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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태 남북하나재단 사무총장이 최근 서울 마포구 하나재단 사무실에서 개성공단과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2016년 2월 10일 북한 개성공단의 불이 꺼졌다. 차량마다 가능한 한 많은 물품을 싣고 남측 인원들이 빠져나오던 날, 공단 일대는 마치 전원이 차단된 듯 순식간에 암전됐다. 남북 협력의 상징이던 공간은 그렇게 멈춰 섰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당시 현장을 지켰던 한 인물의 기억 속에는 전면 중단의 참담함과 함께 북한 종업원이 건넸던 “세월호 소식에 안타까워했다”는 한마디가 또렷이 남아 있다. 정치와 체제를 넘어 같은 바다이야기게임기 부모의 마음을 확인했던 순간이었다.
개성공단 상주 경험 1년의 기록을 ‘부활하는 개성공단’(북랩)으로 펴낸 이주태 남북하나재단 사무총장을 최근 서울 마포구 남북하나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가장 절망적인 시기일지라도 부활의 소망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부활하는 개성공단’을 집필하게 손오공릴게임예시 된 직접적인 계기는.“올해는 개성공단 중단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 10년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흘려보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절망스러운 시기일 수 있지만, 이 단절의 시간을 다시 한 번 기억하고 부활의 소망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집필과 출판을 결심했습니다.”
-2016년 전면 뽀빠이릴게임 중단 당시 상황은 어땠는지.“2015년은 광복 70주년이어서 나름 기대를 가져볼 만한 분위기였습니다. 물론 중간에 지뢰 사건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어느 정도 회복되는 모습도 있었고, 특히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매우 의미 있게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2016년 1월 6일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하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후 한 바다이야기모바일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미사일 발사까지 이어지면서 남북 관계는 급격히 얼어붙었습니다. 결국 정부가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결정하게 됐습니다.
중단 과정은 참으로 참담했습니다. 기업들은 생산해 놓은 물품이라도 하나 더 가져와야 손실을 줄일 수 있었기 때문에, 차량에 가능한 한 많은 물건을 싣고 나왔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무척 가슴 아 온라인골드몽 팠습니다. 모든 인원이 빠져나온 뒤에는 전기 공급도 중단됐습니다. 당시 장면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마치 TV를 보다가 갑자기 전원이 꺼지듯, 개성 일대가 순식간에 암전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남북 관계가, 개성공단이 이렇게 어려움에 빠졌구나’ 하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이주태 남북하나재단 사무총장이 최근 서울 마포구 하나재단 사무실에서 개성공단과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부활’이라는 표현을 제목에 썼다. 단어에 담긴 의미는.“‘부활’이라는 단어에는 반드시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신앙적 믿음을 담았습니다. 지금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내세우며 남북 관계를 단절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절망의 순간이야말로 오히려 부활을 위해 기도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처럼 소망을 잃은 채 각자의 길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절망의 순간에 부활이 일어났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어 보이는 때였지만,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셨습니다.
남북 관계 역시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지금은 완전한 절망의 시기처럼 보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부활을 위해 기도하고 다시 관심을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개성공단의 부활을 허락하실 것이라는 믿음, 그 소망을 제목에 담았고 독자들에게도 전하고 싶었습니다.”
-북한 측과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만났다고 들었다.“북한 쪽 실무자였던 윤승현 처장은 성품이 소탈하고 실무적인 분이었습니다. 다만 북측 담당자들은 윤 처장뿐 아니라 남측 인원들의 태도와 우리정부의 기조에 매우 민감했습니다. 남북 관계가 원만하고 공단 운영이 순조로울 때는 처장회의도 비교적 부드럽게 흘러갔지만, 관계가 경색되면 개인적 친분과 별개로 분위기가 금세 딱딱해지고 격한 논쟁이 오가곤 했습니다. 북측이 우리 대통령을 비난하면 가만히 듣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 반박을 해야 했고, 그러다 보면 논쟁이 더 거칠어졌습니다. 책상을 치고 나가거나 “더 이상 대화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식의 전형적인 협상 전술도 반복됐습니다.
