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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영화제가 열리는 베를리날레 팔라스트 전경. [베를린영화제 홈페이지·Erik Weiss]
독일 베를린영화제는 프랑스 칸영화제, 이탈리아 베네치아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린다. 영화제의 규모나 긴 역사성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세 영화제는 엇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체성이나 지향점, 영화를 바라보는 태도가 확연하게 구분된다.
칸영화제가 상업성과 영화적 미학의 접점을 탐색한다면, 베네치아영화제는 ‘작가주의’ 영화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는데, 베를린영화제는 동시대의 정 검증완료릴게임 치·사회적 방향성을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공공성이 강하다. 그도 그럴 것이 베를린영화제는 일반 관객용 티켓이 주행사장인 ‘베를리날레 팔라스트’ 인근 극장 10여 곳에서 대거 풀리는 데다 티켓값도 10유로 안팎으로 저렴해 티켓 구하기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다른 영화제와는 차별화된다.
올해 제76회째를 맞은 베를린영화제가 최근 성대한 막을 바다신2릴게임 올린 가운데 베를린영화제 현지에서 월드 프리미어(세계 첫 공개)로 상영될 경쟁부문(Competition) 진출작 22편을 미리 살펴봤다. 베를린영화제 1등상인 ‘황금곰상’은 22일 저녁(한국시간 23일 새벽) 발표될 예정이다.
에이미 아담스가 출연하는 코르텔 무드루츠 감독의 바다이야기사이트 ‘바닷가에서’.
◇스크린 주역은 이제 ‘여성’
이번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는 21세기 최정상급 여성 배우들이 집결한다. ‘컨택트’ ‘녹터널 애니멀스’의 에이미 애덤스, ‘존 오브 인터레스트’ ‘추락의 해부’의 잔드라 휠러, ‘클라우즈 오브 야마토연타 실스마리아’ ‘논-픽션’의 쥘리에트 비노슈가 주연을 맡은 세 영화가 ‘2026 베를린영화제 에디션’을 형성했기에 세 배우의 연기 대결이 예상된다.
먼저 잔드라 휠러가 출연한 마르쿠스 슐라인처 감독의 신작 ‘로즈’는 이번 영화제 최고 기대작이다. 17세기 초, 독일의 개신교 마을에 한 병사가 나타나 자신이 “버려진 농장의 상속자”라고 주장 릴게임사이트추천 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서류를 제시하고, 지역 유지의 딸인 수잔나와 정략결혼을 추진한다. 하지만 그의 실체는 ‘남장 여자’였다. 마을을 속인 사기꾼의 뻔뻔스러운 거짓말은 도대체 무슨 이유였을까.
에이미 애덤스의 ‘바닷가에서(At the Sea)’는 문드루초 코르넬 감독의 작품이다. 알코올중독으로 재활치료를 받고 가족들에게 돌아온 로라의 이야기다. 로라는 이제 단주했지만 과거 그녀가 저지른 치명적인 사고 때문에 가족들은 로라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로라의 딸은 적대감을 드러내고 아들 역시 거리를 둔다. 스스로 자멸한 이후의 인간의 정체성은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영화로 전망된다.
공교롭게도 쥘리에트 비노슈가 출연한 베를린영화제 초청작 제목에도 ‘바다(sea)’가 포함됐다. 비노슈가 주연을 맡은 랜스 해머 감독의 ‘바다의 여왕(Queen at Sea)’은 줄거리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는데, 외신에 따르면 진행성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로 알려졌다. 딸 아만다는 의붓아버지와 함께 병중인 모친 레슬리를 런던으로 이주시키려 하고, 이 과정에서 통제 불가능한 갈등을 겪는다.
