의 5세손인 이발 대에 정여립 모반사건에 연루돼 멸문의 화를 당하자, ‘괘고정수’도 말라죽는다. 그런데 이발의 억울함이 밝혀지자, 말랐던 ‘괘고정수’는 다시 잎이 피어 살아났다고 한다.
- 동인의 거두가 되다 동생 이길과 함께 ‘정여립 모반사건’이라 불리는 ‘기축옥사’에 연루돼 죽임을 당한 동인의 영수가 이발이다.
이발(李潑, 1544-1589)은 나주시 산포면 등수리에서 대사간을 지낸 이중호와 해남윤씨의 네 아들 중 둘째로 태어난다. 자는 경함(景涵), 호는 동암(東菴), 본관은 광산이다.
1568년(선조 1) 생원시에 합격한 후 1573년(선조 6) 문과 알성시에 장원 급제한다. 그리고 받은 첫 관직이 정6품 예조좌랑이었다. 이듬해 서인이었던 이이의 추천을 받고 정5품 이조정랑에 발탁된다.
이이가 쓴 ‘석담일기’에 “이발은 어린 시절부터 학문에 뜻을 두고 마음을 세움이 무엇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매우 맑은 사람이라는 청명(淸名)을 얻던 차에 급제하였다. (이이가) 당로(當路)에 힘껏 추천하여 조정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요지에 있게 되어 인망이 심히 무거웠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이가 당적이 다른 이발을 요직인 이조정랑에 추천했다는 것이다. 이조정랑은 사정기관인 삼사(三司,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관리의 추천권을 가진 핵심 요직으로, 품계는 낮았지만 막강한 권한을 지닌 요직이었다.
이발은 관직에 있으면서 조광조가 이루지 못한 왕도정치 구현을 역설하며 ‘그릇됨과 올바름’, 즉 사정(邪正)을 구분하고 기강을 세우는 데 노력했다.
1576년(선조 9) 홍문관 부교리와 사간원 헌납을 지낸 후 다시 홍문관으로 돌아와 응교와 종3품 전한을 거친다. 1582년(선조 15) 당상관인 정3품 홍문관 부제학에 올랐고, 이듬해인 1583년(선조 16)에는 조선시대 간쟁 기관인 사간원의 수장인 대사간으로 자리를 옮긴다. 4년간 대사간직을 지킨 후 마지막 받은 관직은 1587년(선조 20) 성균관의 수장인 대사성이었다.
동인의 영수가 된 이발은 대사간, 대사성 시절 서인들의 집요한 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정여립 모반사건’이라 불리는 ‘기축옥사’가 터진다.
-기축옥사에 연루돼 죽임을 당하다 이발 등 광산이씨를 멸문시킨 기축옥사는 1589년(선조 22) 10월, 정여립이 모반을 꾸몄다는 고변에서 시작돼 약 3년간 정여립과 연루된 1천여 명의 동인이 희생된 조선시대 최대 규모의 옥사였다.
이 옥사는 붕당정치가 시작된 초기 당쟁에 의해 벌어진 권력 투쟁 사건이었다. 물증 등 분명한 증거 없이 고변만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고, 정여립의 사인(死因)에 대해서는 타살설, 역모에 대해서는 여러 조작설이 제기되고 있어 아직 제대로 밝혀진 것은 없다.
처음 황해감사의 고변서에는 이발의 이름이 없었다. 그런데 정여립의 조카 정즙이 국청에서 “이발과 정여립은 한마음 친구이다”라고 진술한다. 정철 등의 사주를 받은 유생 양천회는 “지금 역적이 사우(死友)로 결탁해 심복이나 형제와 같은 사이로는 이발·이길·백유양 등이 있다”고 상소를 올린다. 정여립과 이발은 ‘사우’(死友) 관계, 즉 죽음을 함께 할 만한 절친한 친구였다는 것이다. 이발이 정여립의 ‘사우’라고 고변했으니 살아남을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정여립의 집에서 발견된 서찰 중 이발의 서찰이 가장 많았고, 위관은 이발과 앙숙이었던 정철이었다.