그럴수록 어떻게 대응할지가 중요했습니다. 회담 재개를 계속 요청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거기에만 매달리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걸 현장에서 체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담담하게 우리가 할 일을 계속했습니다. 입주 기업들을 찾아다니며 정부 방침과 지침을 설명하고, 기업들이 합의 틀 안에서 안정적으로 운영되도록 독려했습니다. 그런 움직임은 북측에도 보고됐을 겁니다. 결국 어느 날 북측 사무처장이 제가 방문하고 있던 기업을 방문했고, 그 자리에서 남북 사무처장이 함께 애로사항을 듣고 해법을 모색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면서, 중단됐던 회의도 자연스럽게 재개됐습니다. 북한이 대화를 거부할 때도 문은 열어두되, 우리 할 일을 묵묵히 해나가면 결국 북한도 필요를 느끼고 다시 테이블로 나오게 된다고 봅니다.”
-북한 근로자들과의 교류 가운데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개별적인 접촉은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북측 근로자들은 단체로 움직였고, 근로자들은 특히 남측 당국자와의 대화를 꺼렸습니다.
다만 기업 근로자와는 별도로, 북한 종업원이 근무하는 식당에는 공식 회식 자리로 방문하곤 했습니다. 한 번은 그런 자리에서 서빙을 하던 북한 종업원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 적이 있습니다. “처장 선생, 세월호 사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들었습니다. 남측이 많이 힘들어한다지요. 저희도 뉴스를 듣고 어머니와 함께 계속 어떻게 됐는지 안타까워했습니다.”
그 한마디가 참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정치와 체제는 달라도, 같은 부모의 마음으로 슬픔을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저는 “걱정해주셔서 감사하다. 부모의 마음은 다 같지 않겠느냐”고 답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남과 북을 넘어, 같은 동포로서의 정을 실감했습니다.”
-회고록에는 예배와 기도, 기도 제목이 자주 등장한다.“책에도 썼지만, 개성공단에 들어가면서 절실히 느낀 것이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대통령도, 국방부 장관도 저를 지켜줄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 김관진 장관이었는데, 아무리 강한 지도자라 해도 군사분계선을 넘어선 공간에서는 직접적인 보호가 불가능합니다. 사무처장이라는 직책이 있어도 무장력은 없고, 주변에는 북한 군인들이 배치돼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나를 지켜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뼛속 깊이 와 닿았습니다. 단순한 신앙 고백이 아니라 실제 상황 속에서 체감하는 고백이었습니다. 동시에 개성공단에 근무하는 남측 주재원들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책임이 제게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자리였기에 하나님께 더욱 매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하나 많이 기도한 것은 개성공단의 미래였습니다. 이전에도 여러 차례 방문한 적은 있었지만, 상주하며 보니 이곳은 남북 관계의 중요한 도구이자 실험장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많이 드린 기도는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 개성공단이 안정적으로 발전하게 하셔서 남북 관계의 진전과 통일을 위한 마중물이 되게 해주십시오.”
개성공단이 단순한 산업단지가 아니라, 평화와 통일을 향한 디딤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가 당시 저를 붙들어 준 힘이었습니다.”
-개성공단의 경험이 신앙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무엇보다도 ‘의지할 대상은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됐습니다. 그 이후로 하나님을 더욱 찾게 됐습니다. 처장회의는 사실상 남북 간 회담이었고, 제가 수석대표로 회의를 이끌어야 했습니다. 매번 긴장 속에 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통일부에 근무할 당시 모셨던 김하중 장관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장관님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으로 계실 때도 늘 기도하며 대통령을 보좌했다고 하셨습니다. 어느 날 대통령의 급한 호출을 받고 집무실로 들어갔다가, 기도를 하지 못한 것을 깨닫고 다시 나와 기도한 뒤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고백이 깊이 남았습니다.
저 역시 처장회의에 들어가기 전마다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들어갔고, 회의가 끝난 뒤에도 다시 기도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업무 전후에 기도로 준비하고 정리하는 습관이 자리 잡았습니다. 긴장과 부담 속에서 오히려 신앙이 형식이 아니라 삶의 실제가 됐고, 기도가 일상의 중심이 되는 변화를 겪었다고 생각합니다.”
2020년 9월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일대가 적막하다. 연합뉴스
-책 말미에 개성공단의 제도적 보완책을 제시했다. 보완 방안이 있다면.“개성공단이 다시 부활하려면, 현재의 정치 환경에서는 우리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핵심은 대북 제재입니다. 북한의 태도 문제도 있지만, 제재가 가장 큰 구조적 제약입니다. 그리고 그 제재의 ‘키’를 쥐고 있는 나라는 미국입니다.