줄리에 비노쉬가 출연하는 랜스 해머 감독의 ‘바다의 여왕’
◇해체된 가족, 붕괴된 공동체
‘바닷가에서’와 ‘바다의 여왕’에서 보듯이, 올해 베를린영화제의 큰 특징 중 하나는 ‘해체 위기에 직면한 가족’을 다룬 영화가 대거 레드카펫을 밟게 된다는 점이다. 가족은 더 이상 내밀한 안식처가 되지 못하고, 돌봄이나 양육의 책임으로 물든 ‘회색지대’라는 시대적 무의식이 이번 베를린영화제 작품 선정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무너진 가족’의 초상을 다룬 영화는 경쟁부문 초청작 가운데 10편이 넘는다.
베스 지 아라우주 감독의 ‘조세핀’은 영화제 측이 공개한 짧은 시놉시스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는 문제작이다. 8세 소녀 조세핀과 아빠 데미안은 축구를 하러 공원으로 가던 도중, 한 여성이 낯선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조세핀은 아빠에게 “그 남자가 그 여자에게 무슨 짓을 하려던 것인지”를 묻지만, 데미안은 악의와 폭력으로 가득한 이 세상의 잔혹한 진실을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다. 트라우마 속에서 조세핀은 같은 반 친구들을 ‘친구’와 ‘적’으로 나누고,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간다.
일케르 차타크 감독의 ‘노란 편지들’은 13세 소녀 에즈기의 가족이 겪는 균열과 화해를 다룬다. 유명 예술가 부부인 에즈기의 부모는 그들이 연출한 연극 초연 중 무대에서 벌어진 어떤 사건 때문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그 장면은 정치적 선언이 아니었지만 정부는 그들을 하룻밤 사이에 이들 가족을 ‘표적’으로 삼는다. 제목인 노란 편지는 ‘소환장’을 뜻하는 은어로, 이 영화는 외부의 힘이 작동하면서 갑작스럽게 추락한 가족 공동체를 통해 붕괴되는 소공동체의 현실을 질문한다.
베스 데 아라우조 감독의 ‘조세핀’
카림 아이누즈 감독의 ‘장미덤불 가지치기’도 베를린영화제 기대작으로, 다른 작품들과 달리 좀 더 현재적인 정서의 작품이다. 카탈루냐의 호화 빌라에서 상속받은 재산으로 살아가는 잭, 에드, 애나, 로버트는 시각장애를 가진 아버지의 요구를 외면하고 명품에 집착한다. 맏형이 가족을 떠나겠다고 선언하고, 이후 남매는 어머니의 죽음에 깃든 비밀을 파헤친다. 전통적 가부장적 가족의 부조리가 전면에 드러나는 작품이라고 베를린영화제 측은 소개했다.
무조건적인 모성애의 문제를 질문하는 한나 베르홀름 감독의 ‘나이트본’, 소통의 부재와 침묵의 의미를 다루는 앙겔라 샤넬레크 감독의 ‘내 아내가 운다’, 경제적 압박으로 인해 방 하나를 세놓은 여성과 입주한 남자, 또 그의 9세 아들의 유대를 담은 페르난도 에임브케 감독의 ‘모스카스’, 삼촌의 죽음에 숨겨진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나서는 릴리아를 다룬 레일라 부지드 감독의 ‘속삭임 속에’, 딸 니나와 똑같은 나이의 로자를 만난 뒤 로자가 그린 그림의 비밀을 사유하는 준비에브 뒬뤼드 드 셀 감독의 ‘니나 로자’, 두 세계를 넘나드는 가족의 굴레를 조명하는 알랭 고미스 감독의 ‘다오’, 초자연적 힘을 가진 소녀와 마흔 살 여성의 만남을 다룬 마트 살레 하룬 감독의 ‘숨숨, 별들의 밤’,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엄마와 그녀의 딸 리아의 정체성 탐색을 사유하는 에바 트로비슈 감독의 ‘아주 특별한 무언가’ 등도 모두 ‘가족 모티프’로 채워진 작품으로 기대를 모은다.
산드라 휠러가 출연하는 마르쿠스 슐라인저 감독의 ‘로즈’.
