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포토시'의 한 광산 [EPA=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칠레 출신 유명 소설가 이사벨 아옌데는 1973년 벌어진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실각하자 긴급히 망명길에 올랐다. 대통령의 조카였던 이사벨은 망명길에 두 권의 책을 집어 들었다고 한다. 하나는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 그리고 나머지 한 권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라틴아메리카의 열린 혈맥'(1971)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열린 혈맥'은 출간과 함께 저자의 모국 우루과이에서 금서로 지목됐 사이다릴게임 다. '청년을 망치는 나쁜 책'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책에는 500여년 동안 라틴아메리카 민중이 겪어온 가혹한 수탈의 역사가 담겼다. 1988년 범우사에서 번역 출간됐던 제목도 '수탈된 대지'였다. 책은 절판됐다.
절판됐던 책이 최근 '라틴아메리카의 열린 혈맥'이란 제목으로 새롭게 번역돼 재출간됐다. 원제(Las venas abiertas 릴게임종류 de America Latina)를 의역 없이 그대로 제목으로 삼았다.
출판사 알렙은 "한국에는 그동안 '수탈된 대지'로 소개돼 왔는데, 그것은 빼앗긴 땅이라는 뜻으로, (원제에 담긴) '혈맥이 열려 있는 땅', '피 흘리는 대륙'과는 거리가 멀다"며 제목을 바꿔 펴낸 이유를 밝혔다. 이어 "'열린 혈맥'은 라틴아메리카 대륙이 금, 은 10원야마토게임 , 설탕, 고무, 구리, 석유 등 풍부한 자원을 끊임없이 외부 세계에 공급하며 피 흘려온 역사를 상징하는 은유"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책에는 라틴아메리카의 수많은 자원이 유럽으로 흘러가는 과정이 상세하게 담겼다.



이사벨 아옌데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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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래로, 스페인의 탐험가들은 화승총을 쏘고, 검을 휘두르며 전염병을 유발하면서 전진해 갔다. 호수를 메워 도시를 건설할 정도로 발전된 문명을 이룩한 아스텍은 스페인 탐험대장 코르테스의 한 줌도 안 되는 군대에 허무하게 무너졌다. 아랍과의 800년 전쟁을 통해 단련된 스페인 군대는 전략이 바다이야기APK 풍부했고, 무기에서 상대를 압도했으며, 상대 진영에 분열을 획책할 줄도 알았다. 스페인 군대는 아스텍은 물론 마야, 잉카까지 단숨에 진격해 현지 주민인 인디오를 노예로 만들었다. 천문학자도, 기술자도, 석기시대의 미개인도 별다른 구분 없이 모두 광산에 투입됐다. 16세기 볼리비아 포토시, 멕시코 과나후아토 등에서 대규모 은광이 발견되면서다. 1503년부터 1660년 사이 150여년간 스페인에 운송된 금과 은만 유럽이 비축한 총량의 3배에 달했다.
수탈은 잔혹했다. 갱도에서 수많은 사람이 일하다 죽었다. 그들은 백인이 거두는 부(富)의 부스러기조차 얻지 못한 채 가난과 굶주림, 폐병 속에서 죽어가거나 자살했다. 자식이 탄광에 끌려가지 않도록 어린애들을 죽이고 자기 목숨도 끊는 엄마도 흔했다. 스페인 군대가 카리브해에 나타났을 때 인디오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대략 7천만명이었으나 150년 후 350만명으로 급감했다. "풍요로울수록 인디오들의 삶에 가해지는 위협은 더 심각해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아스텍 신전을 파괴하고 그 위에 세운 멕시코시티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연합뉴스 자료사진]


막대한 부가 현지 총독과 라틴아메리카 대부분을 차지한 스페인, 그리고 브라질을 손에 얻은 포르투갈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들도 '부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쉽게 번 돈은 쉽게 나갔다. 거대한 궁전과 호화로운 성당을 짓고, 사치품을 구비하고 파티를 열며, 전쟁을 하느라 화수분 같던 재물도 결국 마르고 닳았다. 필수공업품과 보석과 가구 등 사치품은 필요하면 얼마든지 수입하면 됐으니 자국 산업을 육성하지도 못했다. 학생들은 공부를 안 했다. 스페인 서부 살라망카의 학생 수는 수십 년 사이 반으로 줄었다. 대신 놀고먹는 성직자와 귀족만 급증했다. 요컨대 자본은 축적되지 않았고, 인재의 씨는 점점 메말라갔다. 수혜는 영국과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지 산업가와 은행가들의 손으로 들어갔다. 영국이 후일 나폴레옹에게 대항할 수 있었던 건 스페인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금과 은 덕택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문제는 이때 시작된 수탈이 여전히 계속된다는 것이다. 민중의 삶은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 수탈의 항목은 금은과 같은 광물에서 시작해 설탕, 석유와 주석, 바나나와 커피로 영역을 넓혀갔다. 대부분의 부는 유럽과 미국 같은 선진국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나마 남은 현지 자본도 서구 세계와 결탁한 소수 엘리트에게 돌아갔다. 16세기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부유했던 은광의 도시 '포토시'는 현재 광맥이 마르면서 중남미에서도 가난한 볼리비아, 그곳에서도 가장 가난한 도시가 됐다. 착취 속에 가난해진 포토시는 자원의 풍요 속에 고혈만 늘어갔던 라틴아메리카 민중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인디오는 자신의 부로 인한 저주를 겪어왔고, 지금도 겪고 있는데, 이는 라틴아메리카 전체에서 일어난 비극을 압축한 것이다."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EPA=연합뉴스]


식민주의를 비판한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1961)이 아프리카 민중의 수난사를 다뤘다면 이 책은 수탈 속에서 신음했던 중남미 민중사를 다룬 책이다. 서구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민중에 대한 온정을 담았다는 점에서 두 책은 쌍둥이처럼 닮았다. 함께 읽기에 좋은 책들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열린 혈맥'은 리얼리스트였으면서도 동시에 뛰어난 신화·역사학의 대가가 쓴 수작이라 할만하다. 꼼꼼한 취재와 시적 문장이 모두 담겼다. 예술품이든 책이든 재능있는 작가가 젊은 시절의 열정을 쏟아부은 작품은 시대와 무관하게 강력한 에너지를 뿜어내곤 한다. 이 책이 그렇다. 읽다 보면 가슴 아프지만, 동시에 가슴을 뛰게 하는 힘도 분명히 있다.
조구호 옮김. 5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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