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간절곶 일출 정경




신흥 공업도시 울산의 흔적
울산은 우리나라 최대의 공업 도시다. 최빈국에서 시작해 압축 성장의 견인차로 성장하기까지의 시간이 겹겹이 쌓인 도시가 바로 울산이다. 인구 8만의 작은 신흥 도시는 국가 경제발전의 무거운 짐을 지고 60년의 세월을 지나 여기까지 와 인구 100만이 넘는 광역시가 됐다.

울산 도심에는 공업도시 울산의 옛날을 느껴볼 수 있는 여행지가 있는데, 이름하여 ‘맨발의 청춘 황금성게임랜드 길’이다. 태화강과 인접한 성남동 ‘젊음의 거리’의 뒷골목이다. 울산이 급격한 공업화와 도시화 과정을 겪던 무렵에 청년 시절을 보낸 7080세대들의 추억을 주제로 꾸민 골목이다. 1970~80년대 울산의 근로자들과 학생들이 분주히 오가던 골목길의 향수를 재현하고자 2016년부터 중앙동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길은 짧다. 320 바다이야기오리지널 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맨발의 청춘길 입구에 들어서면 전체 구간을 알려주는 지도를 볼 수 있는데, 크게 음악존과 영화존, 패션존 등의 구역을 나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길을 걷다 보면 다양한 벽화와 벽면 파사드를 만난다. 여기에 오랜 세월 자리해 있던 가게들의 분위기가 어우러져 레트로한 풍경을 빚어낸다. 중간중간 포토존과 귀여운 캐릭터를 찾아보는 바다이야기무료 재미도 쏠쏠하다.



곳곳에서 만나는 ‘큰애기 아지야’ 캐릭터, 대한뉴스를 테마로 꾸민 공간



골목 곳곳에 보이는 캐릭터는 ‘큰애기 아지야’다. 여기서 ‘큰애기’는 ‘울산 큰애기’를 말하고, ‘아지야 황금성슬롯 ’는 ‘오빠’ 혹은 ‘아저씨’를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다. ‘큰애기 아지야’는 산업화 시기, 지금의 울산과 국가 경제를 일군 산업역군을 일컫는다. 이들이 힘든 일과를 마치고 퇴근한 뒤, 고단한 몸을 이끌고 성남동 버스 정류장에 내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던 길이 바로 ‘맨발의 청춘길’이다. 쇠락하고 누추한 뒷골목이 가진 분위기가 저절로 추억을 환기한다. 골목 오션파라다이스사이트 의 건물 외벽에 그려진 이소룡 벽화가 인상적이다. 특히 음악존에서는 동작 감지 센서가 설치되어 있어, 사람이 지나가면 자동으로 7080세대 음악이 흘러나와 옛 추억에 젖게 한다. 방문객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휴게용 계단도 마련되어 있다.

그렇다면 울산 큰애기는 누구일까? ‘울산 큰애기’는 1965년에 히트한 가수 김상희의 노래 제목이자 노랫말의 주인공이다. 노래 가사가 이렇다. “내 이름은 경상도 울산 큰애기 / 상냥하고 복스런 울산 큰애기 / 서울 간 삼돌이가 편지를 보냈는데 / 서울에는 어여쁜 아가씨도 많지만 / 울산이라 큰애기 제일 좋대나 / 나도야 삼돌이가 제일 좋더라.”
돈 벌러 상경한 삼돌이가 서울에 가서도 일편단심 울산 큰애기만 생각한다는 내용이다. 노래 속 ‘큰애기’는 ‘젊은 여성’을 뜻하기도 하고, ‘맏며느리’를 부르는 호칭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하필 서울도 부산도 아닌 ‘울산’ 큰애기일까. 이 이유는 1933년에 나온 신민요 ‘울산 타령’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울산 타령에서 ‘울산 큰애기’는 인정도 많고, 사려 깊은 여성으로 등장한다. 이런 이미지의 캐릭터가 대중음악으로 지금까지 이어오는 셈이다.



울산 맨발의 청춘길에 자리한 큰애기 캐릭터



노래 ‘울산 큰애기’가 히트한 1965년 무렵은, 공업 도시로 지정된 울산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때였다. 공장이 속속 들어서면서 일자리를 찾아 전국에서 외지인이 쏟아져 들어왔고 울산의 경기는 호황이었다. 커피에 달걀을 타 주는 이른바 ‘모닝커피’가 유행했고, 술집과 여관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중앙호텔 앞에 ‘홍콩 비어홀’이 들어섰고, 옥교동 미나리카바레 인근에 ‘미광 통술집’이 문을 열었으며, 중앙시장 앞에는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장식한 ‘동경 비어홀’이 성업하던 무렵이었다.