◇진창과 같은 악한 현실로부터
안케 블롱데 감독의 ‘먼지’는 돈과 명성이 사라진 직후의 두 사업가의 표정을 집중 조명한다. 벨기에 사업과 뤽과 게르트는 자신들이 설립한 ‘유령회사’가 언론에 폭로될 위기에 처한다. 즉시 증거인멸이 진행되지만 하룻밤만 지나면 자택으로 들이닥칠 경찰의 수사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누구보다도 위풍당당했던 두 사람에겐 이제 단 하루의 시간만이 남은 것. 더는 죄로부터 탈주할 수 없을 때,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가를 집중 조명하는 영화다. IT 범죄가 횡행했던 20세기 말이 시대적 배경이다.
에민 알페르 감독의 ‘쿠르툴루스’는 토지 분쟁에 관한 영화이면서 종교색이 짙다. 외딴 마을의 지도자 셰이크의 동생 메수트는 어느 날 환영에 사로잡힌다. 추방됐던 부족이 잃어버린 자신들의 땅을 되찾겠다며 귀환하는 환영이었다. 메수트는 자신이 본 이미지를 ‘신이 내린 계시’로 받아들이고, 마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형 셰이크의 절대권위에 도전하기 시작한다. ‘쿠르툴루스’는 탈출, 해방, 독립을 뜻하는 튀르키예어이고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구원(Salvation)’으로 종교적 색채가 강하다.
워릭 손턴 감독의 ‘볼프람’은 호주 식민지 변방의 광산마을에서 백인 주인에게 착취당하는 두 남매를 다뤘다. 악몽 같은 현실과 어린이들의 강제 노동에 대한 이야기다. ‘볼프람’은 호주 북부에 위치한 실제 광산이라고 전해진다.
안케 블롱데 감독의 ‘먼지’.
앤서니 첸 감독의 ‘우리는 모두 낯선 사람들입니다’.
◇한국 작품 3편도 베를린행
아시아에선 싱가포르 영화와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가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아 눈길을 끈다. 먼저 앤서니 첸 감독의 ‘우리는 모두 낯선 사람들입니다’는 베를린영화제에 최초로 진출한 싱가포르 영화로 기록되게 됐다. 역시 가족을 다루는 영화인데, 청년 준양과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는 아버지 간의 ‘위태로운 균형’에 관한 영화로 전해진다. 일본에선 시노미야 오시토시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새로운 새벽’이 초청을 받았다. 울창했던 숲의 한가운데 위치했던 불꽃놀이 공장이 재개발로 인해 철수될 위기에 놓이는 이야기다.
유재인 감독의 ‘지우러 가는 길’.
사망한 친구의 집을 3분의 1 크기로 정교하게 재현하는 한 여성을 통해 공간성과 애도를 질문하는 애나 피치 감독의 ‘요(Yo)’도 탁월한 미장센이 기대된다. 창작과 슬픔과 애도를 질문하는 작품으로 호평이 기대된다. 또 그랜트 지 감독의 ‘모두가 빌 에반스를 좋아한다’, 티차 코비 감독의 ‘마을에서 가장 외로운 남자’는 음악이라는 공통분모를 내재하고 있다.
올해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 라인업엔 한국 작품이 없지만, 다른 분야에선 세 작품이 초청을 받았다. 홍상수 감독의 ‘그녀가 돌아온 날’이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받았고, 정지영 감독의 ‘내 이름은’이 포럼 부문에, 유재인 감독의 ‘지우러 가는 길’이 제너레이션 부문에 초청됐다. 아울러 배우 배두나가 미국 감독 레이널도 마커스 그린, 네팔 감독 민 바하두르 밤 등과 함께 경쟁부문 심사위원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올해 76회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장은 최근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연출한 세계적인 거장 빔 밴더스 감독이다. 개막작은 아프카니스탄 출신 여성 영화감독인 샤르바누 사다트의 ‘노 굿 맨’이며, 베를린영화제 명예황금곰상은 양자경에게 주어진다.