따라서 개성공단을 재가동하기 위해서는 한미 간 공조 속에서, 개성공단을 포함한 대북 협상 패키지를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개성공단을 협상 카드로 활용하는 전략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1990년대 말 ‘페리 프로세스’ 경험 때문입니다. 당시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이 주도한 대북 정책의 핵심은,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하면 그에 상응하는 지원과 보상을 제공하고, 한반도 냉전 체제를 단계적으로 해체해 나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반대로 레드라인을 넘으면 제재를 강화하는 구조였습니다.
그런데 그 정책의 밑그림은 사실 우리 정부가 범정부적으로 마련한 안이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임동원 장관을 중심으로 통일부·외교부·국방부 등 관계 부처가 함께 준비한 대북 구상이 미국에 전달됐고, 페리 전 장관도 자신의 자서전에서 한국의 대북 정책을 ‘차용했다’는 취지로 언급한 바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한미 공동의 대북 정책안을 마련해 미국과 긴밀히 조율하고, 북미 접촉 국면에서 이를 협상 카드로 활용하도록 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해서 북미 간 일정한 합의가 이뤄진 뒤, 남북 관계를 단계적으로 풀어가는 접근이 현실적인 방안이 아닐까 봅니다.
2019년 경기도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인근 비무장지대(DMZ) 철책선에 ‘당신의 소원, 우리의 소원’이라는 문구가 걸려 있다. 국민일보 DB
또 하나는 ‘개성공단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저변을 넓히는 일입니다.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저는 남북 주민을 단순히 체제나 이념으로 구분하기보다, 개성공단의 가치와 의미를 공감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눠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개성공단에 대한 공감대가 중요합니다.
개성공단이 왜 필요한지,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지지가 확대돼야 합니다. 특히 신앙인들은 기도로 이 문제를 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감과 지지, 그리고 기도가 함께 쌓일 때 개성공단은 다시 살아날 수 있고, 보다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 것입니다.
개성공단 폐쇄 10년을 앞둔 9일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일대에서 개성공단지원센터 건물(붉은원)이 완전히 사라져 있다. 연합뉴스
-북한 주민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책임은 무엇인지.“저는 개성공단에서 생활하며 느낀 바를 토대로, 그리스도인들이 북한을 바라볼 때 세 가지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긍휼의 마음입니다. 북한 주민들은 식량과 의료 환경이 매우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 있습니다. 다쳤을 때 충분한 치료 대신 다른 선택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같은 동포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들의 고통을 향한 긍휼의 마음을 먼저 품어야 한다고 봅니다.
둘째는 ‘빚진 자’의 마음입니다. 한국 교회의 신앙 전통을 돌아보면, 1907년 평양 대부흥과 같이 복음의 역사가 북한 지역에서 먼저 일어났고, 그 부흥의 불길이 남쪽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가 오늘 신앙의 유산을 누리고 있다면, 북한 교회와 성도들에게 영적으로 빚을 지고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셋째는 사명감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하신 지상명령을 생각할 때, 우리에게 있어 ‘땅 끝’은 어디인가를 묻게 됩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한국 교회에 있어서는 북한이 바로 그 사명의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북한 주민과 북한이탈주민을 향해 긍휼과 책임, 그리고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 의식을 함께 품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책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국민일보 DB
-‘부활하는 개성공단’의 장면을 어떻게 상상하는가.“개성공단이 다시 문을 연다면,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재개’가 아니라, 국제화된 공단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봅니다. 과거의 개성공단은 남측 기업이 입주하고, 북측은 근로자를 제공하는 구조였습니다. 남북 양자 간 틀에만 의존한 형태였기 때문에 정치적 변수에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으로는 그런 구조를 넘어, 국제적 성격을 지닌 공단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이를 ‘벽란도 프로젝트’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고려시대 예성강 하구에 있던 벽란도는 아라비아 상인들까지 오가던 국제 무역항이었습니다. 개성공단 인근이 바로 그 예성강 하구와 맞닿아 있습니다. 개성공단이 벽란도처럼 국제적 교류의 중심지가 된다면, 단순한 산업단지를 넘어 한반도 평화와 남북 관계 발전의 마중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 공간에서 신앙 공동체도 함께 자라나기를 소망합니다. 개성 지역에 교회가 세워지고, 신앙인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북한 선교의 작은 길이라도 열릴 수 있다면, 그것 역시 부활의 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한국교회와 국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어려울 때일수록 한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여야를 떠나 불신과 갈등이 깊어져 있고, 개성공단에 대한 인식도 엇갈려 있습니다. 그러나 개성공단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고,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중심이 되어 기도로 마음을 모은다면 길은 열릴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에게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소망을 품고 한뜻으로 나아간다면 하나님께서 부활의 때를 허락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시기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가장 적절한 때에 다시 길을 여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함께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자 약력>△남북하나재단 사무총장 △남북하나재단 이사장 직무대행 △전 청와대 행정관(노무현 정부)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박근혜 정부) △전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 위원(회담대표) △전 통일부 남북회담본부 회담기획부장 △전 통일부 교류협력국장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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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10일 북한 개성공단의 불이 꺼졌다. 차량마다 가능한 한 많은 물품을 싣고 남측 인원들이 빠져나오던 날, 공단 일대는 마치 전원이 차단된 듯 순식간에 암전됐다. 남북 협력의 상징이던 공간은 그렇게 멈춰 섰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당시 현장을 지켰던 한 인물의 기억 속에는 전면 중단의 참담함과 함께 북한 종업원이 건넸던 “세월호 소식에 안타까워했다”는 한마디가 또렷이 남아 있다. 정치와 체제를 넘어 같은 바다이야기게임기 부모의 마음을 확인했던 순간이었다.
