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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중구 보수동책방골목. 김대성 제공
부산 보수동책방골목 입구는 여전히 철제 펜스로 둘러쳐져 있다. 책방이었던 자리는 몇해가 지나도록 골조도 올리지 않은 채 잡초만 무성하고, 펜스에 붙은 조감도는 색이 바랜 지 오래다. 책방을 헐어내고 땅값만 올려놓은 뒤, 정작 공사는 시작도 못 한 채 멈춰버린 자리가 골목 곳곳에 흩어져 있다. 한때 70여곳이 넘던 헌책방은 이제 20곳 남짓 남았다.
‘우리글방’이 2곳으로 확장 운영됐던 2004년쯤엔 하루가 멀다고 보수동책방골목에 들렀기에 헌책이 어떻게 들어오는지, 책값은 어떻게 매겨지는지도 보게 됐고, 노상길 우리글방 대표와 절판본을 두고 묘한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가벼운 주머니 사정 때문에 책을 충분히 사진 못했지만 ‘고서.’(양수성 대표) 구석구석을 헤집는 동안 뜻밖에 많은 공부가 됐다. 때론 책 내용이 아니라 판권란을 두루 살피는 것이 어디에도 쓰이지 않은 책문화사를 몸으로 익히는 기초 운동이라는 걸 석사 논문을 쓰면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대우서.’(김종훈 대표)이 맞은편까지 확장했을 때도 책방골목을 두루 다니며 책을 둘러보고 찾고 골라내 처음 본 책과 절판본을 동료에게, 선배에서 선물하는 기쁨을 누리곤 했다.
미래유산과 로컬이라는 이름의 알리바이
지역문화재단 문화예술 사업과 아카이빙 사업으로 책방골목 이야기와 역사가 부분적으로 추려지긴 했지만 대체로 기념, 성과, 의미 부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어서 이 걸음이 책방골목 문화를 잇는 동력이 됐는지 알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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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온라인 서.이 자리 잡기 시작한 2000년대부터 크게 휘청이기 시작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책방골목 기념화 사업이 본격화하던 2010년대부터 보수동책방골목은 급격히 쇠락한다. 원도심 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경관 조성 및 문화관 설립에 따른 재개발 기대심리에 따른 임대료와 땅값이 치솟고 그 압박을 견디지 못한 곳곳의 책방이 문을 닫으면서 골목은 빠르게 성겨졌다.
부산시 중구 보수동책방골목에 있는 우리글방. 김대성 제공
부산시는 2019년, 책방골목을 지식나눔길과 역사기록길, 문화체험길로 나눠 ‘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명패를 다는 일과 책방이 실제로 살아남도록 돕는 일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헌책방들이 하나둘 무너지는 동안 예산과 정책은 계속 뒤로 미뤄졌고, 오피스텔로 재건축할 거라는 책방골목 초입 부지는 여전히 공터 상태다. 미래유산 지정은 이 골목을 ‘지켜야 할 과거’의 자리에 붙박아둠으로써 책임을 다했다는 알리바이를 갖춘다. 도시 전체가 짊어져야 할 몫이 책방골목에 남은 이들의 생계와 헌신으로 메워지고, 오늘의 책방골목은 자꾸 미래와 과거(미래유산)에 잡아먹힌다.
이 어긋남은 ‘지역’이라는 말이 작동하는 방식과 무관하지 않다. 어떤 장소가 ‘지역 명소’나 ‘로컬 콘텐츠’로 호명되는 순간, 그 장소가 안고 있던 실질적인 문제 - 상권의 붕괴, 치솟는 임대료, 원도심의 공동화 - 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지역다움’을 소비하는 시선은 그 장소를 정겨운 배경으로만 남겨두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생존 문제는 가려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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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하고 세련된 버전의 지역성은 납작한 콘텐츠로 소비되지만, 정작 그 지역에서 수십년째 자리를 지켜온, 딱히 힙하지 않은 존재들이 서서히 바깥으로 밀려나는 걸 너무 많이 봐왔다.