베를린 김유태 기자
안나 피치 감독의 ‘요(Yo)’.
독일 베를린영화제는 프랑스 칸영화제, 이탈리아 베네치아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린다. 영화제의 규모나 긴 역사성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세 영화제는 엇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체성이나 지향점, 영화를 바라보는 태도가 확연하게 구분된다.
칸영화제가 상업성과 영화적 미학의 접점을 탐색한다면, 베네치아영화제는 ‘작가주의’ 영화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는데, 베를린영화제는 동시대의 정 검증완료릴게임 치·사회적 방향성을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공공성이 강하다. 그도 그럴 것이 베를린영화제는 일반 관객용 티켓이 주행사장인 ‘베를리날레 팔라스트’ 인근 극장 10여 곳에서 대거 풀리는 데다 티켓값도 10유로 안팎으로 저렴해 티켓 구하기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다른 영화제와는 차별화된다.
올해 제76회째를 맞은 베를린영화제가 최근 성대한 막을 바다신2릴게임 올린 가운데 베를린영화제 현지에서 월드 프리미어(세계 첫 공개)로 상영될 경쟁부문(Competition) 진출작 22편을 미리 살펴봤다. 베를린영화제 1등상인 ‘황금곰상’은 22일 저녁(한국시간 23일 새벽) 발표될 예정이다.
에이미 아담스가 출연하는 코르텔 무드루츠 감독의 바다이야기사이트 ‘바닷가에서’.
◇스크린 주역은 이제 ‘여성’
이번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는 21세기 최정상급 여성 배우들이 집결한다. ‘컨택트’ ‘녹터널 애니멀스’의 에이미 애덤스, ‘존 오브 인터레스트’ ‘추락의 해부’의 잔드라 휠러, ‘클라우즈 오브 야마토연타 실스마리아’ ‘논-픽션’의 쥘리에트 비노슈가 주연을 맡은 세 영화가 ‘2026 베를린영화제 에디션’을 형성했기에 세 배우의 연기 대결이 예상된다.
먼저 잔드라 휠러가 출연한 마르쿠스 슐라인처 감독의 신작 ‘로즈’는 이번 영화제 최고 기대작이다. 17세기 초, 독일의 개신교 마을에 한 병사가 나타나 자신이 “버려진 농장의 상속자”라고 주장 릴게임사이트추천 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서류를 제시하고, 지역 유지의 딸인 수잔나와 정략결혼을 추진한다. 하지만 그의 실체는 ‘남장 여자’였다. 마을을 속인 사기꾼의 뻔뻔스러운 거짓말은 도대체 무슨 이유였을까.
에이미 애덤스의 ‘바닷가에서(At the Sea)’는 문드루초 코르넬 감독의 작품이다. 알코올중독으로 재활치료를 받고 가족들에게 돌아온 로라의 이야기다. 로라는 이제 단주했지만 과거 그녀가 저지른 치명적인 사고 때문에 가족들은 로라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로라의 딸은 적대감을 드러내고 아들 역시 거리를 둔다. 스스로 자멸한 이후의 인간의 정체성은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영화로 전망된다.
공교롭게도 쥘리에트 비노슈가 출연한 베를린영화제 초청작 제목에도 ‘바다(sea)’가 포함됐다. 비노슈가 주연을 맡은 랜스 해머 감독의 ‘바다의 여왕(Queen at Sea)’은 줄거리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는데, 외신에 따르면 진행성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로 알려졌다. 딸 아만다는 의붓아버지와 함께 병중인 모친 레슬리를 런던으로 이주시키려 하고, 이 과정에서 통제 불가능한 갈등을 겪는다.