개성공단 상주 경험 1년의 기록을 ‘부활하는 개성공단’(북랩)으로 펴낸 이주태 남북하나재단 사무총장을 최근 서울 마포구 남북하나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가장 절망적인 시기일지라도 부활의 소망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부활하는 개성공단’을 집필하게 손오공릴게임예시 된 직접적인 계기는.“올해는 개성공단 중단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 10년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흘려보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절망스러운 시기일 수 있지만, 이 단절의 시간을 다시 한 번 기억하고 부활의 소망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집필과 출판을 결심했습니다.”
-2016년 전면 뽀빠이릴게임 중단 당시 상황은 어땠는지.“2015년은 광복 70주년이어서 나름 기대를 가져볼 만한 분위기였습니다. 물론 중간에 지뢰 사건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어느 정도 회복되는 모습도 있었고, 특히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매우 의미 있게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2016년 1월 6일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하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후 한 바다이야기모바일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미사일 발사까지 이어지면서 남북 관계는 급격히 얼어붙었습니다. 결국 정부가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결정하게 됐습니다.
중단 과정은 참으로 참담했습니다. 기업들은 생산해 놓은 물품이라도 하나 더 가져와야 손실을 줄일 수 있었기 때문에, 차량에 가능한 한 많은 물건을 싣고 나왔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무척 가슴 아 온라인골드몽 팠습니다. 모든 인원이 빠져나온 뒤에는 전기 공급도 중단됐습니다. 당시 장면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마치 TV를 보다가 갑자기 전원이 꺼지듯, 개성 일대가 순식간에 암전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남북 관계가, 개성공단이 이렇게 어려움에 빠졌구나’ 하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이주태 남북하나재단 사무총장이 최근 서울 마포구 하나재단 사무실에서 개성공단과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부활’이라는 표현을 제목에 썼다. 단어에 담긴 의미는.“‘부활’이라는 단어에는 반드시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신앙적 믿음을 담았습니다. 지금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내세우며 남북 관계를 단절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절망의 순간이야말로 오히려 부활을 위해 기도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처럼 소망을 잃은 채 각자의 길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절망의 순간에 부활이 일어났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어 보이는 때였지만,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셨습니다.
남북 관계 역시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지금은 완전한 절망의 시기처럼 보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부활을 위해 기도하고 다시 관심을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개성공단의 부활을 허락하실 것이라는 믿음, 그 소망을 제목에 담았고 독자들에게도 전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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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수록 어떻게 대응할지가 중요했습니다. 회담 재개를 계속 요청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거기에만 매달리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걸 현장에서 체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담담하게 우리가 할 일을 계속했습니다. 입주 기업들을 찾아다니며 정부 방침과 지침을 설명하고, 기업들이 합의 틀 안에서 안정적으로 운영되도록 독려했습니다. 그런 움직임은 북측에도 보고됐을 겁니다. 결국 어느 날 북측 사무처장이 제가 방문하고 있던 기업을 방문했고, 그 자리에서 남북 사무처장이 함께 애로사항을 듣고 해법을 모색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면서, 중단됐던 회의도 자연스럽게 재개됐습니다. 북한이 대화를 거부할 때도 문은 열어두되, 우리 할 일을 묵묵히 해나가면 결국 북한도 필요를 느끼고 다시 테이블로 나오게 된다고 봅니다.”