정철의 매형 계림군은 을사사화로 죽임을 당했고, 부친은 유배형에 처해진다. 어린 정철은 부친의 유배지를 따라 다니다가 조부의 묘가 있는 창평에 정착한다. 그리고 김인후·송순 등을 만나 학문에 일가를 이룬 후 장원급제해 당당하게 조정에 등장한다. 이발의 부친 이중호도 정철의 재주를 인정했고, 정철도 자주 이중호의 집을 찾았다. 그러나 이발은 생각이 달랐다. 정철의 누이가 인종의 귀인이 되고 종친 계림군에게 시집간 사실을, 권세를 추구한 집안이라고 무시한 것이다. 둘이 절교했고, 앙숙이 된 연유다.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 이발은 함경도 유배형을 받는다. 그런데 “정여립을 찾아가 만났다”는 낙안의 교생 선홍복의 입에서 “정여립이 상중이던 이발을 찾아왔다”는 증언이 나오자, 다시 끌려와 엄청난 고문 끝에 마흔여섯 나이에 장살(杖殺)된다.
이 또한 정철의 사주를 받은 선홍복의 거짓 증언이었다. 이는 ‘선조실록’ 선조 22년 12월12일자에 “선홍복이 크게 부르짖기를 ‘가서(家書)와 버선 안의 글에 이발·이길·백유양 등을 끌어 대면 살려 주겠다 하고 어찌 도리어 죽이려 하느냐?’ 하였으니, 정철 등이 사주하여 살육한 것이 이토록 심하였다”는 기록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이발만 장살된 것이 아니었다. 동생 이길과 80세가 넘는 노모도, 어린 아들도 참화를 피할 수 없었다.
이긍익은 ‘연려실기술’에 “이때 이발의 어머니 윤씨가 나이 82세였고, 아들 나이는 8살이었는데, 이발의 죄에 연루돼 형벌을 받고 죽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실제 모친인 윤씨는 무릎을 으깨는 압슬형을 당해 죽었고, 여덟살짜리 아들은 포승에 묶여 울부짖다가 죽었다.
정여립 모반사건으로 불린 ‘기축옥사’의 최대 피해자는 살핀 것처럼 광산이씨였던 이발 가문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금산 전투에서 사망한 의병장 고경명은 이를 안타까워하는 다음의 시를 남긴다.
“사람들이 광산이씨 가문을 일컬어(人道光州李)/ 씨족 중에 으뜸이라 하였네(雄於氏族林)/ 여러 조정을 빠짐없이 옥당에 오르고(屢朝登署玉)/ 금오대에는 여섯형제가 함께 있었네(六葉共題金)/ 지금은 쇠잔하여 가는 실낱같이 되었으니(衰緖今如線)/ 옛터를 보매 거듭 마음 아프네(遺墟重愴心)/ 만산동 고개에 지는 해 바라보며(斜陽萬山嶺)/ 옛날 생각에 얼마나 깊은 신음 삼켜야 하는지(懷古幾沈吟)”
6대에 걸쳐 10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한 광산이씨 가문이 처절하게 무너졌음을 읊은 가슴 아픈 시다. 고경명의 조부 고운이 광산이씨 집안에 장가들었으니, 광산이씨 집안은 고경명에게는 할머니의 친정, 곧 진외갓집이었다. ‘옥당’은 홍문관을, ‘금오대’는 사헌부를 가리킨다, 해지는 만산동 고개의 ‘만산’은 필문 이선제가 태어난 이발의 종가집이 있는 동네다.
- 명예회복이 이뤄지다 기축옥사 피해자들은 대부분 광해군 치세를 거치면서 신원된다. 그러나 동인의 거두 이발만은 예외였다. 광해군 시기 사헌부·사간원 등에서 30여 차례의 신원 요구가 있었지만, 광해군은 “선왕조에 있었던 일이므로 3년 안에는 가벼이 의논할 수가 없으니 일단 후일을 기다려도 늦지 않다”며 거절한다. 당시 사신(史臣)은 “이발·이길 형제가 정여립과 가까운 사이였음은 분명하지만, 역모에 동참하였다고 한다면 억울하다”며 역모 가담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발의 신원은 1624년(인조 2)에 가서야 이루어진다.
인조가 “이발·이길이 역적이라는 죄명을 풀어주고 직첩을 도로 주라”고 명하였기 때문이다.