‘지역화’는 애정을 두른 말이지만, 실은 무엇을 국가 의제에서 제외해도 되는지를 가르는 배제 장치로 작동하는 면이 있다. 보수동책방골목을 살리겠다며 시작된 도시재생사업과 미래유산 지정이 골목의 공동화를 더 가속한 면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두 사업 모두 책방골목의 쇠락을 자본과 인구가 중앙으로 쏠리는 국가 단위의 구조 문제가 아닌, 골목 내부에서 해결해야 할 국지적 문제로 규정해 두었다. 문제를 지역 안에 가두는 순간 그 문제를 낳은 중앙과의 관계는 질문에서 빠지고, 지역은 매번 중앙이 아닌 자기 자신을 원인으로 떠안는다.
가장 오래되고 가장 새로운 헌책의 급진성
지역과 헌책. 이 둘은 얼핏 무관해 보이지만 실은 같은 문법을 공유하는데, 여기서 “모든 책은 헌책이다”(최종규)라는 말을 환기하고 싶다. 헌책방 기인(전국 헌책방 주인장에겐 ‘귀인’이다)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저자의 첫 책 제목이기도 한 저 문장은 ‘헌책도 귀하다’는 온정어린 선언이 아니라 새책/헌책이라는 분류가 시간과 제도가 만든 위계일 뿐 책의 실제 상태와는 무관하다는 걸 말한다. 새책 시장은 보는 책만 보고, 팔리는 책만 팔리고, 알려진 책만 알려지는 쏠림으로 .。 좁아지고 있다.
부산시 중구 보수동책방골목에 있는 대영서.. 김대성 제공
새책 시장에서 밀려난 책은 헌책 시장으로 건너가는 대신 절판돼 그대로 소멸하고, 헌책방에서 재발견된 책은 다시 새책 유통망으로 복귀하지 못한 채 골목 안에서만 잠시 자리를 옮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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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시장 사이에 다리가 없으니, 이미 유명하고 잘 팔리는 책만 계속 새책 자리를 지키고, 그 밖의 모든 다양성은 헌책이라는 이름의 격리된 구역으로 보내진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보수동책방골목이 몇십년째 품어온 것은 낡은 책이 아니라 획일화된 새책 시장이 구조적으로 밀어낸 다양성 그 자체다. 새책 시장이 봉쇄한 다양성이 고여 있는 장소는 다름 아닌 헌책방인 것이다.
지금 보수동책방골목에 필요한 건 포토존이나 그럴듯한 브랜딩이 아니라 이 골목이 여전히 ‘팔리지 않는 책’, ‘알려지지 않은 책’을 살려내고 다양성이 흐를 수 있도록 돕는 구체적인 지원이다. 가령 2010년 부산 중구 중앙동·동광동 일대의 빈 사무실과 건물을 활용해 조성된 문화예술 창작공간 ‘또따또가’(2010~현재)의 경우 물리적 철거와 신축 중심의 재개발이 아닌 사람과 문화 자원을 활용해 원도심을 활성화한 문화적 도시재생(Cultural Urban Regeneration) 사례를 참조해볼 수 있다.
‘가장 급진적인 로컬’이라는 말 앞에서 나는 자꾸 보수동책방골목의 빈자리를 떠올리게 된다. 지역이 중앙의 ‘다음’이 아니듯, 헌책 역시 새책 ‘다음’이 아니다. 이 순서를 뒤집는 것, 밀려난 자리를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으로 바라보고 느끼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골목이 몇십년째 묵묵히 해온, 가장 급진적인 일 가운데 하나다. 도시가 헐어내고 방치한 자리에서, 헌책방은 여전히 누군가 걸어들어와 생각지도 못한 책과 마주치기를 기다리고 있다. 땅값이 오르고 공사가 멈춘 성긴 골목에서, 가장 오래된 책들이 가장 새로운 책일 수 있다는 빽빽한 가능성은 현재진행형이다.
김대성 문학평론가·출판사 곳간 대표
, 헌책방에서 재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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