-북한 근로자들과의 교류 가운데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개별적인 접촉은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북측 근로자들은 단체로 움직였고, 근로자들은 특히 남측 당국자와의 대화를 꺼렸습니다.
다만 기업 근로자와는 별도로, 북한 종업원이 근무하는 식당에는 공식 회식 자리로 방문하곤 했습니다. 한 번은 그런 자리에서 서빙을 하던 북한 종업원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 적이 있습니다. “처장 선생, 세월호 사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들었습니다. 남측이 많이 힘들어한다지요. 저희도 뉴스를 듣고 어머니와 함께 계속 어떻게 됐는지 안타까워했습니다.”
그 한마디가 참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정치와 체제는 달라도, 같은 부모의 마음으로 슬픔을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저는 “걱정해주셔서 감사하다. 부모의 마음은 다 같지 않겠느냐”고 답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남과 북을 넘어, 같은 동포로서의 정을 실감했습니다.”
-회고록에는 예배와 기도, 기도 제목이 자주 등장한다.“책에도 썼지만, 개성공단에 들어가면서 절실히 느낀 것이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대통령도, 국방부 장관도 저를 지켜줄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 김관진 장관이었는데, 아무리 강한 지도자라 해도 군사분계선을 넘어선 공간에서는 직접적인 보호가 불가능합니다. 사무처장이라는 직책이 있어도 무장력은 없고, 주변에는 북한 군인들이 배치돼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나를 지켜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뼛속 깊이 와 닿았습니다. 단순한 신앙 고백이 아니라 실제 상황 속에서 체감하는 고백이었습니다. 동시에 개성공단에 근무하는 남측 주재원들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책임이 제게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자리였기에 하나님께 더욱 매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하나 많이 기도한 것은 개성공단의 미래였습니다. 이전에도 여러 차례 방문한 적은 있었지만, 상주하며 보니 이곳은 남북 관계의 중요한 도구이자 실험장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많이 드린 기도는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 개성공단이 안정적으로 발전하게 하셔서 남북 관계의 진전과 통일을 위한 마중물이 되게 해주십시오.”
개성공단이 단순한 산업단지가 아니라, 평화와 통일을 향한 디딤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가 당시 저를 붙들어 준 힘이었습니다.”
-개성공단의 경험이 신앙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무엇보다도 ‘의지할 대상은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됐습니다. 그 이후로 하나님을 더욱 찾게 됐습니다. 처장회의는 사실상 남북 간 회담이었고, 제가 수석대표로 회의를 이끌어야 했습니다. 매번 긴장 속에 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통일부에 근무할 당시 모셨던 김하중 장관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장관님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으로 계실 때도 늘 기도하며 대통령을 보좌했다고 하셨습니다. 어느 날 대통령의 급한 호출을 받고 집무실로 들어갔다가, 기도를 하지 못한 것을 깨닫고 다시 나와 기도한 뒤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고백이 깊이 남았습니다.
저 역시 처장회의에 들어가기 전마다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들어갔고, 회의가 끝난 뒤에도 다시 기도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업무 전후에 기도로 준비하고 정리하는 습관이 자리 잡았습니다. 긴장과 부담 속에서 오히려 신앙이 형식이 아니라 삶의 실제가 됐고, 기도가 일상의 중심이 되는 변화를 겪었다고 생각합니다.”
2020년 9월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일대가 적막하다. 연합뉴스
-책 말미에 개성공단의 제도적 보완책을 제시했다. 보완 방안이 있다면.“개성공단이 다시 부활하려면, 현재의 정치 환경에서는 우리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핵심은 대북 제재입니다. 북한의 태도 문제도 있지만, 제재가 가장 큰 구조적 제약입니다. 그리고 그 제재의 ‘키’를 쥐고 있는 나라는 미국입니다.
따라서 개성공단을 재가동하기 위해서는 한미 간 공조 속에서, 개성공단을 포함한 대북 협상 패키지를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개성공단을 협상 카드로 활용하는 전략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1990년대 말 ‘페리 프로세스’ 경험 때문입니다. 당시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이 주도한 대북 정책의 핵심은,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하면 그에 상응하는 지원과 보상을 제공하고, 한반도 냉전 체제를 단계적으로 해체해 나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반대로 레드라인을 넘으면 제재를 강화하는 구조였습니다.