줄리에 비노쉬가 출연하는 랜스 해머 감독의 ‘바다의 여왕’
◇해체된 가족, 붕괴된 공동체
‘바닷가에서’와 ‘바다의 여왕’에서 보듯이, 올해 베를린영화제의 큰 특징 중 하나는 ‘해체 위기에 직면한 가족’을 다룬 영화가 대거 레드카펫을 밟게 된다는 점이다. 가족은 더 이상 내밀한 안식처가 되지 못하고, 돌봄이나 양육의 책임으로 물든 ‘회색지대’라는 시대적 무의식이 이번 베를린영화제 작품 선정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무너진 가족’의 초상을 다룬 영화는 경쟁부문 초청작 가운데 10편이 넘는다.
베스 지 아라우주 감독의 ‘조세핀’은 영화제 측이 공개한 짧은 시놉시스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는 문제작이다. 8세 소녀 조세핀과 아빠 데미안은 축구를 하러 공원으로 가던 도중, 한 여성이 낯선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조세핀은 아빠에게 “그 남자가 그 여자에게 무슨 짓을 하려던 것인지”를 묻지만, 데미안은 악의와 폭력으로 가득한 이 세상의 잔혹한 진실을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다. 트라우마 속에서 조세핀은 같은 반 친구들을 ‘친구’와 ‘적’으로 나누고,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간다.
일케르 차타크 감독의 ‘노란 편지들’은 13세 소녀 에즈기의 가족이 겪는 균열과 화해를 다룬다. 유명 예술가 부부인 에즈기의 부모는 그들이 연출한 연극 초연 중 무대에서 벌어진 어떤 사건 때문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그 장면은 정치적 선언이 아니었지만 정부는 그들을 하룻밤 사이에 이들 가족을 ‘표적’으로 삼는다. 제목인 노란 편지는 ‘소환장’을 뜻하는 은어로, 이 영화는 외부의 힘이 작동하면서 갑작스럽게 추락한 가족 공동체를 통해 붕괴되는 소공동체의 현실을 질문한다.
베스 데 아라우조 감독의 ‘조세핀’
카림 아이누즈 감독의 ‘장미덤불 가지치기’도 베를린영화제 기대작으로, 다른 작품들과 달리 좀 더 현재적인 정서의 작품이다. 카탈루냐의 호화 빌라에서 상속받은 재산으로 살아가는 잭, 에드, 애나, 로버트는 시각장애를 가진 아버지의 요구를 외면하고 명품에 집착한다. 맏형이 가족을 떠나겠다고 선언하고, 이후 남매는 어머니의 죽음에 깃든 비밀을 파헤친다. 전통적 가부장적 가족의 부조리가 전면에 드러나는 작품이라고 베를린영화제 측은 소개했다.
무조건적인 모성애의 문제를 질문하는 한나 베르홀름 감독의 ‘나이트본’, 소통의 부재와 침묵의 의미를 다루는 앙겔라 샤넬레크 감독의 ‘내 아내가 운다’, 경제적 압박으로 인해 방 하나를 세놓은 여성과 입주한 남자, 또 그의 9세 아들의 유대를 담은 페르난도 에임브케 감독의 ‘모스카스’, 삼촌의 죽음에 숨겨진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나서는 릴리아를 다룬 레일라 부지드 감독의 ‘속삭임 속에’, 딸 니나와 똑같은 나이의 로자를 만난 뒤 로자가 그린 그림의 비밀을 사유하는 준비에브 뒬뤼드 드 셀 감독의 ‘니나 로자’, 두 세계를 넘나드는 가족의 굴레를 조명하는 알랭 고미스 감독의 ‘다오’, 초자연적 힘을 가진 소녀와 마흔 살 여성의 만남을 다룬 마트 살레 하룬 감독의 ‘숨숨, 별들의 밤’,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엄마와 그녀의 딸 리아의 정체성 탐색을 사유하는 에바 트로비슈 감독의 ‘아주 특별한 무언가’ 등도 모두 ‘가족 모티프’로 채워진 작품으로 기대를 모은다.
산드라 휠러가 출연하는 마르쿠스 슐라인저 감독의 ‘로즈’.