맨발의 청춘길을 다니면서 울산 큰애기 캐릭터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중구청은 울산 큰애기 캐릭터에 실존 인물처럼 나이와 성격, 직업 등의 스토리도 부여했다. 중구 반구동에 사는 20대 여성이며 키는 160㎝ 중반. 배춧국을 좋아하고 머리핀과 원피스를 즐겨 입는다. 친절하고 새침하며 도도하고 적극적이다. 취미는 관광객과 사진 찍기와 태화강변에서 자전거 타기다.
울산 중구의 원도심에는 울산 큰애기 캐릭터를 앞세운 ‘울산 큰애기 이야기로(路)’도 만들어져 있다. 길은 구도심을 누비며 근현대의 이야기가 스며 있는 곳들을 두루 들린다. 3개 코스의 길을 다 해봐야 4.5㎞ 남짓이니, 코스를 구분할 것 없이 그냥 다 걸어보면 좋을 듯하다. 느긋하게 걸어도 서너 시간이면 다 둘러볼 수 있다.



중구 원도심의 상징인 시계탑



중구 원도심의 상징은 뭐니뭐니 해도 문화의 거리와 학성로가 열 십(十) 자로 만나는 교차로에 있는 시계탑이다. 1967년 라이온스클럽이 울산의 공업화를 기념하기 위해 기증한 시계탑은, 처음에는 철제 아치에 대형 시계를 매단 형태였다. 1977년 원활한 교통 통행을 이유로 철거됐다가 시계탑 복원 민원이 쇄도하자 다시 만들었다. 1998년에 새로 만들고 2015년에 고쳐 지은 지금의 시계탑은 돔을 닮은 왕관 형태다.



우리네 모습과 꼭 닮은 모습, 옹기
맨발의 청춘길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여행지가 있다. 온양읍에 자리한 외고산 옹기마을이다. 이곳에선 옹기 장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외고산 옹기마을은 1957년 경북 영덕에서 옹기를 만들던 고 허덕만 씨가 이주하면서 만들어졌다. 이곳의 풍부한 질점토가 옹기 제작에 최적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옹기 만드는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1970년대에는 옹기를 만드는 집이 150세대가 넘기도 했다. 당시 마을에서 생산한 옹기는 온양읍 남창마을의 남창역을 통해 서민들의 삶터로 실려 나갔는데, ‘남창옹기’로도 불렸다. 나이 드신 분들은 어쩌면 이 이름을 들어보았을지도 모른다. 최근에도 전국 옹기의 50%가량이 이곳 외고산옹기마을에서 출하된 옹기라고 한다.

옹기는 1980년대 이후 저렴하고 튼튼한 플라스틱 용기가 밀려 들어오면서부터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옹기장들은 마을의 명맥을 이으며 고집스럽게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옹기 가마 일은 온도계뿐만 아니라 눈과 체온의 감각을 요구한다. 언뜻 무던해 보이는 옹기지만, 수십 년 장인들의 경력과 감, 손길이 필요한 이유다.



옹기마을 전시장



옹기마을을 찾았다면 옹기박물관도 찾아보자. 옹기에 대한 궁금증을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다. 옹기의 효능과 제작 과정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며, 세계 각국의 옹기도 전시하고 있다. 옹기의 모양이 지역별로 다르다는 것도 흥미롭다. 따뜻한 남부지방의 옹기는 항아리의 통과 폭을 넓게 만들어 빛의 투과율을 낮추었고, 북부지방은 옹기의 폭을 좁게 만들어 빛을 많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 데서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옹기아카데미는 옹기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옹기를 체험하는 곳인데, 일반인도 흙 놀이와 도예 체험이 가능하다.

옹기마을을 돌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마을은 생각보다 넓다. 낮은 지붕을 이은 작업장과 전통 가마, 체험 공방, 소담한 카페와 식당이 골목을 따라 이어진다. 울퉁불퉁한 흙길을 밟으면 바닥에서 사각거리는 가을이 올라오고, 담장 너머로는 굽기 전 옹기가 질서정연하게 말라가는 풍경이 보인다. 물레가 도는 소리, 가마문 여닫는 소리, 멀리서 아이들 웃음소리가 한데 섞여 마을의 BGM이 된다. 마을 고샅길을 걷다 보면 옹기에 유약 바르는 것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마을은 아담해서 한두 시간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상설 판매장이 있어 마음에 드는 옹기는 구매도 가능하다. 물론 시중보다 훨씬 저렴하다.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해
외고산옹기마을에서는 간절곶도 가깝다. 한반도의 뭍에서 가장 해가 빨리 뜨는 곳이다. 영일만 호미곶보다 서쪽에 위치하지만 위도가 낮아 1~2분 정도 먼저 뜬다. 간절곶이라는 이름은 바다에서 보면 긴 ‘간짓대(막대기)’처럼 보인다 해서 간절곶(艮絶串)이란 이름이 붙었다. 울산 지역 읍지에도 ‘울산 간절곶에 해가 떠야 한반도의 새벽이 온다’는 기록이 내려온다.