그런데 그 정책의 밑그림은 사실 우리 정부가 범정부적으로 마련한 안이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임동원 장관을 중심으로 통일부·외교부·국방부 등 관계 부처가 함께 준비한 대북 구상이 미국에 전달됐고, 페리 전 장관도 자신의 자서전에서 한국의 대북 정책을 ‘차용했다’는 취지로 언급한 바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한미 공동의 대북 정책안을 마련해 미국과 긴밀히 조율하고, 북미 접촉 국면에서 이를 협상 카드로 활용하도록 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해서 북미 간 일정한 합의가 이뤄진 뒤, 남북 관계를 단계적으로 풀어가는 접근이 현실적인 방안이 아닐까 봅니다.
2019년 경기도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인근 비무장지대(DMZ) 철책선에 ‘당신의 소원, 우리의 소원’이라는 문구가 걸려 있다. 국민일보 DB
또 하나는 ‘개성공단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저변을 넓히는 일입니다.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저는 남북 주민을 단순히 체제나 이념으로 구분하기보다, 개성공단의 가치와 의미를 공감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눠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개성공단에 대한 공감대가 중요합니다.
개성공단이 왜 필요한지,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지지가 확대돼야 합니다. 특히 신앙인들은 기도로 이 문제를 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감과 지지, 그리고 기도가 함께 쌓일 때 개성공단은 다시 살아날 수 있고, 보다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 것입니다.
개성공단 폐쇄 10년을 앞둔 9일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일대에서 개성공단지원센터 건물(붉은원)이 완전히 사라져 있다. 연합뉴스
-북한 주민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책임은 무엇인지.“저는 개성공단에서 생활하며 느낀 바를 토대로, 그리스도인들이 북한을 바라볼 때 세 가지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긍휼의 마음입니다. 북한 주민들은 식량과 의료 환경이 매우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 있습니다. 다쳤을 때 충분한 치료 대신 다른 선택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같은 동포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들의 고통을 향한 긍휼의 마음을 먼저 품어야 한다고 봅니다.
둘째는 ‘빚진 자’의 마음입니다. 한국 교회의 신앙 전통을 돌아보면, 1907년 평양 대부흥과 같이 복음의 역사가 북한 지역에서 먼저 일어났고, 그 부흥의 불길이 남쪽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가 오늘 신앙의 유산을 누리고 있다면, 북한 교회와 성도들에게 영적으로 빚을 지고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셋째는 사명감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하신 지상명령을 생각할 때, 우리에게 있어 ‘땅 끝’은 어디인가를 묻게 됩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한국 교회에 있어서는 북한이 바로 그 사명의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북한 주민과 북한이탈주민을 향해 긍휼과 책임, 그리고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 의식을 함께 품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책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국민일보 DB
-‘부활하는 개성공단’의 장면을 어떻게 상상하는가.“개성공단이 다시 문을 연다면,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재개’가 아니라, 국제화된 공단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봅니다. 과거의 개성공단은 남측 기업이 입주하고, 북측은 근로자를 제공하는 구조였습니다. 남북 양자 간 틀에만 의존한 형태였기 때문에 정치적 변수에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으로는 그런 구조를 넘어, 국제적 성격을 지닌 공단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이를 ‘벽란도 프로젝트’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고려시대 예성강 하구에 있던 벽란도는 아라비아 상인들까지 오가던 국제 무역항이었습니다. 개성공단 인근이 바로 그 예성강 하구와 맞닿아 있습니다. 개성공단이 벽란도처럼 국제적 교류의 중심지가 된다면, 단순한 산업단지를 넘어 한반도 평화와 남북 관계 발전의 마중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 공간에서 신앙 공동체도 함께 자라나기를 소망합니다. 개성 지역에 교회가 세워지고, 신앙인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북한 선교의 작은 길이라도 열릴 수 있다면, 그것 역시 부활의 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한국교회와 국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어려울 때일수록 한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여야를 떠나 불신과 갈등이 깊어져 있고, 개성공단에 대한 인식도 엇갈려 있습니다. 그러나 개성공단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고,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중심이 되어 기도로 마음을 모은다면 길은 열릴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에게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소망을 품고 한뜻으로 나아간다면 하나님께서 부활의 때를 허락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시기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가장 적절한 때에 다시 길을 여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함께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자 약력>△남북하나재단 사무총장 △남북하나재단 이사장 직무대행 △전 청와대 행정관(노무현 정부)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박근혜 정부) △전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 위원(회담대표) △전 통일부 남북회담본부 회담기획부장 △전 통일부 교류협력국장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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