◇진창과 같은 악한 현실로부터
안케 블롱데 감독의 ‘먼지’는 돈과 명성이 사라진 직후의 두 사업가의 표정을 집중 조명한다. 벨기에 사업과 뤽과 게르트는 자신들이 설립한 ‘유령회사’가 언론에 폭로될 위기에 처한다. 즉시 증거인멸이 진행되지만 하룻밤만 지나면 자택으로 들이닥칠 경찰의 수사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누구보다도 위풍당당했던 두 사람에겐 이제 단 하루의 시간만이 남은 것. 더는 죄로부터 탈주할 수 없을 때,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가를 집중 조명하는 영화다. IT 범죄가 횡행했던 20세기 말이 시대적 배경이다.
에민 알페르 감독의 ‘쿠르툴루스’는 토지 분쟁에 관한 영화이면서 종교색이 짙다. 외딴 마을의 지도자 셰이크의 동생 메수트는 어느 날 환영에 사로잡힌다. 추방됐던 부족이 잃어버린 자신들의 땅을 되찾겠다며 귀환하는 환영이었다. 메수트는 자신이 본 이미지를 ‘신이 내린 계시’로 받아들이고, 마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형 셰이크의 절대권위에 도전하기 시작한다. ‘쿠르툴루스’는 탈출, 해방, 독립을 뜻하는 튀르키예어이고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구원(Salvation)’으로 종교적 색채가 강하다.
워릭 손턴 감독의 ‘볼프람’은 호주 식민지 변방의 광산마을에서 백인 주인에게 착취당하는 두 남매를 다뤘다. 악몽 같은 현실과 어린이들의 강제 노동에 대한 이야기다. ‘볼프람’은 호주 북부에 위치한 실제 광산이라고 전해진다.
안케 블롱데 감독의 ‘먼지’.
앤서니 첸 감독의 ‘우리는 모두 낯선 사람들입니다’.
◇한국 작품 3편도 베를린행
아시아에선 싱가포르 영화와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가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아 눈길을 끈다. 먼저 앤서니 첸 감독의 ‘우리는 모두 낯선 사람들입니다’는 베를린영화제에 최초로 진출한 싱가포르 영화로 기록되게 됐다. 역시 가족을 다루는 영화인데, 청년 준양과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는 아버지 간의 ‘위태로운 균형’에 관한 영화로 전해진다. 일본에선 시노미야 오시토시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새로운 새벽’이 초청을 받았다. 울창했던 숲의 한가운데 위치했던 불꽃놀이 공장이 재개발로 인해 철수될 위기에 놓이는 이야기다.
유재인 감독의 ‘지우러 가는 길’.
사망한 친구의 집을 3분의 1 크기로 정교하게 재현하는 한 여성을 통해 공간성과 애도를 질문하는 애나 피치 감독의 ‘요(Yo)’도 탁월한 미장센이 기대된다. 창작과 슬픔과 애도를 질문하는 작품으로 호평이 기대된다. 또 그랜트 지 감독의 ‘모두가 빌 에반스를 좋아한다’, 티차 코비 감독의 ‘마을에서 가장 외로운 남자’는 음악이라는 공통분모를 내재하고 있다.
올해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 라인업엔 한국 작품이 없지만, 다른 분야에선 세 작품이 초청을 받았다. 홍상수 감독의 ‘그녀가 돌아온 날’이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받았고, 정지영 감독의 ‘내 이름은’이 포럼 부문에, 유재인 감독의 ‘지우러 가는 길’이 제너레이션 부문에 초청됐다. 아울러 배우 배두나가 미국 감독 레이널도 마커스 그린, 네팔 감독 민 바하두르 밤 등과 함께 경쟁부문 심사위원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올해 76회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장은 최근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연출한 세계적인 거장 빔 밴더스 감독이다. 개막작은 아프카니스탄 출신 여성 영화감독인 샤르바누 사다트의 ‘노 굿 맨’이며, 베를린영화제 명예황금곰상은 양자경에게 주어진다.
베를린 김유태 기자
안나 피치 감독의 ‘요(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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