간절곶 언덕배기에는 등대가 있는데 그 역할이 지금도 크다. 한때 장생포의 포경선들의 길잡이 역할을 했고 지금은 원유를 실은 유조선과 자동차를 싣고 가는 컨테이너선 등 수많은 화물선과 어선들의 지표가 된다. 지금 서 있는 등대는 2001년 새로 세운 것이다. 불빛의 밝기는 무려 180만 캔들에 달한다. 양초 180만 개를 모아놓은 것과 같다. 불빛은 50km 밖까지 닿는다. 전구 하나가 무려 30만~40만 원이라고 한다.




간절곶은 자그마한 공원처럼 꾸며 놓았다.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됐다는 신라 충신 박제상 부인 석상도 세워져 있다고 커다란 ‘소망 우체통’도 있다. 높이가 무려 5m, 가로 2.4m, 세로 2m다. 무게는 7t이나 된다. 그냥 형식적으로 세워놓은 모형이 아니라 남울산우체국에서 관리하고 있는 진짜 우체통이다.

대왕암공원과 슬도 역시 울산의 명소다. 대왕암이 있는 대왕암공원은 우리나라 동남단에서 동해 쪽으로 가장 뾰족하게 나온 부분의 끝 지점에 해당하고, 동해의 길잡이를 하는 울기항로표지소로도 알려져 있다. 100년 세월을 견뎌내고 하늘 높이 솟아있는 1만 2,000여 그루의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한 송림길과 대왕암공원에서부터 시작해 슬도로 이어지는 해안길은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특히 슬도 초화단지에 심어놓은 팜파스 그라스와 댑싸리가 만개해 가을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다.


일본 성의 원형을 엿보다





서생포 왜성



시간이 난다면 서생포 왜성에도 가보자. 옹기마을에서 지척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임진왜란 당시 만들어진 것인데, ‘축성의 달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가토 기요마사가 쌓았다. 임진왜란 때 한산대첩과 진주성 전투에 패한 왜군은 조명 연합군의 반격에 쫓기게 되고 결국 1593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군 철수를 명령한다. 이에 일본군은 경상도 해변에 20여 개의 성을 쌓고 농성에 들어간다. 서생포 왜성은 그때 지어진 것으로 가장 규모가 크고 웅장하다.

성은 비교적 그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산정을 향하는 성벽은 거의 원형대로 남아 있다. 다양한 출입구와 석루 등도 남아있고 가토가 기거했던 천수각 자리의 돌계단도 비교적 선명하다. 성을 둘러싼 네모진 공간들과 위장된 길들이 서로 미로처럼 얽혀 있는 것도 서생포 왜성의 특징이다.
성에서 왜군이 물러간 것은 선조31년인 1598년, 정유재란 때다. 왜군은 퇴각하면서 성을 쌓는 데 동원되었던 조선인들을 포로로 잡아갔다고 한다. 그들은 일본의 3대 성으로 꼽히는 가토의 구마모토 성을 축조하는데 동원됐고, 그 후손들은 ‘서생’이라는 성씨로 구마모토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울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커다란 굴뚝을 세우고 있는 거대한 공업단지다. 하지만 옹기마을과 간절곶을 여행하고 나면 생각은 완전히 바뀐다. 정겨운 옹기로 가득한 마을과 기름진 햇살이 내려앉는 드넓은 바다를 간직한 곳. 울산은 이 가을날 꼭 찾아볼 만한 여행지다.


울산 여행 정보





언양불고기



장생포는 한국 고래잡이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우리나라 동해는 예전에 ‘고래 경’ 자를 써서 경해(鯨海)로도 불렀다. 그만큼 고래가 많았다는 뜻이다. 전성기엔 한 해에 대략 1, 000여 마리의 고래가 인근 앞바다에서 잡혔다고 한다. 장생포고래박물관 주변에 원조고래할매집, 고래막집 등 고래고기를 전문으로 차리는 식당이 많다. 수육, 육회, 생고기, 우네, 오베기를 골고루 담은 고래고기모둠을 주문하면 골고루 맛볼 수 있다.

언양읍은 한우숯불구이로도 유명한 곳. ‘한우불고기특구’로 지정되어 있을 만큼 불고기로 이름난 동네다. 일제강점기부터 봉계, 경주, 울산, 영천과 더불어 영남의 5대 우시장으로 유명해 양질의 한우 공급이 가능했고 여기에 언양식 불고기 조리법이 어우러져 ‘언양 불고기’가 탄생했다. 1960년대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언양을 드나들던 건설 근로자들의 입을 타고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도축한 지 하루 이내의 신선한 고기를 사용하는데 얇게 썬 다음 석쇠에 구워 먹는다. 배와 양파즙으로 재워 부드러운 데다 석쇠의 불맛이 더해져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기와집불고기가 유명하다.
[글과 사진 최갑수]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00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