이발·이길 형제의 묘소(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오늘 이발과 이길 형제의 무덤은 광명시 소하동 설월리에 있다. ‘홍문관 부제학 이공발지묘’와 ‘의정부 사인 이공길지묘’라 새긴 비석이 있어 그나마 무덤의 주인을 알 수 있지만, 무덤은 초라하다. 이발·이길 형제가 기축옥사에 연루돼 죽임을 당하자, 반역자의 시신을 거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후일 영의정에 오른 이원익이 직접 시신을 수습하고 자신의 선산이 있는 광명시 소하동에 묘를 조성해 장사를 지내준다. 나주 출신 이발·이길의 무덤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광명시에 묻에 묻힌 연유다.
이발 등을 모신 사당, 오현당(화순읍 세량리)
노성태·남도역사연구원장
이발과 이길이 1624년(인조 2) 신원되자, 광산이씨 문중에서는 그해 이선제를 주벽으로 하고 이조원, 이중호와 신원 된 이발·이길 등 5분을 모시는 오현당(五賢堂)을 화순읍 세량리에 세운다. 그리고 200여 년이 지난 1820년(순조 20) 강진 수암산 아래에 이선제를 주벽으로 한 수암서원이 건립되고, 부친 이중호, 동생 이길과 함께 배향된다.
이발의 종가가 있었던 원산동 전경(광주시 남구)
‘광주읍지’ 성씨조를 보면 광주를 본관으로 삼고 있는 성씨가 나온다. 탁(卓)씨, 이(李)씨, 김(金)씨, 채(蔡)씨, 노(盧)씨 등 14개 성씨가 그것이다. 그중 조선시대 단연 돋보였던 성씨는 필문 이선제를 비롯해 이발·이길 형제 등 6대에 걸쳐 10명의 과거 합격자를 낸 광산이씨 집안이다.
바다신게임 이발·이길 형제가 시조인 이순백의 10세손이었기에 광산이씨 집안은 10대에 걸쳐 급제한 집안이라는 의미의 ‘10대 홍문’으로 칭송된다. ‘홍문’(紅門)이란 과거 합격증인 붉은 종이 증서, 즉 홍패를 받은 가문을 가리킨다.
또한 이발 집안은 ‘홍패로만 병풍도 만들 수 있는 집안이다’라는 말도 회자된다 릴게임모바일 . 10명이 과거에 합격했으니 합격증인 홍패 10장으로 병풍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일 게다. 대단한 집안이다.
이발 생가터(나주시 산포면 등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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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제의 부조묘가 있는 광주광역시 남 체리마스터pc용다운로드 구 원산동 마을 입구에는 이선제가 심은 왕버들나무가 있다. 이선제는 나무를 심으면서 “이 나무가 죽으면 가문이 쇠락할 것이니, 관리를 잘하라”고 특별히 당부했다고 한다. 후손들은 과거에 급제하면, 이 나무에 급제자의 이름과 북을 걸어놓고 두드리면서 잔치를 벌였다. 그래서 이 왕버들 나무의 이름이 ‘북을 매단 정자나무’라는 뜻의 ‘괘고정수’(掛敲亭樹)다.
바다이야기예시
이발이 신원되자 새싹이 돋았다는 ‘괘고정수’(남구 원산동)
이선제를 필두로 그의 두 아들인 이시원과 이형원, 이형원의 아들 이달선, 이달선의 아들 이공인, 이공인의 아들 이중호, 이중호의 두 아들 이발과 이길이 대를 이어 합격하면서 가문의 영광을 알리는 북소리가 연이어 울린다. 하지만 “이 나무가 죽으면 가문이 쇠락할 것”이라는 이선제의 예견대로 이선제의 5세손인 이발 대에 정여립 모반사건에 연루돼 멸문의 화를 당하자, ‘괘고정수’도 말라죽는다. 그런데 이발의 억울함이 밝혀지자, 말랐던 ‘괘고정수’는 다시 잎이 피어 살아났다고 한다.
- 동인의 거두가 되다 동생 이길과 함께 ‘정여립 모반사건’이라 불리는 ‘기축옥사’에 연루돼 죽임을 당한 동인의 영수가 이발이다.
이발(李潑, 1544-1589)은 나주시 산포면 등수리에서 대사간을 지낸 이중호와 해남윤씨의 네 아들 중 둘째로 태어난다. 자는 경함(景涵), 호는 동암(東菴), 본관은 광산이다.
