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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걔가 안 그랬다면” 가해자의 ‘정신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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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전한곳
댓글 0건 조회 0회 작성일 26-02-13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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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말, 대구경찰청 과학수사계 범죄분석팀에서 근무하던 추창우는 창밖의 봄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구 달서경찰서 관할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 때문이었다. 전 여자친구의 집을 찾아가 부모를 모두 죽이고 여자도 해친 남자가 추창우의 눈앞에 앉아 있었다.

추창우는 어느덧 9년 차의 노련한 프로파일러였다. 하지만 이번 면담에서는 고개가 저절로 갸우뚱했다. 1990년생, 스물네 살 장재진. 번듯하고 멀쩡하게 생긴 청년이었다. 공고를 졸업한 뒤 ‘수시 리더십 전형’으로 경북에 있는 한 대학교를 다니며 총동아리연합회장을 맡은 경력도 있었다. 언뜻 보아 평범한, 오히려 또래보다 진취적으로 살아가는 젊은 남성이었다.

제대 후 복학한 장재진은 막 입학한 피해자와 교제를 시작했지만 관계는 오래가지 않았다. 단 둘이 있을 때는 노골적으로 성관계를 요구했고, 술자리에서는 여자친구를 ‘별것도 아닌 게 뻗댄다’고 흉을 봤다. 친구를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 피해자가 따지자 장재진은 여자의 뺨을 때렸다. 사귄 지 6주밖에 되지 않은 때였다. 피해자는 헤어지자고 말했다.

닷새 뒤, 장재진은 학교에서 피해자를 자신의 자취방으로 끌고 가려 했다. 여성이 거부하자 이번에도 장재진은 어김없이 뺨을 때렸다. 열 대 넘게 뺨을 맞고 쓰러진 여성의 몸을 발로 짓밟았다. 거의 실신한 여성을 택시에 태워 자신의 자취방으로 끌고 가서는 또 폭행했다. 피해자의 친구들은 장재진의 폭력성을 눈치채고 있었다. 갑자기 사라진 친구를 걱정하던 동기들은 장재진의 자취방으로 달려가 간신히 피해자를 구출했다.

멍들고 부어오른 딸의 얼굴을 본 부모는 장재진의 부모를 찾아가 이 사실을 알렸다. 장재진의 부모는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아들에게 학교를 그만두라고 했다. 어차피 ‘여자친구를 때린 남자’로 소문 난 장재진은 학교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도 없었다.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며 집착하던 총동아리연합회장 자리도 잃었다.

그날부터 장재진은 학교에 나가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술을 마셨다. ‘내가 전 여자친구를 폭행했기 때문에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는 객관적인 상황 판단이 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문장의 주어와 술어가 바뀌어 있었다. ‘전 여자친구 때문에 내가 학교에서 쫓겨났다.’

프로파일러는 가해자의 ‘남 탓’에 익숙하다. 문제의 원인을 자신이 아닌 남 탓으로 돌리는 건 범죄자의 전형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들은 반성하지 않는다. 반성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범죄는 늘 ‘어쩔 수 없이’ 정당한 일이 된다. 그들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상황을 ‘이렇게 만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뒤틀린 결론에 다다른다.

자기 자신 때문에 모든 걸 잃은 상황에서도 장재진은 ‘승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2014년 5월19일 오후 5시 반, 그는 한 손에는 공구함을 들고 다른 손에는 수첩을 든 채 전 여자친구가 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가 4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장재진은 자신이 수첩에 미리 적어온 대사를 보며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띵동 띵동~ 계세요?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보일러 배수관이랑 화장실 배수관 점검 때문에 왔습니다. 이 동 8층 쪽에서 배수관이 엉망인데 원인을 찾지 못해서 지금 전체적으로 점검 중인데 5~10분 양해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누구라도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의심 없이 장재진을 집 안으로 들여보낸 피해자의 부모는 차례차례 죽임을 당했다.

그는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자정이 넘어 집에 돌아온 딸은 비명을 질렀다. 장재진은 여자의 머리칼을 낚아채 또다시 폭행했다. 부모님이 죽은 게 아니라 기절한 거라고 거짓말한 남자는 동이 틀 때까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여자에게 사과하라고 강요했다. 사람을 둘이나 죽인 상황에서도 그에게 중요한 건 오직 자신의 지위와 권력이었다. 피해자가 사과하자 장재진은 그제야 어머니의 시신을 보여줬다. 충격에 빠진 피해자가 아버지라도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장재진은 비웃었다. “너 하는 거 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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