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시 작가의 2023년 작 유화 ‘개와 운석’. 하이트컬렉션 제공


‘형상은 닮게 그린 게 아니라 감각을 드러내는 규칙이다.’
젊은 화가들이 이런 화두를 꺼내들었다. 지난 5~7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하이트컬렉션에서 열린 기획전 ‘형상은 예외가 아닌 규칙’은 청년 화가들의 만만치 않은 상상력이 표출된 전시 마당이었다. 참여 작가인 고등어, 곤도 유카코, 써니킴, 박광수, 박종호, 안지산, 양유연, 이동혁, 이재석, 임노식, 정수진의 작업들은 회화가 시대정신 혹은 시대의 감각을 핍진하 황금성사이트 게 전해주는, 여전히 유효한 언어임을 입증해 보였다. 인물이나 사물의 모양새를 본뜨는 사생에 기대지 않고 분열된 기억들, 내면 의식, 감정을 물질화·사물화시킨 방식들을 선보였다. 불안감이 내장된 그들만의 감각을 돌올하게 드러내는 구조로 회화의 표면을 이야기했다.
이들의 전시에서 분명하게 전달한 건 디지털 이미지가 난무하는 지금 시대에도 회 릴게임가입머니 화는 여전히 유력하고 소중한 매체라는 진실이었다. 획일적인 평면성만 강조하는 디지털 미디어아트와 달리 인간의 손길이 머물고 지나가는 그림의 존재 방식은 여전히 시각적이면서 촉각적이기 때문이다.
올가을에도 이런 맥락의 전시 흐름은 이어진다. 서울의 미술 공간에 청년 화가들이 지금 무슨 생각과 상상을 하며 그리는지를 보여주는 회화 전시들이 줄 바다이야기 을 잇고 있다. 하이트컬렉션은 다음달 13일까지 4인 작가 기획전 ‘브랜디를 마실 것 같은’을 차렸다. 2014년부터 연례적으로 열어온 젊은 작가전의 하나로 제트(Z)세대인 강예빈, 이오이, 조은시, 조은형 작가의 회화를 내놓았다. 1990년대 후반에 태어나 2025년 현재 미대를 갓 졸업했거나 졸업할 예정인 이들은 온라인에 넘쳐나는 정보와 이미지들, 도시 바다이야기온라인 와 기술·문화·자연에 대한 예민한 감각 등을 회화적 방법론으로 표출한다. 전시 기획진은 “개인의 정서와 상상에 기반을 둔, 공기나 습기처럼 온몸으로 감각되는 그림들에 몰두한다”고 소개했다.



강예빈 작가가 올해 그린 신작 유화 ‘Embers, 2025’. 하이트컬렉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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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앞에 절망하면서도 충만한 미래를 갈망하는 20대 젊은이들의 모습을 담은 프랑스 작가 조르주 페렉의 소설 ‘사물들’의 내용 중에서 제목을 따온 이 전시는 네 작가는 각양각색의 회화적 상상력을 내뿜는다. 강예빈 작가는 중고 상품 거래 사이트에 올린 무심한 이미지를 회화 맥락 속에서 재해석하면서 기기묘묘한 사건의 배경 속에 사물을 놓은 듯한 그림들을 내놓았다. 타투이스트 출신의 이오이 작가는 합판 위에 두껍게 덧칠하고 긁어내거나 이끼와 방치된 벽면재 등도 붙이면서 표면을 활보하는 이미지 난장을 빚어낸다. 자연재해 등에서 분출되는 강력한 힘들을 배경으로 돌, 나무, 바다 같은 자연물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배치한 조은시 작가와 햇빛, 바람, 구름 같은 자연의 약동에서 느낀 감각을 얇은 천 위에 구아슈와 유화로 표현한 조은형 작가의 작업들도 주목할 만하다.
서울 부암동 에이라운지 갤러리에서 다음달 20일까지 열리는 조효리 작가의 개인전에는 작가가 삶의 속도를 조율하는 의지와 자신이 바라본 순간의 풍경과 감정을 담은 그림들을 내놓았다. 보도블록, 울타리, 표지판, 고양이의 잠 등이 이미지로 등장한다. 문이 살짝 열린 틈새로만 볼 수 있는 1층 전시장의 울타리 형태의 구조물도 독특한 관람거리다.



정희민 작가가 올해 그린 신작 ‘두 입이 속삭여 4’. 온라인에서 얻은 이미지를 3디(D) 프로그램으로 가공하고 캔버스나 투명한 젤리 재료(겔 미디엄) 위에 올려 만든 독특한 기법의 회화다. 타데우스 로팍 서울 제공


서울 한남동 타데우스 로팍 서울 갤러리에서는 온라인에서 모은 자연 이미지를 3디(D) 프로그램으로 다듬은 뒤 캔버스나 투명한 젤리 재료(겔 미디엄) 위에 올려놓고 부피감을 가진 물질적 표면으로 회화를 탈바꿈시켜 버린 정희민 작가의 근작들을 살펴볼 수 있다. 내년 2월7일까지 청동 조각 작품과 함께 선보이는 그의 개인전 ‘번민의 정원’이다. 초현실주의 거장 호안 미로의 낯선 조형물 명작 전시도 함께 열리고 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