1568년(선조 1) 생원시에 합격한 후 1573년(선조 6) 문과 알성시에 장원 급제한다. 그리고 받은 첫 관직이 정6품 예조좌랑이었다. 이듬해 서인이었던 이이의 추천을 받고 정5품 이조정랑에 발탁된다.
이이가 쓴 ‘석담일기’에 “이발은 어린 시절부터 학문에 뜻을 두고 마음을 세움이 무엇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매우 맑은 사람이라는 청명(淸名)을 얻던 차에 급제하였다. (이이가) 당로(當路)에 힘껏 추천하여 조정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요지에 있게 되어 인망이 심히 무거웠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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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은 관직에 있으면서 조광조가 이루지 못한 왕도정치 구현을 역설하며 ‘그릇됨과 올바름’, 즉 사정(邪正)을 구분하고 기강을 세우는 데 노력했다.
1576년(선조 9) 홍문관 부교리와 사간원 헌납을 지낸 후 다시 홍문관으로 돌아와 응교와 종3품 전한을 거친다. 1582년(선조 15) 당상관인 정3품 홍문관 부제학에 올랐고, 이듬해인 1583년(선조 16)에는 조선시대 간쟁 기관인 사간원의 수장인 대사간으로 자리를 옮긴다. 4년간 대사간직을 지킨 후 마지막 받은 관직은 1587년(선조 20) 성균관의 수장인 대사성이었다.
동인의 영수가 된 이발은 대사간, 대사성 시절 서인들의 집요한 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정여립 모반사건’이라 불리는 ‘기축옥사’가 터진다.
-기축옥사에 연루돼 죽임을 당하다 이발 등 광산이씨를 멸문시킨 기축옥사는 1589년(선조 22) 10월, 정여립이 모반을 꾸몄다는 고변에서 시작돼 약 3년간 정여립과 연루된 1천여 명의 동인이 희생된 조선시대 최대 규모의 옥사였다.
이 옥사는 붕당정치가 시작된 초기 당쟁에 의해 벌어진 권력 투쟁 사건이었다. 물증 등 분명한 증거 없이 고변만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고, 정여립의 사인(死因)에 대해서는 타살설, 역모에 대해서는 여러 조작설이 제기되고 있어 아직 제대로 밝혀진 것은 없다.
처음 황해감사의 고변서에는 이발의 이름이 없었다. 그런데 정여립의 조카 정즙이 국청에서 “이발과 정여립은 한마음 친구이다”라고 진술한다. 정철 등의 사주를 받은 유생 양천회는 “지금 역적이 사우(死友)로 결탁해 심복이나 형제와 같은 사이로는 이발·이길·백유양 등이 있다”고 상소를 올린다. 정여립과 이발은 ‘사우’(死友) 관계, 즉 죽음을 함께 할 만한 절친한 친구였다는 것이다. 이발이 정여립의 ‘사우’라고 고변했으니 살아남을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정여립의 집에서 발견된 서찰 중 이발의 서찰이 가장 많았고, 위관은 이발과 앙숙이었던 정철이었다.
정철의 매형 계림군은 을사사화로 죽임을 당했고, 부친은 유배형에 처해진다. 어린 정철은 부친의 유배지를 따라 다니다가 조부의 묘가 있는 창평에 정착한다. 그리고 김인후·송순 등을 만나 학문에 일가를 이룬 후 장원급제해 당당하게 조정에 등장한다. 이발의 부친 이중호도 정철의 재주를 인정했고, 정철도 자주 이중호의 집을 찾았다. 그러나 이발은 생각이 달랐다. 정철의 누이가 인종의 귀인이 되고 종친 계림군에게 시집간 사실을, 권세를 추구한 집안이라고 무시한 것이다. 둘이 절교했고, 앙숙이 된 연유다.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 이발은 함경도 유배형을 받는다. 그런데 “정여립을 찾아가 만났다”는 낙안의 교생 선홍복의 입에서 “정여립이 상중이던 이발을 찾아왔다”는 증언이 나오자, 다시 끌려와 엄청난 고문 끝에 마흔여섯 나이에 장살(杖殺)된다.
이 또한 정철의 사주를 받은 선홍복의 거짓 증언이었다. 이는 ‘선조실록’ 선조 22년 12월12일자에 “선홍복이 크게 부르짖기를 ‘가서(家書)와 버선 안의 글에 이발·이길·백유양 등을 끌어 대면 살려 주겠다 하고 어찌 도리어 죽이려 하느냐?’ 하였으니, 정철 등이 사주하여 살육한 것이 이토록 심하였다”는 기록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이발만 장살된 것이 아니었다. 동생 이길과 80세가 넘는 노모도, 어린 아들도 참화를 피할 수 없었다.
이긍익은 ‘연려실기술’에 “이때 이발의 어머니 윤씨가 나이 82세였고, 아들 나이는 8살이었는데, 이발의 죄에 연루돼 형벌을 받고 죽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실제 모친인 윤씨는 무릎을 으깨는 압슬형을 당해 죽었고, 여덟살짜리 아들은 포승에 묶여 울부짖다가 죽었다.
정여립 모반사건으로 불린 ‘기축옥사’의 최대 피해자는 살핀 것처럼 광산이씨였던 이발 가문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금산 전투에서 사망한 의병장 고경명은 이를 안타까워하는 다음의 시를 남긴다.
“사람들이 광산이씨 가문을 일컬어(人道光州李)/ 씨족 중에 으뜸이라 하였네(雄於氏族林)/ 여러 조정을 빠짐없이 옥당에 오르고(屢朝登署玉)/ 금오대에는 여섯형제가 함께 있었네(六葉共題金)/ 지금은 쇠잔하여 가는 실낱같이 되었으니(衰緖今如線)/ 옛터를 보매 거듭 마음 아프네(遺墟重愴心)/ 만산동 고개에 지는 해 바라보며(斜陽萬山嶺)/ 옛날 생각에 얼마나 깊은 신음 삼켜야 하는지(懷古幾沈吟)”
6대에 걸쳐 10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한 광산이씨 가문이 처절하게 무너졌음을 읊은 가슴 아픈 시다. 고경명의 조부 고운이 광산이씨 집안에 장가들었으니, 광산이씨 집안은 고경명에게는 할머니의 친정, 곧 진외갓집이었다. ‘옥당’은 홍문관을, ‘금오대’는 사헌부를 가리킨다, 해지는 만산동 고개의 ‘만산’은 필문 이선제가 태어난 이발의 종가집이 있는 동네다.
- 명예회복이 이뤄지다 기축옥사 피해자들은 대부분 광해군 치세를 거치면서 신원된다. 그러나 동인의 거두 이발만은 예외였다. 광해군 시기 사헌부·사간원 등에서 30여 차례의 신원 요구가 있었지만, 광해군은 “선왕조에 있었던 일이므로 3년 안에는 가벼이 의논할 수가 없으니 일단 후일을 기다려도 늦지 않다”며 거절한다. 당시 사신(史臣)은 “이발·이길 형제가 정여립과 가까운 사이였음은 분명하지만, 역모에 동참하였다고 한다면 억울하다”며 역모 가담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발의 신원은 1624년(인조 2)에 가서야 이루어진다.
인조가 “이발·이길이 역적이라는 죄명을 풀어주고 직첩을 도로 주라”고 명하였기 때문이다.
이발·이길 형제의 묘소(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오늘 이발과 이길 형제의 무덤은 광명시 소하동 설월리에 있다. ‘홍문관 부제학 이공발지묘’와 ‘의정부 사인 이공길지묘’라 새긴 비석이 있어 그나마 무덤의 주인을 알 수 있지만, 무덤은 초라하다. 이발·이길 형제가 기축옥사에 연루돼 죽임을 당하자, 반역자의 시신을 거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후일 영의정에 오른 이원익이 직접 시신을 수습하고 자신의 선산이 있는 광명시 소하동에 묘를 조성해 장사를 지내준다. 나주 출신 이발·이길의 무덤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광명시에 묻에 묻힌 연유다.
이발 등을 모신 사당, 오현당(화순읍 세량리)
노성태·남도역사연구원장
이발과 이길이 1624년(인조 2) 신원되자, 광산이씨 문중에서는 그해 이선제를 주벽으로 하고 이조원, 이중호와 신원 된 이발·이길 등 5분을 모시는 오현당(五賢堂)을 화순읍 세량리에 세운다. 그리고 200여 년이 지난 1820년(순조 20) 강진 수암산 아래에 이선제를 주벽으로 한 수암서원이 건립되고, 부친 이중호, 동생 이길과 함께 배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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